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144)
서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잠 16:18에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했는데 이 말씀에 잘 어울리는 인물 중에 하나가 바로 유다의 웃시야 왕이지요.대하 26:4-5에 말씀하기를 "웃시야가 그 부친 아마샤의 모든 행위대로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하며 하나님의 묵시를 밝히 아는 스가랴의 사는 날에 하나님을 구하였고 저가 여호와를 구할 동안에는 하나님이 형통케 하셨더라" 하였습니다. 그래서 웃시야 왕은 이방 족속과의 전쟁마다 승리를 하였고 주변 나라에서 조공을 바칠 정도였으며 그 이름이 애굽 변방에까지 퍼졌지요. 또한 국내적으로는 예루살렘 성을 견고히 건축하였으며 농사와 목축에 있어서도 풍성하였습니다. 건장하고 싸움에 능한 강력한 군대도 있었고 군비도 넉넉히 갖추고 있었지요. 대하 26:15절 후반 절에 "그 이름이 원방에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더라" 말씀한 대로 웃시야 왕은 기이한 도우심 즉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었기에 무엇 하나 부족한 것이 없을 만큼 강하고 풍성한 나라를 유지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웃시야의 결말은 과연 어떻게 되었을까요? 대하 26:16에 "저가 강성하여지매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했지요. 마음이 교만해진 웃시야 왕은 결국 그를 말리는 제사장 아사랴의 말조차 듣지 않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 오직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분향을 하려다가 그만 이마에 문둥병이 발하고 맙니다. 그래서 웃시야 왕은 남은 날 동안 별궁에 홀로 거하다가 죽게 되었지요.
만약 웃시야 왕이 처음 가지고 있던 마음이 변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 가운데 거했다면 그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입으므로 유다 역사에 있어서 좋은 왕으로 평가 받을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힘이 생기고 권세가 주어지게 되니 이내 마음에 있던 교만이 드러나면서 하나님 앞에 범죄케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꼭 웃시야 왕의 경우만이 아니지요.
흔히 교만이라고 하면 남들 앞에서 자신을 드러내려고 하거나 높아지고 자랑하려는 것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교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러한 모습 때문만은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교만이 바로 다른 범죄로 연결되기 때문이지요. 교만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예전에는 차마 생각지도 못했던 것을 오히려 신앙의 경륜이 더해지면서 하나님 앞에 행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신앙생활을 시작하여 얼마 동안은 진리의 말씀을 통해 자신을 발견함으로 열심히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까지라도 주의하려 하고 마음도 지켜나가려고 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믿음이 더 성장해 나가야 하는 사람이 오히려 예전 모습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는 말이지요. 예전에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작은 것 하나라도 어떻게든 지키려 했는데 이제 신앙의 경륜도 오래 되고 일꾼이 되어가면서는 오히려 이 정도는 괜찮겠지 하며 다시금 조금씩 육의 것들을 취해 나가더라는 말입니다. 그것이 하나 둘 늘어나다 보면 나중에는 스스로도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다시 세상에 빠져들고 마는 것이지요.
웃시야 왕도 처음부터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분향하려 할 만큼 그 마음이 교만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그 마음이 점차 교만해 지면서 하나하나 타협해 나가게 되자 결국에는 오직 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영역까지도 침범해 들어가려는 악을 행하고 말았지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교만이라는 것을 결코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됩니다.
