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96)
서 론 / 하나님의 섭리와 노아의 순종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아의 방주는 크게 세 개의 층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 각각의 층에 어떤 동물들을 넣어야 하고 또 같은 층에서도 각각의 동물들에게 공간을 어떻게 할당해 주어야 하는지가 이미 처음에 방주를 지으면서부터 고려되었습니다. 집 하나를 지어도 겉모양만 설계해서 짓는 것이 아니라 내부 구조와 공간 활용까지 고려해서 설계하듯이 노아의 방주도 그 용도에 맞게 내부 구조와 공간 배치가 처음부터 정해졌던 것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합쳐서 겨우 여덟 명인데 일 년이 넘게 그 많은 짐승들을 돌봐야 했기에 방주는 가장 효율적이고 실용적인 구조와 공간 배치가 필요했지요. 아무리 구조와 공간 배치를 잘한다 해도 여덟 사람만으로 짐승들에게 먹이와 음료를 주고 배설물까지 치우면서 생활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와 그의 식구들은 방주 안에서도 너무나 바쁜 시간들을 보내야 했지요.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자신들에게 주어진 일에 대해 싫증을 느낀다거나 "힘들다"고 불평하는 일 등은 전혀 없었습니다. 자신들이 구원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감사하며 주어진 사명을 기쁨으로 감당해 나갔지요. 무료하고 따분해하며 방주에서 나갈 날만을 기다린 것이 아니라 비록 방주 안이라 해도 자신이 있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주변의 상황과 환경이 어려워지게 되면 이내 힘을 잃고 낙망하여 포기해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려운 상황일수록 더욱 성실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이 흐트러지고 마는 것이지요. 그러나 믿음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면 시 23:4에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하는 고백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성실함과 열심을 잃어서도 안 되지요.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은 비록 형제들에 의해 비참하게 종으로 팔려가야 했고 또다시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야 했지만 절대 낙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고 항상 자신이 있는 곳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성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종으로 있을 때에도 '나는 종이니까 시키는 일만 하면 되지' 하지 않았고, 깊은 감옥에 갇혔을 때도 '희망이 없으니 되는 대로 살자' 하지 않았지요. 남의 집에 종으로 있을 때나 감옥에 갇혀 있을 때나 그는 윗사람으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을 만큼 항상 성실하고 바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러했기에 이런 요셉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주변 사람들이 한결같이 요셉과 늘 함께하시는 하나님, 요셉을 형통케 하시고 그가 있는 곳에 복 주시는 하나님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도 사람 앞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은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도 자신의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하며 성실로써 식물을 삼아 가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노아와 그의 가족들 역시 방주 안에서 생활하는 동안 육적으로는 그 상황들이 힘들 수도 있었으나 항상 감사와 기쁨 가운데 성실하게 자신들의 사명을 감당해 나갔던 것이구요. 더욱이 이들에게는 장차 홍수가 끝나면 자신들에게 펼쳐질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있었기에 더욱 감사함 가운데 살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시작하시면서 장차 때가 되면 노아와 그의 식구들만을 구원하시겠다고 처음부터 정해 놓으신 것이 아닙니다. 물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앞으로의 모든 일을 다 아시고 섭리해 가셨지만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에 노아가 순종했고 그의 가족들 역시 노아의 말을 믿고 순종해 주었기에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도구로 쓰임받을 수가 있었지요.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하시고 도구로 쓰시려 해도 만약 그들이 순종하지 않았다면 대신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선택되었을 것입니다.
본 제단을 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는 것 또한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본 제단을 세계를 이루며 대성전을 이루는 제단으로서 섭리하셨고 저와 여러분을 도구로 사용해 가고 계십니다. 그런데 꼭 어떤 특정한 사람만이 선택받아 도구로 쓰이는 것이 아니지요. 본 제단을 향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그 안에 순종되어 나오는 사람들이 쓰임받게 됩니다. 아무리 사람 편에서 보기에는 '저 사람은 우리 교회에 꼭 있어야 하는 사람이야' '저 사람은 앞으로 큰 일을 할 사람이야' 생각했던 사람이라 해도 본인 스스로가 순종해 나오지 않으면 쓰임받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때로는 쓰임 받다가도 스스로 사명을 저버리고 떠나기도 하는 것이구요. 그러나 이런 경우 하나님께서는 그를 대신하여 순종할 수 있는 누군가를 세우심으로 하나님의 섭리를 변함없이 이루어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테두리 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누구나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을 수가 있는 것이며 반대로 테두리 안에 있다가도 벗어나는 사람은 쓰임 받다가도 버림받을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귀한 도구로 쓰임받기 원하시는 분들은 신속히 하나님 보시기에 준비된 그릇으로 자신을 만들어 가시기 바랍니다. 그런 그릇은 설령 진흙 속에 묻혀 있어 사람들이 알아보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찾아내어 사용하십니다. 결국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 받느냐 못 받느냐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 의지 가운데 각자가 얼마나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행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본 론 / 홍수 심판의 과정
1.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오늘 본문 10절부터 살펴보면 "칠일 후에 홍수가 땅에 덮이니" 했는데 여기서 "칠일 후"라는 말에는 노아와 그의 자손들을 통해 새롭게 인간 경작을 이루어 가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또 "땅"이라는 말은 어둠을 의미하며 홍수 즉 물은 말씀을 의미하지요. 따라서 "홍수가 땅에 덮인다"는 말에는 어둠의 세력으로 인해 물든 이 땅을 하나님의 말씀인 물로 심판하여 새롭게 평정하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에는 어둠의 세력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변질시키고 그 마음 가운데 어둠을 심어 줌으로 악에 물들게 하여 이 땅에 자신들의 세계를 구축하려 하였으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물로 이 땅을 심판하시고 당대에 의인인 노아와 그의 후손을 통해 인간 경작을 새롭게 이어가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지요.
