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83)
서론
지난 시간에는 900세 이상을 살던 당시의 사람들과 오늘날의 사람들과는 성장과 노화 과정에 있어서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900세 이상을 살던 사람들도 지금의 사람들과 성장 과정은 동일했으나 단지 성장 속도가 지금의 사람들보다는 좀 늦었다고 말씀드렸지요. 똑같이 15세라고 해도 900세 이상을 살던 사람의 15세 때와 오늘날 사람의 15세 때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가령 당시의 15세의 아이라 해도 오늘날로 보면 마치 10세 가량된 아이의 성장 단계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한 가지 예를 들어보면 오늘날의 사람들 중에도 사람들 사이의 성장 속도가 서로 다를 수 있지요. 예를 들어 똑같이 15세된 두 여성이라 해도 한 명은 경수가 시작되고 다른 한 명은 경수가 시작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입니다. 똑같은 나이이지만 성장속도의 차이에 따라 이러한 차이가 날 수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900세 이상을 살던 사람들은 모든 성장과정의 단계가 지금의 사람들보다 조금씩 뒤로 늦추어졌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다면 아이가 태어나기 전의 어머니의 뱃속에 있는 기간도 지금과 달랐을까요? 태아가 잉태되어 태어나기 전까지 어머니의 뱃속에서 성장하며 머무는 기간은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정해 놓으신 것으로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적용이 되지요.
지난 시간에 노화 과정의 차이점도 말씀드렸습니다. 900세 이상을 살던 당시의 사람들도 나이가 들면 노년기에 접어들게 되는데 그렇다해서 오늘날처럼 피부가 쪼글쪼글하거나 허리가 굽는 등의 일은 없다고 했지요. 다만 머리가 희어진다거나 자녀를 낳을 수 있는 능력이 끊어지는 것 등은 오늘날의 사람들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개인적인 차이는 있지만 누구나 나이가 들면서 결국은 청년기나 장년기와는 확연히 구분되는 노년기에 접어들게 되었고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에도 이르렀던 것입니다. 따라서 당시의 사람들이 비록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아이들을 낳은 것은 사실이지만 죽기 직전까지 아이를 낳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본론
1. 오랜 세월에 걸쳐 많은 자녀를 낳은 아담의 후손들
아이를 낳는 것에 있어서도 당시의 사람들과 오늘날의 사람들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습니다. 오늘날은 대부분의 여성들이 20대에서 30대 사이에 자녀를 낳는 것이 일반적이지요. 그 이상의 나이에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늘날 40대 이상의 여성이 아이를 낳는 것은 드문 것에 속합니다. 즉 중년의 나이만 되어도 벌써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지요. 그런데 900세 이상을 살던 당시의 사람들은 매우 오랜 기간에 걸쳐 자녀를 낳았다는 사실입니다.
본문 4절에는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했고, 6절 이하를 보아도 당시의 사람들이 수백 년씩 자녀를 낳으며 살았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이름이 기록된 자녀를 낳은 나이와 그 사람이 첫 번째 자녀를 낳은 나이와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15절을 보면 마할랄렐은 육십오세에 야렛을 낳았는데 18절을 보면 야렛은 일백 육십이세에 에녹을 낳았다 했지요. 마할랄렐과 야렛이 각각 자녀를 낳은 나이가 두배나 넘게 차이나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당시의 사람들 사이에도 사람마다 자녀를 낳는 나이가 다르기는 했지만 그래도 평균적으로 자녀를 낳는 나이가 있었지요.
