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132)
서 론 /
창세기 강해는 사람의 지식이나 이론 또는 생각 속에서 나올 수 있는 내용이 결코 아닙니다. 그러면서 세상의 지식이나 이론으로는 전혀 설명하지 못하는 부분들까지도 시원하게 풀어 주고 있는 말씀이지요. 또한 창세기 강해를 처음부터 들으신 분들은 느끼겠지만 지금까지의 모든 내용들이 서로 정확하게 일치되어 동일한 맥락 속에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어찌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있겠습니까? 오직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만이 풀어 주실 수 있는 내용이지요.
더욱이 창세기 강해는 단지 말씀 증거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설명된 영의 세계에 대한 분명한 증거들이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습니다. 둘째 하늘이 있다는 증거로서 구름이 갑자기 나타나고 사라지는 모습을 비롯하여 별의 이동과 UFO의 움직임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목격되었고 카메라에도 수없이 담을 수가 있었지요. 물론 영안이 열려 직접 둘째 하늘에 있는 에덴의 하늘을 볼 수 있는 성도님들도 많이 나오게 되었구요.
또한 창세기 강해를 통해 노아의 홍수가 설명되었고 공룡의 존재와 멸망도 설명되었으며 고대 문명의 수수께끼도 풀리게 되었습니다. 제가 고고학을 공부한 것도 아니고 천체물리학이나 지질학과 같은 세상의 학문을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아버지 하나님께서 풀어 주시니 세상의 학문으로 설명되지 않는 것을 이처럼 시원스럽게 풀어 나갈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창세기 강해를 통해 근본에 대해 알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그 누가 그 어디에서 태초 이전부터의 근본에 대해 그리고 하나님의 근본에 대해 이처럼 풀어 줄 수가 있겠는지요?
마 13:16-17에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 듣는 것들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 자신이 보고 듣는 이 모든 것이 얼마나 크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주어진 것인지를 마음 중심에서 깨닫고 감사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요일 2:13 전반절에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하신 말씀처럼 여러분의 신앙도 신속히 아비의 신앙으로 나와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 론 /
1. 사람으로서의 도리(道理)도 잃어버린 소돔 사람들
9절에 보면 "그들이 가로되 너는 물러나라 또 가로되 이놈이 들어와서 우거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나아와서 그 문을 깨치려 하는지라" 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소돔성의 사람들이 얼마나 악한지를 알 수 있고 그러면서도 스스로는 자신들의 악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지요.
롯은 자신의 집에 들어온 두 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귀한 분들임을 알았기에 어떻게 해서든 그분들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딸들을 대신 내어주겠다는 제안까지 합니다. 그러나 소돔 성의 사람들은 막무가내였고 자신들의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깨우쳐 주는 롯의 말에 오히려 더한 악으로 나오지요. 롯은 소돔 사람들에게 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의 당연한 도리를 깨우쳐 주고 있는 것이었고 롯의 말이나 행동이 전혀 악한 것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돔의 사람들은 자신들의 뜻대로 되지 않자 이제는 롯까지 해치려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에도 이러한 모습들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악한 사람들은 선한 말을 하고 선하게 가르치는 사람을 보면 도리어 악이 더 발동하기도 합니다. 자신들의 악 속에서 견디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요 3:20에도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말씀했습니다. 빛 가운데 거하며 마음이 선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선한 것을 좋아하고 빛으로 더 나오기를 원하게 되지만 반대로 어둠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자신의 어둠이 드러날 것을 두려워하여 빛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오히려 빛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소돔 성의 사람들도 바로 이런 상황이었기에 롯이 바른 말을 했음에도 그것이 자신들의 어둠을 드러내며 찌르는 말이 되자 이처럼 악한 반응이 나오더라는 말입니다. 더 나아가 롯의 행동을 핑계 삼아 모든 책임을 롯에게로 돌리고 있지요. 마치 롯이 자신들 위에 군림하는 법관이 되려 하기 때문에 자신들이 이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괜한 트집을 잡는 것일 뿐 결국은 자신들의 행동이 저지당한 것에 대해 앙심을 품고 롯에게 악으로 갚겠다는 의도이지요. 사람이 악으로 물들게 되면 이와 같이 사람으로서의 도리도 잊게 되는 것이고 선도 악으로 갚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울 왕이 바로 그러했지요. 사울 왕은 자신을 도와 적을 물리치고 나라에 큰 공을 세운 다윗에 대해 선을 악으로 갚았던 사람입니다. 다윗의 공을 칭찬해 주고 그에게 감사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는 말을 듣고는 그만 악이 발동하여 사람으로서의 도리도 잊은 채 다윗을 죽이려 했던 것이지요.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분별하지 못하는 것이며 설령 분별한다 해도 결국은 자기 마음의 악대로 행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혹여라도 이런 모습이 없어야 합니다. 분명 바른 말을 하는 것인 줄 알면서도 그 말이 나의 부족함을 지적한다거나 내 유익에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일 때 그로 인해 말을 하는 사람을 싫어하게 되고 악한 말이나 행동으로써 그 사람을 누르려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지요. 특히 내가 힘을 가지고 있고 더 큰 권세를 가진 경우라면 더더욱 아랫사람이나 주변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록 소자의 말이라도 그 말이 진리에 비추어 합당한 것이라면 겸허하게 받을 수 있는 자세가 되어야 하지요.
