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차 영·혼·육(7)

    [요일2:24-25,2:15-16]
    2004.11.28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우리가 영에 속한 영혼육을 이루기 위해서는 육에 속한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버려야 합니다. 오늘은 이러한 것들을 신속하게 버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영혼육에 관한 설교는 사람의 영과 혼과 육에 대해 사람의 지식과 지혜로는 깨달을 수 없는 깊은 내용들을 깨닫게 합니다. 눈에 보이는 육의 분야에 대해서는 사람의 지식으로도 비교적 많이 연구되어 있지만 모든 내용이 옳다고 할 수는 없지요. 더구나 보이지 않는 영혼의 분야에 대해서는 누구도 명쾌하게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영혼육을 친히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정확한 지식들을 알려 주실 수가 있기에 하나님께서 알려 주시는 내용들을 증거해 나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영혼육 말씀을 듣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아담의 범죄로 인해 변질된 육에 속한 영혼육을 영에 속한 영혼육으로 바꾸기 위함이며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땅에 경작하시는 목적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영에 속한 사람으로 온전히 변화되면 하나님의 자녀로서 천국에서 큰 영광을 누릴 뿐 아니라 이 땅에서도 구하는 것마다 응답받고 축복받아 하나님께 영광만 돌리게 됩니다.
      이처럼 영에 속한 영혼육으로 변화되려면 먼저 "영에 속한 육"을 만드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하여 썩어지고 변질되는 육에 속한 육신의 일, 육체의 일 등을 다 벗어 버려야 신령하고 거룩한 육,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아름다운 영에 속한 육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1. 육을 벗어 버리고 영의 사람이 되어야 하는 이유

      처음 아담은 영에 속한 영혼육이었는데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 육에 속한 영혼육으로 변질되었습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었기 때문이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신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요? 사람이 육을 체험한 후에 다시 영에 속한 영혼육으로 회복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육을 알지 못하는 영은 완전한 영이라 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성을 알게 하고자 함이었지요.
      아담은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고통이나 슬픔, 불행을 체험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에덴에서 모든 좋은 것들을 누리면서도 자신이 정녕 행복하다고 느낄 수는 없었지요. 그러니 영에 속한 영혼육을 가졌다고는 해도 하나님의 참자녀가 될 수는 없었던 것입니다. 곧 육을 알고 육의 것을 체험해 본 상태라야 영으로서의 진정한 가치를 지닐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경작의 섭리 속에 선악과를 두셨고 선악과를 따먹으면 어떤 고통을 겪게 될지를 알려 주시고 자유의지 가운데 아담이 선택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아담이 진정한 의미의 영의 사람이었다면 불순종의 결과로 다가올 모든 불행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 그리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를 깨닫고 감사했겠지요. 그러니 아무리 선악과가 탐스럽게 열려 있어도 영원히 따먹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육을 겪어보지 않은 아담은 자유의지 가운데 스스로 육을 받아들여 변질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었으며 이러한 상태에서는 온전한 영적인 존재라 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을 체험해 본 영으로서 진정한 영의 사람들을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마음 중심에서 우러난 감사를 드리며 영원히 변질되지 않고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참된 자녀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두셨고 인간 경작을 허락하신 것이지요.
      역으로 영을 알지 못하는 육은 더더욱 아무런 가치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신 목적은 결국 영에 속한 참자녀를 얻기 위해서인데 영으로 변화되지 않고 계속 육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이 죄의 종으로 살다가 결국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지옥을 향하고 있는 인생들을 위해 만세 전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도를 예비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면 죽었던 영이 살아나 하루하루 성령으로 영을 낳아가는 만큼, 다시 말해 육을 벗어나가는 만큼, 영과 혼과 육이 모두 영에 속한 것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신앙생활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각종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공부를 하며 장로, 권사, 집사, 구역장, 교사, 성가대 직분을 받는다고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에 참여하는 것, 충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신앙생활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바로 육신의 일과 육체의 일을 벗어 버리고 성결로 나아가야 합니다.
      아무리 오래 교회를 다니고 직분을 감당하여 충성한다 해도 여전히 죄악을 버리지 않고 육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경작하시는 목적과 너무나 거리가 멀지요. 하나님께서 육의 사람을 얻기 위해 소중한 독생자를 십자가의 죽음에 내어 주신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가 왜 살아가는지, 왜 경작을 받는지 인간 경작의 목적을 진정으로 깨우치면, 육을 벗어 버릴 마음이 간절해지는 것입니다.

