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142)
서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독자 이삭까지라도 아끼지 않고 기꺼이 아버지 하나님 앞에 드릴 수 있었던 아브라함의 마음의 향과 행함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사자를 보내어 아브라함이 이삭을 잡으려던 것을 멈추게 하십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한다는 것을 온전히 인정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이것으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시험이 모두 끝난 것일까요? 이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데리고 산을 내려와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 편에서는 이미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기로 정한 것이었기에 비록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지는 않는다 해도 한 번 드리기로 정한 번제는 반드시 마무리가 되어져야 했던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 편에서도 사자를 보내어 아브라함에게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 하신 것이지 번제를 드리지 말라 하신 것은 아니었지요.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손을 대지는 않았지만 뭔가 대신할 번제물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주관을 받아 눈을 들어 살펴본 것이었지요. 하나님께서 "주변을 살펴보아라 대신할 번제물을 내가 준비해 두었다" 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마음을 주관하시니 그가 눈을 들어 주변을 살폈다는 말입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예비해 두신 수양을 발견하여 그것으로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를 드릴 수 있었지요.
본 론 /
1. 이삭 대신 수양을 번제물로 드린 아브라함
13-14절에 "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수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렸는지라 아브라함이 가서 그 수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더라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를 깨달을 수가 있지요.
첫 번째로, 하나님 앞에서 한번 정한 것은 결코 변개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정확하게 파악을 했습니다.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 하신 것이지 번제를 드리지 말라 하신 것이 아니었지요. 이때 만약 아브라함이 육신의 생각을 동원했다면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 하셨었는데 이제 이삭에게 손을 대지 말라 하시니 그렇다면 번제를 드리지 않아도 되나 보다 했을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므로 잘못된 결과를 얻게 되지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마음에 주관을 받아 어떠한 하나님의 일을 이루는 데 물질을 심기로 마음에 정하였습니다. 그런데 어찌 어찌하다 보니까 그만 시기를 놓쳐버리고 말았지요. 가령 해외 성회를 위해 심기로 정했었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미루다보니 그만 해외 성회가 이미 끝나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때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십니까? 이미 성회도 지나가 버렸으니 다음 기회에 심어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며 넘어가고 마시겠는지요?
또는 여러분이 어떤 행사 진행을 위해 전체 필요한 재정의 얼마를 감당하기로 정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여러 곳에서 찬조가 들어와서 행사에 필요한 재정이 차고 넘치게 되었지요. 처음에는 재정이 부족할 것 같아서 내가 이 정도는 감당해야겠다 생각했는데 이제 재정이 넘치게 되어 처음 정한 것보다 적게 감당해도 괜찮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 이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는지요? 아, 감사하다 하며 부족된 것만 감당하시겠는지요? 이미 내 마음에 하나님 앞에 드리기로 정한 것이나 하나님의 일을 위해 드리기로 정했으면 그것은 반드시 이행되어야 합니다. 중간에 상황이 어떻게 바뀌었다 해도 처음에 자신의 마음에 정한 대로 아버지 하나님 앞에 신실히 행하면 되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말고 말씀하시는 정확한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하나님께서 번제 자체를 드리지 말라고 하신 것인지 아니면 이삭에게만 손을 대지 말라고 하신 것인지 아브라함은 정확한 의도를 파악했지요. 예를 들어 제가 어느 곳을 돌아보다가 이것이 왜 여기에 있습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면 주변에 있던 사람이 스스로 생각하기를 아 이것을 여기서 치우라는 말씀인가 보구나 하여 이내 치워버리고 마는 것이지요. 차라리 제가 그렇게 물어본 정확한 의도를 알아보고 난 후에 처리했으면 좋았을 텐데 자기 임의대로 생각을 동원한 것입니다. 물론 때로는 제가 마음에 어떤 의중을 가지고 상대가 그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돌려서 말을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많은 경우 제가 어떤 말을 했을 때 그 의중을 파악하려 하기보다는 그것을 자신의 생각 가운데 받아서 처리해 버리는 경우들을 보게 되지요.
