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141)
서 론 /
지난 시간 설교 중에 미디안과 아말렉을 비롯한 이방 족속의 연합군에 맞서기 위해 모인 이스라엘의 군대의 수를 삼만 삼천 명이라 했었는데 이를 삼만 이천 명으로 정정합니다.
아브라함은 "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떠한 생각도 동원하지 않고 즉시로 순종의 행함이 나왔던 것을 봅니다. 그것도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번제에 쓸 나무까지 미리 준비하여 하나님께서 지시하는 땅으로 길을 떠났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삼일 길을 간 후에 막상 이삭을 번제로 드려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자 집에서부터 함께 동행했던 두 사환을 남겨둔 채 이삭과 단 둘이서만 번제드릴 장소로 올라갑니다.
지난 시간에 아브라함이 이렇게 했던 이유에 대해 설명을 드렸지요. 바로 영의 일에는 육의 사람이 함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육의 사람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육신의 생각과 지식의 한계 속에서 머물기 때문에 그 한계를 넘어가는 일에 대해서는 이해하지를 못하지요. 그러니 육의 사람과 영의 일을 함께하게 되면 육의 사람은 육적인 생각과 틀의 한계 속에서 일을 이루려 하기 때문에 오히려 영의 일을 이루는 데 있어서 방해가 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집을 떠날 때에도 아내 사라에게는 한마디 상의 없이 그것도 아침 일찍이 일어나 떠났던 것을 볼 수가 있지요. 만약 사라에게 사실대로 말했다면 과연 사라가 순순히 아브라함의 말에 따랐겠습니까? 여전히 육신의 생각과 악의 모양을 버리지 못한 사라는 분명히 아브라함이 하려는 일을 방해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을 너무 잘 아는 아브라함은 사라에게 알리지 않고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또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 하는 순간에도 만약 두 사환을 번제 드리는 장소까지 데리고 갔다면 두 사환 역시 아브라함의 행동을 이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어떻게 자기 아들을 죽여 짐승처럼 각을 떠서 번제를 드리려 하는가 생각하며 우리 주인님이 좀 이상해지셨나 보다 하고 판단을 하게 되지요. 그러다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는 일을 방해할 수도 있는 것이구요. 그래서 아브라함은 두 사환을 남겨둔 채 이삭과 둘이서만 번제드릴 장소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 론 /
1.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본문 7절에 보면 이삭 자신도 아직까지는 번제에 쓸 제물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알지 못했던 것을 알 수 있지요. 번제를 위해 쓸 불과 나무는 있는데 정작 번제에 쓸 어린 양이 없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이삭은 아브라함에게 묻기를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했던 것입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대답하지요.
아브라함이 이렇게 말했던 것은 이삭에게 진실을 숨기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바로 모든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 맡기는 모습입니다. 이삭은 아버지가 자신을 결박하여 번제로 잡아 드리려 할 때 어떠한 저항도 하지 않았지요. 아버지가 어떠한 행동을 하시더라도 기꺼이 순종할 마음이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아브라함은 이런 마음을 가진 이삭에게 굳이 상황을 숨겨야 할 필요가 없었고 이삭은 자신이 번제로 드려질 것을 알아도 저항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요.
그러나 똑같은 말이라도 번제드릴 제물은 바로 너다 하고 말하는 것과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말하는 것과는 그 말에서 풍겨나는 선함이 전혀 다릅니다. 같은 상황이라도 마음의 선한 정도에 따라서 전혀 다른 표현으로 나올 수 있다는 뜻이지요. 이것이 무슨 말인지 다니엘의 경우를 통해 설명해 보겠습니다.
단 6장에 보면 다니엘이 섬기던 다리오 왕은 자신이 그것을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어쩔 수 없게 된 상황에서 다니엘을 사자 굴에 집어넣어야 했지요. 그렇지만 단 6:18에 "왕이 궁에 돌아가서는 밤이 맞도록 금식하고 그 앞에 기악을 그치고 침수를 폐하니라" 할 정도로 다니엘을 마음 중심에서 걱정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이튿날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 굴로 가서 슬피 소리 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묻지요.
이때 다니엘은 무엇이라 대답했습니까? 먼저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는지요? 여러분이 지금 다니엘의 위치에 있습니다. 그런다고 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만약 마음이 선하지 못한 사람이었다면 우선 나오는 말이 "왜 무죄한 나에게 이렇게 행하였나이까, 내가 왕을 위해 얼마나 충성했는데 나를 이런 곳에 집어 넣으셨습니까? 내 몸이 하나도 상하지 않은 것을 보십시오. 이것은 내가 무죄하다는 증거 아닙니까? 이제 내 무죄함이 증명되어졌으니 내 억울함을 풀어 주십시오" 하며 먼저 서운함과 감정 섞인 말들이 나왔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니엘은 그렇지 않았지요. 다니엘은 먼저 왕에게 고하기를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합니다. 왕이 비록 자신을 사자 굴에 집어넣도록 명령한 것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왕에게 어떤 감정이나 서운함도 없고 여전히 나는 왕의 충성된 신하입니다하는 의미가 이 고백에는 담겨 있는 것이지요.