따라서 야렛이 에녹을 일백 육십이세에 낳았다 하여 그 전까지는 자녀를 하나도 낳지 않은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만 그가 낳은 자녀들 중에서 일백 육십이세에 낳은 에녹이 대를 이어갈 자녀로 선택된 것이지요. 이는 육십오세에 야렛을 낳은 마할랄렐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마할랄렐 역시 야렛이 꼭 첫 번째 낳은 자녀가 아니라 그 이전에 낳은 자녀들도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당시의 사람들이 오늘날처럼 20세, 30세 이전에 결혼해서 많은 자녀들을 낳기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당시의 30세라면 매우 어린 나이에 속하지요. 몸은 다 성장했다고 해도 900년이라는 일생에 비하면 어린아이의 나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상의 계보에 그 이름이 오른 자녀들이 태어나기 이전에도 이미 다른 자녀들이 있었으며 다만 성경에는 남자 중에서 가장 첫째 자녀인 장자이거나 또는 대를 이을 만한 명분을 가진 자녀의 이름이 기록되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2. 셋의 후손들과 사람의 수명
6절에서 32절까지는 아담의 아들 셋으로부터 노아에 이르는 계보가 나오고 있는데 매우 의미가 큽니다. 지금으로부터 5-6000천년전의 역사에 대해 누가 누구를 낳았으며 그것도 몇 살에 낳았고 몇 살까지 살았는지를 이처럼 정확하게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지요.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기록을 통해 성경이 얼마나 정확하며 확실한 사실을 기록한 책인가를 우리들에게 알려 주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이렇게 정확한 기록이 있기에 우리는 6천년 인간 경작의 역사가 지금 어느 경점에 와 있는지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본문을 보면 사람마다 수명의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날처럼 사람마다 수명의 차이가 나는 것은 각 사람이 태어날 때 부모로부터 어떤 기를 받았고 또 잉태할 때의 조건이나 환경 등이 어떠했느냐에 따라 영향을 받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건강한 부모로부터는 건강한 자녀가 나오기 마련이지만 잉태될 때 어떤 씨가 결합되느냐에 따라 각 사람의 기본적인 기질이 결정되지요. 강한 기질을 타고나 건강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약한 기질을 타고나 건강치 못한 사람도 있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높은 지능을 가지고 태어나느냐 낮은 지능을 가지고 태어나느냐 온순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느냐 과격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나느냐? 이러한 것들도 다 어떠한 부모의 씨와 밭이 결합하여 아이가 잉태되었으며 또 어머니의 배속에 있는 동안 어떤 환경의 영향을 받았느냐에 따라 결정이 되지요.
하나님께서 누구는 예뻐하셔서 똑똑하고 건강하게 태어나게 하시고 누구는 미워하셔서 부족하고 약하게 태어나도록 정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생명을 잉태시킬 수 있는 근본 씨와 능력을 사람에게 주시고 잉태에 대한 기본적인 법칙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셨지만 결과까지 정해 놓으신 것이 아니지요. 결과는 사람의 뜻과 의지에 따라 변화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이러한 사실을 모른 채 고통을 받고 어려움을 당하는 것도 볼 수 있는데 마치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정해놓으셔서 일어난 것처럼 잘못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러나 인간 경작은 다만 하나님께서 정해놓으신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각 사람의 자유의지 가운데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앞으로 대예배 시간에 예지예정 설교를 통해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이처럼 각 사람의 타고난 기질이 다르기 때문에 사람마다 수명도 조금씩 달랐던 것이며 자녀를 낳는 나이나 자녀의 수도 다를 수밖에 없지요.
3. 죽음을 보지 않고 들림받은 에녹
21-24절에는 에녹에 관한 기록이 있는데 짧은 말씀이지만 많은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에녹이라는 분이 왜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을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닫게 되시기 바랍니다. 또한 히브리서 11:5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말씀한 대로 에녹은 어떻게 해서 하나님으로부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고까지 하는 인정을 받을 수 있었는지를 깨닫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산 채로 하늘로 들림 받아 올라간 성경상의 몇 안 되는 인물중의 한 분입니다. 로마서 6:23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했는데 에녹이 이처럼 죽음을 보지 않고 산 채로 들림을 받았다는 것은 그에게는 더 이상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율법의 저주가 적용되지 않음을 알 수가 있지요. 사람이 태어나 자라면서 짓게 되는 자범죄는 물론이고 부모로부터 타고난 원죄까지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에녹에 대해 성경에 기록해 놓으신 것은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악이 없는 사람, 다시 말해 선한 사람을 얼마나 사랑하시고 또 그런 사람을 곁에 두고 싶어하시는지를 알려 주시기 위함입니다. 결국은 이런 자녀를 얻으시기 위해 인간 경작도 하시는 것이구요. 이처럼 에녹은 성결된 영의 사람이었기에 빛이신 하나님께서 그와 동행해 주실 수가 있었고 나중에는 더 이상 이 땅에 두실 수가 없어서 일찍 아버지 곁으로 데리고 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에녹을 얼마나 사랑스러워하셨고 기뻐하셨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에녹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경작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성경에는 그의 성장 시절에 대한 내용이 없는데 19절에 그의 아버지 야렛이 에녹을 낳은 후 800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다는 말씀을 통해 당시 에녹에게 많은 형제가 있음을 알 수가 있지요. 이처럼 많은 형제들 속에서 성장한 에녹이지만 그 누구와도 걸리는 법이 없었습니다.