2.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이어지는 11절 전반절에 "노아 육백 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 일이라" 했는데 그렇다면 노아는 대략 언제쯤 홍수가 오게 될지를 알고 있었을까요? 노아가 비록 정확한 때는 몰랐다 해도 어느 즈음에 홍수가 온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 인간의 타락을 바라보며 한탄하고 있던 노아는 오백 세가 된 연후에 비로소 아들들을 낳았지요. 노아가 이렇게 늦게 오백 세에 아들을 낳은 것은 원래 아들들을 낳으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섭리와 뜻을 알았기 때문에 오백 세가 되어서 비로소 아들들을 낳았던 것이죠. 바로 홍수를 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홍수의 심판 후에 새롭게 인간 경작을 시작해야 할 것과 홍수를 대비한 방주를 짓기 위해서는 자신을 도와줄 자녀들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노아로 하여금 단 시간에 홍수를 대비케 하신 것이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말씀해 주시고 준비토록 하셨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노아 역시 그 오랜 세월 동안 믿음으로 순종했던 것이구요.
성도 여러분, 마지막 때를 준비하는 것도 노아의 홍수 때와 마찬가지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를 준비함에 있어서 이미 오래 전부터 계획하시고 섭리해 오셨지요. 마지막 때 많은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어떤 제단과 어떤 목자가 있어야 할 것과 또 어떠한 권능의 역사가 필요할지를 아시기에 오래 전부터 이를 준비해 오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에게는 대략 어느 즈음에 홍수가 있을 것을 알려 주시고 대비케 하셨던 것처럼 마지막 때 역시 그날과 시는 모른다 해도 그때가 어느 즈음이라는 것은 알려 주시고 신부단장을 하도록 하시는 것이지요.또한 마지막 때에 수많은 영혼들을 구원할 구원의 방주인 대성전을 짓도록 역사해 가고 계십니다. 주님 오실 날을 당장 눈앞에 두고 신부단장을 하며 대성전을 지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미리 오래 전부터 준비토록 하시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주님께서 오시기 일 년 전에 그 사실을 알았다고 해서 단 일 년 만에 신부단장을 할 수 있을까요? 물론 그동안 꾸준히 신부단장을 해 온 분이라면 일 년이라는 시간 동안 할 수도 있겠지만, 그전까지는 대충대충 하던 사람이 막상 닥쳐서 갑자기 잘하려고 한다고 해서 그렇게 급하게 신부단장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성전을 짓는 것도 주님 오실 때가 임박해서 그제야 준비하면 될까요? 실질적인 성전의 공사는 설령 주님 오실 때가 가까와서 한다 해도 대성전을 짓기 위한 영적인 준비는 훨씬 전부터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수한 기도를 쌓아 준비해야 하고 대성전을 짓는 성도들부터가 먼저 마음 안에 거룩한 성전을 지어야 하구요.
그렇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부터 본 제단을 향한 섭리와 계획에 따라 저와 여러분을 정확하게 인도해 오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따라서 왜 이렇게 더딘가 조급해할 것도 없고, 다만 순간순간 우리를 이끌어 가시는 만민호의 선장 되신 아버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해 나가면 되지요. 노아가 오직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오랜 세월 동안 방주를 준비했던 것처럼 우리도 오직 믿음으로 행군하며 주님 맞을 준비를 해 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정확하게 섭리하신 바를 드러내시고 그 뜻을 반드시 이루어 가십니다. 그렇지 못하고 혹여 중도에 믿음의 행군을 멈추거나 준비를 게을리 하다가는 준비된 신부로서 주님을 맞지 못할 수도 있지요.
