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믿음을 척량하시니(18)

    [겔 47:1-5]
    2012.12.16 | 당회장 이재록 목사
    • 중국 쓰촨 성의 한 지역 신문에 따르면, 한 애완견이 세상을 떠난 주인을 잊지 못해 그가 생전에 쓰던 침대 옆에 앉아 몸을 떨며 눈물을 흘리고, 16일 동안 굶다가 결국 죽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생명 다해 주인을 끝까지 따른 짐승을 보고 ‘짐승이 사람보다 낫다.’라고 말합니다. 이는 은혜를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요즘 사람들의 세태도 잘 반영해 줍니다. 오늘은 구원받지 못하는 죄, 아홉 번째 시간으로 받은바 은혜를 저버리고 자신의 유익을 좇아 배신하는 경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1. 배신을 함으로 구원받지 못한 성경상 인물들

      대부분 배신하는 사람들은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악을 행합니다. 이는 구원과 상관이 없는 큰 죄입니다. 성경을 상고해 보면 배신하는 죄를 범한 사람 중에는 구원받은 사람이 없다시피 합니다. 아마도 ‘배신’ 하면 가룟 유다가 떠오를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다가 배신할 줄 아셨지만 그를 끝까지 놓지 않으셨지요. 유다는 이런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아넘겼습니다. 후에 양심이 찔려 돈을 돌려주기까지 했지만 끝내 괴로움을 이기지 못해 자살하고 말았지요. 사도행전 1장 18절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나온지라” 한 대로 비참한 죽음을 맞았습니다.

      다윗의 모사였던 아히도벨 역시 그랬습니다. 압살롬이 다윗 왕에 대항하여 반역을 일으켰을 때 그 편에 가담했다가 비참한 결말을 맞았지요. 자신의 모략이 압살롬과 그의 사람들에게 채택되지 않자 낙향하여 결국 자살하고 말았습니다.

      요압 장군도 마찬가지이지요. 그는 오랫동안 다윗의 군대장관으로 있으면서 큰 공을 많이 세우며 그 곁에서 권세와 명예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말년에 다윗의 뜻에 반기를 듦으로써 반역에 가담했습니다. 솔로몬에게 왕위를 물려주려 한 다윗의 의중을 요압이 모를 리가 없지요.

      하지만 그는 다윗의 뜻을 저버리고 다른 왕자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우려했습니다. 결국 실패로 돌아가 솔로몬이 왕위에 오르게 되자 두려움을 느낀 요압은 여호와의 장막, 단 곁으로 피합니다. 그곳에서는 사람을 죽일 수 없었기 때문에 목숨이라도 건져보고자 발버둥친 것이지요. 그러나 요압은 이전의 영화가 무색하게도, 일말의 긍휼함도 입지 못하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요압은 그동안 사심 때문에 다윗의 뜻을 거슬러 무죄한 피를 여러 번 흘렸지요. 살려둔다 해도 언제 솔로몬의 등에 배신의 비수를 꽂을지 모를 인물이었기에 더 이상 긍휼을 입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신의를 저버리고 배신하는 행위, 곧 은혜를 원수로 갚는 악행을 매우 싫어하십니다.

      예를 들어, 주님의 은혜로 지옥의 영벌을 면했다가 그 은혜를 저버리고 주님을 떠나는 이들이 있습니다. 성령 받고 거듭났을 때는 “끔찍한 지옥의 형벌에서 건져 주시고 참 기쁨과 소망을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그러다가 다시 세상을 바라봄으로써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힘들게 신앙생활 하다가 결국 주님을 떠나지요.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세상에서 인정받기 위해 십자가를 등집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좁은 길을 가는 것이 힘들다고 구원의 길을 떠나 버리지요. 이런 사람들 중에는 살아 계신 하나님을 분명하게 만나고 체험했음에도 하나님을 떠나는 이들도 많습니다.



