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93)
서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아버지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 속에 성도님들의 기도에 힘입어 두바이 선교를 잘 마치고 돌아왔습니다. 이번 두바이 선교에 담긴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대해서는 앞으로 주일 대예배, 저녁예배, 그 다음 금요철야를 통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저와 선교팀을 위해 기도해 주시고 교회를 든든히 지켜 주셨으며 또 선교 헌금으로 힘이 되어 주신 모든 성도님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분이 믿음과 정성으로 행하고 심은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반드시 30배, 60배, 100배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오늘은 창세기 강해 아흔 세 번째 시간으로서 지난 시간에 이어 2절 말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완성된 방주 안에 노아와 그의 가족들뿐만 아니라 당시 이 땅에 살던 생물들도 함께 태워 그들의 생명을 보존케 하십니다. 창 6:19-20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각기 암수 한 쌍씩 즉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방주로 이끌어 들이라 하시지요. 다시 말해 동물들을 각각의 종류대로 암컷 한 마리, 수컷 한 마리씩 해서 두 마리씩을 방주에 이끌어 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면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암수 둘씩 또한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을 취하라 말씀하고 계시지요. 이 두 가지 말씀을 문자적으로만 보면 마치 성경이 서로 모순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결코 오류가 있을 수 없으며 서로 다르게 기록된 것처럼 보이는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지요.
본 론
1.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본문 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 그리고 공중의 새를 취하여 그 씨를 온 지면에 유전케 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단순히 짐승들의 종족을 보존시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앞으로 홍수 후를 대비하기 위한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하신 말씀인데 이에 대해서는 뒤에 설명됩니다. 따라서 본문 말씀과 창 6:19-20 말씀과는 각각 별개의 내용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창 6장에서는 모든 짐승들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한 목적으로서 각각 종류대로 두 마리씩 방주에 태우라 하신 것이고 본문에서는 그와는 별도로 다른 목적을 위해 이처럼 말씀하고 계신 것이지요.
그러므로 방주 안에는 일단 기본적으로 모든 종류의 동물들이 각기 암수 한 쌍씩 즉 두 마리씩 들어가게 됩니다. 또한 이와는 별도로 짐승들 중에서 정결한 것은 암수 일곱씩, 부정한 것은 둘씩, 공중의 새도 암수 일곱씩 추가적으로 들어가게 되지요. 이해하기 쉽게 예를 들면 정결한 짐승에 속하는 양은 모든 짐승들에게 공통적으로 해당하는 암수 한 쌍 외에도 별도로 암수 일곱씩이 더 방주에 들어간 것이고 부정한 짐승에 속하는 돼지는 공통적으로 방주에 들어가는 암수 한 쌍 이외에 별도로 암수 둘씩이 더 들어갔다는 말입니다. 정결한 짐승에도 부정한 짐승에도 속하지 않는 나머지 다른 짐승들은 그냥 암수 한 쌍씩만 방주에 들어간 것이지요.
그러므로 짐승들이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것, 이렇게 세 부류로 나누어진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눈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린 대로 각각의 짐승들이 가진 근본 속성에 따른 것입니다. 모든 짐승들은 처음 창조될 때에 사용된 토질에 따라 근본 속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이 다른 짐승에 비해 선한 것은 정결한 것으로 다른 짐승에 비해 악한 것은 부정한 것으로 나눈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으로 나누신 기준과 레위기 11장에 나오는 가증한 짐승의 기준과는 다르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 레위기에 기록되어 있는 기준을 가지고 노아에게도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나누도록 하신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레위기 11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이 땅의 짐승들을 먹어도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으로 나누어 주십니다. 그러시면서 어떤 짐승들이 부정한 짐승인지를 자세하게 말씀해 주고 계신데 이 말씀을 주신 때는 노아의 홍수가 있은 지 1,000년 정도가 지난 후입니다. 따라서 1,000년 전의 짐승들과 이때의 짐승들이 가진 기질이 서로 같을 수가 없지요. 이는 홍수 후에 1,00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사람들이 점차 악으로 물들어 갔듯이 홍수 후에 빛이 거두어지면서 근본의 속성이 드러나기 시작한 짐승들도 점차 세월이 지나면서 더 악해져 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노아가 짐승들을 방주에 태울 당시에 하나님께서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정해 주신 기준과 레위기에서 말씀하신 기준과는 같을 수가 없지요. 방주에 들어갈 당시에는 부정한 것에 속하지 않았지만 그 후로 점차 세월이 지남에 따라 악해지면서 나중에 부정한 짐승에 포함되는 것들도 생겨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새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노아 당시에는 아직 새들 중에서 부정하다 할 만큼 본성 속의 악이 드러난 것이 없었지요. 따라서 새들 중에는 정결하다 하신 것은 있었지만 반대로 부정하다 하신 것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 노아 당시의 새들은 정결한 종류와 나머지 종류 이렇게 두 분류로만 존재하고 있었지요.