나는 들레지 않으니까, 나는 자랑하려 하지 않으니까, 나는 남을 무시하지 않으니까 교만하지 않다 생각할 것이 아니라 혹여 내 모습 속에 오히려 초신자 때에는 열심히 행하려고 노력하던 것을 지금은 하지 않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교만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하지요. 또한 초신자 때는 열심히 버리려고 했던 것을 지금 다시 취하고 있다면 이것이 바로 교만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하구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웃시야 왕이 그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게 되었다는 말씀을 명심하여 늘 스스로를 돌아보는 가운데 교만해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본 론 /
1. 겸비함과 화평함으로 매장지를 구하는 아브라함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보장을 받으며 주변 이방 족속들로부터도 인정을 받고 있었지만 늘 마음을 겸손하게 낮추었기에 자기보다 힘이 약한 상대라 해도 함부로 대하지 않았습니다. 죽은 아내 사라를 위해 헷 족속 소유의 땅에서 매장지를 구함에 있어서도 겸비함과 덕으로 화평을 좇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듯이 자신이 가진 힘과 권세라면 얼마든지 헷 족속에게 매장지를 요구할 수 있고 굳이 저(低)자세로 나갈 필요도 없었지만 아브라함의 마음은 늘 정도를 좇기 원했고 설령 자신보다 낮은 사람에게라도 자기 유익을 구하려는 마음이 아니었기에 그들에게 정당한 값을 주고 땅을 사려고 하면서도 몸까지 굽혀 말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렇게 했던 것은 겸비한 마음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 마음의 속성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헷 족속 중에 에브론이라는 사람의 소유지에서 매장지를 얻고자 했는데 에브론은 이러한 아브라함의 의중을 전해 듣게 되지요. 그러자 10-11절에 "때에 에브론이 헷 족속 중에 앉았더니 그가 헷 족속 곧 성문에 들어온 모든 자의 듣는데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그리 마시고 내 말을 들으소서 내가 그 밭을 당신께 드리고 그 속의 굴도 내가 당신께 드리되 내가 내 동족 앞에서 당신께 드리오니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 하소서" 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향해 "주"라 부른다는 것은 에브론 역시 아브라함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에 비하면 에브론 자신은 얼마나 미약한 존재인지를 알 수 있게 해주지요. 그러니 에브론은 아브라함이 원하는 그 땅을 주겠다고 동족들이 보는 앞에서 공개적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만 보면 아브라함에게 거저 주겠다는 의미 같고 아브라함을 섬기겠다는 의미 같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사람의 마음을 알기에 13절에 "당신이 합당히 여기면 청컨대 내 말을 들으시오 내가 그 밭 값을 당신에게 주리니 당신은 내게서 받으시오 내가 나의 죽은 자를 거기 장사하겠노라" 합니다. 끝까지 정당한 값을 주고 사겠다고 말하지요.
이때 에브론이라는 사람이 정말 그 땅을 아브라함에게 거저 주고자 하고 아브라함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이었다면 어떻게 했어야 마땅하겠습니까? 당연히 다시 한번 자신의 마음을 전하며 아브라함에게 거저 쓸 것을 권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왜 에브론이라는 사람의 호의를 거절하고 끝까지 제값을 주고 사려고 했는지가 이어지는 14-15절에 나옵니다. "에브론이 아브라함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내 주여 내게 들으소서 땅 값은 은 사백 세겔이나 나와 당신 사이에 어찌 교계하리이까 당신의 죽은 자를 장사하소서" 했던 것이지요.
에브론이라는 사람은 말로는 거저 주겠다고 하면서도 값을 쳐주겠다는 아브라함의 말에 이처럼 슬쩍 땅 값을 흘리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말로는 어찌 교계(較計)하겠냐고 하지만 (맞나 안 맞나 서로 견주어 비교하는 것) 속마음은 결국 장사를 하려는 것이었음을 알 수 있지요. 아브라함이 몇 마디 대화를 해보니 이처럼 속마음이 드러나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속마음을 이미 간파하고 있는 아브라함이 어찌 섣불리 그 땅을 거저 받을 수 있겠습니까? 만약 거저 받았다 해도 훗날에 그로 인해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아브라함은 아예 그러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원천적으로 문제의 소지를 없앴던 것이지요.
성도님들이 사업을 하든가 무엇을 해도 내가 욕심을 품지 않고 정도를 걸을 때는 사기를 당할 이유도 없고 속임을 당할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내가 어떤 욕심을 품기 때문에 정도에서 위배되게 했기 때문에 사기도 당하는 것이고 속임수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도를 걸으면 하나님께서 지켜주시겠지만 그러나 또 속임을 당하게 되는 이유도 없게 되는 것입니다.