그 후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고백합니다. 이 고백 역시 자신의 억울함을 주장하거나 서운한 감정을 드러내고자 하는 말이 아니었지요. 자신을 억울하게 모함한 사람들에 대한 보복을 원한다는 말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고백을 듣는 왕도 다니엘의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에 감동을 입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이처럼 똑같은 상황에서 말을 내더라도 그 마음이 얼마나 선하고 아름다우냐에 따라 나와지는 고백은 전혀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입술은 어떠하십니까? 혹여 서운함, 억울함, 불평, 불만, 짜증, 미움 등 아직까지도 이러한 감정 섞인 말들이 나오시는지요? 여러분은 늘 자신의 입술을 점검하셔서 엡 4:29에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는 말씀처럼 늘 상대에게 덕을 세우고 은혜를 끼치는 선한 말만을 내는 입술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결국 입술에서 나오는 것은 근본 마음에서부터 나오는 것이므로 선한 입술이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에 선이 임하지 않으면 선한 말을 하고 싶어도 마음대로 되지 않으며 극한 상황에서는 본성에 있는 악의 모양이 나오게 되지요.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처럼 말 한 마디에도 선한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고백했던 것이 혹여라도 이삭 대신 다른 번제물이 예비되어 있으리라고 생각하거나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처럼 고백했던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모든 것이 아버지의 뜻 안에 있고 아버지의 손 안에 달려있으며 아버지께서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을 알았고 믿었기에 그러한 마음을 담아 이러한 고백을 했던 것이지요.
2. 하나님의 말씀에 오직 순종하는 아브라함과 이삭
본문 9-10절에 보면 번제할 장소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어떠한 주저함도 없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기 위한 절차를 진행해 나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지시하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 하더니" 했습니다. 막상 이삭을 바쳐야 하는 순간이 다가왔을 때 아브라함은 혹여라도 정에 이끌려 그의 마음에 조금의 요동함도 있었던 것이 아니며 내 아들을 어떻게 죽일꼬! 하여 슬피 울거나 한탄했던 것도 아닙니다. 조금의 후회나 주저함도 없었고 칼을 내밀어 이삭을 잡으려는 마지막 순간까지 조금의 생각 동원도 하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지요. 시종일관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이 없이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해 나갔던 것입니다.
육의 사람이 보면 아비로서의 정도 없고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도 없나 보다 생각할 수 있지만 이것이 바로 영의 사람의 모습이며 마음 중심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첫째로 사랑하는 사람의 모습이지요.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다" 하고 알았으면 어떤 상황, 어떤 환경에서도 변함없이 마음에 정한 바를 이루는 것이 영입니다. "열심히 해 보려고 했는데 중간에 이런 일이 있어서 못했습니다" 한다거나 "다시 생각해 보니 이렇게 하는 것이 더 나을 것 같아서 이렇게 했습니다."라는 이유나 핑계가 없다는 말이지요.
시 15:4 후반절에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말씀한 대로 한 번 아버지 하나님 앞에 정한 마음은 설령 그로 인해 해가 온다 할지라도 지켜야 합니다. 그렇다 해서 정한 것이니까 어쩔 수 없지 하며 마음에서는 순종이 안 되어지는데 행함으로만 억지로 한다고 그것이 온전한 순종은 아니지요.
아브라함은 이삭을 번제로 드림에 있어서 마지막 순간까지 마음에 기쁨과 감사와 평안이 있었고 조금의 육신의 생각도 동원되지가 않았습니다. 겉으로만 평온한 척 한 것이 아니었지요. 마음 중심에서부터 평안이 있었고 그것이 겉으로도 흘러나왔던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자신이 번제로 드려진다는 것을 알게 된 이삭 역시 순종의 사람이었음을 알 수 있지요. 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에게 많은 것을 설명한 것이 아닙니다. 왜 이삭 너를 번제로 드려야 하는지 이삭에게 어떠한 설명도 없이 오로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만 알려 주었지요. 그럼에도 이삭은 어떠한 저항이나 반대 없이 순순히 아버지의 뜻에 따랐던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을 내놓아야 하는 상황에서도 이삭이 이렇게 나왔다는 것은 이삭이 그만큼 하나님을 믿었으며 아버지인 아브라함 또한 믿었다는 증거이지요.