      2. 하나님 역사를 체험하고도 은혜를 저버리는 경우들

      성경에 기록된 기사와 표적, 기이한 일, 희한한 역사들이 이 제단에서는 무수히 일어납니다. 그래서 많은 분들이 죽음 앞에서 불치, 난치의 질병을 치료받고 새 생명을 얻으며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가정불화 같은 절망의 늪에서 건짐 받았습니다. 또한 어떤 문제를 해결 받은 것은 아니라 해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구나’ 확신할 수 있는 증거들을 무수히 보고 체험했습니다. 그런데도 간혹 하나님을 떠나는 영혼들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11~19절에 이와 관련하여 거울삼을 만한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한 촌에서 열 명의 문둥병자가 예수님께 병 낫기를 구합니다. 이들은 예수님 말씀에 순종해 모두 치료받았습니다. 그러나 한 명만 받은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예수님께 돌아와 사례하였지요.

      그렇다면 나머지 아홉 명은 어찌되었을까요? 성경에 기록된 정황상 구원조차 확신하기 어려움을 알 수 있습니다. 열 명의 문둥병자들에게 병으로 인한 아픔은 물론, 저주받은 죄인으로 소외감 속에 사는 고통은 참담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만나 주시고 모든 고통에서 건져 주셨지요. 그런데도 아홉 명은 하나님께 영광 돌리지도 않고 예수님께 감사하러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안타깝게도 교회 개척 이래로 중한 병을 치료받고도 감사하다는 말없이 떠난 이들이 너무나 많았지요. 물론 이분들 중에는 간혹 얼마간은 뜨겁게 신앙생활 했지만 결국 변개하여 하나님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냥 떠나기만 하지 않고 하나님을 훼방하고 교회를 어렵게 하며 은혜를 원수로 갚은 사람도 있었지요.

      지난 1998년, 1999년에도 “교회와 목자를 사랑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죽도록 충성하겠습니다.” 하던 이들 중 일부가 교회적인 연단이 오자 순식간에 돌변하였습니다. 어떤 이들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단과 목자를 죽이기에 혈안이 되어 대적하기도 했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단을 훼방하고 다른 많은 영혼들까지 실족케 하였으니 어떻게 구원을 보장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은 이런 배신의 죄를 특히 싫어하십니다. 악한 영의 세계도 바로 이 배신으로 인해 형성되었지요. 악한 영들의 역할은 인간 경작의 역사 동안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이를 볼 때 배신이라는 행위의 근본에 얼마나 큰 악이 자리 잡고 있는지를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자녀라 하면서 이런 큰 악을 버리지 않고, 거듭 행해 나간다면 구원받을 믿음이 있다고 보기 어렵지요. 또한 은혜를 저버리고 주님을 배신할 경우 원수 마귀 사단이 다시금 틈탈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후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당부하셨지요. 질병을 치료받고도 다시 세상과 짝하며 죄 가운데 살면 전보다 더 심한 병이 들 수 있습니다. 원수 마귀가 송사하기 때문이지요.

      악한 영에 사로잡혔다가 놓인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귀신의 역사를 받다가 나은 사람이 마음에 할례하지 않고 또 다시 범죄하면 대부분 이전보다 상황이 더 나빠집니다. 마태복음 12장 45절에 예수님께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하셨지요.

      이처럼 다시 병들면 처음보다 치료받기가 더 어렵습니다. 물론 새신자의 경우, 은혜를 주셔서 쉽게 치료받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에 진리를 잘 알므로 그래서는 안 되는 사람의 경우에는 회개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만큼 더 간절히 매달려야 하지요. 변개하여 배신한 죄를 철저히 회개할 때라야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입을 수 있는데, 만약 회개하지 않고 거듭 죄 가운데 살면 결국 구원과 완전히 멀어지게 됩니다.

