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95)
서 론 / 부흥성회를 마친 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은혜와 감동과 성령의 불같은 역사로 충만했던 2주 연속 특별 부흥성회가 마쳐졌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매년 부흥성회를 마치고 나면 아무리 성령의 역사가 강하게 나타났다 할지라도 제 마음에 항상 아쉬움이 남곤 하지요. '저분이 조금만 더 믿음과 정성을 내보였더라면…' '저분이 정말 중심에서 회개했더라면…' '저분이 처음부터 참석만 했더라면…' 이렇게 안타까운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흥성회가 마쳐졌다고 해서 모든 응답의 기회도 다 지나간 것은 아니지요. 아직 하나님 보시기에는 부족한 것이 있어서 부흥성회 기간 동안에 응답받지 못했다해도 지금부터 그 부족한 것을 채워나가면 되는 것입니다. 또 본인 편에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는데도 아직 응답이 없다면 '내가 최선을 다한다 했지만 아직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를 스스로 돌아볼 때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은혜 가운데 깨우침을 주실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부흥성회 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해 설교를 하면서 응답받기 위한 첫 번째 조건으로 강조한 것이 바로 "끝까지 변함없는 믿음을 내보여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의심하거나 두 마음을 품어서는 안되며 중도에 포기해서도 안 된다 했습니다. 설령 자신은 응답받지 못했다해도 여러분은 성회 기간 내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치료받고 응답받아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을 보셨습니까? 눈에 보이는 질병이나 연약함만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질병을 비롯하여 수많은 문제들이 해결되고 마음의 소원에 응답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결코 의심하거나 마음이 변개해서는 안되며 끝까지 믿음을 내보일 때라야 정녕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지요. '당장 응답이 없다'고 떠나거나 하나님의 역사를 의심했다면 이것이 벌써 응답받을 만한 믿음이 없었다는 증거입니다.
어떤 분들은 치료받기는 했는데 100% 온전해지지는 않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분들은 그것이 축복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치료해주신 궁극적인 목적은 이를 통해 여러분이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잘해서 천국에 들어오는 것이지요. 그런데 만약 치료는 받았지만 얼마 있다가 다시금 세상으로 빠져서 하나님을 떠나고 결국 지옥에 가게 된다면 당장 치료받은 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아직 100% 온전해지지 않은 분들은 정녕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믿음이 성장할수록 치료도 100% 온전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응답받기 위해서는 "마음 중심의 회개가 있어야 한다" 했는데 아직 응답받지 못한 분들은 여러분의 회개가 진정 마음 중심에서 나오는 회개였는지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누가복음 7장에 보면, 진정한 회개란 어떤 것인지가 잘 나와 있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한 여인은 자신이 얼마나 죄인이었는지를 깨닫고 예수님 앞에 회개하기 위해 나옵니다. 향유를 담은 옥합을 가지고 나와 예수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었던 것이지요. 당시에 향유는 아주 귀하고 값비싼 것으로서 이 여인은 자신의 모든 소유와도 같은 향유를 가지고 예수님 앞에 나왔을 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여인으로서 감히 할 수 없었던 가장 겸비한 자세로써 예수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죄를 눈물로 회개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마음 중심의 회개와 그에 합당한 회개의 열매를 행함으로 내보였기에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 여인과 비교해 볼 때 과연 얼마나 마음 중심의 회개와 함께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행함으로 내보이셨습니까?
