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79)
서론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범죄를 너무나 잘 알고 계셨지만 당장 가인을 벌하신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원하셨습니다. 가인이 범죄하기 전부터도 이미 여러 차례 권면하시며 기회를 주셨고 범죄한 후에도 회개의 기회를 주셨던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공의의 법칙까지 무시하시면서 무조건 용서하실 수만은 없지만 어떻게든 끝까지 참고 또 참으시며 긍휼을 베풀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가인처럼 큰 죄악을 행한 사람에게라도 용서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 원하시는 분이시니 고린도후서 6:2에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말씀하신 대로 은혜를 베푸실 때 회개하고 구원의 문이 열렸을 때에 들어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전도서 3:1에도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나니" 말씀하셨지요.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때가 있고, 축복의 기회를 주시는 때도 있으며, 연단이나 시험을 허락하시는 때도 있습니다. 이러한 때를 놓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으로 나가는 사람이 진정 지혜로운 사람인데 가인은 그렇지를 못했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회개의 기회를 주셨음에도 정녕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회개를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본문 13절을 보면 가인이 하나님께 "죄벌(罪罰)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고백하고 있지만 이것은 마음 중심에서 나오는 진정한 회개가 아니라 단지 하나님의 권세와 위엄 앞에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나오는 고백이었지요. 그러니 가인에게는 결국 그가 행한 죄에 대한 보응이 임할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본론
1. 하나님의 공의 가운데 심은 대로 거두는 영계의 법칙
하나님께서는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공의의 법칙에 따라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따라서 11-12절에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말씀하신 대로 가인에게 저주가 임하게 되었습니다.
가인으로 인하여 동생 아벨의 피가 뿌려진 땅이 다시는 가인에게 효력을 주지 않게 된 것입니다. 땅이 효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 안에 지킴을 받지 못하고 보장받지 못한다는 의미입니다. 만일 농사를 짓는다면 햇볕과 비, 바람과 기후 등을 비롯한 여러 가지 조건이 알맞아야 하며 병충해로부터도 지킴을 받아야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는데 이러한 것을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지요.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와 도우심이 없다면 땅으로부터 풍성한 소산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제가 약 2주일 전에 읽어드린 3남선교회 성도님의 간증을 들으셨지요? 어떠한 세상 방법도 동원하지 않고 오직 권능의 단물에 의지하여 농사를 지었을 때에 얼마나 놀랍고 풍성한 수확의 축복을 받았습니까? 벼 한 이삭에 150개, 200개 열리는 벼 낱알들이 무려 400개 또는 그보다 넘게 열렸다고 하지요. 더구나 한해 농사가 2년 지은 농사 이상이 되었다고 하니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이러한 소문이 퍼져 농사를 지은 벼가 씨 종자로 다섯 마지기나 나갔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역사하시면 이처럼 땅이 효력을 더욱 크게 나타내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영계의 법칙을 깨닫지 못하고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여 스스로 축복의 문을 막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십의 일조를 내는 것이 아까워 온전한 십의 일조를 드리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십의 일조 중에 드리지 않는 만큼 남는 것 같으나 결과는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잃게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영계의 법칙은 정확해서 만약 죄를 심으면 시험 환난 등의 갖가지 문제들이 찾아오고, 믿음과 선과 사랑과 의를 심으면 축복이 찾아오게 되지요. 따라서 어떤 문제나 어려움이 찾아온다면 무엇보다 먼저 '내가 하나님 앞에 혹여 합당하지 못한 것으로 심은 것이 있는가?' 살펴야 합니다.
