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76)
서론
만민 매거진을 통해 인도 대성회 장면을 다시 보니 당시의 감동과 감격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듯합니다. 여러분의 기도와 금식과 성원에 힘입어 아버지 하나님께 크게 영광을 돌린 이번 인도 성회는 당장 보이는 열매도 크지만 그 여파가 앞으로는 더 큰 열매들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창세기 강해를 통해 들으신 대로 인도는 이 땅에 최초로 인류 문명이 시작된 네 지역 중의 한 곳입니다. 6천년 인간 경작의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곳이지요. 그런데 인간 경작이 시작된 지 6천 여 년이 지나 경작의 마무리 때가 다 되어가고 있는 지금 인도는 온통 우상의 나라가 되고 말았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그들을 이대로 놔두신다고 하면 11억이라고 하는 어마어마한 인도 인구의 대부분이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요.
이러한 인도 땅에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대폭발적인 역사를 베풀어주심으로 그들에게 구원에 이를 수 있는 기회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래도 아직은 선한 양심을 가진 그들에게 참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나타내줌으로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에 이를 길을 열어주신 것이지요.
뿐만 아니라 오늘날 복음의 사각 지대인 중동과 이스라엘을 향한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가 펼쳐져 나가는 출발점이 바로 이번 인도 성회였습니다. 물론 그 전에 열렸던 해외 성회들을 통해서도 중동과 이스라엘을 향한 마지막 때의 섭리는 한 치의 오차 없이 이루어져 왔지만 특별히 이번 인도 성회는 중동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두바이를 직접적으로 공략하기 위한 교두보가 마련된 성회였지요.
이제 앞으로 거두어지는 열매들을 통해 여러분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왜 이번 인도 성회를 만세 전에 예비하신 성회라고 하셨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보고 느끼실 것입니다. 따라서 인도 성회는 끝났다고 해도 궁극적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섭리들이 온전히 이루어질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과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내년 4월에 열릴 예정인 두바이 성회를 비롯해 중동지역 복음화의 문이 활짝 열리는 그 순간까지 성도님들의 뜨거운 기도를 부탁드립니다.
본론
지난 시간에는 네 생물이 어떤 존재이며 그들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한 그 모습만으로도 얼마나 대단한 권세와 위엄이 느껴지는가를 설명드렸지요. 그룹의 가장 머리로서 수많은 그룹들을 지휘하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네 생물의 영적인 권세와 능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이러한 네 생물에 대해 자세하게 표현해 놓은 에스겔 1장을 보면 네 생물 곁에 바퀴가 있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1. 네 생물 곁에 있는 바퀴의 형상
에스겔 1:15-16에 "내가 그 생물을 본즉 그 생물 곁 땅 위에 바퀴가 있는데 그 네 얼굴을 따라 하나씩 있고 그 바퀴의 형상과 그 구조는 넷이 한결 같은데 황옥 같고 그 형상과 구조는 바퀴 안에 바퀴가 있는 것 같으며" 했지요.
이어지는 에스겔 1:19-21에는 "생물이 행할 때에 바퀴도 그 곁에서 행하고 생물이 땅에서 들릴 때에 바퀴도 들려서 어디든지 신이 가려하면 생물도 신의 가려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신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라 저들이 행하면 이들도 행하고 저들이 그치면 이들도 그치고 저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는 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신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더라" 했습니다.
이처럼 바퀴와 네 생물이 마치 하나처럼 함께 움직이고 있는데 그렇다면 바퀴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자동차에 바퀴가 있어야 움직일 수 있듯이 네 생물도 바퀴가 있어야만 움직이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이 바퀴는 네 생물에게 명령을 내리는 주체인 신이 있는 공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형상입니다. 네 생물은 바로 이 바퀴 안으로부터 들려오는 신의 소리에 순종하여 움직이게 되지요.