그러므로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변함없이 순종의 행함으로 믿음의 행군을 했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대로 정확하게 노아의 나이 육백 세에 닥쳐 온 홍수의 심판을 대비할 수 있었다는 사실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3.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11절 후반절에 "그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말씀합니다. 이 말씀에 대해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이 지구 안에서 일어난 일로 해석하지요. 바다의 깊은 곳에서 샘이 터지고 하늘에서는 엄청난 양의 비가 내렸다고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상식적으로 생각해 봐도 지구의 가장 높은 산까지도 다 덮을 만큼의 양의 물이 바다의 샘이 터지고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고 해서 생겨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설령 그렇다 해도 홍수가 그친 후에는 그 많은 양의 물이 어디로 사라졌겠습니까? 다시 그러면 지구 속으로 스며들었나요? 그 많은 양이 다 지구 속으로 들어가고 또 증발하고 해서 다 그렇게 했나요?
그러므로 이 말씀은 육의 세계 안에서 해답을 찾으려 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영의 세계인 에덴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지요. 여기서 잠깐 예전의 말씀을 복습해 보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지구가 속한 것은 첫째 하늘이고 에덴 동산이 있는 둘째 하늘과 천국이 있는 셋째 하늘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둘째 하늘은 크게 둘로 나누어져 있지요. 바로 에덴이라는 빛의 공간과 어둠의 세력들이 공중 권세잡고 있는 어둠의 공간입니다.
에덴 동산은 바로 이 중에서 빛의 공간인 에덴 안에 만들어진 곳이지요. 물론 동산이라 해서 정말 작은 동산이 아니라 그 크기는 이루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큽니다. 따라서 에덴이라는 공간 안에는 에덴 동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밖에도 무한한 공간이 펼쳐져 있지요. 전에 바로 이 에덴에도 강이 있어서 이곳으로부터 시작된 물의 흐름이 에덴과 에덴 동산을 두루 돌고 있으며 이 땅의 강을 이루는 기원(基源)이 되었다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땅의 이름을 짓기 이전에 이미 성경 창세기에는 유브라데 하면서 쭉 나오지요. 그것이 이 땅에 있는 지금의 현존하는 유브라데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에덴 동산에서부터 시작되어 강 줄기가 나와서 지상으로 통하는 그곳이에요. 그래서 후세에 그 이름이 붙여진 것이지요.
노아의 홍수 때 바로 이곳 에덴에 있던 물들이 동원되었는데 "큰 깊음의 샘들이 터졌다"는 것은 에덴에 있던 샘들이 터진 것을 말하며 "하늘의 창들이 열렸다"는 것은 곧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 사이의 통로가 열렸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둘째 하늘의 에덴에 있던 물들이 이 통로를 통해 첫째 하늘에 있는 이 땅으로 내려오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창들이라 하신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어느 한 곳의 통로만 열린 것이 아니라 지구 곳곳으로 통하는 창들이 열리면서 엄청난 양의 물들이 영계의 하늘로부터 이 땅으로 쏟아져 내릴 수가 있었지요.
그렇다면 어떻게 영의 세계에 있던 물이 육의 세계인 이 땅으로 쏟아져 내릴 수가 있는 것일까요? 또 출애굽 당시에는 둘째 하늘에서 내려오는 만나를 양식으로 먹을 수가 있었고 엘리야 선지자 당시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온 것이나, 오늘날도 우리 성도님들이 둘째 하늘에서 나오는 구름을 보는 모든 것들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여기에는 네 생물이 관여하게 됩니다. 아무것도 없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은 하나님께 속한 역사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제2 하늘에 있는 것을 제1 하늘로 끌어내리게 하실 때는 네 생물을 통해 역사하시지요. 이는 서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게 될 때 공간의 흐름을 탈 수 있는 권한이 바로 네 생물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제1 하늘과 제2 하늘을 마치 이층 건물의 위층과 아래층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되지요. 위층과 아래층이라면 단순히 위층 바닥과 아래층 천장에 구멍을 뚫어서 위층에 있는 것을 아래층으로 내려오게 할 수 있지만 둘째 하늘과 첫째 하늘은 서로 다른 차원의 공간이기에 둘째 하늘에 있는 것이 첫째 하늘로 내려오려면 다른 차원 사이의 공간의 흐름을 타야 합니다. 그것을 네 생물 중에 하나가 할 수 있다는 말이지요.
