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82)
서론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인간을 경작하시면서 사람들의 악으로 인해 심히 마음 아파하셔야 했지만 그래도 그 마음에 기쁨이 되는 자녀들이 있기 때문에 위로를 받고 계십니다. 이는 우리 사람들과 마찬가지이지요. 직장에서 힘들고 마음 상하는 일이 있다 해도 가정에서 마음에 기쁨이 되는 자녀를 보면 모든 피곤과 근심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며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던 아담과 하와에게도 이처럼 기쁨과 위로가 되는 자녀들이 있었는데 바로 가인과 아벨이었습니다. 그러니 아담과 하와는 이들에게 각별한 사랑을 주게 되었고 다른 자녀들은 각자의 분깃을 주어 떠나보냈음에도 가인과 아벨과는 함께 살았지요.
그런데 세월이 지난 후 가인과 아벨 사이에서 비극적인 살인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로 인해 사랑하던 아들 아벨을 잃었고 범죄한 가인마저도 떠나 보내야 했으니 아담과 하와가 겪어야 했던 마음의 고통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이러한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한 아들이 태어나게 되니 "하나님이 내게 가인의 죽인 아벨 대신에 다른 씨를 주셨다"하며 이름을 셋이라 하였지요.
새로 얻은 아들 셋은 아담과 하와에게 기쁨과 위로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담의 계보를 이어갈 아들로 선택받게 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낳은 많은 자녀들 중에 셋이 가장 아버지 아담을 닮았기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택하여 아담의 계보를 잇게 하셨습니다. 오늘은 이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본론
1.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셋의 후손들
창세기 4:26을 보면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했는데 여기서 "그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다시 말하면 그전까지는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곧 하나님을 찾지 않았다는 뜻이니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이 땅에 인간 경작이 시작된 이후에 얼마나 빠른 속도로 사람들이 하나님과 멀어져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담의 자녀들 중에 셋을 통해 이어진 계보를 제외한 다른 자녀들과 그들을 통해 퍼져나간 사람들 사이에서는 하나님이라는 존재가 빠르게 흐려져 갔고 자신들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가 근본 어디서 왔으며 왜 이 땅으로 쫓겨오게 되었는지 등에 대한 사실들에 대해서도 무디어져 갔던 것입니다. 이 세상과 세상에 있는 사람들을 공중권세잡고 있는 악의 영들이 빠르게 주관해 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며 이로 인해 사람들은 점점 더 깊은 악으로 빠르게 물들어가고 있었지요.
이런 사람들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자들을 택하여 인간 경작의 역사를 이어 가셨습니다. 그래서 아담이 낳은 많은 자녀들이 있었지만 아들 셋을 통한 계보 이외에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육체의 사람들로 변질되어 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노아의 대에 이르러서는 노아와 그 가족들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심판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까지 이르렀던 것이지요. 이 땅에 인간 경작이 시작된 지 1600여 년만의 일이었는데 성경에 나오는 년대를 합산하면 홍수까지 정확하게 1656년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을 이미 다 아시기에 장차 당대의 의인 노아라는 인물이 나올 수 있도록 그의 조상으로서 아담의 아들들 중에 가장 합당한 셋을 선택하여 세우셨던 것이지요. 그래서 노아가 바로 셋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며 그 중간에는 에녹이라는 위대한 인물까지 나왔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에녹에 대해 비록 짧게 기록되어 있지만 여러분은 영적으로 에녹이 어떠한 인물이었는지를 잘 아시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에녹의 삶에 대해 궁금해하실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설명하기로 하고 창세기 5장을 통해 노아라는 인물이 나오기까지 아담의 계보가 어떻게 이어졌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첫 사람 아담의 축복
창세기 5:1에 "아담 자손의 계보가 이러하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시되"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우리 인간이 어떠한 존재로 만들어졌는지를 깨달아 볼 수 있습니다. 인간은 바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이지요. 외형만이 아니라 근본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을 닮았고, 하나님과 서로 교통할 수 있는 존재, 서로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로서 지음 받았습니다.