결국 네 생물은 바퀴 가운데 있는 신의 소리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지만 하나님 편에서 에스겔 선지자에게 네 생물을 움직이게 하는 주체인 신의 소리를 보여 주실 수는 없기 때문에 그 소리가 들려오는 근원을 바퀴의 형상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바퀴는 신의 소리가 들려오는 영의 공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형상이며 마치 네 생물에게 있어서 귀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이 바퀴 안에는 신의 소리를 내는 주체인 신의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왕에게는 왕권을 상징하는 인장이 있어서 그 인장이 찍힌 것만 보면 이것이 왕에게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듯이 네 생물 곁에 있는 바퀴 안에도 이들이 누구에게 속한 것인지를 나타내는 인장과 같은 것이 찍혀있지요. 따라서 네 생물은 그들을 관장하는 주인의 발하는 소리에만 순종하게 되며 이 소리가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근본의 소리입니다.
하나님의 근본의 소리 이외의 소리로는 아무리 명령해도 네 생물이 순종하지를 않지요. 네 생물의 귀와 같은 역할을 하는 바퀴가 오직 영의 세계에서 울려 나오는 하나님의 근본의 소리만을 듣고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네 생물을 명하여 움직일 수 있는 주체는 정해져 있지요.
예를 들어 어떤 천사가 대신 네 생물에게 어떻게 하라고 지시한다고 해서 네 생물이 그 소리를 듣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때문에 네 생물에게는 실수가 없으며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임무를 수행하지요. 더욱이 네 생물에게는 재앙을 가져오게 하는 권세가 있기 때문에 온전히 하나님의 마음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2. 네 생물의 사명
그렇다면 네 생물은 어떤 사명을 수행하는 것일까요? 네 생물 각각이 가지고 있는 사명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네 생물은 마치 왕에게 속한 의금부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똑같은 죄를 지었다고 해도 그 죄가 왕이나 나라 전체에 대한 것이라면 그 죄는 의금부에서 직접 관장하게 됩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신의 주인을 속이고 자기 이익을 취하거나 주인을 배신했다면 그 사람은 그 지역에 있는 관청에서 죄를 물어 신문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왕을 속이고 자기 이익을 취하거나 왕을 배신했다면 그 사람은 의금부에서 그 죄를 신문받지요.
이처럼 네 생물은 하나님께 직접 관련된 죄가 있을 때에 하나님의 명에 따라 움직이게 됩니다. 예를 들어 성령 훼방, 모독, 거역 등의 죄가 그것이지요. 삼위일체 하나님 중의 한 분이신 성령의 역사를 직접 거스리는 이러한 죄들은 네 생물에 의해서 그 죄가 다스려집니다. 또한 어떤 민족이나 나라가 전체적으로 심히도 악을 행하여 그 죄값으로 심판이 임하게 될 때도 직접 네 생물이 동원되어 재앙을 가져다 주지요.
계시록 6장이나 계시록 15장에도 보면 7년 환난의 때에도 네 생물이 직접 관여하여 재앙을 가져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계시록 6:1에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 소리 같이 말하되" 하였으며, 계시록 15:7에는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세세에 계신 하나님의 진노를 가득히 담은 금대접 일곱을 그 일곱 천사에게 주니" 하여 7년 환난의 재앙에 대해 네 생물이 이처럼 직접 관여하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3. 네 생물의 감찰하는 분야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네 생물의 앞과 뒤는 물론이고 날개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다는 사실도 이들의 사명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네 생물은 수많은 눈들을 통해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감찰하게 되지요. 물론 아버지 하나님께는 일곱 영이 있어서 이들을 통해서도 이 땅의 모든 일을 감찰하시지만 네 생물에게도 감찰하는 사명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네 생물이 각각 감찰하는 분야가 조금씩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사람의 얼굴을 한 생물은 각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얼마나 닮았는가를 감찰하게 됩니다. '얼마나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는가?' 구체적으로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측량하여 그 입을 통해 얼마나 범죄하는지를 살피며 또한 그 마음과 행함을 측량하게 되지요. 이를 통해 그 모습 속에 얼마나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었는지 측정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자 생물은 각 사람이 얼마나 강하고 담대한지를 감찰합니다. 여러분이 어떤 일을 할 때 얼마나 담대히 주의 이름으로 나아가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을 드러냈는가를 측정하지요. 어떠한 위협과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주를 시인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냈는지를 사자 생물이 살피는 것입니다. 이번 인도 성회 때처럼 성회를 방해하려는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가 있을 때 사자 생물은 일꾼 한 사람 한 사람이 과연 어떤 마음으로 원수 마귀 사단의 궤계에 맞서고 있는지를 살피게 되지요. '믿음으로 담대히 나가는 마음인가? 아니면 두려워하며 뒤로 물러서려고 하는 마음인가? 피하려고 하는 마음인가?'를 사자 생물은 속속들이 다 살핀다는 사실입니다.