18절에 "성문에 들어온 헷 족속 앞에서 아브라함의 소유로 정한지라" 말씀한 대로 아브라함은 에브론과의 거래를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공식적으로 함으로써 장차 어떠한 문제의 소지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2.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정도(正道)를 걸은 아브라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까지 들으신 내용을 통해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한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그 마음에 사심이나 욕심, 자기 유익을 구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상대의 마음까지 간파하는 지혜가 올 수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만약 욕심이 있었다면 에브론이 땅을 거저 주겠다고 했을 때 단 번에 그 청을 받아 들였겠지요. 이것이 당장에는 유익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육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은 상황과 환경, 또한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하게 되어 있음을 알아야 하지요. 그러니 당장 유익처럼 보이던 일이 훗날 어떠한 문제나 어려움으로 다가 올 수도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당장 눈앞의 유익만을 생각하여 많은 실수들을 행하고 말지요. "정도를 걸어야 한다" "욕심이 없어야 한다" "내 유익만을 구해서는 안 된다" 말씀드려도 막상 현실에서는 자기 유익에 급급한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조금만 미혹해도 그 미혹에 넘어가 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여기에 투자하면 단시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다" "이건 공짜나 다름없는 것이다" "당신을 생각해서 특별히 손해보고 주는 것이다" 이런 말들을 듣게 되면 이내 마음에 있던 욕심의 마음이 요동하면서 미혹되고 말더라는 말입니다.
물론 여러분 중에는 이런 분들이 거의 없으시겠지만 마음에 욕심을 가지고 있고 자기 유익만을 생각하는 육의 사람들에게는 어린아이라도 분별할 수 있을 것 같은 뻔한 방법의 미혹도 통하더라는 말이지요. 더욱이 힘이 있고 권세가 있다고 하여 교만한 사람에게는 이러한 방법이 더 잘 통하는 것을 봅니다. 상대가 자신을 좀 알아주는 것 같고 인정하는 것 같으면 이내 교만한 마음이 나오면서 분별력이 흐려지고 마는 것이지요.
또 어떤 사람은 자신이 가진 힘과 권세를 가지고 부당한 이익을 취하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더욱 쉽게 미혹에 넘어가기도 합니다. 물론 어떤 사람은 자신의 힘과 권세를 휘둘러 자기 유익을 취해나가는 사람도 있지만 그 결과 역시 불을 보듯 뻔하다는 사실입니다. 잠 13:11에 "망령되이 얻은 재물은 줄어가고 손으로 모은 것은 늘어 가느니라" 했고, 잠 28:22에는 "악한 눈이 있는 자는 재물을 얻기에만 급하고 빈궁이 자기에게로 임할 줄은 알지 못하느니라" 했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자신보다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상관없이 늘 마음 중심에서 섬겨주는 마음이 되시기 바라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라 손해를 보더라도 늘 정도(正道)를 택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할 때에 설령 내가 미처 몰랐던 궤계나 어려움이 있었다 해도 하나님께서 피할 길을 주시며 합력하여 선을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상대가 저런 마음이니 내가 속지 않도록 해야지 하고 생각하지 않아도 내 편에서 정도만 걸으면 원수 마귀 사단이 결코 어려움에 빠뜨릴 수가 없지요.
3. 마지막 시험을 통과한 후 오직 축복만이 넘친 아브라함
창 24:1에 "아브라함이 나이 많아 늙었고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복을 주셨더라" 말씀합니다.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바치는 마지막 시험을 온전히 통과한 후에는 오직 축복만이 넘쳤던 것을 볼 수가 있지요. 비록 육으로는 나이 많아 늙었다고 표현하지만 아브라함은 나이가 들었다 해서 몸이 쇠하거나 건강에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후처 그두라를 취하여 자녀를 여섯 명이나 더 낳았지요.