그래서 본문 3절에도 공중의 새의 경우에는 암수 일곱씩을 취하라는 말씀만 하신 것입니다. 공중의 새 중에도 부정한 것이 있었다면 이것들에 대해서도 땅의 짐승과 마찬가지로 암수 둘씩을 취하라는 말씀을 하셨을 텐데 새들 중에는 아직 부정한 것이 없고 정결한 것만 있기에 암수 일곱씩 취하라는 말씀만 하신 것이지요. 그러므로 본문에는 그냥 공중의 새라고만 하셨지만 이것이 모든 종류의 새를 가리키시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새 중에서도 정결한 것만을 가리킨다는 사실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나중에 왜 정결한 것들을 일곱 마리씩이나 더 보존케 하셨는지에 대해 들으시면 좀더 쉽게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2. 정결한 짐승은 암수 일곱씩 취하신 이유
우리가 본문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먼저 풀어야 할 문제가 있는데 바로 암수 일곱씩이라는 표현의 해석입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암수 일곱씩이라는 것을 암수를 각각 일곱씩 해서 총 열네 마리로 보는 견해도 있고, 그냥 암수를 합쳐서 일곱 마리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느 쪽이 맞는 것일까요? 여기서 암수 일곱씩이란 바로 암수를 합쳐서 일곱 마리를 뜻합니다. 그러면 홀수가 되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열네 마리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는 것이지요. 암수 셋 쌍과 여기에 수컷 한 마리를 더해서 총 일곱 마리가 되는 것이지요. 수컷이 한 마리가 더 있다 이 말입니다. 짝이 맞지 않는 나머지 한 마리를 왜 수컷으로 하셨는지에 대해서는 잠시 후에 설명이 나옵니다.
그러면 이제 종합적으로 방주에 탄 각각의 짐승들의 수를 알 수가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방주 안에는 정결한 짐승 총 아홉 마리씩, 부정한 짐승은 총 네 마리씩 정결한 새들도 총 아홉 마리씩 들어가고 그 이외의 나머지 모든 짐승들과 새들은 두 마리씩만 들어간 것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이처럼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구분해 주실 때에 그 종류들이 많았던 것은 아닙니다. 만약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종류가 많았다면 기본적으로 모든 짐승을 두 마리씩 태운 후에 추가로 방주에 태워야 하는 짐승의 수가 크게 늘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려면 방주의 크기도 지금보다 훨씬 커져야 했겠지요. 그러나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의 종류가 많은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방주에 태워야 할 전체 동물의 수에는 크게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어떤 동물들을 각각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으로 정해 주셨으며 또 왜 그것들의 숫자를 다르게 하여 방주에 태우도록 하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정해 주신 이유는 그것들이 근본 속성으로 인해 장차 사람들에 의해서 어떠한 용도로 쓰일 것인가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각각 다른 숫자만큼 보존케 하신 것은 그것들을 필요로 하는 수에 의한 것이었는데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홍수의 심판이 지나간 후 방주에서 나온 노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하나님 앞에 단을 쌓고 번제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창 8:18-20에 보면 "노아가 그 아들들과 그 아내와 그 자부들과 함께 나왔고 땅 위의 동물 곧 모든 짐승과 모든 기는 것과 모든 새도 그 종류대로 방주에서 나왔더라 노아가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로 단에 드렸더니" 말씀하고 있지요. 그런데 노아는 이처럼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림에 있어서 아무 짐승이나 취하여 드린 것이 아니라 바로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새 중에서 취하여 드렸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정결한 짐승이라고 정해 주신 짐승들이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릴 수 있도록 허락되어진 종류의 짐승들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 짐승이나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릴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하나님께서는 정결한 짐승을 정해 주시고 이것으로 번제를 드리게 하신 것이지요. 그러니 앞서 말씀드렸던 대로 하나님 앞에 번제로 드릴 수 있는 짐승인 정결한 짐승의 종류가 많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 앞에 번제를 드리기 위해 사용될 수 있는 짐승의 종류가 몇 가지로 정해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정해주신 정결한 짐승들도 이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지요. 그런데 노아는 이처럼 첫 번제를 드리면서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번제를 드렸다 했습니다. 