에녹은 형제들보다 더 가지고자 하지 않았고 양보해 주며 남들보다 인정받고 사랑받으려한 것이 아니라 오직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지요. '부모로부터 내가 더 사랑받아야지' 하는 마음에 다른 형제가 사랑받은 것을 언잖아 하지도 않았고 더 사랑받고 인정받기 위해 다른 형제들을 누르고 일어나려는 마음 자체가 없었던 것입니다. 욕심이나 사사로운 감정 자체도 없었으며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을 이루어 갔습니다.
이처럼 거룩함과 화평함을 쫓는 그였기에 히브리서 12:14에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말씀하신 대로 에녹에게 하나님을 뵈올 수 있고 동행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졌던 것이지요. 또한 에녹은 항상 순종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물론이고 부모님이 말씀하실 때도 결코 자신이 먼저 앞서는 법이 없었지요. 부모님 앞에 자신의 의나 주장을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의 말씀에도 그대로 순종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오직 선만을 좇았고, 진리만을 좇았기에 에녹은 므두셀라를 낳은 후 65세가 되자 마침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었지요. 그런데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 수 있었던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고 사모하는 에녹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을 바라보지 않았고 세상으로부터 즐거움을 얻으려 하지 않았으며 오직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만을 사랑했지요.
요한일서 2:15-16에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말씀하신 것과 같지요. 이러한 에녹이었기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모함은 날로 더 승해만 갔던 것입니다.
혹여 '당시에는 오늘날과 달라서 세상에 취할 것도 많지 않으니 세상을 끊는 것이 쉽지 않았을까?'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렇지가 않습니다. 여기서 세상이란 꼭 세상의 오락이나 육신적이고 정욕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지요. 예를 들어 에녹은 부모를 사랑하고 순종하며 형제간의 우애가 깊은 사람이었지만 그 무엇도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는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에녹은 자기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있는 것보다 홀로 있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기를 좋아했고, 하늘과 자연을 바라보면서 하나님만을 생각했지요. 또한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즐겨하여 늘 기도하기를 좋아했고 그 시간을 행복해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기 전에도 그랬지만 하나님께서 동행해 주시면서 더더욱 그러했지요.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기 전에도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모했는지를 잘 나타내 주는 그의 고백을 하나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천국에 가면 이러한 에녹의 고백이 그의 집 가장 눈에 잘띄는 곳에 기록이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되실 것입니다. 그 글씨들이 보석으로 찬란한 빛을 발하면서 눈에 뜨이는 곳에 박혀 있는 것이지요. 이 고백은 늘 하늘과 자연을 바라보며 꿈에도 그리워하던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모함을 담은 고백이지요.
4. 에녹의 고백
"지금까지 선조들로부터 받은 많은 가르침이 있었으되
내가 지금 이처럼 홀로 있는 시간들 속에서 주변의 나무들과 주변에 펼쳐져 있는
모든 것들을 보며 다시 한 번 정녕 이것은 누가 지으셨으며
이 광대한 것은 누가 만드셨을꼬라고 생각해 보는도다.
내 안에 계신 분, 이 아름다운 모든 것을 지으신 분,
내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그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를 지으신 그분이
끝도 없이 펼쳐진 모든 세계를 만드시고 우리 사람들을 생각하시고 사랑하신 바 되어
오늘날 이곳에 나를 있게 하신 아버지라는 분을 생각해 보는도다.
내가 홀로 있을 때 하늘을 바라보며 아버지의 얼굴을 그려보고
또한 땅을 밟아 편히 쉼을 얻을 때에도
아버지의 섭리하심과 광대하심을 느끼게 하는 내 마음의 이 감동.
내가 이와 같이 입을 열어 조상으로부터 배운 모든 것 속에서
아버지라는 분을 느끼고 찬양하며 하루하루 그분을 더욱 사랑하고
그분에 대한 사무침이 더해만 가는도다.
그분은 어떤 분이실까를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조상으로부터 배운 가르침보다도
내 마음에 그분에 대한 그리움이 더 진하게 다가오며 심히도 사무치는도다.
그분의 얼굴은 어떠신지, 어떤 웃음을 짓고 계시는지,
그분은 어떤 분이시기에 우리를 이곳에 보내사 이 땅의 숨결을 듣게 하시고
하늘과 그 하늘에 있는 별들을 느끼게 하시며
호흡하는 공기 중에라도 그분의 숨결을 느끼게 하시는지.
내 입술을 열어 그분을 찬양하게 하시고
내 입술을 열어 내가 깨달은 바를 고백하게 하시는 나의 아버지 그분은 누구이신가?
그 넓고 넓은 곳에 계신 그분을 내가 어찌 만나며
또한 그분을 어떻게 내 마음에 새기며 살 수가 있을까?
