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84)
서론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에녹에 대한 설명을 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에녹이 어떤 환경에서 자랐고 얼마나 선한 마음을 가졌으며 무엇보다도 아버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했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에녹의 고백을 들으시면서 여러분은 뭔가 특이한 점을 발견하지 못하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에녹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다는 사실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던 에녹
일반적으로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감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없었고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조차도 함부로 할 수 없었다고 알고 있는데 에녹은 하나님을 당당히 아버지라 불렀던 것이지요. 이 사실을 통해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과 에녹과의 사이가 어떠한 관계였는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므로 우리와 하나님의 사이의 죄의 담을 헐어 주시고 우리 마음 안에 성령을 선물로 주시므로 말미암아 비로소 가능해졌습니다.
로마서 8:14-15에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말씀하고 있지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사람이 곧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생령으로 지음받았던 첫사람 아담 역시 에덴 동산에 사는 동안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었습니다. 아담이 에덴 동산에 살 동안에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또한 아담은 자신을 지으시고 기르시는 분이 하나님이시요 자신에게 모든 것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알기에 아담은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아버지라는 존재로 느낄 수가 있었습니다. 더욱이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름에 있어서 당당할 수가 있었지요.
그런데 아담이 범죄하여 이 땅으로 쫓겨난 후에는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 가로막힌 죄의 담으로 인해 또한 자신이 이미 아버지의 형상을 잃었다는 사실로 인해 아담은 더 이상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감히 아버지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는데 이는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들 역시 마찬가지였지요.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을 여호와라 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아담의 7세 손으로 태어난 에녹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불렀다는 것은 에녹이 얼마만큼 하나님을 닮아 나왔으며 얼마나 그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과 친근함이 가득했는지를 말해 줍니다. 에녹은 자신을 지으시고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대해 너무나 밝히 알았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에녹을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셨기에 에녹은 하나님을 당당히 아버지라 부를 수가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에녹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를 원하셨던 것은 아닙니다. 비록 구약시대라 해도 하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당당히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참자녀들로 나오기를 원하셨지요. 구약 성경 곳곳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신 기록들이 있습니다. 이사야 63:16에 "주는 우리 아버지시라 아브라함은 우리를 모르고 이스라엘은 우리를 인정치 아니할지라도 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 했고, 이사야 64:8에는 "그러나 여호와여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했지요. 또한 예레미야 3:4에는 "네가 이제부터는 내게 부르짖기를 나의 아버지여 아버지는 나의 소시의 애호자시오니" 했습니다. 예레미야 3:19에는 "내가 스스로 말하기를 내가 어떻게 하든지 너를 자녀 중에 두며 허다한 나라 중에 아름다운 산업인 이 낙토를 네게 주리라 하였고 내가 다시 말하기를 너희가 나를 나의 아버지라 하고 나를 떠나지 말 것이니라 하였노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하십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라 당당히 부르시는지요? 성령 시대에 사는 저와 여러분은 당연히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 4:6에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말씀한 대로 성령받은 우리들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성령을 받았다 해서 누구나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닌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아버지라는 말이 차마 나오지 못해서 여전히 하나님이라 부르거나 또는 하나님 아버지라 부르는 것을 보게 되지요. 물론 공식적인 자리나 대표 기도 등을 할 때에는 하나님 아버지 또는 아버지 하나님이라 부르는 것이 더 가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고 혼자 개인적으로 기도를 할 때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그만큼 하나님이 친근하게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며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에는 아직 자신의 모습이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사람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아버지라는 말이 마음에서 우러나게 됩니다. 그렇지만 무조건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른다 해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진정한 아들과 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정녕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당당히 부를 수 있으려면 입술로만 아버지라 부른다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을 너는 내 아들이라. 내 딸이라 인정하실 만한 모습이 되어야 하지요. 그것은 바로 아버지를 닮는 것입니다.
이처럼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서 아버지 하나님을 닮으며 아버지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여러분이 되었을 때 하나님 편에서도 당당한 아들과 딸로 인정해 주시는 것이지요. 이러한 모습이 되어갈 때만이 하나님을 당당히 아버지라 부를 수 있으며 하나님께 "나의 아버지 사랑합니다."라는 고백도 마음 중심에서 할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2. 하나님과 동행한 에녹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나이 65세가 되고 나서부터입니다. 그가 온전히 성결되어 온전한 선을 발하며 마음 속에 온유함이 풍성하고 아버지를 생각하는 마음의 사모함이 지극해졌을 때 비로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동행하셨던 것이지요.
그러므로 에녹도 나름대로 경작을 받으며 본성 속에 있는 죄성까지 뽑아내는 연단의 과정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런 속에서도 에녹은 변함없는 마음과 행함으로 조상으로부터 배운 지식으로만 알고 있던 하나님에 대해 늘 궁구하며 더 알기를 원했고 교통하기를 원했지요. 그 마음이 너무나 승하였고 그의 모습 또한 변함이 없었기에 결국 하나님 앞에 상달되어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된 자리에 이른 것입니다.