물론 이처럼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았다 해서 처음부터 온전한 존재로 지음받은 것은 아니며 인간 경작을 통해서만이 정녕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온전한 참자녀로 나와지게 되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두심으로 이로 인해 우리 인간이 이 땅에서 경작받으며 연단의 수고로움과 상대성을 체험하기 위한 갖가지 과정들을 겪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해서 나와진 참자녀를 통해 세세토록 기쁨과 위로를 얻으시지요. 이를 위해 지금까지 수많은 세월을 참고 인내하시며 인간을 경작해 오셨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정녕 당신의 형상을 닮은 자녀를 원하십니다. 그러한 자녀와 영원토록 사랑을 나누기 원하시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고 계신 분으로서 신성적인 면만으로 볼 때는 감히 그 누구도 가까이 할 수 없을 만큼 고결하고 숭고한 분이시지만, 인성적인 면으로는 너무나 인자하시고 다정하시며 부드럽고 포근한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장차 천국에서 아버지 하나님과 나눌 사랑도 막연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의 어떠한 사랑보다 더 다정하고 친근한 모습이라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인성적인 사랑을 인간의 인성적인 사랑과 비교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인성적인 사랑은 온전히 영적인 사랑 안에 속한 것이지만 인간의 인성적인 사랑이란 그 안에 온갖 비진리의 악의 모양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대부분 육적인 사랑이 되고 말지요. 하나님의 인성과 인간의 인성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성에 속한 사랑은 온전히 영으로 이룬 사람이라고 해도 장차 천국에 가서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다만 이 시간 여러분이 아실 것은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너무나 사랑이 많으신 분으로서 정녕 자기의 형상을 닮은 참 자녀를 얻으시기 위해 인간에 대한 말할 수 없는 사랑과 애착을 가지시고 이 땅에 인간을 경작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어지는 5:2에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사람 아담과 그에게 주신 여자 하와를 창조하시고 그들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바로 창세기 1:28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말씀한 대로 만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권세와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났을 때는 그들에게 임했던 복도 사라지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처음 사람을 지으실 때부터 근본적으로 사람에게 복 주기를 원하시며 또 복 주기를 좋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복을 주실 수 있는 것은 아니지요. 첫사람 아담이 범죄함으로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가는 만큼 준비된 그릇이 되어 축복을 받을 수가 있지요. 히브리서 6:14에 "가라사대 내가 반드시 너를 복 주고 복 주며 너를 번성케 하고 번성케 하리라" 약속하신 대로 준비된 그릇에게는 반드시 복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사람에게 복 주기를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산 사람에게는 마지막 날에 주어질 영원한 복이 있지요. 바로 영생의 복이며 또한 이 땅에서 심은 대로 행한 대로 주시는 하늘의 영원한 상급이 있는 것입니다.
3. 셋을 통한 아담 자손의 계보와 인간 수명의 차이
창세기 5:3-5을 보면 "아담이 일백 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구백 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말씀합니다.
여기서 "아담이 일백 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했는데 이는 아담이 이 땅에서 일백 삽십 년이라는 경작의 세월 동안 많은 연단을 받은 후에 이제 어느 정도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그 사랑을 중심에서 느끼게 되었을 때의 일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에덴 동산에서 상대성을 모른 채 마치 어린아이처럼 살아가던 아담이 아니었지요. 단순히 죄를 지으면 안 된다고 머리로 아는 차원이 아니라 죄가 얼마나 싫은 것이며 더럽고 추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 것입니다.