소돔 성의 사람들은 당장 겉으로 드러나는 음란과 간음의 악뿐만 아니라 이미 사람으로서의 도리마저도 잃어버린 채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너무나 황폐해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니 롯이 비록 당장에는 눈에 보기에 좋은 소돔 땅을 택하여 가기는 했지만 막상 그들 속에 살아간다 해도 그들과 합류하여 살 수는 없었지요. 나름대로 신앙이 있었던 롯의 입장에서는 악에 물들어 살아가는 그곳의 사람들과 부딪치면서 많은 분야가 힘들고 어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또한 소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볼 때도 롯은 자신들의 방탕한 삶에 합류할 사람이 아니었기에 늘 이방인으로 여겨질 뿐이었지요.
그러니 평소 서로 간에 원만하지 못했던 관계가 이번 일을 계기로 하여 더욱 악화되면서 소돔의 백성들은 롯을 해(害)하려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이 롯을 해하겠다고 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본래 목적은 롯의 집에 들어간 두 사람을 자기들의 원하는 대로 하려는 것이었고 이에 방해가 되는 롯을 먼저 해하려 했던 것이지요.
2. 공간을 분리하여 문을 찾지 못하는 소돔 사람들
이처럼 상황이 급박해지자 마침내 두 천사장이 감추었던 능력을 나타냅니다. 10-11절에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으며 문밖의 무리로 무론 대소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곤비하였더라" 했지요. 여기서 눈을 어둡게 했다는 것이 마치 소경처럼 눈이 안 보이게 했다는 의미가 아니지요. 만약 일시적으로나마 소경처럼 눈을 안 보이게 한 것이었다면 눈도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계속하여 문을 찾으려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문을 찾느라 곤비했다는 것은 그들 눈에는 분명히 문이 보이는 것 같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상 찾으려고 하면 찾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는 말이지요.
이는 바로 공간을 분리시켰기 때문에 가능한 현상이었습니다. 좀더 쉽게 설명을 하자면 예를 들어 우리가 있는 이 공간 안에 수많은 천사들이 함께 있다 해도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볼 수가 없지요. 물론 육의 공간과 영의 공간이 다르지만 영안이 열린 사람이 볼 때는 너무나 우리와 가까이에 있는 천사임에도 영안이 열리지 않으면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두 천사장이 사람들의 눈을 어둡게 했다는 것은 바로 이와 비슷한 상황으로서 두 천사장이 롯과 롯의 가족들이 있는 공간과 소돔 성의 백성들이 있는 공간을 나눔으로 소돔 성의 백성들로 하여금 롯이 들어가 있는 공간 안에 있는 문을 찾을 수 없게 했다는 의미이지요. 그렇게 되면 마치 영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은 천사를 볼 수 없는 것과 같이 소돔 성의 사람들에게는 롯의 집의 문이 분명 그들과 같은 공간 안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찾을 수가 없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같은 공간에 있는 것 같으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다른 공간에 들어가 있기 때문이지요.
