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97)
서 론 / 홍수 심판과 물에 사는 짐승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죄악으로 관영된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 위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홍수를 내리셨습니다. 이로 인해 방주 안에 들어오지 못한 나머지 모든 사람과 짐승들은 죽게 되지요. 그런데 물에 사는 짐승들은 비록 방주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홍수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을 수가 있었습니다. '물에 사는 짐승이니까 홍수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가 있었겠지' 하며 간단하게 생각하실 분이 있을지 모르지만 사실 전 지구를 덮는 대홍수에도 불구하고 물에 사는 짐승들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 이유를 잠시 살펴보지요.
물에 사는 짐승들 다시 말해서 물고기는 크게 두 종류로 나누어집니다. 바로 바닷물에 사는 물고기 즉 해수어(海水魚)와 민물에 사는 물고기 담수어(淡水魚)이지요. 그리고 이 두 종류간에는 서로 다른 물에서는 살 수가 없습니다. 연어와 뱀장어 중에 일부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종류의 물고기가 바닷물에서 민물로 오거나 민물에서 바닷물로 가면 죽게 되지요. 그 이유는 '삼투 현상'이라는 것 때문입니다. 삼투 현상이란 세포 내부와 외부의 염분 농도의 균형을 이루기 위해 물이 빠져나가기도 하고 들어오기도 하는 현상으로서 간단히 말해 세포 내부보다 외부의 염도가 높으면 세포 속의 물이 밖으로 빠져나가게 되고 반대로 세포 내부보다 외부의 염도가 낮으면 물이 세포 속으로 들어오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는 이러한 삼투조절 시스템이 전혀 다르지요. 민물고기는 내부보다 외부의 염분 농도가 낮으므로 물이 세포 속으로 들어오려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방뇨 즉 오줌을 통해 내부로 흡수된 수분을 방출시켜야 합니다. 그러면서 염분은 적극적으로 흡수하게 되지요. 반면에 바닷고기는 내부보다 외부의 염분 농도가 높으므로 세포 속의 물이 밖으로 빠져나가려 하기 때문에 계속해서 많은 양의 물을 공급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바닷고기는 짠물을 많이 삼키면서 대신 방뇨는 조금 하고 과잉되는 염분은 아가미에 있는 특수 세포를 통해 외부로 방출시킵니다.
이렇게 해서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는 각각 체내에 일정한 염분의 농도를 유지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내용이 좀 어려우실 수도 있는데 지식 있는 분들이 좀 들으시고 깨달으시라고 이러한 설명을 드리는 것이니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처럼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는 각각 민물과 바닷물에서 서로 다른 시스템에 의해 적응하며 살아가기 때문에 이 두 종류의 물고기들을 한 물에서 함께 키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요.
그런데 노아의 홍수 때는 바로 이처럼 불가능한 일이 있어났습니다. 각각 바닷물과 민물에서 살던 물고기들이 홍수로 인해 전 지구가 다 물로 덮이게 되자 이제는 바닷물과 민물을 구별할 수 없는 상태에서 함께 살았던 것입니다. 그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라 지면에서 물이 걷히기까지는 삼백여 일이 넘게 지났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요?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일이었지만 실제로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당시 이 땅을 덮은 홍수의 물이 바로 둘째 하늘로부터 내려온 물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물 안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담겨 있었지요. 여러분은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지를 친히 보고 체험하셨기에 잘 아실 것입니다. 바로 "단물 수족관"이 그것을 증명해 주는 분명한 증거 자료가 되고 있지요. 권능이 담긴 물이기 때문에 바닷물고기도 살고, 민물고기도 살고 있습니다.
사실 단물 수족관은 노아의 홍수 때보다도 훨씬 대단한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가 한 물에서 함께 살 수 있다는 것도 기적이지만, 좁은 공간 안에서 적응하며 산다는 것 역시 거의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나마 민물고기는 육지에 가까운 강과 호수에서 살므로 대체로 온도 변화와 환경에 잘 적응하는 경향이 있으나 바닷고기는 넓은 바다에서 수질 환경의 변화가 거의 없는 상태에서 살므로 약간의 환경 변화에도 아주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따라서 바닷고기는 작은 환경 변화에도 쉽게 폐사하는 경향이 있지요. 해수 수질에 있어 물 속에 녹아 있는 염분농도, 산소, 이산화탄소, 암모니아, 아질산, 질산염, 산도(pH), 경도, 기타 미량 원소, 그리고 온도 등이 모두 생존에 요구되는 적정한 상태에 있어야 생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단물 수족관에서는 이러한 바닷고기도 잘 적응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요. 또한 서로 다른 어종이 좁은 공간에 살기 때문에 만약 그 중에 공격성이 있는 어종이 있다면 이 역시 함께 살아가는 데 심각한 방해 요소가 됩니다. 자연환경에서는 민물고기와 바닷고기가 서로 만날 일이 없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공격성이 발동할 이유가 없으나 이 두 종류의 물고기를 함께 섞어 놓게 되면 서로 간에 어떤 공격성이 발동하게 될지 모르는 것입니다. 더욱이 서로 다른 수십 종의 어종들이 각각 먹는 먹이의 종류도 다를 텐데 이를 맞추어 준다는 것도 매우 어렵지요.