아담은 가인과 아벨 사이에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을 보았고 이 땅에 인간이 살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시간동안 자신의 후손들로 인해 행해지고 있는 수많은 죄악된 모습들을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도 깨닫게 되었고 전에 자신이 범죄했을 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는 것도 조금이나마 헤아려볼 수가 있게 되었지요. 이제는 자신을 사랑하고 축복해 주시며 영원한 생명을 주시고자 했던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며 마음 중심에서 감사가 나왔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상태에서 낳은 아들이 바로 셋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라고 할 만큼 그 마음이 아버지인 아담을 닮았고 하나님께서도 아담의 자녀들 중에서 셋을 통해 아담의 계보를 잇게 하셨지요. 아담은 아들 셋을 낳은 후에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다가 구백 삼십 세를 향수하고 죽었는데 오늘날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을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노아의 홍수를 기점으로 인간의 수명이 점점 줄어들면서 마침내는 시편 90:10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말씀한 대로 칠, 팔십 세에 이르게 되었지요. 오늘날 아무리 의학과 과학이 발달했다고 해도 백세를 넘기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담의 때와 달리 오늘날 이처럼 수명이 줄어들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의 죄악 때문입니다. 영생할 수 있었던 아담이 이 땅으로 쫓겨와 구백 여 년이라는 한정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것도 결국은 죄 때문이었지요. 죄로 인해 이 땅에는 각종 질병과 균들이 생겨나게 되었고 사고, 재앙 등으로 인한 슬픔과 고통, 사망이 인간의 삶에 들어오게 된 것입니다.
아담이 이 땅에 내려와 살 당시만 해도 이 땅의 환경이 지금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지금처럼 이름을 알 수도 없이 수많은 질병과 균들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자연도 처음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자연의 법칙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때였지요.
예를 들어 햇볕 하나만 놓고 보아도 오늘날은 지구를 보호하고 있는 오존층의 파괴 등으로 인해 오랜 시간 햇볕에 노출될 경우 갖가지 피부 질환이나 암을 유발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이런 염려들이 없었고 오늘날과 같이 각종 자연 재해나 재앙, 사고의 위험 등도 적었습니다.
그런데 노아의 홍수를 기점으로 이러한 자연의 법칙들이 차츰 파괴되어 갔지요. 인간에게는 갖가지 질병과 연약함이 들어오게 되고 신체가 노화되는 속도도 훨씬 빨라졌습니다. 결국 사람들 가운데 악이 더하면 더할수록 이 세상은 점점 더 사람의 수명을 단축시키는 쪽으로 변해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사람에게 해를 주는 것들이 갈수록 많이 생겨났고 자연의 법칙도 점점 깨어져감으로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며 단축시키는 많은 원인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더욱이 오늘날은 사람들이 발전시켜온 과학이 오히려 인류의 생존을 위협하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환경 오염은 물론이고 전 인류를 멸망시킬 만한 엄청난 핵의 위험 앞에 사람들은 항상 불안해하고 있지요. 장차 이 땅에 불어닥칠 7년 환난도 마침내는 핵에 의한 3차 대전으로 나타나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을 몰고 오게 됩니다.
4. 아담 당시 사람들의 성장과 노화과정
다니엘서 12:4에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말씀하고 있는데 마지막 때가 가까워올수록 세월의 흐름도 점점 더 빨라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사람들이 옛날 사람들에 비해 훨씬 더 시간을 절약하여 넉넉할 것 같은데 사실은 오히려 더 시간에 쫓기고 있지요. 앞으로 남은 시간이 얼마 없기 때문에 이처럼 시간이 더 빠르게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구백 세를 넘게 살던 당시에는 사람들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이 어떠했을까요? 그때는 상대적으로 시간의 흐름이 느리게 느껴졌습니다. 어찌 보면 구백 년이라는 일생에 비교해 볼 때 하루라는 시간이 매우 짧았으리라 생각할 수도 있지만 오히려 앞으로 남은 시간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하루 하루를 더 여유롭게 평안한 마음으로 지냈던 것이지요.
따라서 구백 세를 넘게 살던 아담 당시의 사람들과 오늘날과의 사람들과는 시간의 흐름을 느끼는 정도도 달랐을 뿐만 아니라 신체적으로 볼 때도 몸의 성장과 노화과정에 있어서 많은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물론 구백 세를 넘게 산다 해도 오늘날의 사람처럼 유년기, 아동기, 청년기, 장년기, 중년기, 노년기와 같은 성장과 노화의 과정을 거치는 단계는 같았습니다. 유년기에서 갑자기 청년기로 또는 청년기에서 노년기로 가는 것이 아니라 구백 년이라는 세월을 맞는 각각의 성장기가 있었지요. 하지만 각각의 성장기를 나누는 기준이 지금과는 당연히 달랐습니다.
