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78)
서론
지난 시간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가인이 죄 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여러 차례 권면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동생 아벨을 죽이는 엄청난 죄를 행하고 마는 내용까지 말씀드렸습니다. 동생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과 함께 하나님에 대한 서운한 마음까지 가지고 있던 가인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게 된 사건이 매우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지만 아무리 가인이 동생을 시기하고 질투하였다 해도 금방 살인이라고 하는 크나큰 악까지 행했던 것은 아니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마음에 감정이 쌓이다가 마침내 행동으로 표출되고 말았지요. 가인은 아버지 아담으로부터 진리에 대해 듣고 배웠을 터이니 자신이 그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결국 마태복음 12:35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말씀한 대로 쌓은 악에서 악한 행동이 나오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속성입니다. 마음을 한두 번 내어 주다 보면 어느새 사단이 마음 전체를 사로잡게 되고 나중에는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버리지요.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죄의 종노릇하고 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단계에까지 이르기 전에 '이것이 죄이구나', '이것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이구나' 하고 깨달았으면 신속히 돌이켜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깨어 기도하는 가운데 위로부터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능력,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8절 말씀부터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1. 악한 감정으로 인해 계획적으로 동생 아벨을 쳐죽인 형 가인
8절 전반절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에게 고하니라" 했는데 이것은 가인이 자신의 마음에 있는 감정을 아벨에게도 털어놓았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아벨에 대해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또 왜 그러한 감정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말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이것은 단지 자신의 마음에 있던 말을 털어놓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러한 말들을 통해 그만큼 동생 아벨을 힘들고 고통스럽게 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해 '나 지금 너한테 이런 감정이 있어'라는 식의 표현을 통해 동생에게 심리적인 고통을 안겨 주었다는 말이지요.
이어지는 후반절을 보면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했는데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라는 정황으로 봐서 가인이 동생과 단 둘만 있을 때를 기다렸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마음에 동생을 죽이려는 마음을 품고 그것을 행할 적당한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치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살인임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세상의 법에서도 설령 똑같은 죄를 지었다 해도 그것이 즉흥적 또는 우발적인 범죄인가? 아니면 계획적인 범죄인가에 따라 죄의 경중이 크게 달라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하물며 사람의 중심까지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어떠하겠습니까? 아직 믿음이 연약하여 순간적으로 죄의 유혹에 빠져드는 경우와 이미 마음에 나쁜 마음을 가지고 이를 계획적으로 행하는 것과는 전혀 다르지요. 악한 마음을 품기만 해도 하나님께서는 죄라 하시는데 더욱이 마음에 품은 죄를 계획적으로 실행에 옮긴다면 이는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이처럼 자신의 마음 안에 있는 죄의 소원을 이루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짜내어 악을 행했던 인물들이 나오지요.
다윗 왕의 아들인 압살롬도 그 중에 하나였습니다. 압살롬은 아버지에 대한 서운함과 감정이 깊어지면서 나중에는 아버지의 왕권까지 넘보게 되지요. 그리고 이를 이루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워 먼저 백성들의 마음을 자신에게로 돌립니다. 왕에게 나아가는 백성들 앞에 자신이 대신 재판관이 되어 재판하면서 백성들의 마음을 빼앗아 갔던 것입니다.
사무엘하 15:6에 보면, "무릇 이스라엘 무리 중에 왕께 재판을 청하러 오는 자들에게 압살롬의 행함이 이 같아서 이스라엘 사람의 마음을 도적하니라" 했습니다. 그리고는 마침내 적당한 때를 보아 반역을 일으켰던 것을 봅니다. 이처럼 악한 궤계까지 꾸며가며 마음에 있던 악을 행동으로 옮겼던 압살롬은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지요.