정녕 그분에 대한 그리움이 이처럼 사무치게 하시는 나의 아버지
그분은 과연 어떤 분이실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고백 안에는 에녹이 하나님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고 얼마나 뵙고 싶어하는지, 또 얼마나 사랑하며 사모하는지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에녹은 어려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조상들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들어왔지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고 어떻게 이 세상을 창조하셨으며 어떠한 과정을 통해 인간이 이 땅에서 경작을 받게 되었는지 등에 대해 들었습니다. 그럴수록 에녹의 마음에는 하나님에 대해 더욱 알고 싶어졌고 하나님을 뵙고 싶은 마음이 더해만 갔던 것입니다. 오직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갈 수 있을까 하는 생각뿐이었지요. 이런 마음이었기에 어찌하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원했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삶을 살기 원했습니다.
그러니 이러한 에녹을 보실 때 어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감동되지 않으셨겠습니까? 시편 42:1에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는 고백처럼 아버지를 만나고 교통하기에 갈급해하는 에녹에게 하나님께서 와 주실 수 밖에 없으셨지요.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에녹과 동행해 주셨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직접 내려오셔서 에녹과 함께해 주셨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동행의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성경상에는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나오는데 우리가 본받아 할 특징적인 면들이 있지요.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으로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들 수 있었고, 모세 선지자는 출애굽의 지도자로서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온유함이 승한 그의 온유함을 들 수가 있지요. 다윗 왕에게서는 어린아이와 같이 순수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들 수 있으며 연단을 통해 정금같이 나와 쓰임 받았던 모습도 우리들에게 큰 교훈이 되어집니다. 또한 다니엘의 타협지 않은 믿음, 사도 바울의 주를 향한 식을 줄 모르는 열정, 엘리야 선지자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과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담대함 등도 있지요.
물론 이 밖에도 여러 다른 여러 가지 장점들이 있고 본받을 만한 믿음의 선진들도 많이 있는데 하나님께서 이러한 인물들에 대해 기록해 놓으신 것은 바로 우리들로 하여금 그들의 모습을 본받아서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변화되어 나오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에녹에 대해 성경에 기록해 놓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에녹은 특별히 충성을 했다거나 어떤 사역을 감당한 것이 없습니다. 권능을 행했다는 기록도 없지요. 그러나 그것은 당시의 시대적인 상황으로 볼 때 에녹에게 그러한 사역을 시키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질병에 고통받는 사람도 없었고 눈에 보이는 권능의 사역을 통해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알려야하는 상황이 아니었지요. 또 사람들을 회개시키고 통회자복시켜서 구원에 이르게 해야 할 만한 사역의 필요성이 그만큼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에녹은 시대적 상황 속에서 권능의 사역으로 하나님을 알리고 사람들을 구원에 이르게 하는 도구로서가 아니라 평범하고 평안한 삶이기는 하지만 그 삶 자체를 통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었지요. 악은 모양이라도 버렸고 하나님을 너무나 사랑하였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람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에녹을 성결된 자의 표상으로 삼아 성경에 기록해 놓으신 것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성결을 얼마나 기뻐하시는지 바로 후대 사람들을 통해 깨닫게 해 주시고 시대적인 상황이기는 하지만 오직 선하고 성결된 모습이 되었다는 사실만으로 에녹은 하나님으로부터 말할 수 없는 사랑과 축복을 받았다는 사실입니다. 본분 24절에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말씀하신 것만으로도 그 사실을 충분히 알 수가 있지요.
여러분은 이러한 에녹이 사모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오늘 들으신 에녹의 삶을 다시 한 번 되새기시며 여러분도 그러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 보십시오. 악이 없어 거룩하며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을 좇는 삶, 아버지 하나님과 질서를 좇아 순종하는 삶,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않고 내 가족, 내 자녀, 남편, 형제보다도 오직 첫째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 날마다 삶 속에서 하나님만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그리워하며 사모하는 삶, 아버지 하나님과 교통하기를 원하며 늘 기도하고 하나님 뵙기를 사모하는 삶, 범사에 헤아려 아버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삶, 여러분이 이러한 삶을 산다면 영안이 열리지 않을 분이 없을 것이고 하나님과 교통하지 못하는 분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으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는 증거가 여러분의 삶 곳곳에서 나타나게 되지요. 에녹이나 성경상의 인물들만이 아니라 여러분도 얼마든지 그렇게 될 수가 있습니다. 오늘 들으신 말씀이 은혜와 능력이 되시고 큰 소망이 되셔서 여러분도 신속히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인정받는 축복된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4:14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