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의 분량(11)

    믿음의 3단계 [롬12:3]
    2006.01.08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오늘은 믿음의 분량 3단계에 관한 말씀으로서 자기 의와 틀을 발견하여 버리는 방법과 천국의 처소에 대해 증거하고자 합니다.

      1. 자기 의와 틀을 벗어 버리고 영으로 들어가려면

      하나님을 믿고 성령을 받으면 구원받을 수 있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러한 믿음의 1단계를 거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려고 노력하는 믿음의 2단계에 이르게 되면 말씀대로 행할 때도 있고 말씀대로 행하지 못할 때도 있지요.
      그러나 계속 기도하면서 노력해 나가면 점점 믿음이 성장하고 말씀대로 행할 수 있게 되는데 이것이 믿음의 3단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의미를 깨닫고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축복인 줄 알기 때문에 기꺼이 말씀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의 3단계에 들어서면 마음의 죄성을 벗어 버리는 작업을 신속하게 이뤄 나가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혈기를 내지 않는다."는 것과 "혈기"라는 죄성 자체가 마음에서 없어진 것과는 상황이 다르지요.
      그래서 악을 행치 않고 말씀 가운데 사는 사람이라 해도 자기 안에 있는 죄성을 발견하여 마음에서 죄성 자체를 뽑아 버려야 믿음의 4단계로 들어갈 수 있고 하나님의 참된 자녀요, 영의 사람이라 인정받을 수가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믿음의 3단계에 있는 사람이 영적으로 정체되지 않고 신속하게 4단계로 들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했습니다.

      첫째는 어느 정도 믿음이 성장했다고 해서 죄와의 싸움을 멈춰서는 안 된다 했지요. 말씀과 기도를 통해 근본 죄성을 다 뽑아버릴 때까지 부지런히 성결을 이뤄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육신의 생각을 버려야 신속하게 영으로 들어갈 수 있는데, 그중에서도 자기 의와 자기 틀을 깨뜨려 버려야 한다 했습니다. 명백하게 비진리로 이뤄진 자기 의와 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나가면서 쉽게 발견이 되기 때문에 금방 버려질 수 있습니다.
      여기서 특별히 경계하는 것은 진리로 포장되어 있는 자기 의요, 진리를 잘못 적용하여 만들어낸 자기 틀이지요. 이런 것이 있으면 스스로는 진리대로 행한다고만 생각하기 때문에 오랜 시간 영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신앙의 정체가 생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의와 틀이 잘 깨달아지지 않는다며 안타까워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신은 예배도 빠지지 않고 말씀을 사모하여 들으며 기도하기도 쉬지 않는데, 뭐가 잘못되었는지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들은 대부분 말씀을 들어도 자신에게 해당하는 말씀으로 받지 못하며 기도를 해도 불같은 기도를 하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얼마나 간절한 심령으로, 자신의 말씀으로 받으시는지요? 늘 듣던 말씀이라 해서 그냥 흘러 버리거나 다른 사람의 말씀으로 생각하거나 혹은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씀인 줄 알면서도 나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변화시켜 주시겠지 하면서 자신의 노력은 포기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또한 날마다 여러 시간씩 기도를 한다 해도 얼마나 중심을 다해 부르짖는 기도를 하십니까? 기도할 때 중언부언하는 것도 하나님 앞에 상달될 수 없지만, 천사의 말과 같이 달변으로 기도한다 해서 아름다운 향으로 드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정녕히 중심을 다하고 힘쓰고 애써 부르짖으므로 하나님 앞에 굵은 향으로 올려질 때라야 성령의 감동, 감화, 교통, 충만함을 입으며 변화될 수가 있는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내가 다른 사람의 권면을 들을 때 어떤 자세로 듣는가 하는 점입니다. 자기 의와 틀이 강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권면에 대해서도 귀가 닫혀 있지요. 자신이 옳다 하는 마음으로 높아져 버려서 다른 사람이 권면하는 것을 들을 때도 나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인데 상대는 내 입장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혹은 누가 권면을 할 때 저 사람은 나보다 부족한 사람인데 하면서 한 귀로 듣고 흘러버리기도 하고 심지어 질서상 윗사람이 권면할 때도 저 분도 백프로 온전하지는 않으니까 꼭 저 분의 말이 맞는 것은 아니지, 내가 꼭 그 말을 들을 필요는 없지 하지요. 그러나 이런 마음일 때는 사람의 말을 듣지 못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음성도 들을 수가 없습니다.
      믿음의 3단계에서도 중반쯤 들어서고 4단계에 가까워지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죄악들은 이미 발견하여 대부분 버린 상태이지요. 이럴 때 자신이 깨닫지 못한 자기 의와 틀까지 발견하여 버리려면, 그만큼 더 간절하고 겸비한 마음으로 철저히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부족함을 발견하기를 더욱 간절히 사모해야 하며 어린 소자의 말이라도 자신을 변화시키고자 겸비하게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의 의와 틀을 깨뜨려 버리고 마음의 죄성까지 발견하여 벗어 버리면 마침내 영으로 들어갑니다. 곧 믿음의 4단계로 진입하여 영의 사람이라 인정받을 수 있지요.

