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89)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시간에는 노아의 방주가 지금으로부터 4천5백여 년 전에 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나 대단한 규모로 지어졌으며 얼마나 안전성 있게 지어졌는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인류가 만든 배 중에서 노아의 방주보다 긴 배가 만들어진 것이 1884년에 건조된 이뚜리아라는 증기선입니다. 그렇다면 인류는 노아의 방주 이후로 4천 년이 넘도록 노아의 방주보다 긴 배를 만들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노아의 방주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잘 알 수가 있지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방주를 짓는데 있어서 어떠한 재료를 사용하여 어떠한 규모와 구조로 지어야 할지가 사람의 지식이나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직접 가르쳐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대홍수를 견뎌 내려면 어떤 재료와 구조와 비율로 방주를 지어야 하고 또 수많은 종류의 동물들을 들이기 위해서는 방주 안에 어느 정도의 공간이 필요한지 등을 하나님께서 친히 하나하나 세세하게 가르쳐 주시며 인도해 가셨다는 말이지요.
물론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방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지식과 기술도 필요했습니다. 예를 들어 커다란 나무들을 자르고 다듬을 수 있는 도구가 있어야 하고 나무를 옮길 수 있는 수레도 있어야 하지요. 또한 다듬어진 각각의 나무들로 짝을 맞추고 거대한 배를 지탱해가며 완성하기까지 그에 필요한 지식들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당시에 이러한 지식과 기술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요? 우리가 앞서 창세기 4장에서 살펴보았던 대로 가인의 후손 5, 6대에 이르게 되자 이미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들 수 있는 정도에까지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그 이상의 문명과 기술이 당시에 존재하고 있었지요. 여기에는 발달된 에덴 동산으로부터의 영향이 컸습니다. 조상인 아담뿐만 아니라 에덴 동산 사람들과의 계속된 접촉을 통해 그들의 발달된 문명을 접할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방주의 구조와 규모를 세세히 알려 주시고 또 발달된 지식과 기술이 있었다 해도 노아의 방주가 지어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순종이었습니다.
본론
1. 의인 노아의 온전한 순종
창세기 6:22에도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말씀하고 있지요. 오늘날 믿는 많은 사람들이 나도 하나님께서 그처럼 나에게 말씀하신다면 순종할 수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실제로 그런 사람을 찾아보기란 쉽지 않습니다. 대부분 자기 생각과 지식이 앞서고 또 이론이 동원되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지 못하게 되지요.
만약 햇볕이 쨍쨍 비취는 날에 제가 여러분에게 "우산을 준비하십시오." 말을 했다고 합시다. 지금 당장에는 여러분 대부분이 '나는 말씀대로 순종할 수 있어' 생각하시겠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되면 이런 저런 이유로 순종하지 못하는 분들이 나오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날이 이렇게 좋은데 왜 우산을 준비하라고 하시나?' 하며 아예 순종할 마음조차 가지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는 '나중에 날이 흐려질 것 같으면 그때 가서 준비하면 되겠지'하며 생각을 동원하느라 순종하지 못하는 사람도 있지요. 아니면 행함으로는 순종을 하지만 속으로는 '날 시험하시나?'하며 마음에서 온전히 믿지 못하는 분도 있는 것이구요. 이밖에도 갖가지 이유와 핑계들로 인해 온전한 순종이 나오지 못하는 경우들도 많습니다. 그러니 방주를 지으라 한다면 과연 노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다 준행했던 것처럼 무조건적인 순종이 나올 수 있을까요?
성도 여러분, 순종에는 어떠한 생각이나 이유, 변명이나 핑계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을 상고해 볼 때에 하나님께 순종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심같이 아무리 사람의 생각과 지식에 맞지 않는다 해도 무조건적인 순종을 했던 것을 봅니다. 자신의 생각과 이론과 틀을 철저히 깨Em릴 때만이 하나님의 어떠한 말씀에도 오직 "아멘"과 "예"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온전한 순종이 나오려면 육을 벗고 영으로 들어와야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온전히 순종할 수 있는 의인 노아를 택하여 그를 통해 방주를 짓게 하셨던 것이지요.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마지막 때가 되면 홍수의 심판이 있었던 노아의 당시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게 될 것을 말씀하고 있지요.