이처럼 사람들 중에는 상대에 대한 감정을 두고 두고 마음에 담아 두었다가 나중에 때가 되면 갚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 당장은 그냥 넘어가는 것처럼 행동하지만 나중에 적당한 때를 보았다가 마음에 맺혔던 감정을 드러내거나 상대를 곤경에 빠지도록 만들고 말지요. 하나님께서는 원수도 사랑하라 하셨고, 에베소서 4:26에는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 하셨는데 이처럼 마음의 감정을 담아두었다가 갚는다면 이것이 얼마나 악한 마음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더욱이 마음에 감정을 담고 있으면서 그것을 갚을 기회만 노리고 있다는 그 자체가 본인에게도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이겠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로마서 12:17을 보면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하였고 데살로니가전서 5:15에는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설령 상대는 나에게 악을 행했다 할지라도 내 편에서는 오히려 선으로 갚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요.
그러므로 여러분은 악을 악으로 갚아서도 안 될 것이며 아예 마음에 감정 자체도 품지 않는 온전한 선의 마음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만이 진정 어떠한 상황에서도 악이 발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마음 안에 악의 모양이 남아 있는 한은 언젠가 환경과 조건이 되어지면 그 악의 모양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한 가지 예를 들면, 두 사람 중에 한 사람이 사람들로부터 칭찬받고 인정을 받는다면 다른 한 사람은 당연히 함께 기뻐하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런데 마음에 시기하고 질투하는 악의 모양이 있으면 함께 기뻐하지 못하며 오히려 감정을 품게 되지요. '저 사람에게는 저런 모습이 있는데', '나보다 못한 이런 모습이 있는데' 하면서 상대의 티와 허물을 찾게 됩니다.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이 더 앞서 있다고 생각하며 상대방이 칭찬받는 것을 보고 있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러다 보면 상대의 허물과 티를 사람들 앞에 드러내어 상대를 깎아 내리려 합니다. 하지만 이처럼 상대를 깎아 내린다 해서 자신이 높아지는 것일까요? 설령 사람들 앞에서는 자신이 더 높아진다 해도 어찌 하나님의 눈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이처럼 사람의 마음 안에 있는 모든 악의 모양은 하나님 앞에 속속들이 드러날 수밖에 없습니다. 하물며 마음 안에 있는 악의 모양을 계획까지 세워 행동으로 옮겼다면 이를 어찌 아버지 하나님께서 모르시겠습니까.
2. 살인죄를 범하고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을 속이려 했던 가인
9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으냐 그가 가로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인 것을 다 아시고 물으신 것인데 가인은 완전히 시치미를 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 앞에 오만한 태도를 보이고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때라도 가인에게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려 했지만 가인은 이러한 은혜의 기회마저도 저버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가인은 동생을 죽인 후에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속이려 했습니다. 어찌하든 자신의 범죄 사실을 감추기 위해 죄에 죄를 더해가고 있는 모습이지요. 오늘날도 이런 모습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예를 들어 어떤 잘못에 대해 책임을 묻거나 범죄한 사실에 대해 묻게 되면 많은 사람들이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기보다는 변명하거나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려 합니다. 아예 "나는 모릅니다" 하는 사람도 있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하는 사람도 있지요. 아니면 오히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나에게 왜 이러느냐'는 식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거나 변론하며 따지려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악한 모습들입니까? 범죄한 자체도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것이지만 자신의 범죄 사실을 숨기기 위해 거짓말하는 모습이 하나님 앞에 더욱 합당하지 않은 악한 모습이라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용서의 하나님이십니다. 비록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다 해서 단번에 정죄하여 벌하시는 것이 아니지요. 기회를 주시고 또 주시며 은혜를 베풀려고 하시지만 사람 편에서 이러한 기회를 저버리는 경우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하나님께서 죄를 지적하고 책망하시는 것은 그가 돌이켜 회개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려는 것이지요. 범죄한 사람에 대해 곧바로 죄의 값을 치르도록 하셔도 마땅한 일이겠지만 그럼에도 먼저 지적하고 책망하시는 것은 그때라도 깨달아 돌이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13에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말씀한 대로 책망을 통해서라도 그가 빛으로 나와지기를 원하시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지 못한 채 책망받고 지적받으면 오히려 시험들거나 아예 더 악한 길로 빠져 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도 이러한 사람의 마음을 잘 알기에 지금까지 교회를 치리해 오면서 어떤 사람의 잘못한 사실을 알았다 하여 곧바로 권면하고 책망한 적이 별로 없습니다. 당사자가 깨우칠 수 있도록 먼저는 단에서 여러 차례 권면하고 권면하지요. 