마지막으로, 응답받기 위해서는 심은 대로 거두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야 함을 말씀드렸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세상에서도 질병 하나를 치료받으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물질을 투자해야 합니까? 병원에 가서 몇 날 몇 일을 기다려야 한다해도 만약 100% 치료받는다는 확신만 있다면 그 시간이 결코 길다 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아무리 많은 돈을 들여야 한다해도 100% 치료받는다는 확신만 있다면 빚을 내서라도 병원비를 내려 할 것이며 돈이 없어서 치료하지 못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설령 살아날 가능성이 몇 %만 있다해도 수백, 수천만 원씩 들여서 수술을 하지 않습니까? 더욱이 "수술을 해도 몇 년 밖에 못삽니다" 해도 말입니다. 몇 년 살려고 몇 천만원 들여서 수술을 한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나와서 치료받고자 할 때는 하루나 이틀 성회에 참석하고는 "하나님, 저 치료해 주세요" 합니다. 조금의 정성도 내보이지 않거나 또는 인색함이나 억지로 예물을 드리면서 크고 중한 질병이나 문제를 응답받고자 하는 사람도 있지요. 여러분이 질병을 치료받는 것도 문제를 해결받는 것도 모두가 믿음으로 되는 것인데 믿음에는 반드시 정성이 담긴 행함이 따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 정성과 행함을 보시고 그 사람의 믿음을 인정해 주시므로 치료하시고 응답하시는 것이지요.
더욱이 믿음이 있는 분들 중에 아직 치료받지 못했거나 응답받지 못한 분들이라면 자신의 정성과 행함을 한 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그만큼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했고 믿음이 있는 분이라면 초신자나 새신자와 똑같이 해서는 응답받을 수 없습니다. 더 큰 믿음의 행함과 정성이 필요한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측정하시는 응답의 저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오래 해서 진리에 대해 더 많이 알고 믿음도 있는 분들이 초신자나 새신자가 하는 정도로 하면서 응답을 받으려 한다면 이는 공의에 맞지 않지요. 여러분은 응답받기 위해 더 많이 기도와 금식으로 준비했어야 하고 더 정성을 내보였어야 합니다. 따라서 '초신자나 새신자들은 나하고 똑같은 질병을 저렇게 쉽게 치료받는데 나는 왜 응답받지 못하는가?' 생각할 것이 아니라, 과연 내 믿음의 분량에 맞게 준비했는가' 다시 한 번 돌아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까지 부흥성회를 인도해 오면서 해가 가면 갈수록 더 큰 믿음과 정성을 내보여 왔습니다. 부흥성회가 다 되어서 급하게 준비하지도 않았고, 현실이 어렵다고 해서 하나님 앞에 인색해 본 적도 없지요. 더욱이 육적으로 보면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고 응답받아야 할 것도 없으며 또한 강사로 서지만 항상 믿음과 정성을 내보였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해가 갈수록 더 큰 권능의 역사들로 보장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우리 성도님들 중에 특별히 어떤 문제를 응답받아야 하는 것이 없다해도 이런 부흥성회가 영으로 변화될 수 있는 얼마나 절호의 기회입니까? 그런데도 아무런 준비없이 성회에만 참석했다면 과연 나는 얼마나 영을 사모하고 있고 얼마나 새예루살렘의 소망으로 뜨거운지를 한번쯤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변함없는 믿음과 정성된 행함 없이는 신앙의 성장도 더딜 수밖에 없으며 결코 영으로 들어올 수도 없다는 사실을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부흥성회를 마쳤으면 그 전과 비교해서 당연히 영육간에 확실한 변화가 나타나야 하며 축복도 임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이 귀한 시간을 내서 두 주간에 걸쳐 매년 부흥성회를 여는 것이구요.