마태복음 24:37-39에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의인 노아를 택하여 방주를 짓게 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누군가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해서 구원의 방주를 지을 의인을 찾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노아의 때와 같이 실제로 방주를 짓는 것은 아니지만 영적인 의미에서 구원의 방주가 필요한 것이지요. 바로 교회들이 앞장서서 이러한 구원의 방주 역할을 감당해 주어야 하는 것이며 할 수만 있다면 되도록 많은 교회들이 그렇게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정녕 깨어 기도하는 교회,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교회, 하나님의 살아 계신 역사가 나타나는 교회가 구원의 방주로서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2. 노아의 방주에 담긴 영적인 의미
그러면 노아의 방주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살펴보기 전에 방주의 안전성에 대해 잠시 설명하지요. 국가 출현 기관인 해사 기술 연구소는 1992년 6월부터 한국 창조과학회의 요청으로 노아의 방주를 조선 공학적 입장으로 접근하여 실험하고 그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연구소는 선박의 선형 시험 및 성능 평가 업무에서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기관으로서 세계 조선 2위 국가인 우리나라 수출선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성능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방주의 길이를 1/50로 축소하여 테스트용 방주를 만든 후에 이를 인공적으로 만든 다양한 높이와 강도와 속도의 조류 그리고 파도와 풍랑과 바람의 조건 하에서 다각적으로 실험하였습니다. 그 결과 노아의 방주가 현대의 최첨단 조선 공학적 기법으로 제작된 선박보다 뛰어난 안전성을 갖고 있는 배라는 사실이 입증되었습니다.
이에 대한 관련 기사가 1993년 2월 17일자 국민일보에 실렸지요. 노아의 방주의 용량은 1만4천 톤에 이릅니다. 이러한 용적의 방주는 평균 크기의 양을 12만 5천 2백 8십 마리나 수용할 수 있는 크기로서 당시에 살던 동물들의 크기를 양의 크기로 평균해서 계산할 때, 모든 동물들과 그들의 식량까지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공간이라고 합니다.
이제부터 노아의 방주에 담긴 영적인 의미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노아의 방주는 홍수의 심판을 피하기 위한 구원의 방주로서 지어졌지만 동시에 노아의 방주에는 앞으로 노아와 그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또는 홍수의 심판이 주는 교훈을 어떻게 마음에 명심해야 할지에 대한 영적인 의미들이 담겨 있지요.
1)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하나님께서는 방주를 짓는 재료로서 잣나무를 사용하게 하셨습니다. 잣나무는 소나무과에 속하는 상록 침엽 교목으로서 뿌리를 깊게 내리고, 줄기가 곧게 되는 특성을 지니며, 재질이 우수하고 색상이 아름다워서 건축 기구, 선박제 등에 사용되지요.