이삭 편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을 볼 때에 아브라함은 늘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밝히 알아서 오직 그 뜻대로 행해 오시던 아버지였기에 그러한 아버지가 하려는 일이라면 그것이 분명히 아버지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에 대해 그만큼 마음 중심에서 믿고 확신을 했다는 말입니다. 만약 그러한 확신과 신뢰가 없었다면 아무리 아버지가 하시려는 일이지만 이처럼 순순히 순종하기란 쉽지 않지요. 그러니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으로부터도 얼마나 신뢰받고 있었는지를 단편적으로 알 수 있게 해주는 장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로 간에 온전한 신뢰관계가 이루어지면 굳이 많은 대화가 없다 해도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느끼게 됩니다. 내가 지금 왜 이런 말을 하고 내가 왜 지금 이런 행동을 하는지 등을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대가 오해하거나 판단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내 입장과 내 마음이 되어서 이해해 줄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주변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서로 간에 얼마나 평안하고 행복할 수가 있겠습니까? 물론 이것은 어디까지나 모두가 영으로 들어왔을 때를 말합니다. 육에 거하는 사람들은 아무리 서로가 친하고 신뢰하는 것 같다가도 막상 자신의 유익에 맞지 않는 상황이나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일을 만나게 되면 결국 변질되고 말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과도 영적인 신뢰 관계가 쌓여 있었던 것이고 아들 이삭과도 영적인 신뢰 관계가 쌓여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의 유익을 먼저 생각한 것이 아니었고 자기 생각에 맞는가를 먼저 생각한 것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던 것이고 이삭 역시 아버지인 아브라함의 말을 전적으로 믿고 순종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브라함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았고 그동안 수많은 교통을 이루어 왔습니다. 그러니 예를 들어 설령 아브라함이 생각을 동원하여 자기 생각에 맞지 않는 일이 있다 해도 그동안의 체험과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확실한 말씀이 있기 때문에 결국은 순종할 수밖에 없겠지요.
그런데 이삭은 경우가 좀 다릅니다. 이삭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어떤 말씀을 들은 것이 아니지요. 물론 아버지인 아브라함 곁에서 늘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신실하심을 보고 듣고 체험한 이삭이었지만 지금은 자신의 생명이 걸린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삭은 오직 아브라함으로부터 "너를 번제로 드리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이 한 마디 말만을 들었지요. 그리고는 자신은 번제로 드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삭은 전혀 아버지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그 상황을 피해 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무슨 변명을 하려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이 한번 이삭의 입장이 되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이삭과 같은 순종의 모습이 나오시겠는지요? 제가 만약 여러분에게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고 어떤 말을 했는데 그것이 여러분의 생각과 맞지 않는다고 할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물론 지금이야 여러분 대부분이 "아멘" 하고 순종하려 하시겠지만 지금의 모습이 있기까지는 수많은 연단이 필요했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지금과 같지 않던 예전에는 축복의 길이 눈앞에 있고 형통하게 갈 수 있는 길을 알려 주어도 순종하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저 혼자 애타하며 눈물 흘려야 할 때가 많았지요. 여러분 모두에게 이삭과 같이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는 말 한 마디에 그대로 순종해 줄 수 있는 믿음만 있었다면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놀랍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었을 텐데 말입니다. 이제라도 말씀을 들으시면서 여러분 모두가 아브라함과 같은 신앙으로 또한 이삭과 같은 신앙으로 변화되심으로 이후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어떠한 말씀에도 오직 순종만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급하게 사자를 보내어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하나님
아브라함과 이삭 모두가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기꺼이 번제를 드리려는 순간 11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가라사대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했던 것입니다. 이미 아브라함의 마음과 행함 모든 것을 아름다운 향으로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급하게 사자를 보내어 아브라함을 부르시지요.
여호와의 사자가 "아브라함아"라고 부를 수 있었던 것은 보내심을 입은 사자가 어떤 위치였는지를 알 수 있게 해 줍니다. 물론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입은 사자는 그 순간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하는 것이지만 아브라함을 이처럼 부를 수 있었다는 것은 보통 천사나 천사장 급이 아님을 알 수 있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잘 알고 그 위엄과 존귀 가운데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대신할 수 있는 최상급의 천사장이 왔던 것입니다.