이 말씀들을 그냥 흘려 버리지 마시고 정말 변화되기 원하고 치료받기 원하며 응답받기 원하시는 분들은 정녕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릴 수 있는 믿음의 행함과 정성을 아버지 하나님 앞에 내보이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오늘 당장이라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응답으로 역사해 주실 것이며 여러분의 영혼은 날로 잘되어 가는 축복을 받아나가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교회의 금요철야에서는 창세기를 강해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창세기 강해 아흔다섯 번째 시간으로서 노아의 홍수에 대해 계속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본 론 / 노아 방주 안에서의 생활
1. 홍수가 땅에 있을 때에 노아가 육백세라
홍수가 시작되기 칠일 전에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선택받은 짐승들은 방주 안으로 들어갑니다. 이렇게 땅에 홍수가 있을 때에 노아의 나이가 육백 세였는데 우리는 이를 통해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얼마나 정확한 계획 가운데 이루어지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들을 이루심에 있어서 '대충 언제쯤…'이 아니라, 정확한 시점을 택하시고 그 때에 맞추어 모든 것을 역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저 개인적으로도 또 교회적으로 보아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햇수나 날짜까지도 정확하게 맞추어 역사하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금년은 저 개인적으로 의미가 있는 해인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때에 맞추어 창조의 근본된 소리도 본격적으로 발해나가도록 역사하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또 여러분이 금번 성회를 통해 보셔서 알겠지만 세계 곳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저와 제단을 돕기 위해 드러나고 있습니까? 장차 마지막 때가 되면 이렇게 될 것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미 오래 전에 말씀해 주셨지만 이처럼 때가 되어지니 눈에 본 바요, 손에 만진 바가 되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실하시며 말씀하신 바를 반드시 성취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끝까지 믿고 순종할 때 그분의 깊고 오묘한 섭리를 하나 하나 깨달아 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정확하게 역사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보면서 저와 여러분이 또 한 가지 깨달아야 할 것은 정녕 이제는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신부단장 하십시오" 그처럼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것은 모든 것의 때를 알기 때문입니다. 계 22:10-11에 보면,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는 곧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깝게 되면 더 이상의 기회를 잡고 싶어도 그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음을 말씀하고 있지요.
설령 기회를 준다해도 불의를 하던 자가 돌이켜 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가 돌이켜 깨끗게 되는 것이 쉽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때 가서 "저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는데요" 아무리 애타게 간구한다 해도 이미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은 한치의 오차 없이 진행되고 있기 때문에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역시 때가 되면 정확하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뒤로 미룰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앞으로 당길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정확하게 성취되어 가고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속에서 영의 물결을 잘 타고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노아의 말에 순종하여 행했던 그의 가족들이 함께 방주에 들어갈 수 있었듯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오는 분들마다 새예루살렘성의 진주 문을 당당히 통과하실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삼층으로 된 방주 안에서의 생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방주 안에 들어온 노아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수많은 짐승들은 이제 앞으로 일년이 넘게 지속될 방주 안에서의 생활을 시작하게 됩니다. 전에 설명을 드린 대로 노아의 방주가 보통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크고 안정된 것이었지만 그래도 한정된 공간 안에서 그 많은 짐승들을 돌보며 산다는 것이 노아와 그의 가족들에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지요. 노아를 비롯한 여덟 사람이 방주 안에 각각의 짐승들을 위한 공간은 어떻게 배치를 해야 했으며, 그 많은 짐승들의 먹이는 어떻게 주고, 또 짐승들의 배설물은 어떻게 처리를 했는지 등 사람의 생각과 지식을 동원하면 궁금한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그 궁금증을 하나하나 설명해 나가도록 하지요.
먼저, 하나님께서는 방주 안의 한정된 공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각각의 짐승들에게 할당될 공간을 배치하셨습니다. 창 6:16에 기록된 대로 노아의 방주는 상중하 삼 층으로 되어 있었는데 먼저 짐승들 중에 무게가 나가는 것들, 예를 들면 코끼리나 하마와 같은 동물이 되겠지요. 이처럼 무게가 나가는 동물들을 가장 아래층에 두도록 하셨습니다. 이는 방주의 전체적인 안정성을 위해서도 당연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홍수로 인해 방주가 심하게 흔들린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아래쪽이 무거워야 방주가 더 안정적으로 균형을 잡을 수 있지요.이렇게 짐승들 중에 무게가 나가는 것을 우선으로 방주의 아래층에서부터 채워나가게 하셨고 방주의 가장 윗층은 새들과 땅에 기는 것들 그리고 노아의 여덟 식구를 위한 공간으로 주셨습니다. '아휴, 노아와 그의 식구들은 어떻게 새들과 땅에 기는 것들과 함께 살 수 있었을까' 생각할 분이 있을지 모르나 비록 같은 층에 산다고는 하지만 짐승들과 사람이 사는 공간은 엄연히 구분되어 있어서 노아와 그의 식구들이 사는데 전혀 방해가 되지 않았지요.