어떤 분들은 열심히 심는데도 열매가 나타나지 않는다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질로 열심히 심는다고 하는데도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경우, 하나님 앞에 충성한다고 하는데도 열매가 나지 않는 경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데도 하나님 편으로부터 사랑의 증거가 따르지 않는 경우들이 있다면 먼저 자신과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하지요. 죄의 담이 있으면 그 담을 허물 때까지 열매를 거두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심은 대로 거두지 못하는 경우 중에는 잘못 심었기 때문에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8에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말씀하셨으니 혹여 자신의 유익을 위해 심거나 억지로 마지못해 심으면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시니 축복을 주실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리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의 뜻과 전혀 맞지 않게 엉뚱한 곳에 심기 때문에 열매를 거두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요. 예를 들면 구제를 해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구제를 해야 하고, 찬조도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전혀 기뻐하시지 않으며 스스로 노력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구제하고 찬조한다면 이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어떤 분들은 특별한 죄의 담이 있어서가 아니라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 아직은 축복받을 그릇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축복 주실 때를 기다리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경우는 그릇만 준비되어지면 이전에 심은 것까지 다 갚아 주시지요. 그것도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갚아 주십니다.
이처럼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물론 열심히 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마음에 할례를 하여 축복 받을 그릇을 준비해 나가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경우들에 대해서도 잘 분별하여 하나님 앞에 합당하게 심고 30배, 60배, 100배의 축복을 받아 누리시기 바랍니다.
2. 마침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죽음을 두려워하는 가인
일단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자신의 죄를 고백하기 시작한 가인은 마침내 죽음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14절을 보면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고백하지요.
여기서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이라는 것은 가인이 그동안 누려오던 모든 것을 잃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아버지인 아담으로 받아 누렸던 자신의 분깃을 잃게 된 것이지요. 그러면서 자신이 행한 죄가 얼마나 중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겠다는 고백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이전에는 가인이 직접 주의 낯을 뵈올 수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동안은 아버지인 아담이 하나님과의 교통을 통해 가르침 받은 내용들을 전수 받을 수가 있었고 가인 자신 또한 어느 한계 내에서는 하나님과 교통할 수도 있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과의 모든 교통이 끊어지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어둠 가운데 거하는 사람은 빛이신 하나님과 교통할 수가 없으며 그 앞에 담대히 나갈 수도 없고 설령 나간다 해도 두려워 떨게 되지요.
여러분은 하나님이 친근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십니까? 아니면 무섭고 두렵게 느껴지십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결코 무섭거나 두렵지가 않습니다. 요한일서 5:3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말씀한 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 안에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도 담대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3:21-22에는 "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고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그에게 받나니 이는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고 그 앞에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함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설령 어떤 일로 하나님 앞에 죄송하고 민망한 경우가 있다 해도 무서워 숨거나 피하는 것이 아니라 신속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 회개하고 돌이켜 다시금 그 품에 안길 수가 있습니다. 마치 부모님을 사랑하는 어린아이가 어떤 잘못이 있어 야단을 맞았다 해도 서운함이나 두려움 같은 것이 없고 이내 부모님의 품안에 안겨오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살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담대함을 얻을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만약 어떠한 죄를 지었을 때에는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려 하기보다는 오히려 숨거나 피하려고 합니다. 그러니 이런 모습을 보실 때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더욱 아프실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모습은 목자 앞에 나오는 분들을 보아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의 종이나 일꾼, 양 떼에 대해 알려 주시니 한 사람 한 사람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어둠 가운데 거하는 영혼을 대할 때 겉으로 내색을 한다거나 상대를 멀리하고자 한 적이 없고 오히려 더욱 관심을 갖고 사랑으로 대하여 상대가 회개하고 돌이키기를 바라는 마음이지요. 하지만 어두움 가운데 있으면 제 앞에 나오기를 주저하는 것을 봅니다. 본인 스스로도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알기에 더더욱 나오기를 꺼리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자신의 잘못이 있을 때 즉시로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설령 그 당시에는 저에게 책망을 듣는다 해도 서운함을 품는다거나 피하려는 마음이 없고 변함없이 목자 앞에 나오는 것을 보게 되지요. 이처럼 목자를 진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설령 지적을 당하고 책망을 듣는다 해도 그 마음이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저도 이런 사람에게는 비록 전에 잘못이 있었다 해도 이제는 회개하였으니 더 이상 제 마음에서 그 일을 기억조차 하지 않게 되며 오히려 더욱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게 되지요.
하나님 편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이 많으신 분인가를 안다면 하나님 앞에 나오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지 않거나 하나님의 사랑을 너무나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낯을 피하게 되는 것이지요.