간단한 예를 들어 제가 어떤 분에게 "마실 것 좀 가져다 주세요" 말했을 때 "어떤 것으로 드릴까요" 물어본다거나 제가 좋아하는 것을 정확히 파악해서 그것을 가져다주면 좋겠지만 어떤 분은 자신의 생각 가운데서 "당회장님은 콜라를 좋아하시지" 하며 콜라를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개척 때부터 지금까지 수없이 보아 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개척부터 저는 콜라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는데도 여전히 당회장님은 콜라를 좋아하신다 하면서 콜라를 주시는 분들이 아직도 많이 있습니다.
여러 분야에서 이런 예들은 참으로 많지요. 또 한 가지 비유를 들자면 제가 어떤 분과 대화를 할 때 어떤 일을 추진함에 있어서 "그렇게 하는 것은 가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이때 저는 그 일을 추진하는 것이 잘못되었다 말한 것이 아니라 지금 하려는 방법은 아닌 것 같다고 말해준 것이지요. 그런데 나중에 들어 보면 그 일을 추진하는 것은 당회장님의 뜻이 아니다 이렇게 말이 퍼지는 것입니다. 저와 대화한 분 편에서 자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저의 말을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잘못된 결과로 나와지는 것이지요.
이러한 일들은 여러분의 생활 속에서도 흔히 발생할 수 있는 것들입니다. 함께 모여 대화하고 결정한 일에 대해서도 나중에 그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말을 들어 보면 의외로 서로 다른 말들을 하는 경우가 있지요. 나는 어떤가? 스스로 한 번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전혀 육신의 생각이 없었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깨달았을 뿐만 아니라 마음에 정한 바를 변개치 않을 중심이었기에 결국 여호와 이레의 역사하심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림으로 모든 것을 완벽하고 깨끗하게 마무리했던 것을 볼 수 있지요.
2. "여호와 이레"와 "여호와의 산"의 의미
14절에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했는데 여기서 "여호와 이레"라는 말은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뜻으로서 좀더 쉽게 풀어 보자면 "하나님께서 성도의 필요한 것을 항상 살펴보시고 미리 준비해 놓으신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삶 속에서 이러한 여호와 이레의 체험들을 해 나가고 계십니까? 마 6:31-33에 보면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하셨지요.
여러분도 아직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은 아니라 해도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힘써 가신다면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만일 입술로는 "사랑한다" 고백하면서도 하나님 앞에 작은 것 하나 드리는 것도 아까워하고 내 유익만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하나님께서도 책임지실 수가 없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이 제일 먼저요 하나님의 나라가 제일 우선인 복된 성도님들이 되셔서 여호와 이레의 축복이 늘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여호와의 산"이라는 말은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정하신 뜻대로 이루어지는 경로를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을 향하신 계획도 또한 아브라함을 연단하고 마침내 독자 이삭을 드리라는 시험을 통해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온전히 세우시는 것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 뜻과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정하신 공의의 법칙 가운데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호와 이레로 준비해 주신 것에 대해서도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말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대로 모든 것이 준비되어지고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이러한 섬세하시고 자상하신 인도함을 느끼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여 주신 수양으로 번제를 드릴 때에 그 마음이 어떠했겠습니까? 넘치는 감사와 기쁨 속에 감동함의 번제를 드릴 수 있었지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아주 큰 연단을 통과했는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미리 여러분이 통과할 것을 아시고 여러분을 위해 놀랄 만한 축복을 준비해 두신 것입니다. 여러분이 연단을 통과하고 나서 그것을 발견했을 때 여러분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것을 받으셨구나 나를 위해 이러한 것을 예비해 두셨구나 하며 감격해하지 않으시겠는지요?아브라함이 비록 이삭을 번제로 드림에 있어서 어떤 주저함이나 망설임도 또한 고민도 없었지만 그래도 너무나 사랑하던 아들이 죽은 것과 같은 상황에서 다시 찾은 기분은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마음과 행함을 받으시고 대신 번제로 드릴 수양까지 준비해 주셨으니 그 순간 아브라함은 감격할 수밖에 없었지요.