노아의 방주는 장차 있게될 엄청난 홍수를 견디며 수많은 파도를 헤쳐 나가야 합니다. 집채만한 파도가 와서 부딪칠 수도 있고, 수없이 많은 파도들이 와서 부딪치게 되지요. 이런 환경 속에서 견뎌내려면 방주의 재질은 매우 튼튼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강하고 단단한 재질을 지닌 잣나무를 사용하여 방주를 지으라 하신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들도 세상이라고 하는 험한 파도를 헤치고 목적지인 천국에 안전하게 이르기 위해서도 영적으로는 잣나무와 같은 성질이 필요하지요. 수많은 세상의 풍파를 헤쳐 나가야 하고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 원수 마귀 사단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며 승리하기 위해서는 바로 잣나무와 같은 강하고 단단한 특성이 있어야 합니다. 이는 성품이 강하고 단단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적으로 변개함이 없는 곧은 중심을 말하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방주를 짓는데 사용하라 명하신 잣나무는 영적으로 변개함이 없는 단단한 중심을 의미합니다. 여러분도 변개함 없는 곧은 중심을 가질 때만이 강하고 단단한 잣나무로 만든 방주가 홍수를 견뎌내고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듯이 마침내는 새예루살렘에 안전하게 이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잣나무로 방주를 짓되 너를 위하여 지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방주 안에 들어온다는 것 자체가 곧 홍수의 심판에서 살아날 수 있다는 구원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방주처럼 영적으로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따라서 방주는 영적으로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심판의 부활이 아닌 생명의 부활로 나와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이지요. 방주 안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은 모두가 홍수에 휩쓸려 수장되었던 것과 같이 누구든지 진리에서 떠났을 때는 영원한 사망으로 가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2)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하나님께서는 방주를 짓되 간들을 막으라고 명하셨는데 이는 칸을 친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간들을 막는다는 것은 영적으로 모든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마음이 되는 것을 의미하지요. 즉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하고 선과 악을 분별하며 빛과 어둠을 분별할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도 반드시 이러한 분별의 능력이 있어야 하지요. 그렇지 못하면 자칫 소경의 인도를 따라 함께 구덩이에 빠질 수도 있으며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과는 정반대로 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2:2에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분별하려면 먼저 우리의 마음이 새롭게 변화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분별하려는 사람의 마음이 먼저 진리로 깨끗하게 변화되어 있어야 온전한 분별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더욱이 영적인 신령한 분야는 여러분 자신이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만이 분별할 수가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2:13에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여러분이 성령의 밝은 음성과 주관과 인도를 받는 신령한 사람이 되어야만이 신령한 영의 것들도 분별할 수 있습니다.
다음으로 역청으로 그 안팎을 칠하라 명하셨습니다. 육적으로는 역청을 칠하는 것이 방수 작용을 위한 것입니다. 나무와 나무를 접해 놓은 틈새를 통해 물이 방주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작은 틈새까지라도 역청을 발라 막는 것이지요. 이는 영적으로 세상과 함께 하며 살아가되 세상의 것을 마음에 받아들이지 말라는 뜻입니다. 어차피 방주의 겉은 항상 물과 닿아 있어야 하는데 이때 조그만 틈새라도 생겨서 물이 방주 안으로 들어오게 되면 나중에는 겉잡을 수 없을 정도로 물이 밀려들어오게 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땅에 경작 받는 동안 우리는 어차피 세상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하지만 결코 세상에 물들어서는 안 되지요.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결코 세상의 물이 우리 마음 안에 들어오게 해서는 안 됩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겉모습 속에서도 결코 세속적인 물이 들어와서는 안 되지요. 우리는 항상 영육간에 하나님의 자녀로서 부끄러움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청을 방주 안팎에 칠하라는 말씀은 우리가 세상에 물들어서는 안될 것을 깨우쳐주시는 것입니다.
3)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하나님께서는 방주에 창도 내고 문도 내도록 명하셨습니다. 이는 장차 노아를 통해 인류 역사의 계보가 새롭게 시작되어 수많은 자손들이 퍼져나가게 될 텐데 그런 속에서 세상을 향해 문을 굳게 걸어 잠그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을 향해 문을 열어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앞서 역청을 바르라는 말씀의 영적인 의미처럼 우리가 세상의 것을 받아들여서는 안 되지만 반대로 우리는 세상을 향해 창과 문을 열고 그들에게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는 뜻이지요. 세상을 피하고 등지며 사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만약 교회들이 세상과 접하지 않으려 한다고 해서 그들에게 나가 복음을 전하지도 않고 또 그들에게 다가가지도 않는다면 어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겠습니까.