예를 들어 오늘날의 사람들은 초등학교에 다니는 나이인 12-13세 정도까지를 아동기라고 부르고 그 이상부터를 청소년기라고 부른다면 구백 세를 살 당시에는 그보다는 더 나이가 들어야 청소년기에 해당했던 것이지요. 지금보다 성장의 속도가 조금은 더 느렸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지만 성장을 하면서 겪게 되는 각각의 과정은 오늘날의 사람과 동일했습니다. 어린아이가 태어나서 시간이 지나면 기어다니다가 다음에는 뭔가를 짚고 일어나게 되지요. 그 다음에는 조금씩 걷게 되고 다음으로 더 시간이 지나면 뛸 수도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아담 당시의 구백 세를 살던 사람들도 동일한 성장 과정을 겪었으며 단지 이렇게 점차 발전해 가는 시간이 오늘날의 사람들보다는 늦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자녀를 낳을 수 있는 나이도 지금보다는 늦었지만 일단 성장한 후에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노화 속도가 늦었지요. 따라서 오늘날과 매우 다른 특징 중의 하나는 노화한다고 해서 오늘날의 사람들처럼 몸에 기운이 빠져 초라하고 불쌍한 모습이 되거나 뼈가 굳어지고 휘어지며 피부가 쪼글쪼글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물론 당시의 사람들도 노년기에 접어들게 되면 더 이상 아이를 낳을 수 없게 된다거나 몸의 세포가 죽어 가는 것과 같은 노화의 과정들을 겪었지만 오늘날의 사람들처럼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겉모습이 초라해진다거나 흉해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여러분도 영으로 들어오는 만큼 비록 나이를 먹어도 피부는 여전히 부드럽고 탄력이 있으며 몸도 젊은 시절과 별로 다른 것을 느끼지 못하지요.
이처럼 아담 당시의 사람들은 그만큼 악이 없고 선했기에 신체의 성장 과정에 따라 노년기에 접어들기는 했지만 그것이 오늘날과는 개념이 달랐습니다. 나이가 들어 죽을 때에도 몸이 늙고 쇠약해져서 힘들게 살다가 죽는 것이 아니라 몸에서 자연스럽게 기운이 다 소진되면서 숨을 거두었지요. 그래서 창세기 25:8에는 아브라함이 죽을 때 "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했고 창세기 35:29에도 "이삭이 나이 많고 늙어 기운이 진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말씀했습니다.
그렇다면 혹여 이런 궁금증이 생기는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구백 세를 넘게 산다면 아이는 엄마 뱃속에서 얼마 만에 태어났을까요?" 다음 시간에는 이에 대한 답변과 함께 사람들이 성장하는 과정의 차이점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결론
이처럼 수천 년 전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까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성경을 정확하게 이해하면 성경에 기록된 사실들을 온전히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냥 단순히 "아담 당시의 사람들은 구백 세가 넘도록 살았습니다" 말한다면, 오늘날의 사람들은 이해가 되지 않지요. 또한 '어떻게 사람이 구백 세를 넘게 살 수 있는가?' 하며 의문을 품게 되면 성경에 대한 확신마저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사람들이 어떻게 구백 세가 넘게 살 수 있었고 오늘날의 사람들과는 어떤 차이점들이 있었는지를 자세히 알게 되면 생각 속에 막혀있던 성경에 대한 오해들이 풀어져 나가면서 마음으로부터 믿어지게 됩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여 자세한 내용까지 풀어드리는 것인데 이는 결국 여러분이 더 큰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 있도록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일점 일획도 틀림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5:18에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말씀한 대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깊은 하나님의 말씀까지 풀어주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더욱 온전한 하나님의 자녀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요한일서 3:2-3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말씀하셨으니 우리를 데리러 오실 그 날에 주님의 영광에 동참하려는 소망으로 열심히 주님을 닮으며 자신을 깨끗케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4:14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