3. 가인이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인가?
가인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죽음을 두려워하여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말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 대해 매우 궁금해하는데 우리는 가인의 말을 통해 당시에 가인 이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이 땅에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과연 누구일까요?
아담과 하와가 최초로 이 땅에서 살게 되었고 그들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의 이름만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들 이외에 또 누가 있었던 것일까요? 성경에 기록된 계보를 살펴보면 설령 많은 자녀들을 낳았다 해도 그 중에서 다음 대를 이어갈 자녀의 이름만을 기록해 놓았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만약 성경 안에 각 세대에 태어난 모든 자녀들의 이름과 그들의 일생에 대해 다 기록한다면 어찌되겠습니까? 그러니 성경의 역사는 당연히 중요한 인물을 위주로 기록되는 것이며 계보를 기록할 때에도 특별한 내용이 없는 이상은 그들의 이름만 간략히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성경에 비록 아담과 하와의 자녀들 중에 세 명의 이름 가인, 아벨, 셋만 기록되어 있다 해서 그들에게 세 아들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지요. 또 한 가지 놓쳐서 안 될 부분은 가인이 아담과 하와가 낳은 첫 번째 자녀는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다만 하와가 가인을 낳은 후에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고백한 것으로 보아 가인이 아담과 하와 사이에서 태어난 첫 번째 아들이라는 사실은 확인할 수가 있지요.
그러므로 아담과 하와는 가인을 낳기 전에도 이미 여러 명의 아이를 낳았으며 그들은 아들이 아니라 여자였으며 뿐만 아니라 아담과 하와는 가인과 아벨을 낳은 이후에도 많은 자녀들을 낳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창세기 5:3-4에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이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기록하고 있으니 아담이 셋을 낳은 후에도 계속해서 많은 자녀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담이 가인과 아벨을 낳은 후 일백 삼십세에 셋을 낳을 때까지 다른 자녀들을 낳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이때도 여러 명의 자녀를 낳았고 그들 중에는 딸만이 아니라 아들들도 있었지요.
다만 성경에 아담의 여러 아들들 중에서 가인과 아벨, 셋의 이름만을 기록한 것은 그들이 당시 인류 역사의 중심 인물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후대 사람들에게 영적인 큰 깨우침을 주시기 위해 기록된 것이었고, 아담이 일백삼십 세에 낳은 아들 셋이야말로 아담의 계보를 이어갈 아들이었던 것이지요.
여기서 여러분이 자세히 살필 것은 창세기 5:3에 "아담이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라 말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가인이나 아벨 역시 아담의 모양을 닮았겠으나 특별히 셋이라는 아들을 낳았을 때 "일백 삼십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셋은 아담이 이 땅에서 일백 삼십 년 동안 경작받으며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달아 알게 되고 그만큼 성결을 이룬 후에 비로소 낳은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셋을 통해 아담의 계보를 이어가게 하셨지요. 셋이라는 아들을 낳았을 때에 비로소 아담은 모든 희로애락을 맛보았고 철저히 깨우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알며 감사할 줄 아는 아담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모든 연단을 받았다는 이야기이며 인간 경작을 받았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정말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이 얼마나 자기를 사랑해 주셨는지 또 얼마나 감사한지 이러한 모든 것들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나서 낳은 아들이 셋이므로 비로소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았다고 표현한 것이지요.
여기까지 설명을 들으셨으니 가인이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 하며 두려워했던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바로 아담과 하와가 낳은 가인의 또 다른 형제들과 장성한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지요.