이에 대해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19-22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 있는 자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어찌하든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코자 사도 바울은 이처럼 각 사람에게 맞는 모습으로 그들에게 다가가 복음을 전파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5:14에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아무리 거룩한 모습을 하고 충성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막상 가정에 돌아가서, 직장에 돌아가서, 또한 세상에 나가서는 빛이 되지 못한다면 이는 세상의 빛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소금으로서의 역할도 마찬가지이지요. 교회 안에서만 섬기고 희생하는 모습이 아니라 세상에서도 자신을 희생하고 헌신하는 소금의 역할을 감당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 마태복음 5:16에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말씀한 대로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이 돌려지는 것이지요. 또한 사람들에게 칭송 받는 여러분이 되어짐으로 초대교회와 같은 놀라운 부흥도 일어나는 것이구요.
4)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방주를 삼층으로 나누게 하신 영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우리 마음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항상 계셔야 할 것을 나타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앞으로 이루어지게 될 새로운 인간 경작의 역사가 어떻게 펼쳐질지를 알려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일까요?
인간 경작의 역사 또한 크게 세 시대로 구분되어진다는 말입니다. 먼저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사역해 가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시대가 있게 되고, 다음으로는 주님께서 이 땅에 구세주로 오셔서 사역하시는 주님의 시대가 있게 되지요. 그리고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부터 성령의 시대가 도래하여 인간 경작의 마무리 때까지 계속되는 것이구요. 방주를 통해 구원받은 인류가 장차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 그리고 성령님의 시대를 거치며 이 땅에서 경작받게 될 것을 나타내 주신 것입니다.
4. 장차 있을 홍수의 성격
이어지는 17절을 보면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말씀하십니다. 이는 장차 있을 홍수가 어떤 것인지를 다시 한 번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 왜 이 땅에 있는 동물들까지 함께 홍수로 심판하시는지에 대해서는 전에 이미 설명을 드렸습니다.
당시 땅에 있던 동물들과 하늘의 새들이 사람들의 타락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것들도 함께 멸하신 것이지요.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홍수의 심판이 단지 이 땅에 살던 육체의 사람들을 멸해 버리는 심판의 차원을 넘어 인간이 이 땅에 이루어 놓은 모든 터전까지도 함께 멸해버리는 심판이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길들여 키우고 있던 육축은 물론이고 사람들의 손에 닿았던 모든 동물들 즉 사람들에게 우상으로서 섬김 받거나 사람들의 찬양의 대상이 되었던 모든 것들도 홍수의 심판을 받게 됨으로 사람과 관계되는 것은 전부다 멸절 당했던 것입니다. 쉽게 말해 연대 책임을 물으신 것인데 사람이 죄로 인해 심판을 받아 멸망에 이르게 되니 사람에게 속하거나 연관되어진 모든 것까지도 함께 멸절하게 되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사람은 물론이고 물 속에 사는 생물들을 제외한 이 땅과 하늘의 모든 동물들이 멸절을 당할 만큼 홍수의 심판은 대단했습니다. 그러니 노아의 홍수로 인해 이 땅에는 기후나 지형, 생태계, 자연의 법칙 등 여러 가지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던 것입니다. 엄청난 변화가 노아 홍수로부터 시작해서 홍수 뒤로 생겨납니다. 노아의 홍수 전과 홍수 후와는 전혀 생태계나 모든 것이 달라져 버렸지요. 완전히 뒤바뀌는 거예요.
이는 창세기 1:3에 "빛이 있으라" 하심으로 허락하신 빛을 노아 홍수를 기점으로 하여 100% 거두어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빛이 없는 공간과 빛이 있는 공간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이죠. 여기에 대해서는 많은 비밀들이 있는데 앞으로 차차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이처럼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해 짓게 하신 방주 안에는 그 곳곳에 인간을 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노아의 방주에 어떻게 동물들이 들어가고 홍수를 어떻게 대비하는지에 대해 설명이 되어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노아가 그 거대한 방주를 짓는 동안 분명 많은 사람들이 방주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 중에는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는 사람도 있었겠고, 어떤 사람은 '왜 저런 것을 짓는가?' 의아해하며 방주를 짓는 이유에 대해 물어온 사람도 있었겠지요. 노아가 하는 일을 어리석다고 비난하거나 비웃는 사람도 있었겠구요.