      2.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을 버려 나가야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생령으로 창조하시고 그 안에 영의 내용물들로 채워 주셨지요. 예를 들어, 진실, 사랑, 온유, 화평, 섬김 이러한 진리의 지식들을 가르쳐 주시고 마음에 채워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이 범죄하여 영이 죽은 후에는 이 세상 주관자인 원수 마귀 사단이 사람에게 비진리의 지식들 즉 육의 내용물들을 심어 주었습니다. 미움, 시기, 질투, 혈기, 욕심, 간음 이런 것들이 마음에 심어지는 만큼 하나님께서 심어 주신 영의 내용물들은 차츰차츰 빠져나가고 말았지요. 원수 마귀 사단이 권세잡은 육의 세상을 살아가면서 세월이 지날수록 점점 더 많은 육의 내용물들이 사람에게 채워지게 되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 세상에서 온 것들, 곧 육의 내용물들을 세 가지 분야로 나눠서 설명합니다. 곧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지요. 우리가 육을 벗어 버리기 위해서는 먼저 이 세 가지 분야가 무엇인지를 알고, 이것이 얼마나 추하고 더러우며 우리를 해롭게 하는 것인지를 마음에서 절실히 깨달으면 됩니다. 그리고 버릴 수 있는 방법을 알아서 그대로 행하면 됩니다.
      먼저 "육신의 정욕"에 대해 알아보지요. 육신의 정욕이란 육신의 속성을 좇아 행하려고 하는 마음입니다. 육신은 사람의 몸과 죄성이 결합된 것이라 했으며, 여기서 몸이란 아담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심어 주신 영의 지식이 빠져나간 뒤에 남겨진 육을 의미합니다.
      쉽게 말하면, 육으로 타락한 사람의 마음에 죄성들이 결합되어 온갖 비진리를 품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미움, 혈기, 욕심, 음욕, 시기, 교만 이런 속성들이 사람 안에 가득 담아져 있는데, 그러다 보니 자기 안에 있는 악한 마음의 소욕을 좇아 보고 듣고 생각하며 행하고 싶어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기 안에 판단 정죄의 속성이 있으면 남의 소문을 듣는 것을 좋아할 뿐 아니라 그것을 듣고 옮기며 수군수군하는 것이 재미있게 느껴지지요. 육신의 정욕을 좇지 않으려면 곧 듣지 않고 전하지 않으려고 하면 입이 가렵고 좀이 쑤시는 것입니다. 마음에 혈기가 있으면 기분 나쁜 일이 있을 때 분을 발하는 것이 통쾌하고 시원하게 느껴집니다. 분이 나는 것을 참고 육신의 속성을 좇지 않으려 하면 마음이 부글부글 끓어올라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입니다. 교만하기 때문에 교만한 속성을 좇아 섬김받기 원하고 자신을 드러내어 자랑하려고 합니다. 탐심이 있기 때문에 남에게 해를 입혀서라도 불의한 재물을 모으려고 하지요.
      그러면 이처럼 육의 것을 좇아 행한다고 해서 무슨 유익이 있는 것일까요? 자기 자신뿐만 아니라 애매한 주변 사람들과 가족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까지 고통을 가져다 줍니다. 심지어는 자신과 주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일까지도 있지요. 또 사업터, 일터에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사람들 앞에 수치를 당하기도 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런 악을 행함으로 결국은 영적인 사망, 곧 지옥으로 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믿는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추하고 악한 죄를 버리려고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분명히 악을 행하고 있는데도 스스로 죄의식조차 없는 사람들이 많지요. 이는 사람이 죄악 가운데서 태어나고 살면서 죄악에 너무나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며 양심이 더럽혀져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갖고 태어나며 부모의 죄를 기 속에 물려받게 됩니다. 또 자라면서 보고 듣고 배우는 것들도 대부분 비진리의 지식들이지요. 예를 들어, 자녀가 친구들에게 맞고 울면서 집에 오면 부모님은 "너는 왜 바보같이 맞고만 다니냐? 한 대 맞으면 두 대를 때려서라도 너를 우습게 보지 못하게 해야지." 하고 야단을 치지요. 그러면 아이들은 "맞고만 있으면 잘못하는 것이고 때려 줘야 옳은 것이구나." 하고 입력됩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잘못된 비진리의 지식을 마치 옳은 지식처럼 입력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어두운 곳에서는 더러운 것이 보이지 않는 것처럼 세상에서 죄로 물든 마음으로는 죄를 분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진리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면, 마치 밝은 빛으로 더러운 곳을 비추는 것처럼 죄악이 분별되고 죄를 버릴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지런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가르침 받아야 하며 자신의 악을 발견하면 불같이 기도하고 금식하면서 버리기 위해 노력해 나가야 합니다. 이전 같으면 혈기를 낼만한 상황이라도 혈기를 내지 않고 온유하게 마음을 바꾸며, 이전 같으면 미워하고 시기할 상황이라도 온유한 마음으로 대하며, 사랑하려고 노력해야 하지요. 이렇게 마음에 영의 것을 채워 나가면 육이 하나하나 빠져나가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데 있으며 얼마만큼 육을 버리고 영의 사람으로 변화되었는가에 따라 그 사람의 가치가 결정됩니다(전 12:13). 사람이 육에 머물러 있으면 사람의 본분도 다하지 못하는 것이며 사람으로서의 가치가 없습니다. 가치 없는 육의 사람이 거룩한 천국에 들어갈 수 없으니 결국은 지옥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경작의 목적을 밝히 깨닫고 사람의 본분을 명심하여 가치 있는 영의 사람으로, 참다운 하나님의 자녀들로 변화되어 반드시 아름다운 천국에 들어가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가까운 곳에 거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18 오후 5:03:5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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