그 중에는 깨우치고 돌이키는 사람도 있지만 오히려 감정을 품으며 악을 행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더욱이 정녕 마음 중심에서 통회자복하며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서 변화되는 사람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지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다윗 왕도 자신이 범죄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선한 백성을 이방인의 손에 죽게 만드는 큰 죄를 지은 적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선지자 나단을 보내어 그의 범죄한 것에 대해 책망하시자 다윗 왕은 그 자리에서 회개하고 돌이켰지요. 그 회개가 정녕 마음 중심에서 나오는 회개였기에 다윗 왕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지금은 천국 새예루살렘에서도 매우 존귀한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편 119:71에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는 고백처럼 한 번의 범죄를 통해 받은 연단이 다윗 왕으로 하여금 철저히 자신을 발견하고 돌이켜서 온전한 모습에 이르게 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여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다 해도 그 다음에 어떤 모습으로 나오는가에 따라 전혀 결과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하면서 하나님 앞에 범죄하지 않는 것이 제일 좋겠지만 때로는 믿음이 연약하여 하나님 앞에 범죄할 때가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에게도 평생 잊지 못할 사건이 있었지요. 자신의 입으로 스승이자 구세주이신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으니, 얼마나 주님 앞에 송구한 마음이 들었겠습니까? 그러나 베드로 사도는 이 사건을 계기로 오히려 자신을 철저히 깨뜨리고 변화되어 주님 앞에 생명 다해 충성하는 권능의 사도가 되었고, 천국에서도 존귀한 자리에 서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다윗 왕이나 베드로 사도는 자신에게 죄와 허물이 되었던 사건들을 통해 오히려 영적인 축복을 받는 계기로 삼았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도 혹여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결코 하나님을 속이려 해서는 안 됩니다. 자신의 죄를 자복하며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구해야 하지요. 그럴 때 하나님께서도 여러분에게 용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회개했으면 또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저버리고 죄 가운데 빠져드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이때는 하나님 앞에 은혜를 구한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네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긴다" 하시지요. 그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입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전보다 몇 갑절 더 힘쓰고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더구나 이런 모습이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되어진다면 나중에는 하나님께서도 외면해 버리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면 놓치지 말고 돌이켜야 하는데 오히려 하나님 앞에 더욱 죄의 담을 쌓아 가는 사람도 있으니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지요.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인도 바로 그러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아시고 말씀하심에도 가인은 자신의 죄를 숨기려 했던 것입니다.
3. 회개하지 않는 가인에게 임한 죄의 보응
이어지는 10-12절을 보면 "가라사대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네가 밭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하셨지요.
그제서야 가인은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죄로 인한 두려움이 몰려왔습니다. 그래서 13절에 "가인이 여호와께 고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가인의 이러한 고백이 마음 중심에서 나오는 회개는 아니었습니다. 단지 자신이 지은 죄에 대해 벌받게 될 것이 두려워서 자신의 죄를 시인하고 있는 것뿐이지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회개는 이러한 회개가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회개를 원하시며 바로 사랑의 회개를 원하시지요.
그러면 사랑의 회개란 무엇일까요? 한 가지 비유를 들면 여러분이 부모님을 마음 중심에서 존경하고 사랑하는데 부모님이 가장 싫어하는 행동을 하고 말았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부모님도 알게 되었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부모님 앞에 나아가 마음 중심에서 나오는 용서를 구할 것입니다. 부모님으로부터 어떤 벌을 받을까봐 두려워하는 마음에서 하는 회개가 아니라 부모님을 너무나 사랑하는데 마음을 아프시게 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자신을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이며 부모님을 사랑하는 만큼 더욱 마음 중심에서 나오는 진정한 회개를 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회개를 원하십니다. 비록 어떤 죄를 지었다고 했을 때 죄로 인한 징계의 두려움보다는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했다는 사실 때문에 더욱 마음 아파하고 하나님 앞에 마음을 찢으며 회개하는 심령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회개를 통해 자신도 철저히 변화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벌에 대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회개는 진정 마음 중심에서 나오는 회개라 할 수 없으며 아직 마음에 악의 모양이 남아 있는 한은 다시금 그 악의 모양이 나올 수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정녕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어찌 한 번 통회자복한 죄를 다시금 지을 수 있겠습니까?