만약 노아가 정결한 짐승들도 다른 짐승들과 마찬가지로 암수 둘씩만 방주 안에 들였다면 첫 번제를 드린 후에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바로 그 순간 모든 정결한 짐승과 정결한 새들은 이 땅에서 멸종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암수 중에 하나만 번제로 드렸다 해도 더 이상 그 종족이 보존될 수가 없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모든 정결한 짐승 중에서와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취하여 첫 번제를 드린 후에도 정결한 짐승들은 멸절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정결한 짐승들은 암수 둘씩만 보존된 것이 아니라 일곱 마리씩이 더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의 모든 상황을 다 아신 하나님께서 이처럼 번제를 위해 쓰일 정결한 짐승들을 다른 짐승들보다 더 많이 보존케 하심으로 이러한 상황에 대처하게 하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노아는 추가로 태웠던 각각의 정결한 짐승 일곱 마리씩 중에서 짝이 맞지 않고 남아 있던 한 마리씩을 첫 번제의 희생 제물로 삼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앞서 짝이 없는 한 마리가 수컷이라 했는데 이는 여러분이 레위기 강해를 통해 들으신 대로 하나님께서 번제물로 암수 중에 수컷을 더 즐겨 하시기 때문에 수컷이 한 마리 더 예비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정결한 짐승들 나머지 세 쌍은 왜 더 필요했던 것일까요? 그것은 앞으로 드려질 번제의 희생 제물을 위해서입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이 땅에는 사람들이 급속하게 번져 나가면서 이와 동시에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번제의 수도 급속히 늘어가게 됩니다. 노아의 가족만 해도 여덟 명이지 않습니까? 사람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또다시 죄에 물들어 가면서 그들이 하나님 앞에 죄사함을 받기 위해 드리는 번제도 점점 많아질 수밖에 없었지요.
이처럼 번제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정결한 짐승으로 피의 제사를 드려야 했습니다. 따라서 번제를 위해 필요한 정결한 짐승의 수도 시간이 갈수록 늘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만약 정결한 짐승도 다른 짐승과 마찬가지로 암수 한 쌍씩만 보존했다면 어떻게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수효를 충족시킬 수가 있었겠습니까?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정결한 짐승들은 다른 짐승들에 비해 세 쌍씩이 더 보존될 수가 있었기에 이것들이 빠른 속도로 번식하여 사람들의 수효를 충족시킬 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방주에 정결한 짐승들을 일곱 마리씩이나 더 추가로 태우라 하신 것이 바로 이러한 목적을 위한 것이었지요.
앞서 암수 일곱씩을 더 취한 것이 모든 새들에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정결한 새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라 했던 말씀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암수 일곱씩을 더 취하게 하신 이유가 바로 번제를 위한 것인데 번제를 드릴 수 있는 것은 정결한 것뿐이지요. 따라서 모든 새들이 다 일곱 마리씩 더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새 중에서도 오직 정결한 것만 필요하기 때문에 노아는 새 중에서 정결한 것만 더 취하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정결한 짐승들을 다른 짐승들보다 더 많이 보존케 하신 이유는 또 있습니다. 창 9:3에 보면 "무릇 산 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하여 하나님께서 홍수 이후에는 동물들도 사람들에게 식물로 허락하시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그렇다면 이때 사람들에게 허락된 동물들이 과연 어떤 동물들이었겠습니까?
이때도 바로 정결한 짐승들이 허락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홍수에 의해 이처럼 사람들에게 양식으로 쓰여질 것까지 고려한다면 정결한 짐승들은 다른 짐승들에 비해 몇 배로 더 많은 수가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이지요. 그래서 정결한 짐승들은 주로 사람들에게 가축으로 사용되어지면서 번제의 희생 제물과 사람들의 양식으로 사용되어졌습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홍수 후에 일어날 모든 상황들을 다 아시고 노아로 하여금 정결한 짐승들을 암수 일곱씩 더 보존케 하셨다는 사실입니다.
3. 부정한 짐승은 암수 둘씩 취하신 이유
하나님께서는 정결한 짐승들만이 아니라 부정한 짐승들 역시 둘씩 더 보존케 하셨는데 어떤 이유일까요? 정결한 짐승들이 하나님 앞에 드릴 번제의 제물과 하나님의 백성들의 양식을 위한 것이라면 부정한 짐승들은 바로 이방인들의 양식을 위해 허락된 것이었습니다. 홍수의 심판 이후에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만을 섬기며 살면 좋겠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차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방인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 짐승들까지 그들의 양식으로 삼아 가게 되지요.