지금까지 말씀드린 내용들을 고려해 볼 때 한 수족관 안에서 민물고기와 바닷물고기를 그것도 서로 종류가 다른 수십 종의 물고기를 함께 키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단물 수족관 안에서는 이처럼 지식이나 과학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현실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노아의 홍수가 얼마나 분명한 사실인지를 잘 알 수 있습니다.
본 론 / 홍수 심판 이후의 변화
노아의 홍수는 이 땅의 사람과 짐승을 멸하여 버렸을 뿐만 아니라 지구에도 많은 변화를 초래하게 됩니다. 지형의 변화와 기후의 변화, 생태계의 변화 등 홍수 전과는 많은 것이 달라지게 되지요. 빛이 거두어지면서 생겨난 변화도 있겠지만, 엄청난 홍수로 인한 지구 환경의 변화도 매우 컸습니다.
이러한 홍수의 심판이 있기 오래 전, 이 지구상에는 또 한 번의 심판이 있었지요. 바로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난 공룡들에 대한 불의 심판이었습니다. 하지만 공룡들에 대한 불의 심판과 노아 때에 홍수의 심판과는 상황이 달랐지요. 노아 때에 홍수의 심판은 방주 탄 사람과 짐승들 그리고 물에 사는 생물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두에 대한 심판이었다면, 불의 심판은 공룡만을 멸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는 지구 전체적으로 영계의 문이 열리면서 둘째 하늘로부터 물이 내려온 반면에, 불의 심판은 주로 공룡들이 모여 살던 서식지를 중심으로 내렸지요. 그래서 불의 심판이 지구 전체적으로 퍼져 살던 공룡들을 멸하기 위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공룡을 제외한 나머지 생물들은 큰 해를 입지 않을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홍수에 의한 물의 심판은 방주에 탄 사람과 짐승을 제외한 모든 것이 일시에 멸망당하는 심판이었지요.
지금부터 노아 홍수를 통해 이 땅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지 살펴보겠습니다.
1.하나님의 지킴을 받은 노아의 방주
본문 16절 후반절에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시니라" 하셨습니다. 이 표현에는 다소 강권적이라는 느낌이 담겨 있지요. 그렇다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노아를 강제적으로 방주 안에 넣으셨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전적으로 모든 것을 주관하셔서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방주 안에 들어간 짐승들을 붙드시고 지키셨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강권적인 지키심과 보호하심이 있으셨기에 방주 안에 탄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어떠한 요동함도 없이 지낼 수가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강권하여 붙드시고 지키시면 어떤 상황에서도 평안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비록 연단을 받고 있는 중에라도 축복 가운데 연단해 가시는 것을 볼 수 있지요.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아도 그는 연단 중에라도 항상 축복을 받아 갔습니다. 의식주를 걱정하는 것도 아니구요. 아내를 빼앗기는 시험이 있었지만, 아버지 하나님께서 강권하여 주관해 가시니 오히려 축복으로 갚아졌지요. 요셉도 연단 중에 있었지만 그가 가는 곳에는 축복이 임했고 범사에 형통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창 39:3에 보면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창 39:23에는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했지요.
그렇다면 아브라함이나 요셉은 어떻게 해서 연단 중에도 이처럼 축복을 받아 갈 수가 있었을까요? 반면에 어떤 사람은 연단을 받아도 축복을 전혀 받지 못하면서 어렵게 연단을 받아 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바로 '순종할 마음이 되어 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에서 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정금 같은 믿음으로 나와 천국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참자녀가 되기 위해서는 어차피 연단이 필요합니다. 이때 연단 속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신속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변화되는 사람은 축복 속에 연단을 받게 되지요.