      2. 믿음의 3단계가 들어가는 천국의 처소인 2천층

      믿음의 3단계에 이르면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거하며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았기 때문에 이런 사람들의 처소는 믿음의 1단계가 가는 낙원이나 2단계가 가는 1천층과는 격이 다르지요. 낙원에는 개인 처소가 없고 1천층의 집은 개인 처소가 있더라도 다세대 주택과 같은 형태이지만 2천층에서는 독립된 주택이 주어집니다.
      2천층의 천국 집들은 단층이지만 이 땅의 어떤 호화로운 저택이나 별장과도 비할 수 없을 만큼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향기로운 꽃과 나무들로 단장되어 있지요. 그리고 주인이 가장 원하는 것으로 집에 딸린 부속시설이 한 가지씩 주어지게 됩니다. 곧 주인이 아름다운 호수를 원한다면 집에 딸린 호수가 만들어져 있고 수영장을 원한다면 정금과 보석으로 장식된 화려한 수영장을 가질 수 있지요. 기화요초로 가득하고 사랑스러운 동물들이 노니는 아름다운 산책길이 주어질 수도 있고 무도회장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2천층에서는 이런 것 중에 하나씩만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서로 필요에 따라 다른 집에 있는 것들을 사용할 수 있지요. 이를 통해 서로 섬길 수 있고 사랑을 나눌 수 있으니 서로 행복과 기쁨으로 사용을 허락하게 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것입니다.
      2천층의 천국 집에는 문패가 달려 있어 천국의 글씨로 주인의 이름이 새겨질 뿐 아니라 이 땅에서 섬기던 교회의 이름이 함께 새겨져 있지요. 그러니 하나님의 사랑받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면 그만큼 영광과 자랑이 더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2천층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는 영광의 면류관이 주어집니다. 베드로전서 5:2-4에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했지요.
      믿음의 3단계의 영혼들은 마음에 온전한 할례를 이루지는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여 자신의 사명을 잘 감당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 바로 영광의 면류관인 것입니다. 이처럼 너무나 아름다운 처소에 거하게 되고 자신이 행한 것과 비할 수 없는 상급을 주시므로 감사가 넘치게 되지만 이들은 그래도 안타깝고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며 열심히 사명감당할 뿐 아니라 마음의 죄까지 버려서 온전히 성결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이지요.
      성결된 사람들이 가는 3천층이나 새예루살렘의 영광은 2천층과는 비할 수가 없습니다. 물론 천국에는 시기 질투가 없기 때문에 더 좋은 천국의 영광을 부러워하고 자신이 그것을 누리지 못하므로 인해 마음 아파하는 것은 아니지요. 다른 사람들이 자신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린다 해도 함께 기뻐하며 그들을 마음으로 존경하고 또 자신에게 주어진 처소와 상급만으로도 감사와 행복이 넘칩니다.
      그러나 너무나 안타깝고 민망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도 그토록 사랑을 주시고 많은 기회를 주셨는데도 온전히 죄를 버리지 못했다는 사실이지요. 곧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행하며 충성하고 사명감당하는 것만 아니라 마음의 죄성까지 벗어 버리고 온전히 성결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늘 아쉬워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믿음이 있다면 아무리 2천층이 아름답고 좋다 할지라도 여기서 멈춰서는 안 되며 새예루살렘을 향해 쉬지 않고 천국을 침노해 들어가야 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참된 자녀로 변화되어 새예루살렘에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구원의 길을 밝히 기록하시고 더 좋은 천국에 들어올 수 있는 길도 상세하게 제시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자라는 속도는 천차만별이어서 어떤 사람은 신속하게 죄를 버리고 변화되어 나가지만 어떤 사람은 변화가 너무나 더딘 것을 봅니다. 마태복음 19:30에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하신 말씀처럼 각 사람의 차이가 나타나는 것이지요. 똑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성결을 사모하며 노력한다 해도 이렇게 차이가 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사람마다 마음, 중심, 그릇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증거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인생이 끝나고 주님을 만나게 되면 각자의 처소와 상급이 정해지게 되고 영원한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때 한번 정해진 천국의 처소와 상급은 영원토록 바꿀 수가 없지요. 그러므로 이 땅에서 주어진 시간 동안 열심히 천국을 침노하지 못했다고 후회해도 그때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에베소서 5:16에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말씀하셨으니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을 귀하게 여김으로 영으로, 온 영으로 신속히 들어가며 부지런히 천국을 침노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장차 천국에서 가장 좋은 천국, 새예루살렘에 영원히 거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6-01-09 오후 6:35:28 Posted
      2013-03-09 오전 3:48:55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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