3. 축복의 언약을 받은 아브라함
축복의 시험을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사자의 입술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의 언약이 나옵니다. "내가 나를 가리켜 맹세하노니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어지는 18절 후반 절에 아브라함이 이러한 축복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가 한 마디로 설명되어 있지요. 바로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축복받고 응답받는 가장 확실하면서도 쉬운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준행하는 것이지요. 이렇게 쉽고 확실한 방법이 있으니 여러분 모두도 이 방법대로 행하심으로 축복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독자 이삭을 어떤 마음과 행함으로 드렸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처럼 온전한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과 행함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매우 높이 사셨지요. 믿음이 있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바로 순종은 행함이 따르지 않습니까? 그 이유는 죄인들을 위해 대신 독생자 아들을 십자가에 화목 제물로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에 그래도 비교적 가까운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아버지 하나님을 닮았다 이 말입니다.
물론 근본 하나님과 하나이시며 아무 흠도 점도 없으신 예수님을 죄인들의 손에 의해 십자가에 죽게 하기까지 희생물로 내어주신 것과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지만, 1차원의 공의 가운데 살아가는 이 땅에서 아브라함만한 믿음과 사랑을 내보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이라도 기꺼이 드릴 수 있는 마음이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사 독생자까지 내어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과 그래도 많이 닮았음을 알 수가 있지요. 이런 아브라함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4. 하나님의 섬세하심과 때가 이르기까지 인내하는 아브라함
이어지는 20-24절에서는 다시 한 번 모든 것을 미리 준비케 하시고 한 치의 오차 없이 섭리하신 바를 이루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섬세하심과 또한 모든 것을 마음에 주관받아 준비해 나갔던 아브라함의 모습을 알 수 있습니다. 본문을 보면 단순히 아브라함의 동생인 나홀이 여덟 명의 자녀를 낳았다는 내용인 것 같지만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내용을 기록케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얼마나 정확한 계획 속에 아브라함과 약속의 씨인 그의 아들 이삭을 인도해 가셨는지를 알려주시는 것이지요.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창 24:3-4에 보면 아브라함은 이제 때가 되어 아들 이삭을 위해 배필을 구하고자 자기 집의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이르기를 "내가 너로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나의 거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내 고향 내 족속에게로 가서 내 아들 이삭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선민 이스라엘이 결코 이방 여인을 통해 나올 수는 없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할 때 자신의 족속에게로 가서 구하게 한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만난 여인이 바로 아브라함의 동생 나홀에게서 나은 아들 브두엘의 딸 리브가입니다. 본문에는 리브가라는 여인이 어떤 계보를 통해 출생하게 되었는지가 설명되고 있는데 할아버지 나홀은 아브라함과 형제이며 할머니 밀가는 아브라함의 또 다른 형제 하란의 딸입니다. 밀가와 롯과는 남매 사이이기도 하지요. 그러니 리브가는 아브라함의 족속 안에서 그래도 순수 혈통을 받아 나온 사람인 것입니다.
이삭의 아내가 되어 순수혈통을 이어가야 할 여인이 필요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아브라함 주변의 계보까지도 순수하게 이어져 내려올 수 있도록 주관하신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소식들을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듣게 하심으로 아브라함이 미리 미리 마음에 주관을 받아 이삭의 배필을 준비케 하신 것입니다. 막상 이삭을 장가 보낼 때가 되어 그때 가서 아내 될 여인을 찾은 것이 아니라 이미 돌아가는 상황들을 파악하고 있었고 때가 되니 마음에 주관을 받아 종을 자신의 족속에게로 보낸 것이었습니다.
이처럼 아브라함은 어떤 일을 이룸에 있어서 즉흥적으로 그때그때 해 나간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들려오는 음성에 순종하여 준비하였고 모든 것의 때가 이르기까지 마음에 담아둔 채 참고 인내하였던 것이지요. 이삭을 장가보내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관해 주시는 가장 적당한 시점을 택했던 것이구요.