결코 적당히 해서 된 것이 아니며 단지 에녹이 좋은 마음 밭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해서 이러한 축복된 자리에 이른 것도 아닙니다. 물론 에녹이 다른 사람보다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선한 마음을 가졌다 해도 노력하지 않았다면 에녹이 그처럼 축복된 자리에 이를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사람은 선하게 태어나서 선한 환경 가운데 성장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비록 좀 덜 선하게 태어났지만 마음에 있는 선한 마음의 음성을 들어 나감으로 선하게 변화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덜 선하게 태어났음에도 살면서 오히려 악의 악을 더해 가는 사람도 있지요. 이때 물론 선하게 태어나 선한 환경 가운데 성장하면 좋겠지만 비록 그렇지 못한 상황에 있다 해도 자신이 얼마나 선하게 살려고 노력해 나가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미래는 얼마든지 변화될 수가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7에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말씀한 대로 여러분이 선으로 심어 나간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선의 열매가 맺히도록 역사해 주십니다. 마태복음 12:35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는 말씀하신 대로 선한 사람은 쌓은 선에서 결국은 온전히 선한 것을 내는 사람이 됩니다.
이처럼 선한 사람이 되는 것은 선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자신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선으로 쌓아 가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에녹과 같은 경우는 선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음에도 거기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더 열심히 변함없는 마음과 행함으로 선을 쌓으며 하나님을 사랑해 나갔지요. 그리하여 누구보다도 승한 선과 사랑의 마음을 이룰 수가 있었으며 하나님께서도 이러한 에녹이 너무나 사랑스러울 수밖에 없으셨지요.
또한 에녹은 하나님과 300년간 동행하는 삶을 살면서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모함이 더욱 승해져 갔고, 마침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를 받아 산 채로 들림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너무나 사랑스럽고 기뻐하는 에녹이었기에 한 시도 떨어져 계실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혹여 어떤 분은 어짜피 에녹은 이 땅에서도 늘 아버지 하나님과 동행했는데 왜 하나님께서는 에녹을 굳이 일찍 데려가셔야만 했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동행해 주시는 것과 아예 곁에 두시는 것과는 전혀 다르지요.
'동행'이란 사전에 보면 '길을 같이 감'이라 정의하고 있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에녹과 동행해 주셨다는 것은 과연 어떤 의미일까요? 정말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직접 내려오셔서 에녹과 함께해 주셨던 것일까요? 그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이 땅에 내려오셔서 에녹과 함께 걷기도 하시며 대화를 나누셨다는 의미는 아니지요. 하나님께서 에녹과 동행해 주셨다는 것은 하나님과 에녹 사이에는 늘 교통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에녹의 삶 전체를 하나님께서 직접 인도해 가셨다는 의미입니다.
3. 하나님과 밝히 교통하였던 에녹
하나님께서는 에녹과 동행하시면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 말씀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영계의 무수한 비밀들과 천국에 대해서도 시시때때로 알려 주셨고, 앞일들에 대해서도 알려 주셨지요. 그래서 유다서 1:14-15에는 에녹이 장차 마지막 날에 되어질 일까지 예언한 내용이 나와 있습니다. "아담의 칠세 손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하였느니라" 말씀하고 있지요. 에녹은 이미 마지막 날에 주님께서 이 땅을 심판하시려 재림하시게 되실 것까지 알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에녹은 아버지 하나님과 밝히 교통을 이루었는데 때를 좇아 아버지 하나님을 뵈올 수가 있었습니다. 물론 아버지 하나님의 본체가 직접 이 땅에 내려와 에녹과 대면하여 보여 주신 것은 아니지만 마치 우리가 서로 얼굴을 마주 대하는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을 뵐 수가 있었지요. 전에 아담이 에덴 동산에 살 때를 설명드리면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에덴 동산에 오실 때는 영을 분리하여서 분리된 영이 오셨다고 했는데 에녹의 경우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에 보면 아버지 하나님을 뵈었던 사람 중에 모세 선지자가 있지요. 그런데 출애굽기 33:18 이하에는 하나님께서 모세 선지자에게 어떤 식으로 나타내 보여 주셨는지가 잘 나와 있습니다. 18절에 "모세가 가로되 원컨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청하자 하나님께서는 20-23절에 "또 가라사대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 곁에 한 곳이 있으니 너는 그 반석 위에 섰으라 내 영광이 지날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대답해 주십니다.
하지만 이때는 아직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킨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다시 말해 아직은 모세가 40년간의 광야 생활을 통한 연단을 거치면서 더욱 온전해지기 전이라는 말이지요. 이런 모세는 40년 광야 생활 동안 수백 만의 백성을 인도하면서 더욱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닮아가게 되었고 그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게 되었기에 그가 모든 사명을 마치고 120세의 생을 마칠 때를 보면 신명기 34:10에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에녹도 이러한 모세와 같이 하나님과 대면하여 알던 사람으로서 물론 에녹도 처음부터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뵈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모세에 비해 훨씬 오랜 세월을 이 땅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동안 아버지 하나님과 얼마나 가깝게 대화하며 교통할 수 있었다는 것을 능히 알 수가 있지요. 하지만 에녹이 아무리 아버지 하나님과 가깝게 대화하고 동행한다 해도 그것이 천국에서 직접 아버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옵는 것과는 다릅니다.