많은 짐승들이 방주 안의 삶에 있어서 만약 그 짐승들이 밖에서 살 때처럼 이리 저리 움직이고 활동을 했다면 세상 말로 방주 안은 금새 북새통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빛으로 둘려 있는 방주 안에서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짐승들이 자신들에게 할당된 공간 안에서만 조금씩 움직일 뿐이었지요. 그러니 질서가 유지될 수 있었고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며 생활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많은 동물들의 먹을 식물과 음료는 어떻게 하였을까요? 그 분량만 해도 어마어마했을 텐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식물과 음료를 저장할 공간을 각 층마다 따로 두게 하셨습니다. 만약 제일 밑에 층이나 제일 위층에 이 공간을 두었다면 식물과 음료를 줄 때마다 층층을 오르락내리락 하느라 매우 힘이 들었겠지요. 그러나 각 층에 거하는 짐승들이 먹을 식물과 음료는 그 층의 가장 오른편 끝에 공간을 마련하여 두므로 가장 효율적인 관리가 되도록 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방주 안의 상황으로는 짐승들에게 배불리 먹일 식물과 음료를 넉넉히 준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모두에게는 하루에 단 한 번의 식사와 물이 제공되었습니다. 그것도 넉넉한 양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짐승들이 허기를 느낀다거나 그로 인해 날카로워지고 다투는 일들은 없었지요. 바로 방주 안은 하나님의 능력이 담긴 빛으로 둘려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루 한번만 식사와 물을 준다해도 노아와 그의 식구들로서는 이 일이 결코 만만치는 않았지요. 그런데 식물과 음료를 관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과연 그 많은 짐승들의 배설물을 어떻게 처리할까' 하는 문제입니다. 사실 이것은 큰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리 하루에 한 끼만 식사를 한다해도 그 많은 짐승들이 쏟아내는 배설물이 결코 만만치 않은 양이지 않겠습니까? 방주 안에는 이러한 문제를 처리하기 위한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일일이 사람이 짐승의 우리를 찾아다니며 우리 안의 이곳 저곳에 쌓여 있는 배설물을 치워야 한다면 이 또한 얼마나 큰 일이겠습니까? 그래서 각각의 짐승의 우리 안에는 배설물이 한 곳으로 모아질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고 이곳에 모인 배설물만 모아다 버리면 되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방주 생활 내내 짐승들의 먹이를 챙겨주고 그들의 배설물을 치우는 데에만도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매우 바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그러니 심심할 틈도 없었을 것이고 다른 생각을 할 여유도 없었지요. 그런데 노아와 그의 가족들은 이렇게 짐승들을 돌보느라 육적으로는 고되고 힘들며 바쁜 시간을 보냈지만 그 일들을 싫어한다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방주 안에 탈 수 있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심히 감사하며 살아갔지요. 자신들의 해야할 일을 억지로 한 것도 아니었고 대충 대충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찌 보면 너무나 궂은 일들이었지만 그들은 방주 생활 내내 오직 감사와 기쁨으로 주어진 일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많은 분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주님을 영접하여 성령을 받게 되면 구원받은 기쁨과 감사로 인해 충만하게 신앙생활 해 나가는 것을 봅니다. 열심히 봉사할 것을 찾아서 하기도 하고, 각종 예배와 모임과 기도회에 빠짐없이 참여하며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열심히 섬기게 되지요. 더운 여름날 식당 봉사를 해도 입에는 찬양이 흘러나오며, 추운 겨울날 교통 봉사를 해도 얼굴에는 기쁨과 미소가 가득합니다. 성전의 화장실 청소를 하는 것만도 오히려 감사하며 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세월이 지나고 믿음이 성장하게 되면 이러한 열심이 더해져야 할 것같은데 그렇지 못한 경우들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명이 많아지고 머리가 되어지다 보면 예전처럼 봉사하거나 몸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줄어들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마음이지요. 자신에게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에 예전에 초신자 때보다 더 감사한 마음으로 하고 있는지 아니면 '이런 일은 다른 사람이 해야하지 않나' 하며 남들이 보니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바로 그 마음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저에게 만약 기회가 주어져서 성전의 화장실을 청소한다고 해보십시오. 저는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것도 깨끗이 청소할 자신이 있습니다. 청소 도구가 없으면 왜 옷이라도 벗어서 못하겠으며 잘 닦이지 않는 것이 있으면 손바닥으로라도 비벼서 닦지 못하겠습니까? 더군다나 아버지의 성전이라면 말할 것도 없지요. '나는 당회장인데… '가 아니라, 오히려 당회장이기 때문에청소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 만약 그런 기회가 주어진다면 저는 정말 마음 중심에서 이런 기회를 주심에 감사하며 그 일을 할 것입니다.