그렇다면 네 생물 중에 어떤 생물이 이러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전에 네 생물에 대해 설명을 드리면서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사이의 영계의 문을 여는 권세를 가진 생물이 바로 독수리 생물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 때도 둘째 하늘인 에덴의 깊은 샘들이 터지고 그곳에서 흘러나온 물들이 이 지구를 덮기 위해서는 네 생물 중에 독수리 생물이 관여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다른 생물들은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다만 영계의 문을 열고 공간의 흐름을 타도록 하는 주된 권세를 가진 것이 독수리 생물이라는 말이지요.
4.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그런데 12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지구를 덮기 위해 사십 주야를 비가 내리게 하십니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했지요. 하늘의 창들을 열고 둘째 하늘에 있던 물들을 이 땅으로 쏟아 붓는 것이라면 더 짧은 시간 동안에도 얼마든지 하실 수 있을 텐데 하나님께서는 왜 사십 일 동안이나 비를 내리게 하신 것일까요?
여기에는 바로 "사십"이라는 숫자에 의미가 있습니다. 태초에 지구를 창조하시기 전 영계에서는 루시퍼에 의한 커다란 반란 사건이 있었지요. 아버지 하나님 편에서 그처럼 사랑을 주었던 루시퍼의 반란으로 인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깊은 마음의 고통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곤고하시고 공허하셨으며 영계는 잠시나마 혼돈스러운 상황을 겪어야 했지요. 영계에서 이렇게 지나간 시간을 이 육의 세계의 시간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사십이라는 숫자입니다. 루시퍼의 반란 이후 영계에서도 꼭 사십 일 동안 혼돈스럽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계에서의 그 시간에 해당하는 수를 이 땅에서의 수의 개념으로 표현했을 때 그것이 "사십"이 된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이러한 의미가 담긴 사십이라는 수에 맞추어 비도 사십 일 동안 내리게 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이 땅에 40일 동안 비가 내린 데에는 마치 루시퍼의 반란 때에 마음 아프셨던 것과 같이 이 땅에 홍수의 심판을 내리실 수밖에 없으셨던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의 고통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참자녀를 얻고자 시작하신 경작이었는데 이처럼 모든 사람을 물로 심판하시고 새롭게 인간 경작을 시작하셔야 하는 안타깝고 애타며 마음 아프신 심정이 그대로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단 하루 만에도 이 지구를 물로 덮어 버리실 수 있으셨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시간을 두고 덮으신 것은 이 지구에 있는 홍수 이전의 흔적들을 보존케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하루 또는 단 며칠 동안 일시에 엄청난 양의 물을 쏟아 부으셨다면 이 지구에 남아 있던 문명의 흔적들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전에도 말씀드린 대로 노아의 홍수는 마치 컵에 물을 붓는 것처럼 물이 차곡차곡 쌓여 올라갔기에, 홍수 이전의 여러 가지 문명의 흔적들이 지금도 남아 있을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지금도 남아 있는 피라미드나 고대 문명의 자취들을 통해 후세의 사람들로 하여금 에덴 동산과 영의 세계에 대한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이구요. 이처럼 노아의 홍수에는 많은 의미들이 담겨 있지요.
다음 시간부터는 홍수와 관련된 구체적인 사건들이 설명되어지겠습니다.
결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우리는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가진 천국 백성이 됩니다. 몸은 비록 이 육의 세상에 살고 있지만 엄연히 영에 속한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영에 속한 사람이 되었으면 당연히 영의 세계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주시고 하늘나라의 시민권을 주셨어도 영의 세계에 대해 알지 못하면 주어진 권세와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비유를 들어 누군가 여러분에게 아주 비싼 골프 회원권을 선물했는데 만약 골프를 전혀 못 치는 분이라면 그 회원권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하지만 골프에 대해 잘 알고 잘 치는 분이라면 그 골프 회원권이 매우 유용하게 쓰일 수 있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저와 여러분은 영의 세계에 대해 밝히 알아서 우리에게 주어진 권세를 마음껏 활용해야 합니다. 그럴 때 어둠의 권세를 물리칠 수 있고 하늘의 신령한 것들을 끌어내릴 수도 있지요. 그래서 축복과 응답을 받는 것은 물론이고 영적인 능력과 권세로써 수많은 영혼을 구원하며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창세기 강해를 통해 여러분은 이러한 영의 세계에 대해 많은 것을 배워 나가고 계십니다. 물론 영의 세계에 대한 것들 중에는 여러분이 영으로, 온 영으로 들어와야 이해할 수 있고 또 활용할 수 있는 내용들이 많지요. 그러나 여러분은 모두가 영적 장수를 소망하며 달려가는 분들로서 이러한 영의 지식들을 하나하나 양식 삼아 나가심으로 때가 이르면 그것들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도 들으신 말씀이 능력이 되고 믿음이 되셔서 신속히 영의 세계와 밝히 교통하며 육의 세계를 지배하고 다스려 나갈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5-04-30 오후 1:16:27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