연단은 어차피 필요한 것이기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만 이처럼 연단 중에도 순종하여 행하니 거기에 대해서는 복을 주실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연단을 받으면서, 자신을 발견하여 변화되기보다는 원망하고 불평하며 탄식합니다. 환경과 사람을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를 불평하며, 심지어 교회와 하나님에 대해서까지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입니다. 더 나아가 죄로 인해 시험이 오고 징계가 오면 이때도 회개하고 돌이키는 것이 아니라 변명과 핑계를 대려고 합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이 변화되지 않는 한 연단 중에 결코 축복이 올 수가 없지요. 물론 때에 따라 물질로 연단하시는 동안은 물질의 축복이 오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도 항상 기뻐하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어떤 방법을 통해서든 입히시고 먹이시며 인도해 가시지요. 물질의 연단 동안에는 비록 넉넉한 물질의 축복은 없다 해도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채워 주심으로 결국 형통하게 이끌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연단 중에 어려움을 겪으시는 분이 있다면 '나는 과연 순종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는가?' 스스로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순종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는 사람은 왜 연단이 왔는지를 발견하여 그 원인을 신속히 해결해 나가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원인을 발견하는 것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발견해도 변화되려 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되지요. 따라서 아브라함처럼, 요셉처럼 또한 노아처럼 순종의 사람이 되어 항상 아버지 하나님의 강권하심 속에 지킴받고 축복받아 나가시기 바랍니다.
2. 지구의 급격한 지층 변화
우리가 물 속으로 깊이 들어가면 갈수록 점점 수압이 세어지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물 밖에서처럼 움직이는 것이 쉽지 않지요. 이처럼 홍수를 통해 엄청난 물이 지구를 덮게 되자 이로 인해 지구도 커다란 압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힘은 지구의 지각을 변동시키는 원인이 되었지요. 지구의 구조에 대해 잠깐 말씀드리자면 지구의 내부에는 맨틀이라는 거대한 층이 있으며 이 맨틀 층 위에 지층이 떠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층의 두께가 위치마다 다 다르고 지층을 구성하는 성분도 다르기 때문에 위치에 따라 지층의 안정도가 다르지요. 어떤 곳은 단단하고 안정된 지층이 있는가 하면 어떤 곳은 무르고 불안정한 지층도 있습니다.
이러한 차이 때문에 지층에 힘이 어떻게 가해지느냐에 따라 어떤 곳은 솟아오르기도 하고 어떤 곳은 가라앉을 수도 있지요. 그런데 지구를 다 덮는 홍수로 인해 생긴 엄청난 수압은 지층의 곳곳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상대적으로 낮은 지역에서는 더 많은 물의 압력을 받게 되지요. 또한 원래 불안정한 지층이 있었다면 이런 곳은 더욱 불안정해지게 되는 것이구요. 그러니 홍수로 인해 지구 곳곳이 영향을 받으면서 어떤 곳은 높이 솟아오르는 융기(隆起)가 일어나기도 하고, 어떤 곳은 반대로 가라앉아 내려가는 침강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지질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지층의 변화를 근거로 진화론을 주장하기도 하는데 그들은 노아의 홍수라는 대변혁의 사건을 생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지층의 변화라는 것이 물 속에서 생겨난 것과 물 밖에서 생겨난 것과는 차이가 있지요. 노아의 홍수로 인해 전에는 물에 잠겼던 곳이 홍수가 끝난 후에는 물 밖으로 나오게 되기도 하고 반대로 물 밖에 있던 곳이 물에 잠기게 되기도 했다는 사실 또한 지층의 변화를 연구하는 중요한 열쇠가 될 것입니다.
3. 지층의 안정과 석유의 생성
노아의 홍수에 대해 사람들이 궁금해 할 수 있는 한 가지는 '그 당시 수많은 사람들의 시신과 짐승들의 사체는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지요. 또 하나 생각할 것은 노아 홍수로 인해서 지층이 얼마나 다져졌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튀어나올 것은 튀어나오고, 들어갈 것은 들어가고 하여 그 당시에 엄청나게 지층이 다져지는 역할을 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사람들이 살아가는 주된 근거지는 지금의 중동지역이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인간 경작의 발원지도 지금의 이스라엘 땅이었고 따라서 사람들은 그 주변을 중심으로 퍼져 나갔지요. 결국 이스라엘에서 멀지 않은 이집트를 비롯하여 지금의 중동지역이 사람들의 주된 근거지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 이 지역은 당시로서는 인구 밀집지역이 되었고 여기에 사람들에게 딸린 수많은 가축들까지 고려하면 홍수로 인해 이 지역에서는 엄청난 사체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수많은 사체들이 홍수로 인해 지형의 변화가 생기면서 지층 속에 묻히게 되었지요. 