천사들 사이에도 분명한 서열이 있어서 각각의 급이 정확히 나누어져 있는데 최상급의 천사장이라고 하면 가브리엘이나 미가엘 천사장 급이라 말할 수 있지요. 이 두 천사장 이외에도 최상급에 속하는 천사장들이 여럿 있는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중에 하나를 보내어 아브라함에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전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에 아브라함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대답했는데 이것이 혹여라도 이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을 했던 것이 아니었지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금이라도 거두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아브라함은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칼로 이삭을 잡으려 했기 때문에 급한 쪽은 오히려 여호와의 사자였지요. 그래서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며 다급하게 두 번씩이나 아브라함을 불렀던 것입니다.
4.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이처럼 아브라함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온전한 믿음과 순종을 내보였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시험을 온전히 통과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사자의 입술을 통해 말씀하셨습니다. 12절에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 그리고 경외함을 온전히 인정해 주시는 장면이지요.
그렇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렇게까지 아브라함을 시험하시기 전에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모르셨을까요? 물론 예지 예정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시험을 통과할지도 아셨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의 중심도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시험이라는 절차를 거치게 하신 것은 이제 이후로 그에게 주시는 어떠한 축복도 또한 그에게 주시는 믿음의 조상이라는 위치도 전혀 송사를 받지 않게 하시기 위한 것이지요. 원수 마귀사단 앞에서도 믿음의 조상으로서의 아브라함의 신앙이 분명히 증명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말씀하신 것은 이 땅에서 최상의 수준의 경작물이라 할 수 있는 아브라함을 얻으신 기쁨의 표현인 것이며 그를 인정해 주신다는 최상급의 표현이지요. 이제 독자 이삭을 드리는 시험까지라도 온전히 통과한 아브라함에게 어떠한 축복이 주어지게 되는지를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결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독자를 번제로 드린다는 것이 막상 현실로 다가온다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오늘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작은 것 하나 드리는 것도 아까워하는지요.
물질을 아까워하여 십의 일조도 드리지 않고 하나님 앞에 인색한 사람도 많으며, 시간이 아깝다 하여 하나님 앞에 헌신하기를 꺼려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겨우 주일 예배에만 참석하는 것으로 만족하며 그 외의 시간에 사명을 맡아 감당한다거나 봉사하는 일에는 너무나 인색하지요. 가족에 대해서는 육적인 정을 끊지 못하여 온전히 하나님 앞에 드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보다는 자신의 일이 먼저이고 하나님의 나라의 유익보다는 자기 유익이 늘 앞서는 사람도 있지요. 그러니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들을 보실 때 어찌 네가 나를 사랑하는구나 인정하시겠고 네가 나를 경외하는구나 인정하시겠습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한다면 거기에는 반드시 행함과 진실함이 따르게 되며 증거로서 나와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한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가 바로 성결되어지는 것이지요. 요일 5:3 전반 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했고, 잠 8:13 전반 절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악을 미워하게 되면 당연히 성결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결되어져서 육신의 생각이 철저히 깨어지고 내 틀과 이론과 지식이 벗어져야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한 순종이 나올 수 있지요.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경외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도 사랑하시는 증거를 나타내십니다.
오늘 본문에 아브라함은 결국 이삭을 죽여서 번제로 드리지는 않아도 되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행함을 온전한 것으로 받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마음 중심을 받으신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번제로 드린 것과 마찬가지로 받으신 것이지요. 모든 경우가 다 이런 것은 아니지만 여러분의 중심을 하나님께서 인정해 주시면 여러분이 마음에 작정하여 품기만 해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 향을 받으십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은 급한 문제를 놓고 작정 기도나 금식을 들어가려고 할 때 곧바로 응답을 주시는 경우가 있지요. 물론 급한 경우가 아니라면 상황에 따라서는 작정 기도가 끝난 후나 금식을 마친 후에 응답을 주실 수도 있지만 갑자기 급한 문제를 놓고 기도나 금식을 하게 된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급하게 응답부터 주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리 응답을 주어도 그 중심이 결코 변개하거나 중도에 그만둘 사람이 아닌 것을 아시기 때문이지요. 이미 하나님 앞에 그 중심을 인정받았기에 원수 마귀도 송사하지를 못하는 것이구요. 그러니 온전히 하나님의 사랑받고 보장받는 차원에 들어오면 마음에 품기만 해도 응답이 온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이처럼 마음에 품기만 해도 응답받을 수 있는 차원에 들어오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시기 바랍니다. 내 편에서만 그렇게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 편에서도 인정해 주실 수 있는 확실한 증거를 나타내 보여야 하는 것이지요.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만 살면 되는 것인데 그것을 왜 그렇게 어려워하시는 분들이 많습니까?
여러분이 순종해야겠다는 마음만 있으면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는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결코 무겁고 힘들며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독자 이삭을 드리는 것이 결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여러분도 이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차원으로 신속히 들어오셔서 모두가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네가 나를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하는 인정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8-05-07 오전 11:59:39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