물론 이방인들이라고 해서 꼭 부정한 짐승들만 먹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 예지하시는 가운데 정해 놓으신 부정한 짐승들이 점차 그들에게 양식이 되어 갔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부정하다 하신 짐승들은 장차 이방인들에게 양식으로 쓰일 짐승들이었으며 이러한 부정한 짐승들 역시 이방인들에게 양식으로 쓰이기 위해서는 다른 짐승들보다 상대적으로 더 많은 수가 필요하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들 부정한 짐승들도 암수 한 쌍씩을 더 보존하여 번성케 하셨던 것이지요.
하지만 정결한 짐승과 마찬가지로 부정한 짐승들도 그 종류가 많았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차 이방인들에게 어떤 짐승들이 양식이 될지를 아시기 때문에 그러한 몇 가지 종류를 부정한 것으로 정해 주셨지요. 결국 하나님께서 정결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나누시고 노아로 하여금 정결한 것들을 추가적으로 보존케 하신 것은 앞으로의 되어질 모든 일을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정확한 계획 속에서 이루어진 일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4. 노아의 방주를 두르고 있던 근본의 빛
노아의 홍수 이후에는 이 땅에 약육강식의 법칙이 생겨나면서 짐승들간에도 서로 먹고 먹히는 관계가 생겨납니다. 그동안 이 땅을 덮고 있던 하나님의 근본의 빛이 완전히 거두어지면서 짐승들에게 내재되어 있던 근본의 속성이 나와지게 되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이 땅을 덮고 있던 빛이 완전히 거두어진 시점이 정확하게는 홍수의 시작과 함께였습니다. 빛이 덮여 있는 상태에서 홍수가 나고 홍수가 끝난 후에 빛이 거두어진 것이 아니라 홍수가 시작되면서 이미 빛이 거두어진 상태였지요. 이미 홍수의 시작과 함께 짐승들이 가지고 있던 근본 속성들이 드러날 수 있는 조건이 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근본의 속성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면 1년이 넘게 방주 안에서 생활하는 동안 방주 안은 꽤나 소란스러웠겠지요. 다른 짐승들을 괴롭히거나 악을 행하는 짐승들도 나올 수가 있는 것이고 심지어 서로 싸우거나 상대를 상하게 하는 일도 생겨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일이 생기지 않도록 홍수의 시작과 함께 이 땅에서 빛을 완전히 거두신 후에도 방주 안에는 홍수가 다 끝나기까지 계속해서 빛으로 둘러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방주에서 나올 때까지는 서로가 부딪힘이나 다툼도 전혀 없었고 짐승들이 노아의 말에도 온전히 순종했지요. 노아의 주관 아래 모두가 화평 가운데 평안하고 조용하게 생활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방주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짐승들은 점차 근본의 속성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사람들 역시 이전에 빛으로 둘러 있던 때보다도 더 빠르게 육의 속성들이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방주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은 아버지의 허물을 보고 다른 형제들에게 전하는 비진리의 모습이 나오게 되지요. 홍수 전에는 하나님께서 둘러 주신 빛에 의해 드러나지 않고 있던 깊은 육의 속성들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인간 경작도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빛이 거두어지기 전과 거두어진 후의 차이점에 대해 좀더 설명을 하고 방주 안에서의 생활에 대해서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결 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해 들으셨듯이 하나님께서 동물들 중에 정결한 것과 부정한 것을 정하시고 그것들은 다른 동물들에 비해 더 많은 숫자를 보존케 하신 데에는 앞으로 인간 경작의 과정에서 일어나게 될 여러 가지 상황들까지도 고려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었습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은 이처럼 한 치의 오차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저와 본 제단을 지금까지 이끌어 오시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세계 선교를 이룸에 있어서도 가장 알맞은 때에 맞추어 가야 할 나라들을 정해 주시고 각각의 성회들을 하나 하나 연결하여 마침내는 두바이라는 나라에 들어가게 하셨지요. 그러나 이번 두바이 선교 역시 앞으로의 더 큰 목표를 위한 준비였습니다. 따라서 장차 이번 두바이 선교를 계기로 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더 큰 계획이 드러나게 될 때 왜 저를 두바이에 보내셨는지도 밝히 깨닫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정확한 섭리 속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고 있는 본제단의 성도로서 여러분은 내가 과연 아버지 앞에 어떤 모습으로 쓰여져야 하는가에 대해 영적인 안목과 비전을 가지시고 준비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세계 곳곳에서 만민을 부르는 소리가 점점 늘어만 가고 있는 이때에 여러분 모두가 영적 장수로 나와 하나님의 나라에 큰 기둥으로 쓰임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계 3:12에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라는 축복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5-04-30 오후 1:16:27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