의와 인과 신(2)
대예배에 이어 ‘의와 인과 신’ 두 번째 말씀 증거합니다.
‘신(信)’이란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에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킴에 있어서 먼저는 반드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믿어야 합니다. 또한 계명을 지키며 살 때 상 주심을 믿어야 하지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을 믿는다고 했지만 참으로 믿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골로새서 3장 22절에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는 말씀이 있지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계명을 지키기는 했지만 사람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눈가림만 했습니다. 즉 자신의 불의한 마음을 낱낱이 보고 계시는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았지요. 하나님이 살아 계심을 참으로 인정했다면 심판도 믿었을 것입니다. 악인을 멸하시고 불의를 징벌로 갚으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했겠지요. 또 하나님을 마음 중심으로 믿었다면 선행을 상으로 갚아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소망 중에 의를 행했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제 진정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시기 위해 ‘새 예루살렘 가기 운동’을 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런 운동에 마음을 같이하여 동참하는 것 자체도 중요하지만 어떤 마음으로 하는지도 중요합니다. ‘나도 새 예루살렘에 갈 수 있다’는 소망을 갖고 해야 하지요.
하나님은 침노하는 자에게 더 좋은 천국을 허락하십니다. 세상 것을 끊고 말씀을 무장하며 기도할 때마다 이런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또 상 주실 하나님을 믿고 행해 보십시오. 그러면 죄를 버리는 것도 충성도 즐겁게 할 수 있습니다. 더 아름다운 천국에 나의 처소가 지어지고 더 많은 상급이 쌓이는 소리가 들리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 곧 “하라. 하지 말라. 지키라. 버리라” 하신 대로 행할 때도 반드시 믿음으로, 즐겁게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의와 인과 신이 더 중요하니 행함은 중요하지 않을까요? 본문에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이것’도 행하고, 즉 의와 인과 신도 이루고 ‘저것’도, 즉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는 행함도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의와 인과 신이 마음에 이루어지면 자연히 계명을 지키는 행함도 따릅니다. 중심으로 예배하고 기도합니다. 온전한 십일조와 헌물을 드리고 열심히 충성, 봉사하게 되지요. 아직 의와 인과 신을 마음에 온전히 이루지 못했다 해도 마음 중심으로 말씀을 지켜 행해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중심을 보시고 의와 인과 신을 속히 이룰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니다. 즉 믿음이 빨리 성장하지요.
그런 반면, 외적인 행함이 승하다 해서 자신이 말씀대로 산다고 착각하면 안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믿음의 성장이 멈출 수 있기 때문이지요. 구약 성경 이사야 1장 11-14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의와 인과 신을 이루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하시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 마음을 한 번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나는 수양의 번제와 살진 짐승의 기름에 배불렀고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염소의 피를 기뻐하지 아니하노라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니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이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 내 마음이 너희의 월삭과 정한 절기를 싫어하나니 그것이 내게 무거운 짐이라 내가 지기에 곤비하였느니라”
즉 아무리 많은 제물을 드리고 거룩한 의식을 행해도 아울러 악을 행하면 조금도 기쁘지 않다는 말씀입니다. 오히려 무거운 짐을 지는 것처럼 마음이 괴롭다고 호소하고 계시지요. 그러므로 의와 인과 신을 이루어 나갈 때 여러분이 드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 기쁨이 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 마음에 의와 인과 신을 이루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음에 할례를 해야 합니다. 예레미야 4장 4절 전반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거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여기서 마음 가죽을 베라는 말씀은 죄악으로 더러워진 마음을 깨끗하게 씻어내라는 말씀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할례를 몸에 행했습니다. 할례는 남성의 성기 양피를 베어 내는 의식이지요. 구약은 신약의 그림자입니다. 신약 시대에는 참 할례, 곧 몸의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해야 됩니다.
골로새서 2장 11절에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마음에 할례하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신약 시대에는 성령께서 도우시기에 능히 할 수 있지요.
여기서 육적 몸을 벗는 것은 육체의 일과 육신의 일, 곧 추하고 더러운 육을 마음에서 벗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마음에 할례를 하여 썩고 변질되는 육, 온갖 더러운 죄악을 원천적으로 없앨 때 우리 마음에 의와 인과 신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여 마음에 할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주님을 영접함과 함께 할례가 다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요. 그런데 과연 마음에서 아직도 고약한 냄새가 나는데도 할례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는지요? 더러운 것이 완전히 없어질 때까지, 즉 우리 마음의 죄성이 뿌리 뽑힐 때까지 할례를 계속 해 나가야 합니다.