4. 가인과 아벨 외에 아담과 하와가 낳은 자녀들
그러면 당시의 상황에 대해 좀더 자세히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지난 시간에 가인과 아벨은 아버지 아담으로부터 각각 농사짓는 일과 양치는 일을 전수 받았다 했는데 아담과 하와에게는 이들 이외에도 많은 자녀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담은 이들이 장성한 후에는 각각의 분깃을 떼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가인이 태어나기 전에 낳은 여러 명의 딸들과 가인과 아벨이 태어난 이후에 낳은 자녀들은 대부분 아담과 하와로부터 분깃을 받은 후에 자신들의 터전을 마련해 떠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과 아벨만은 부모를 떠나지 않고 함께 살면서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농사와 양치는 일을 했다는 사실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집안의 가업을 이어받았던 것이지요. 그 이유는 가인과 아벨이 바로 아담과 하와의 가장 사랑받던 자녀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아담과 하와가 이 땅에서 경작받으며 가장 힘겹고 어려울 때 낳은 자녀들로서 이들은 아담과 하와에게 큰 위로와 기쁨이 되어 주었지요. 특히 아담은 아들 아벨을 심히 사랑하였고 하와는 아들 가인을 심히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자녀들은 장성한 후에 다 각자의 터전을 마련하여 떠나보내면서도 가인과 아벨만은 자신들 곁에 두었던 것이지요.
아담과 하와를 떠난 다른 자녀들은 각자의 터전을 마련해 살게 되었는데 그러면서 자연히 그들 사이에서 서로 배우자를 찾아 자손을 이어가게 된 것입니다. 물론 한 부모에게서 난 형제, 자매 사이였지만 그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지요. 이렇게 해서 결혼하여 자녀를 낳게 되고, 그 자녀들이 자라서 또 결혼하여 자녀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였을 당시 이들이 주변에 퍼져 살고 있었던 것입니다. 당시에는 자녀를 한둘만 낳을 때도 아니고, 사람의 수명이 구백 살 정도였기 때문에 아담이 낳은 많은 자녀들과 또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왕성하게 생육하고 번성하였습니다. 수학적인 지식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당시 인구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날 수 있다는 사실을 얼마든지 이해하실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아담이 살던 곳을 중심으로 주변에 퍼져 살게 된 아담의 후손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가인이 동생 아벨을 쳐 죽였다고 하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지요. 그리고 그들은 같은 피를 나눈 형제로서 형제 사이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이런 크나큰 악을 행한 가인을 향해 당연히 분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인은 바로 형제들의 이러한 분노가 혹여 자신에게 어떤 해를 끼치게 되지 않을까 하여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그렇지 않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말씀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만나는 누구에게든지 죽임을 면케 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크신 사랑을 베푸시며 다시 한 번 가인에게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주신 표 즉 가인으로 하여금 죽음을 면케 하신 표란 과연 어떤 것일까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이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구약 시대는 각 사람의 행위에 따라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공의를 행하시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지만 구약 성경 곳곳을 살펴보면 너무나 깊고 크신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아도 하나님께서는 동생을 죽이는 크나큰 악을 행한 가인에게 끝까지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크나큰 사랑을 느낄 수 있습니다. 가인이 만약 죽임을 당하게 되면 구원에 이르지 못했을 수도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죽음을 면할 수 있는 표를 주심으로 생명의 기한이 다하기까지 이 땅에서 회개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역사하신 것입니다. 가인의 죄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기에 이처럼 죽음을 면할 수 있는 표를 주어 이 땅에서 회개하며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신 것이지요.
그러므로 예전에 지옥설교를 통해 말씀드렸듯이 가인은 그나마 구원에라도 이를 수가 있었으며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어찌하든 한 영혼이라도 더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는 분이십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가인에게 많은 기회를 주신 것은 그가 크나큰 죄를 지었지만 기회를 주면 회개하고 돌이킬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율법에 따라 눈에는 눈으로 이에는 이로 갚게 하셨던 구약 시대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중심을 보시기에 이러한 은혜의 기회를 베푸셨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이 악하여 더 이상 기회를 줄 수 없을 때에는 결국 공의의 심판이 임했던 것을 보게 됩니다. 사울 왕의 경우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많은 기회를 주셨지만 스스로가 악에 악을 더하여 마침내 심판을 자초하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따라서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사랑의 하나님이시오, 긍휼과 용서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록 죄인된 사람이라도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십니다. 마가복음 2:17에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말씀한 대로 죄인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아들까지 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이처럼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그 안에 온전히 거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혹여 하나님의 품을 떠난 분이 있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면서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나의 사랑하는 신부여" 라는 음성을 들으실 수 있기를 우리의 신랑 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4:47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