      여러분은 대부분 ‘나는 절대 주님을 배신하는 큰 악을 행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확신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에 육이 있는 한은 경계를 늦춰선 안 됩니다. ‘육’이란 세월이 흐르면 결국 썩고 변질되는 것이지요. 배신은 바로 이 육의 대표적인 속성 곧 ‘변개함’에서 비롯됩니다. 사소해 보인다 해도 변개하는 속성을 버리지 않고 계속 쌓아 나가면 어느 순간 큰 배신으로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평소 자신을 잘 성찰하여 이런 악을 버려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큰 은혜를 입고도 감사한 마음을 느끼지 못하거나 표현하는 것이 인색한 경우가 있습니다. 이처럼 감사함을 잘 느끼지 못하는 경우 내 마음이 얼마나 굳고 인색한지를 알아야 합니다. 또 은혜에 감사하며 표현은 잘하지만 그 마음을 쉽게 잊는 경우도 있지요. 또는 하나님 은혜가 감사하여 말씀대로 살고자 노력하다가도 어떤 시험이나 연단을 만나면 기쁨과 감사가 사라지고 불평, 불만이 나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모습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변개함이구나.’ 깨달아야 합니다.

      물론 이처럼 변개하는 모습이 있다고 해서 구원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악의 모양이 ‘배신’이라는 큰 악행의 뿌리가 될 수 있기에 마음에서 신속히 뽑아내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께 대한 참사랑과 감사는 변하지 않아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이 참이라면 상황에 따라 쉽게 변하지 않습니다.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그렇습니다. 정말 큰 은혜를 입은 사람이나 진심으로 마음을 나눈 벗과는 웬만한 일로 신뢰가 깨지거나 사이가 틀어지지 않지요. 만약 상대에 대해 안 좋은 소문을 들어도 선뜻 믿지 않고, 우선은 상대를 믿고 진위를 확인하고자 하지요. 설령 그 소문이 사실이라 해도 어찌하든 상대가 잘못을 돌이키도록 간절히 기도해 주고 돕고자 할 것입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자신을 시기하여 죽이려 했지만 배신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나 왕인 사울에게나 그의 충심은 진실했습니다. 다윗은 두 번이나 사울을 살려 보내고 오히려 사울이 더 악을 행치 않도록 설득하려 했지요. 사울은 이런 다윗의 선행에 감동을 받지만(삼상 24:14~19) 결국 자신의 악을 다스리지 못해 다윗 죽이기를 단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선한 마음을 크게 보시고 축복하셔서 그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 주셨지요.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저는 다윗의 심정을 느껴 보았습니다. 제가 몸담고 있던 교단의 몇몇 대의원들이 저에게 부당하게 파직을 선고했습니다. 저를 아끼던 선배나 동료 목회자들은 이미 예감하고 저에게 억울한 불명예를 안기 전에 무조건 숙이든지 먼저 교단을 탈퇴하라고 누차 권면했지요. 하지만 저는 그른 것을 옳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또 부당한 일을 당할 줄 번연히 알아도 제가 신학을 하고 목사 안수 받은 교단을 제 편에서 먼저 배신할 수 없었지요. 그로 인해 결국 교단에서 제적되는 불명예를 안게 되었습니다. 물론 진실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오중복음’을 기반으로 새 교단을 이루도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또 전 세계에 1만여 지교회를 둔, 많은 교단들이 함께하기 원하는 교단으로 성장시켜 주셨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을 상고해 보면 신실하신 하나님(신 7:9)은 인생들이 찾을 때마다 만나 주셨습니다. 지금도 그 ‘신실하심’이 변함없으십니다. 그런데 인생들 편에서 범죄함으로 하나님을 외면하고 ‘하나님이 과연 살아 계신가? 나를 버리셨나?’ 하고 의심하지요. 하지만 참 믿음을 가진 자녀들은 이런 의심을 하지 않을뿐더러 하나님을 등지지 않습니다. 여러분 모두 깊은 마음까지 진실함을 이루셔서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변함없이 감사를 드리시기 바랍니다.


      [끝]



      2012-12-18 오전 1:26:05 Posted
      2012-12-23 오전 12:43:21 Upda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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