또 마음의 할례는 하다가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간혹 신앙의 정체를 맞는 분들이 있습니다. 신앙의 연륜도 깊고 오랫동안 직분도 맡아왔지만 어느 순간 마음의 할례는 멈춘 것이지요.
마음에 할례해 나가지 않으면 말씀을 무장하고 기도하고 충성한다고 해도 마음 중심으로 하지 못합니다. 의무감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하게 되지요. 또 하나님과 밝히 교통할 수도 없습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잘 오지 않고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도 영적인 능력과 권세가 따르지 않지요. 즉 ‘의와 인과 신’으로 계명을 지킬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왜 할례를 멈추게 될까요? 가장 큰 이유는 다시 세상을 바라보고 취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믿음이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러서 세상을 바라보거나 취하지 않는데도 이런 정체를 경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영적인 어린아이가 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고 단순해져야 하는데 나름 신앙 연륜과 경험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도 어른이 되려 하지요. 그 뿌리에는 교만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51절에 “목이 곧고 마음과 귀에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들아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 너희 조상과 같이 너희도 하는도다” 했지요. 즉 마음에 교만이 있기 때문에 성령을 거스르게 됩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지요.
한 예로,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십시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도자 모세를 통해 하나님의 수많은 능력과 기사들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모세를 거스르며 계속해서 불순종을 해 나갔지요. 이에 하나님의 진노를 샀고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혹시 어느 순간 이처럼 마음의 할례를 멈춘 분이 있다면 다시 열심 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긍휼이 풍성하신 분입니다. 얼마나 기회를 많이 주시는지요. 에스겔 11장 19-20절에 보면 “내가 그들에게 일치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신을 주며 그 몸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서 내 율례를 좇으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모든 이야기가 두 단어로 요약됩니다. 바로 ‘심판’과 ‘구원’이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듭 하나님을 저버리고 범죄했습니다. 하나님은 공의에 따라 그들을 심판하셨지요. 이방 민족의 손에 붙이시거나 질병, 자연재해 같은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그러시다가도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다시 구원해 주셨지요. 즉 하나님은 공의대로 심판을 하시되 회개하면 풍성한 긍휼과 사랑으로 용서하시고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사랑 자체이신 분으로서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작년 12월 25일에도 보셨지만 우리 하나님은 우리에게 참으로 많은 기회를 주셨습니다. 지금도 죄를 범한 성도들이 죄에서 온전히 돌이키고, 모든 성도가 더러운 마음 가죽을 완전히 베어낼 수 있도록 은혜를 부어 주고 계십니다. 오랫동안 영적으로 잠들어 있던 신앙도 깨우고 계시지요. 성령의 능력으로, 근본의 빛으로 굳은 마음, 곧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을 부드럽게 녹이고 계십니다. 이처럼 확실한 기회를 주실 때 마음에 할례하여 의와 인과 신을 온전히 이루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더러운 마음 가죽을 베어내면 마음에 새살이 돋습니다. 새살은 부드럽고 연해서 감촉을 잘 느낍니다. 이처럼 새살이 돋은 마음도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 은혜와 감동을 잘 느끼지요. 그래서 마음에 할례하면 이처럼 날마다 넘치는 기쁨 속에 살아갑니다. 또한 마음에서 온갖 더러운 것이 버려졌기 때문에 그 사람 주변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퍼져 나갑니다.
고린도후서 2장 15절에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그 얼굴과 말과 행실에서 그리스도의 향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오지요. 또한 하나님께 무엇을 드리든지 중심의 향, 아름다운 향이 올라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이 말씀을 행해도 하나님께 그 향이 더 굵고 진하게 올라가지요. 이에 따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축복도 차원이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속히 마음에 할례하여 의와 인과 신을 이루십시오. 무엇을 행하든 하나님께 “참으로 아름답다. 합당하다.” 칭찬받는 참 자녀가 되어 큰 기쁨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2011-09-12 오후 5:54:16 Posted
2011-09-15 오전 9:09:57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