이처럼 아브라함은 영적인 축복과 함께 건강과 재물, 권세 등 육적인 축복도 풍성하게 받아 누렸다는 사실입니다. 그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닮게 되니 육은 비록 이 땅에 살아도 그는 늘 하나님의 영의 공간에 거함으로 이 땅의 육의 법칙이 아닌 영의 법칙에 적용을 받았기 때문이지요.
4. 아브라함의 늙은 종
아브라함이 약속의 씨인 아들 이삭을 위해 아내를 구하게 되는데 이는 매우 중요한 일이지요. 이삭이 아내로 어떠한 여인을 맞느냐에 따라 많은 것에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내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한 것이고 이삭을 통해 낳게 될 자녀들의 어머니로서의 역할도 너무나 중요하기에 아브라함은 며느리를 구함에 있어서도 매우 신중했던 것을 볼 수 있지요.
그렇다 해서 육신의 생각이나 사람의 방법을 동원한 것이 아니라 이때도 역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깁니다. 다만 이처럼 중요한 사명을 대신 맡아 감당할 사람을 세우고 그에게 다음과 같은 당부를 하지요. 2-4절에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되 청컨대 네 손을 내 환도 뼈 밑에 넣으라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당부합니다.
아브라함은 이 사명을 맡아 감당할 사람으로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을 택했는데 이 안에는 많은 의미가 담겨 있지요. 당시 아브라함이 소유하고 있는 재산이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많은 재산을 모두 맡아 관리한다는 것은 그가 아브라함으로부터 얼마나 신임을 받았으며 성실하고 정직한 사람이었는지를 말해주지요.
또한 늙었다고 한 것은 단지 나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오랜 세월 아브라함과 동고동락했음을 말해줍니다. 아브라함과 몇 년 정도 같이 한 것이 아니라 많은 세월을 함께하며 모든 것을 함께 체험한 것이지요. 주인 아브라함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했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오랜 세월 아브라함 곁에서 아브라함과 함께한 사람이라면 그만큼 아브라함을 마음 중심에서 섬기며 사랑하는 사람이었음도 알 수 있지요.
아브라함은 이처럼 믿고 신뢰할 수 있으며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가지고 있는 종을 택하여 그에게 사명을 맡겼다는 사실입니다. 결코 아무에게나 맡길 수 있는 사명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여러분이 24장을 읽다보면 아브라함이 왜 사명을 맡길 사람을 이처럼 신중하게 선택해야 했고 이 늙은 종을 선택한 것이 얼마나 마음에 정확하게 주관을 받은 일이었는지가 잘 나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늙은 종으로 하여금 손을 자신의 환도 뼈 밑에 넣어 맹세케 하는데 여기서 환도 뼈는 넙적 다리 뼈를 말합니다. 넙적 다리는 몸을 지탱하도록 힘을 받는 부위로서 신체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지요. 이러한 환도 뼈는 영적으로 곧은 것을 의미하며 변개치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가지는 환도 뼈 아래에 종의 손을 넣어 맹세케 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약속이 변치 않고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실히 했던 것이지요.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자신을 보시고 자신에게 주신 약속을 온전히 이루심에 있어서 이 종을 통해 형통하게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하나님 앞에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보내심을 입은 이 늙은 종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을 이루시는데 있어서 도구로 쓰임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이 종을 보시고 형통케 하시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으로 인하여 아브라함을 보시고 그를 대신하여 보냄을 입은 이 종을 형통하게 하신다는 의미입니다. 늙은 종은 바로 이러한 의미를 분명히 알았기에 이후에 모든 일을 이루어감에 있어서 오직 "우리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만을 의지했던 것을 볼 수 있지요. 자신이 어떻게 해보고자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은 아브라함을 대신하는 심부름꾼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스스로가 분명히 인식하고 행동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늙은 종으로 하여금 이삭의 아내를 구해 오도록 할 때 중요한 단서 하나를 붙였던 것을 볼 수 있지요. 