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차 영·혼·육(12)

    [요일2:24-25,롬8:5-8]
    2005.02.20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오늘은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은 무엇이며, 우리의 생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육신의 생각의 사례들과 그 작용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1.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

      사람에게는 혼이 있기 때문에 무엇을 배울 수도 있고 배운 지식을 떠올려서 생각할 수도 있으며 지식을 지혜롭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이러한 혼의 작용은 영에 속한 것과 육에 속한 것, 곧 영의 생각과 육신의 생각으로 나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영의 생각’은 진리의 마음이 영에 속한 혼의 작용을 통해 나와지는 것입니다. 영, 혼, 육 중에 영이 주가 되어 혼을 주관하는데 마음을 영으로 일군 만큼, 곧 진리로 마음을 채운 만큼 마음속의 진리가 혼을 주관하는 것이지요.

      예를 들면 애매히 자신을 욕하는 상대가 있다고 할 때, 마음을 영으로 일군 사람은 혼에 앞서 진리의 마음이 먼저 반응을 합니다. 사랑, 용서, 화평, 이런 마음이 작용하게 되고 그 마음이 혼을 주관하지요. ‘저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마음을 평안케 해 줘야겠다, 그의 오해를 풀어 줘야겠다’ 하면서 혼의 작용을 진리로 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어떻게 하면 상대와 화평을 이룰 수 있을지, 그 방법론까지도 성령께서 마음을 주관해서 알려 주십니다. 그러면 진리의 마음이 주관하는 대로 혼이 순종하여 육을 움직여 나가지요. 부드러운 낯빛으로, 온유한 음성으로 또한 상대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말과 행함으로 상대에게 답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반면에 ‘육신의 생각’은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가 혼의 작용을 통해 나오는 것입니다. 이때는 영과 혼 중에 혼이 주가 되고 혼이 마음속의 비진리를 통해 마음을 요동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을 욕하는 것을 들으면, 먼저 혼적인 작용이 일어납니다. ‘저 사람은 무례하다, 불쾌하다, 자존심이 상한다’ 이런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되지요. 이럴 때 혼을 주관하는 것은 사단이고, 사단이 악한 생각을 불어넣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혼의 작용을 따라 자기 안에 있는 비진리의 마음이 요동하여 혈기, 감정, 미움, 자존심, 이런 것들이 요동하여 속에서부터 부글부글 끓어오르고 “상대와 부딪혀서 혼을 내줘야 되겠다”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그러면 육도 비진리의 마음에 순종하여 얼굴 빛이 붉으락푸르락하게 됩니다. 거친 음성으로 욕을 하기도 하고 무엇을 던지거나 때리는 등 폭력을 쓰기도 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사람의 육, 곧 몸은 껍질과 같아서 알맹이인 영과 혼이 주관하는 대로 움직입니다.

      영과 혼 중에서 원래는 영이 혼을 주관해야 하고 혼은 영에게 순종하여 육을 움직여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의 영은 죽어 있어서 제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되었고 영이 주인 노릇을 못하니 혼이 주인이 되어서 육을 주관해 나가지요. 주님을 영접해서 일단 영이 살아났다고 해도 마음을 열심히 진리로 채워나가야 영이 점점 더 힘을 얻어 혼을 주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이 혼을 주관할 때는 어떤 것을 접한다 해도 진리의 생각이요 영의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반면에 영이 제대로 기능을 하지 못할 때는 혼이 먼저 작동을 해서 마음 속에 있는 비진리를 통해 육신의 생각을 하게 되지요. 물론 영이 죽은 세상 사람이라 해도 때때로 양심에 남아 있는 선을 좇아 진리에 속한 생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비진리를 통해 육신의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육신의 생각을 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도 없지요(롬 8:7-8). 혼을 주관하여 육신의 생각을 하게 하는 것은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사단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단에게 순종하여 육신의 생각을 할 때는 하나님과 원수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따라서 육신의 생각을 가지고는 믿음을 가질 수도 없고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도 없으며 영으로 들어가기는 더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2. 육신의 생각의 사례와 작용들

      1) 자기 이론과 유익에 맞추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순종하지 못합니다

      성경 말씀은 영이신 하나님의 말씀이요, 영의 세계의 법칙을 설명한 것으로서 일반적인 육의 지식과 이론, 틀 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대부분입니다.

      “동정녀가 예수님을 잉태했다”,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셨다”는 말씀을 들으면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동정녀가 어떻게 아이를 잉태할 수 있는가?”, “사람이 물 위를 어떻게 걷겠는가? 예수님께서 얕은 곳으로 걸어 오셨겠지” 하며 나름대로 이론을 동원합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고 영으로 듣게 되면, 이런 영적인 말씀도 능히 이해가 되고 믿어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무엇이나 하실 수 있는 분이니 능히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수긍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당장 자신의 유익에 관련된 일에서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한다는 데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섬기는 자가 큰자”, “자기 유익을 구하지 말고 상대의 유익을 구하라” 말씀하시지만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사람은 이런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고 순종하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 유익을 구하는 세상에서 상대의 유익을 구하면 나만 손해본다” 하며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고,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 해도 “당장 쓸 일이 많은데 수입의 십분의 일씩이나 드리기는 어렵다” 하며 육신의 생각으로 인색하게 행하기도 하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말씀대로 보장해 주십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상대를 섬기고 낮아지면 뭇사람에게 인정받아 머리되게 해 주시고, 믿음으로 하나님께 심으면 분명히 영육간에 차고 넘치도록, 또는 그 이상의 축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각을 버리지 못하는 이상은 말씀대로 순종하지도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지도 못하는 것이지요.