지층이 내려앉기도 하고 솟아오르기도 하면서 이러한 지층들 사이에 사체들이 묻힌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육적으로는 단순히 지층 속에 묻힌 것이지만 영적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민 16:31-33에 보면 출애굽한 백성들 중에 모세를 대적했던 무리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어떻게 저주를 받아 멸망했는지가 잘 나와 있지요. "이 모든 말을 마치는 동시에 그들의 밑의 땅이 갈라지니라 땅이 그 입을 열어 그들과 그 가족과 고라에게 속한 모든 사람과 그 물건을 삼키매 그들과 그 모든 소속이 산 채로 음부에 빠지며 땅이 그 위에 합하니 그들이 총회 중에서 망하니라" 했던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홍수를 통해 사람들을 멸하실 때도 물론 일차적으로는 물에 빠져 죽게 된 것이지만 이때 죽은 사람들의 시신과 짐승들의 사체를 땅을 열어 삼켜 버리게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단순히 지층 변화에 의한 매장이 아니라 영적으로는 음부를 의미하는 땅을 열어 그 속으로 던져 버리셨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오늘날 중동을 중심으로 한 지역에서는 많은 양의 석유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석유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론이 있는데 가장 일반적인 주장은 동물의 사체나 식물이 매장되면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홍수 당시에 지금의 중동지역에는 이 땅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사람에게 속한 수많은 짐승들이 있었으며 울창한 나무와 수풀들이 풍부하게 있었지요. 이것이 바로 오늘날 많은 양의 석유가 그 지역에 나올 수 있는 원인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혹자는 말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 세월이 그렇게 길지도 않은데 수천년 즉, 약 4-5천년 그 세월에 그러면 그것이 언제 썩어 가지고 석유가 됩니까? 석유가 되려면 수많은 세월이 필요한 것인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 사람이 계산할 수 없는 압력과 그 당시의 지열과 이런 것에 융화되어서 그런 것이 썩어지고 부패되는 것들이 더 빠르게, 사람의 계산을 벗어난 이런 역사들이 일어난다는 것이죠.
그러면 이처럼 석유가 난다고 해서 중동 지역을 축복의 땅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당장에는 그것이 축복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이는 결코 축복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그 지역이 얼마나 많은 전쟁과 테러의 온상이 되어 가고 있습니까? 오히려 석유자원으로 인해 외세로부터 많은 침략을 당하고 있고 분쟁과 분리를 겪어야 했지요. 물질적인 당장의 유익을 제외하고는 지금 그 지역은 축복의 땅이 아닌 저주의 땅이 되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창세 이래 이 세상의 되어지는 모든 일은 아버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산이 하나 생겨나고 계곡이 하나 생겨나는 것도 우연히 세월이 지나면서 되어진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법칙 안에서 되어졌지요. 비록 홍수 후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근본 육의 속성에 따른 법칙대로 운행하게 하셨지만 이 역시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에 의한 것이었습니다.
렘 33:2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인간 경작을 시작하시면서 계획하셨던 대로 한 치의 오차 없이 이루고 계시지요. 저절로 우연히 되는 것은 없으며 모든 일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하신 섭리가 담겨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 섭리를 잘 깨우쳐 순종하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도 크게 쓰임받을 수 있지요. 지금은 바로 영의 물결을 잘 타는 사람이 하나님의 섭리를 깨우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왜 금년도 기도제목에 준비된 그릇을 주셨는지? 그 이유가 점차 드러나고 있는데 내년이 되면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입니다. 육과 영을 나누신다 말씀하신 올해에 준비된 그릇으로 나와진 사람은 마지막 때의 성령의 사역에 함께 동참할 수가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은 이제 쓰임받을 수가 없습니다. 제 편에서야 어떻게 육과 영을 나누겠으며 또 영으로 준비된 사람만을 쓰겠습니까?
그러나 이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직접 주관해 나가고 계십니다. 육은 결국 쓰임받을 수가 없기에 하나님 편에서 친히 육과 영을 나누시고 영으로 준비된 사람들을 사용해 가시는 것이지요. 그렇다고 영으로 준비되지 못한 사람들은 버리신다는 의미는 결코 아닙니다. 하지만 정녕 성령의 도구로써 귀하게 쓰임받으며 인간 경작의 마무리를 멋있게 장식한 후에 새예루살렘에 당당히 들어가기 위해서는 이제 영으로 준비되지 않고서는 안 됩니다. 입술로는 아무리 새예루살렘을 외쳐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나누실 때에 영의 편에 서지 못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새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 영의 급물살을 타는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의 결과를 잘 아시고 또 제가 여러분에게 이처럼 거듭거듭 당부하고 당부하는 애타는 마음을 느끼셔서 이제 머지 않은 장래에 혹여라도 그때 가서 후회하는 분들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본 제단을 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은 지금도 이루어져 가고 있고 결국 준비된 사람들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알아 영의 급속한 변화의 물살에 동참하시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5-04-30 오후 1:16:27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