바로 이방 족속인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여인을 택하지 말고 아브라함 자신의 고향, 자신의 족속에게로 가서 이삭을 위해 아내를 택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아들 이삭이 약속의 씨라 해도 만약 그의 아내를 이방인 중에서 택하게 되면 훗날 어떠한 결과가 나오게 될지를 너무나 잘 아는 아브라함이었던 것이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아는 아브라함이었기에 이처럼 이방 여인을 택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었지요. 아브라함은 물론 이 늙은 종을 신뢰하였지만 혹여라도 눈에 보기에 좋을 대로 여인을 구해오면 안 되었기에 이처럼 분명한 선(線)을 알려주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당시에 그 근방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며 그가 가진 부와 권세도 대단했지요. 따라서 이러한 아브라함의 집안과 혼인 관계를 통해 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그 주변에는 자연히 있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이방 여인은 안 된다는 조건이 없었다면 늙은 종은 육으로 볼 때는 주변에서도 얼마든지 조건이 좋은 여인을 택할 수도 있었지요. 그러나 분명한 조건이 있었기 때문에 이 종은 오직 주인의 고향 땅까지 어떠한 생각 동원도 없이 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내용은 다음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결 론 /
사 6:8에 보면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말씀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여러분이 만약 이러한 상황이라면 이처럼 담대히 고백하실 수 있으시겠는지요?
제가 이미 수년 전부터 예언했던 것처럼 요즘 세계 각국에서 손수건 집회의 열기가 뜨겁습니다. 저를 연합 대성회의 강사로 초청하는 나라만도 60여 개국이 넘고 있지만 제가 일일이 갈 수 없기에 대신 손수건 집회라도 열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렇게 손수건 집회가 많아지면서 저에게는 한 가지 고민이 생겼습니다. 과연 누구를 보낼 것인가 하는 것이지요. 물론 지금도 손수건 집회로 나가는 분들도 있고 또 일단 손수건 집회로 보내심을 입으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목자를 보시고 보장을 해 주십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을 보내야 하나님의 영광이 더 크게 나타날지를 알기 때문에 그러한 조건에 딱 맞는 사람을 찾다 보면 그리 많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지요.
이는 꼭 손수건 집회에 해당되는 것만이 아닙니다. 교회 안팎의 크고 작은 일들이 너무나 많은데 그러한 일들을 온전히 믿고 맡길 수 있는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늙은 종과 같은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지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으며 오직 주인의 말씀에 100% 순종할 수 있는 사람, 그러면서도 자신을 드러내려는 마음이나 사심(私心)이 전혀 없는 사람 말입니다.
아브라함은 바로 이렇게 믿고 신뢰할 사람이 있었기에 그에게 자신의 집 모든 소유를 맡겼을 뿐만 아니라 집안의 가장 중대사라 할 수 있는 일도 그에게 맡기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주변에 사람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결국 중요한 일은 믿고 신뢰할 수 있는 영의 사람에게 맡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 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편에서는 지금 이 시간에도 마음껏 권능도 주시고 축복도 주셔서 아버지의 뜻대로 쓰실 수 있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렇다고 해서 한두 번 잘한 것만을 가지고 단번에 그 사람을 택하시는 것은 아니지요. 아브라함의 늙은 종이 오랜 세월 주인 아브라함 곁에서 충성하며 하나하나 신뢰를 쌓아왔던 것처럼 변함없는 마음으로 충성하며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신이 충만할 때만 사명을 잘 감당하고 그렇지 않을 때는 사명을 멀리하는 것이 아니라 늘 변함없어야 한다는 말이지요. 그래야 일을 맡기는 편에서도 신뢰가 갈 수 있는 것이구요. 맡겨진 일을 뛰어나게 해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맡겨진 일은 변함없는 마음과 모습으로 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그 마음에 흡족하도록 일을 이루어 내는 것은 물론이고 그 마음과 모습이 변함없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곁에 있었던 늙은 종과 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신뢰를 받으며 하나님의 큰 일을 이루는데 있어서 귀하게 쓰임받을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8-04-09 오후 7:35:53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