제가 기도처에 가면 어떻게 생활하는지, 제 주변의 몇몇 분들은 아시지만 저는 밥도 하고, 설거지도 하며, 청소나 빨래도 합니다. 사실 1분 1초의 시간을 내는 것도 아깝지만 저는 제 시간이 아까운 만큼 다른 분들의 시간도 소중하게 여기지요. 제가 만약 어떤 분에게 그런 일을 부탁하면 누군들 기쁨으로 해주지 않겠습니까? 또 필요하면 사람을 쓸 수도 있는 것이구요. 하지만 저는 제가 그 일들을 손수 함으로써다른 분들이 그 시간에 하나님의 일에 더 충성하기를 바라는 것이며 제가 잠시 수고함으로 재정도 아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마음이신지요? 처음 받은 사명을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감당하고 계시며 정말 기쁨과 감사함으로 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의 시간이 소중한 만큼 다른 분들의 시간도 소중히 여기시는지요? 혹여 내가 할 일을 남에게 미루거나 내 일이 아니라고 무관심하지는 않으십니까? 여러분이 지금 어떤 위치에 있고 또 어떤 사명을 맡고 있든지 간에 지금 이 시간 아버지 하나님께서 설령 성전의 화장실 청소를 명하신다해도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기쁨과 감사로 행하실 수 있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처럼 변함없는 중심을 가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결 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만민의 성도님들은 대부분 세상의 오락을 찾거나 세상의 것을 취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집과 직장이나 사업터 일터 외에는 교회 나오시는 것을 즐겨하십니다. 매일 다니엘 철야도 있고 수요예배, 금요철야, 주일 예배와 지역기도회, 구역 예배 등을 드리다보면 한 주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가지요. 벌써 그런 생활을 20년, 15년, 10년이 넘게 해오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같은 생활을 수십 년씩 해온다고 해서 그분들의 마음에 혹여라도 '쉬고 싶다' '이런 생활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들까요? 정녕 하나님을 사랑하고 영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분이라면 추호라도 그런 생각이 틈탈 리 없습니다.
노아가 방주 안에서 짐승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배설물을 치우느라 눈코 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면서도 오직 마음에는 감사와 기쁨이 있었듯이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심방하며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지요. 설령 이 땅에서의 삶이 때로는 조금 고되고 힘든 일들에 부딪친다해도 계 21:4에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말씀한 대로 우리가 이 땅의 삶을 다 마친 후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물을 씻기며 위로해주시고 영원한 행복만이 있는 천국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과 소망이 있기 때문에 저와 여러분은 오늘도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며 기쁨과 감사로 달려갈 수가 있는 것이지요. 오늘도 들은 말씀이 믿음이 되고 능력이 되어 참된 감사와 기쁨 가운데 충만하게 신앙생활 해 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5-04-30 오후 1:16:27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