한 가지 비유를 들면 개나 고양이와 같은 동물에게 난생 처음으로 텔레비전을 보여 준다고 합시다. 그러면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장면이 마치 지금 자기들과 같은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만약 텔레비전에서 그들이 좋아하는 맛있는 음식을 보면 개나 고양이는 그것이 화면 속에 있는 음식인지를 알지 못한 채 그 음식을 집으려고 애를 쓰게 되지요. 그러나 아무리 애를 쓴다고 해도 텔레비전 안에 있는 음식이 개나 고양이의 발에 잡히겠습니까? 처음에는 개나 고양이가 텔레비전 안에 보이는 음식을 집어 보려고 안간힘을 쓰겠지만 나중에는 제풀에 지쳐서 포기하게 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소돔 성의 사람들도 공간이 분리되어진 상황에서 이를 전혀 눈치 채지 못한 채 열심히 롯의 집의 문을 찾으려 했으나 결국은 찾지 못하고 곤비케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해서 위급한 상황을 모면하고 나자 마침내 롯과 그의 가족들의 소돔 성 탈출이 시작되지요.
3.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룻에게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
12절에 "그 사람들이 롯에게 이르되 이 외에 네게 속한 자가 또 있느냐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 내라" 합니다. 이때 두 천사장이 롯에게 속한 자들이 누가 있는지를 몰라서 물은 것이 아니지요. 그럼에도 두 천사장이 이렇게 물은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과 그에게 속한 가족들까지라도 얼마나 긍휼히 여기시며 은혜를 베풀고 계신가를 느낄 수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롯의 입장에서는 비록 두 천사장이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왔다 해도 그들에게 자신에게 속한 가족들까지 다 구원해 달라고 먼저 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지요. 소돔 성이 지금 어떤 상황에 이르렀다는 것을 느끼며 자신이 이런 곳을 선택하여 왔다는 것에 대해 하나님 앞에 너무나 민망한 상황에서 차마 가족과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까지 부탁드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두 천사장을 통해 롯에게 미리 "네 사위나 자녀나 성중에 네게 속한 자들을 다 성 밖으로 이끌어내라" 말씀하심으로 긍휼과 자비 가운데 구원의 폭을 넓혀 주셨던 것이지요.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롯의 가족과 그에 속한 사람들에게까지도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계셨던 것입니다. 롯은 구원받았다 해도 만약 그의 가족들과 그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단 한 번의 돌이킬 기회도 주어지지 않은 채 곧바로 멸망이 임했다면 롯이 얼마나 후회하며 마음 아파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까지 아시기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뿐만 아니라 그에게 속한 자들에게까지도 은혜를 베풀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든 멸하시려는 분이 아니요 어떻게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하여 천국으로 이끄시기를 너무나 원하는 분이시기에 공의에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어떻게든 구원의 선을 넓혀 가셨던 것이지요. 이 한 가지 사실을 놓고 볼 때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에게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4. 롯의 말을 농담으로 여긴 롯의 사위들
13-14절을 보면 "그들에 대하여 부르짖음이 여호와 앞에 크므로 여호와께서 우리로 이곳을 멸하러 보내셨나니 우리가 멸하리라 롯이 나가서 그 딸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 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 곳에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천사장들이 설명할 때에 롯은 그들의 말을 온전히 믿었기에 구원의 길을 따르지요. 그 구원의 길은 바로 천사장들이 제시한 대로 성 밖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이제 소돔 성에는 곧 불의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따라서 그 성에 계속 남아 있으면서 나는 어떻게 구원받겠지 하는 생각은 너무나 어리석은 생각이지요. 이는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이지요.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죄에 대해서는 그 가운데 계속 있게 되면 구원받지 못할 것을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갈 5:19-21에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했습니다.
또한 요일 5:16-17에는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 하여 아예 사망에 이르는 죄도 있음을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롯이 소돔성을 떠났을 때 구원이 있는 것처럼 우리도 죄에서 떠났을 때 구원이 있는 것이며 특히 육체의 일이나 사망에 이르는 죄에는 결코 빠지지 않아야 합니다.
롯은 소돔성을 떠나라는 천사장의 말을 들었을 때 그 말을 믿었기에 가족들에게도 구원의 길을 제시해 줍니다. 나만 구원받으면 되지 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자기 가족과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을 모두 구원에 이르게 하려 했던 것이지요. 가족을 사랑하고 내 주변의 사람들을 사랑한다면 어찌 멸망이 임박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전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결국 롯의 딸들과 아내는 롯의 말을 따랐지만 정혼한 사위들은 농담으로 여겼습니다. 구원의 기회가 주어졌지만 그들 스스로가 기회를 저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들에게는 소돔 성을 떠나야 한다는 말이 귀에 들어오지를 않았고, 죄악으로 물들어 있던 그들의 마음에는 소돔 성의 삶이 너무 좋았으며 그것을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었던 것이지요.