그런데 오늘날도 이와 같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때가 심히도 가까운 지금 정녕 깨어있는 사람들은 노아가 그러했던 것처럼 열심히 방주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변개함이 없는 곧은 중심으로 세상에 물들지 않고 말씀 안에 순종하여 살아가며 그렇다 해서 세상을 등지고 사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향해 빛과 소금의 역사를 감당하며 살아가지요. 이처럼 열심히 신앙 생활해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떤 사람들은 어리석다 조롱하거나 핍박하기도 합니다. 베드로후서 3:3-4 전반절에도 보면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한다 했지요. 또 어떤 사람들은 조금 관심을 보이다가도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함으로 다시금 세상으로 향하고 맙니다. 혹은 한 발은 세상에 두고 한 발은 교회에 두는 이중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고, 아예 신앙에는 관심조차 갖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노아와 그의 일곱 식구가 주변에 어떠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완성해 갔듯이 우리 또한 주님이 오시는 그 날을 대비하여 구원의 방주 짓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개인적으로는 여러분이 먼저 구원의 방주 안에 단단히 자리잡고 있어야 할 것이고, 교회적으로는 세상을 향해 문을 활짝 열고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의 방주에 탈 수 있도록 방주의 문이 닫히는 그 날까지 복음 전파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과연 급속한 영의 물결 속에서 어떤 모습이십니까? 만민호라고 하는 구원의 방주 안에 모두가 안전하게 타고 계십니까? 아니면 '탈까? 말까?' 망설이시는 분이 계시는지요? 망설이는 분들은 방주의 문이 닫히기 전에 어서 타셔야 할 것이고 타신 분들이라면 혹여라도 중간에 내리는 일이 결코 없어야 할 것이고, '내릴까? 말까? 내가 왜 탔나?' 하고 후회하는 분도 없어야 할 거예요. 또한 아직 만민호에 타지 못한 영혼들을 볼 때 어떻게든 한 영혼이라도 더 탈 수 있도록 여러분은 외치고 또 외쳐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으로부터 20여 년 전 만민호는 첫 출항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1년간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친히 선장이 되어 주심으로 새예루살렘이라는 목적지를 향해 빠르고 안전하게 항해해 왔지요. 물론 지금까지 오는 길에 왜 때로는 어려움이 없었겠습니까? 험한 풍랑과 마주하여 싸우기도 했고, 암초를 피해가야 하는 때도 있었으며, 바람 한 점 없는 가운데 열심히 노를 저어야 하는 때도 있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중간에 내린 사람도 있고, 새롭게 만민호에 올라탄 사람들도 수없이 많았지요.
이런 과정 속에서 변함없이 만민호를 타고 지금까지 항해를 함께 해온 분들은 대부분 노련한 선원들이 되어 있습니다. 각자의 맡은 분야에서 그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마음껏 발휘할 준비된 일꾼이 되어 있으며 지금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영의 급하고 강한 물살을 타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할 기대와 희망으로 부풀어 있지요.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타고 가는 만민호에는 아직도 너무나 많은 자리가 비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배는 전세계 수많은 인구를 태우고도 남을 만한 넓은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한 영혼이라도 더 만민호에 승선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혹여 만민호를 타고 있다가도 물에 빠진 영혼들이 있다면 그들을 건져야 할 것이고 배가 떠나는 줄도 모르는 채 영적인 잠에 빠져있는 영혼들이 있다면 그들을 깨워서 속히 배에 태워야 할 것입니다. 우리 만민호에는 뱃삯이 필요 없습니다. 이미 우리 주님께서 다 지불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영혼들을 데려다가 태우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만민호의 문이 닫히기 전에 말입니다. 우리 모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마지막 때를 위하여 만세 전에 계획하시고 예비하신 구원의 방주인 만민호의 탑승자들로서 한 사람의 낙오자도 없이 모두가 힘을 모아 최종 목적지인 새예루살렘까지 힘차게 나아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6-03-23 오전 9:37:34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