      2) 육신의 생각이 있으면 자기의 틀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수많은 간증을 들어왔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줄을 잘 압니다. 능히 암도 에이즈도 치료하시며 부러진 다리도 즉시 고치시는 하나님에 대해 익히 잘 알고 있지요. 그런데 어느 날, 자신의 몸에 가시와 같은 이물질이 깊이 박혀서 빠지지 않게 되면 육신의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몸에 박힌 가시는 질병이나 연약함과 다르니 이것은 기도받아서 될 것이 아니라 병원에 가서 수술을 해야 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지요.

      이런 육신의 생각에 막혀 있으면 기도를 받을 믿음도 생기지 않고 기도를 받아도 믿어지는 믿음이 오지를 않습니다. 영적인 믿음이 오지 않으니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지도 못하지요. 그러나 영의 생각을 하면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니 이것도 해결해 주신다”고 믿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전폭적으로 믿고 맡기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의 방법으로 역사해 주시지요.

      얼마 전에 간증해 드린 것처럼 2센티 가량의 뾰족한 아크릴 조각이 혈관 속으로 들어간 분이 있었습니다. 이런 경우도 육신의 생각으로는 수술을 해서 혈관을 찢고 이물질을 꺼내야 하겠지요. 그러나 이분이 믿음으로 단물을 계속 발랐을 때 능히 외과수술도 해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곧 하나님께서 팔의 한 부위를 곪게 하셔서 그곳을 통해 아크릴 조각이 튀어나오게 하시고 다시 곪은 부위를 아물게 하신 것입니다.

      3) 육신의 생각은 영으로 들어가는 길에도 장애가 됩니다

      예를 들어, 매사를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 생각하여 자기 자신에 대해서조차도 믿음으로 바라보지를 못하는 경우가 있지요. 사람이 어떤 실수나 잘못을 했을 때, 혹은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했을 때 당연히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마음이 아프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영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이럴 때도 “내 부족함을 발견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고 “앞으로는 그러지 않으면 되지, 속히 변화되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려야지” 하면서 자신에게 힘을 줍니다.

      그런데 육신의 생각을 하는 사람은 “내가 이 모양이니 하나님께서도 날 사랑하실 수가 없겠다, 아무리 해도 이것밖에 안되니 난 구제불능인가보다” 이런 식으로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힘을 잃고 기도도 못하거나 사명감당도 하지 않고 있어야 할 자리에도 보이지 않게 되지요.

      그렇다면 두 사람의 열매에는 결과적으로 얼마나 큰 차이가 나겠습니까? 로마서 8:6에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똑같은 아픔을 겪었다 해도 영의 생각을 한 사람은 평안과 기쁨 속에 더 신속히 영으로 변화될 수 있는 반면, 육신의 생각을 통해 좌절하고 낙심한 사람은 그만큼 뒤쳐지고 늦어지는 것입니다.

      이 밖에도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는 경우는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도 무수히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자기의 경험과 이론을 앞세우기 때문에, 나름대로의 틀을 깨지 못해서, 부정적인 성격 때문에 등등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게 되는 여러 가지 원인들이 있지요. 그런데 이러한 육신의 생각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바로 마음의 비진리, 곧 육신입니다.

      로마서 8:5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했습니다. 앞에서도 육신의 생각은 ‘마음 안에 있는 비진리가 혼의 작용을 통해 나오는 것’이라 했지요. 아무리 자신이 진리로 생각하려고 하고 영으로 생각하려고 해도 마음에 육신을 버리지 않고 있으면 육신을 좇아 육신의 생각이 나오게 됩니다.

      그런데 육신을 다 벗어 버리고 영의 마음을 이루면 혼으로 어떤 생각을 하기 전에 이미 성령께서 마음을 주관해서 영의 생각이 먼저 떠오르게 해 버리는 것이지요. 영의 생각을 하면 어떻게 성령의 음성을 듣고 인도받는지 구체적인 방법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이어 살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열왕기하 5장을 보면 나아만 장군이 자신의 문둥병을 고치고자 엘리사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지만 엘리사는 집 밖으로 나와보지도 않고 요단 강에 가서 일곱 번 몸을 씻으라는 말만 전해 주지요. 이에 나아만은 노하여 그냥 돌아가려 하였으나 종들이 선지자의 말에 순종하도록 간곡히 청하자, 그래도 선한 마음 가운데 순종함으로 문둥병을 깨끗히 치료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참신이신 하나님을 만나 섬길 수 있는 영적인 복까지 누리게 되었지요.

      이처럼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중 어느 쪽을 택하느냐는 단지 축복을 받느냐 못 받느냐의 문제만 아니라 영혼의 문제까지도 좌우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매순간 자신을 돌아보아 육신의 생각을 벗어 버리고 범사에 진리를 좇아 영의 생각을 이루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축복과 영생의 길로만 인도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3-24 오전 1:01:01 Posted
      2007-12-18 오후 5:03:54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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