정말로 우리가 영이신 아버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뵈올 수 있으려면 우리도 온전한 영체로 변화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신 셋째 하늘에 올라가야만이 가능하지요. 고린도전서 13:12에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말씀한 대로 우리가 장차 천국에 가야만이 아버지 하나님의 얼굴도 주님의 얼굴도 대면하여 보며 아버지와 주님과 성령님에 대해서도 밝히 알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장차 우리가 천국에 간다 해서 모두가 아버지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대면하여 뵈올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사람만이 직접 뵈올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에녹은 이러한 자격을 갖추었기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에녹을 일찍 데려가심으로 그를 늘 곁에 두시고 얼굴을 마주 대하며 사랑을 나누시고자 했던 것이지요. 에녹을 이 땅에 둔 상태로 동행하시며 보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실 수가 없으시기에 아예 곁으로 불러 올리신 것입니다.
4. 성령시대에 하나님과 동행하려면
그렇다면 신약 시대에 즉 성령 시대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동행해 주시는 것일까요? 오늘날은 우리 안에 성령께서 계심으로 밝은 인도하심 가운데 우리와 동행해 주시며 주님께서 영으로 동행해 주십니다. 그리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의 축복과 보장이 예전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믿는 사람들도 '주님께서 나와 함께하신다'고 고백하는 것을 보는 데 주님께서 함께하시는 것과 주님께서 동행해 주시는 것과는 전혀 차원이 다릅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경찰의 임무는 국민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경찰관들은 항상 국민의 안전을 위해 이리 저리 살피고 다니며 범죄가 일어나지 않도록 예방하게 되지요. 그런데 이러한 경찰로 인해 받는 혜택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동일합니다. 하지만 만약 어떤 사람에게는 경찰관이 항상 따라다니며 보호해 준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 사람은 단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경찰의 보호를 받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보호받는 정도에서 차이가 날 것입니다. 이런 사람에게는 어떻게 감히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접근할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함께 해 주시는 것과 동행해 주시는 것과의 차이가 크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주 안에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할 때 주님께서는 비록 여러분에게 좀 부족한 것이 있어도 함께 해 주시며 지켜 주십니다. 물론 계속해서 어둠 가운데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빛이신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실 수가 없지만 공의의 선에서 벗어나지 않는 한 하나님께서는 자녀된 여러분과 함께 하시며 지켜 주시지요.
그런데 여러분이 온전히 죄를 버린 상태가 되면 즉 영으로 들어온 상태가 되면 이때부터는 하나님께서 여러분과 동행해 주시게 됩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늘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만사 형통의 길로 인도하시고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며 어떤 질병 균도 틈타지 못하게 지키시지요. 더군다나 원수 마귀 어떤 질병 균 마찬가지이지요. 원수 마귀 사단도 어찌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고 또한 주님의 영이 함께 역사해 주시면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이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니 어디를 가든 사랑 받고 인정받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사람이 되는 것이지요. 따라서 신속히 영의 사람이 되어 하나님과 동행하는 축복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결론
오늘은 에녹이 어떻게 아버지 하나님과 동행하였고 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었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 땅에 인간 경작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지만 이미 깊은 악으로 치달아가고 있는 인간들을 보실 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은 심히도 아프실 수밖에 없으셨지요. 그런 속에서 에녹이 태어났고 에녹은 그가 이 땅에 사는 동안에도 아버지 하나님의 기쁨이 되어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런 에녹을 통해 위로를 받으셨지요.
또한 이처럼 사랑하고 기뻐하시던 에녹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심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성결된다는 것이 얼마나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인가 표본을 삼으시고 후대의 사람들로 하여금 바라보며 달려갈 수 있는 푯대로 세워 주신 것이지요. 이제 에녹이 어떤 인물이었는지를 알았으니 에녹의 말씀을 여러분의 것으로 삼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삶을 영위할 수 있습니다.
이제 2002년도가 저물어갑니다. 올 한 해 동안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강해를 통해 그 누구도 알 수 없었던 수많은 영계의 비밀들을 풀어 주셨습니다. 피라미드, 인류 문명의 시작, 공룡, 에덴 동산과 그 곳의 삶, 육의 기운과 영의 기운 등 아버지 하나님께서 풀어 주신 내용은 너무나 많지요. 이러한 말씀들은 고린도전서 2:13에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라는 말씀처럼 결코 사람의 지혜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이며 아버지 하나님께서 풀어 주신 것들이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에게는 창세기의 귀한 말씀들이 얼마나 생명과 능력이 되셨는지요. 이러한 말씀들을 들을 때에 여러분의 믿음은 쑥쑥 성장했어야 할 것이고 그런 만큼 능력도 임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시간을 계기로 다시 한 번 새롭게 다짐하고 결단하는 여러분이 되셔서 증거되는 모든 말씀이 여러분에게 온전한 영의 양식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다가오는 2003년도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더 크고 비밀한 영의 말씀을 통해 더욱 깊은 영의 세계로 인도해 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4:14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