요일 2:15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으로 손을 내밀어 주시며 구원의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하니 세상으로 빠지고 마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사랑이 그 마음 안에 들어올 수 있는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제단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권능의 역사들과 너무나 분명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생명의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 안에 들어올 수가 없지요. 설령 교회는 왔다 갔다 하더라도 마음은 이미 세상에 있으니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도 마음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다 말씀하십니다.
또한 여러분이 주변에 이 제단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역사를 전했을 때 어떤 사람들은 믿고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롯의 사위들처럼 농담이나 거짓말로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구원의 은혜를 베풀고 있음에도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못함으로 인해 그 기회를 스스로가 저버리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전해야 합니다. 딤후 4:2에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말씀하신 것처럼 우리는 오직 오래 참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복음을 전파해야 하지요.
5. 소돔성을 빠져 나오는 롯과 그의 가족들
15-16절에 "동틀 때에 천사가 롯을 재촉하여 가로되 일어나 여기 있는 네 아내와 두 딸을 이끌라 이 성의 죄악 중에 함께 멸망할까 하노라 그러나 롯이 지체하매 그 사람들이 롯의 손과 그 아내의 손과 두 딸의 손을 잡아 인도하여 성 밖에 두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인자를 더하심이었더라" 했지요.
이제 심판이 임박한 시점이 되자 더 이상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여기서 롯이 지체했다는 것은 롯이 끝까지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라도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해 힘쓰고 애썼다는 의미입니다. 롯에게는 가족과 정혼한 사위 이 외에도 집에서 부리던 많은 사람들이 속해 있었는데 롯은 그들에게도 구원의 기회를 주기 원했지만 그들은 소돔 성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떠나지 못했던 것이지요.
마침내 정해진 기한이 다 차고 나니 두 천사장은 급하게 롯과 그의 아내와 두 딸들을 이끌어 성 밖으로 나가게 합니다. 오직 롯의 말을 믿고 따를 준비가 되었던 롯의 아내와 두 딸들만이 롯과 함께 구원을 받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구원이란 자기 스스로의 선택 가운데 얻을 수 있는 것이지 누가 대신 구원해 주거나 강제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물론 모두가 "롯과 같이 성 밖으로 나가겠습니다." 대답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그렇지 못한 분들을 보게 되지요. 그 당시 소돔 성을 떠난다는 것은 그동안 자신이 일구어 놓은 삶의 터전을 모두 포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부와 명예와 권세도 미련없이 놓아야 하는 것이지요. 또한 "나는 롯을 따르겠습니다." 한다 해도 만약 가족이 붙잡거나 함께 따르지 않겠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가족까지도 포기해야 합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지금 당장에는 멸망이 임박했다는 징조가 눈에 보이는 것도 아닙니다. 설령 멸망이 임한다 해도 그동안 모은 재산을 조금이라도 챙길 시간은 있을 것 같아 보이지요. 그런데도 모든 것을 버리고 몸만 빠져 나오라는 것입니다. 이 상황에서 여러분은 과연 어떤 선택을 하시겠는지요? 혹시 롯의 아내처럼 당장에는 성을 빠져 나왔지만 미련을 버리지 못하여 뒤돌아보지는 않으시겠는지요? 결코 그런 분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소돔 성의 멸망에 대해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결 론 /
오늘날 우리는 마치 소돔 성과 같은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신문이나 텔레비전 뉴스에 나오는 소식들을 보면 너무나 끔찍하고 사람으로서는 생각하기 힘든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요. 벧후 2:8에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는 말씀처럼 심령이 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이 세상을 등진 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우리의 사명은 도리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므로 세상 가운데서도 바른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빛을 발하고 맛을 내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의 삶을 사는 동안에도 축복받고 사람들로부터도 인정받는 삶을 살아야 하지요.
그러나 기억해야 할 분명한 사실은 단지 나그네와 같이 스쳐 지나가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언제든지 주님께서 "오라" 부르시면 이 땅의 삶에 조금의 미련도 없이 주님 품에 안길 수가 있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런 사람이라면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오직 주님을 향한 사랑과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하게 되지요. 그리하여 장차 주님께서우리를 데리러 오실 때 앞장서서 주님 품에 안기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8-04-09 오후 7:42:11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