저도 막 주님을 영접한 초신자 때에 하나님 앞에 진한 사랑의 회개를 했던 적이 있었지요. 질병을 치료받고 노동벌이를 할 때였는데 몸이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밤늦게까지 야간 작업을 하던 중 몸이 너무 피곤하여 이를 이겨보고자 그만 술 한 잔을 마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일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큰 마음의 고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앞에 두려워서가 아니라 저를 치료해 주시고 그처럼 사랑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드렸다는 사실이 저의 마음을 너무나 아프게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마음 중심에서 나오는 통회자복을 하게 되었고 이 한 번의 사건을 통해 큰 능력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지도 않겠지만 설령 죄를 범한다 해도 신속히 돌이킬 것이고 돌이킨 후에는 다시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지요. 만일 다시 똑같은 실수를 했다고 하면 전에 회개했던 것이 진정 회개한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면서도 계속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시게 하는 분이 있다면 자신의 믿음이 얼마나 적은가를 깨우쳐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죄를 범했다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회개를 해야 합니다. 입술로만 "잘못했습니다" 하고 마음에서 돌이키지 않는 회개는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에게는 결국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내려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10-12절을 통하여 가인에게 장차 죄의 형벌로서 주어질 보응이 어떠한 것인가를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그 내용은 한마디로 심은 대로 거두며,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영계의 법칙입니다. 가인이 흘린 동생의 피가 땅에 심어졌으니 이 죄로 인해 땅이 다시는 가인에게 그 효력을 주지 않을 것이라 말씀하고 있지요.
지금까지 가인이 농사를 짓는 자로서 땅으로부터 소산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자연의 법칙에 따라 땅이 그 효력을 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때를 따라 비를 주시고 햇볕을 주셔서 땅에 심은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이지요. 그런데 이제 저주받은 가인에게는 땅이 이러한 법칙에 따라 소산을 내어 주지 않게 된 것입니다. 가인에게 임한 죄의 보응에 대해서는 다음시간에 계속 이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사람이 죄를 짓게 되면 비록 회개했다 해도 거기에 해당하는 보응이 따릅니다. 또 어떤 죄에 대해서는 한 번의 회개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두고 회개해야 하는 것도 있지요. 그리고 이렇게 죄에 대한 보응이 따르게 되면 그 죄에 대한 문제가 온전히 해결되기까지 축복의 길이 막히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본인은 열심히 심는다고 하는데도 심은 대로 열매를 거두지 못하고 축복 기도를 받아도 온전한 축복이 임하지 않지요. 이런 때는 바로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사이에 해결되지 않은 어떤 죄의 담이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하며 회개한다고 했지만 아직 온전히 회개되지 않은 분야가 있는지도 스스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또한 전에 하나님을 서운하게 해드렸던 일이 있었다면 지금은 하나님과의 사이가 온전히 회복되었는지도 살펴야 하지요. 하나님과의 사이에 잃었던 신뢰 관계를 회복하려면 이전보다 몇 갑절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입니다.
죄의 문제는 회개하고 해결받았다 해도 하나님과의 사이에 한번 생긴 흠집을 없애려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감동시켜드리는 진실한 행함의 모습이 있어야 하지요. 그럴 때 하나님과의 사이도 예전처럼 온전히 회복되어 막혔던 축복의 문들이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들을 잘 깨달아 하나님 앞에 죄의 담을 쌓지 말아야 하며 만약 죄의 담이 있다면 신속히 회개하고 돌이켜 이전보다 더욱 하나님 앞에 충성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그래서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여러분의 삶 속에 하나님의 풍성하신 축복이 날로 넘쳐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4:47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