창 25:20에 보면 이삭이 리브가를 아내로 취한 것이 그의 나이 40세였는데 만약 아브라함이 사람의 생각을 동원하여 노년에 얻은 아들 이삭을 통해 하루라도 빨리 후사를 보기 원했다면 이삭을 굳이 40세까지 놔두지 않았을 것입니다. 빨리 손자를 보기 위해서 빨리 장가를 보냈을 것이라 이 말입니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결혼을 시키려 했을 것이고 그러다 보면 사람 보기에 좋은 여인을 골라 결혼을 시켰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모든 것을 결코 사람의 생각 가운데 이룬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해 주시는 가장 적당한 시점을 기다렸던 것이요, 때가 되자 마음에 주관받아 오던 대로 자신의 족속 가운데서 여인을 구했던 것입니다.이처럼 아브라함은 항상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았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 모든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 맡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깨달아 보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깁니다 하면서 자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께 맡기는 것으로 잘못 생각하고 있지요. 사람 편에서 어떤 계획을 세우지 말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지 않으시면 그냥 가만히 있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어차피 사람을 통해 일들을 이루어가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는 사람들에게는 미리미리 마음에 주관해 주시고 준비할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사람 편에서 자신이 먼저 앞서서 생각 가운데 계획하고 진행해 나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관해 주신다는 말이지요.
아브라함도 아들 이삭의 아내를 구하려 할 때 자신의 생각 가운데 한 것이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미리 오래 전부터 이때를 위해 주변의 상황을 준비해 주셨고 아브라함의 마음도 주관하여 준비케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이방 족속 가운데 살아가면서도 자신의 고향과 그곳에 대한 소식을 듣게 하심으로 마음에 품고 기도하게 하셨던 것이고 가장 믿을 수 있는 종을 보내어 하나님의 섭리를 찾아내도록 했던 것이지요.
몰론 이삭의 아내를 구하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고 큰 일이었지만 아브라함은 이렇게 큰 일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평소에도 모든 일을 이룸에 있어서 경솔하게 처리했던 것이 아닙니다. 늘 신중하게 많은 것을 살폈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어디 있는지를 미리 미리 기도하여 마음에 주관받아 준비하였으며 아버지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이르기까지 인내와 절제와 오래 참음으로 기다렸지요.
5. 하나님의 정확한 뜻과 섭리를 알고 준비하는 본교회
본교회가 세계를 이루고 대성전을 이루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니까 우리는 기다리고만 있으면 되겠지 생각한다면 이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우리 사람 편에서 어떻게 세계를 이루고 어떻게 대성전을 이룰지 육적인 생각과 방법을 동원하여 이루는 것은 아니지만 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살펴서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기도도 필요한 것이고 물질도 필요한 것이며, 직접 나가서 실무를 감당하는 사람도 필요하지요. 다만 모든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정확한 뜻을 알아서 적당한 시기와 방법을 취해야 합니다. 서둘러도 안 되는 것이고 주신 기회를 놓쳐서도 안 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일을 이룰 때에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긴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다 이루어 주시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는 아버지 하나님의 정확한 뜻과 섭리를 알아야 하고 다음으로는 그것을 마음에 품고 기도함으로 정확하게 주관을 받아 나가야 하며 마지막으로는 사람 편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아브라함이 이삭의 아내를 순적히 구할 수 있었던 것도 먼저는 그가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그것을 놓고 마음에 기도하여 주관을 받았으며 이러한 아브라함을 대신하여 오직 순종할 수 있었던 종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과연 천국에 갔을지 갔다면 어느 처소에 갔을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결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람 사이에도 누군가를 사랑하면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상대 위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을 봅니다. 만약 어디에 식사를 하러 가도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가 무엇을 좋아할까? 무엇을 먹고 싶어 할까? 이것을 먼저 생각하게 되지요. 또 상대방이 어떤 말을 했을 때 왜 저 말을 했는지 그 의중을 깨달아서 그 의중에 맞춰주려고 노력을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의 말은 어떻게든 믿어 주려고 하며 상대가 원하는 것은 어떻게든 들어 주려고 하지요. 여기에 한 가지 더 이러한 모습이 변함이 없다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사랑은 얼마나 진실하신지요? 사람 사이에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아버지 하나님과의 사이는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아브라함의 모습을 통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았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 오직 하나님 위주로 행해 나가는 모습, 하나님의 말씀에 어떠한 생각도 동원하지 않고 온전히 믿고 순종해 드리는 모습 그리고 이러한 모습이 변함없었지요. 여러분도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의 사이에 이러한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쌓아 가심으므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바로 여러분의 하나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8-04-09 오후 7:36:01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