그 다음으로, 송아지 생물은 각 사람의 충성 분야를 감찰합니다. 누가 보나 보지 않으나 얼마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충성하고 있는지, 자신의 맡은 사명을 얼마나 최선을 다해 감당하고 있는지 바로 이러한 분야를 측량하게 됩니다. 여러분이 충성하고 헌신하는 것을 비록 사람 중에서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이처럼 네 생물을 통해 또 일곱 영을 통해 그밖에도 수많은 천사들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낱낱이 보고 받아 알고 계셔서 심판 날에 반드시 상급으로 갚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으로, 독수리 생물은 각 사람이 얼마나 하나님 말씀을 심비에 새기며 마음에 이루었는가를 감찰합니다. 독수리의 날카로운 눈과 같이 한 치의 오차 없이 각 사람의 마음을 살피지요.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에 거룩함과 선함을 가지고 각 사람을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깊은 마음과 중심까지 정확하게 측정하여 분별해 내는 것입니다.
이처럼 네 생물이 각각 감찰하는 분야가 조금씩 다르지만 결국 네 생물이 감찰하는 것의 공통점은 얼마나 성결되었고 얼마나 영으로 일구었는가입니다. 이는 역으로 말하자면 어떤 사람이 얼마나 악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고 있는가 역시 네 생물을 통해 감찰된다는 사실입니다. 입술로는 얼마나 불평불만을 쏟아내고 있고 위협 앞에서 얼마나 비겁하고 간사하며 또 충성한다 하면서 사람 앞에 보이기 위한 충성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겉으로만 외식하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지가 네 생물에 의해서 감찰되어지는 것이지요.
4. 네 생물의 권세
네 생물이 가진 권세에 대해 살펴보면 네 생물의 역할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사람 곧 인자 생물은 하늘에 있는 그룹들을 명하여 움직이게 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에덴에 있는 그룹들도 네 생물 중에서 인자 생물이 입을 열어 명할 때 움직이게 되지요.
다음은 독수리 생물인데 하늘 문을 열고 닫는 권세가 있습니다. 에덴 동산으로 통하는 문도 바로 독수리 생물이 열고 닫는 것이며 따라서 둘째 하늘로부터 구름이 나올 때도 독수리 생물이 영계의 문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독수리 생물이 힘차게 날개짓을 하여 영계의 문을 열므로 둘째 하늘에 있는 구름이 첫째 하늘로 나오기도 하고 다시 둘째 하늘로 빨려들 듯 들어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독수리 생물이 영계의 문을 열고 닫는 권세가 있다고 해서 꼭 독수리 생물만 이것을 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닙니다. 넷이 한 덩어리가 되어 하늘 문을 열고 닫기도 하며 독수리 생물이 날개짓을 할 때 다른 생물들도 함께 마음을 모아 날개짓을 하기도 하지요. 다만 네 생물의 역할을 나누자면 하늘 문을 열고 닫는 주된 권세가 독수리 생물에게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우리 몸을 생각해 볼 때 손, 발, 코, 눈 이것은 다 몸에 부착된 하나입니다. 제가 움직이면 전부가 다 똑같이 움직이지만 사명은 다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물이 마시고 싶다하면 손이 움직여 주어야 하며 입이 움직여져야 합니다.
만약에 제가 아랫단으로 내려가고 싶다하면 무엇이 움직여 주어야 하는가요? 손이 움직여야 하는가요? 손은 아무리 움직여도 안 됩니다. 발이 움직여 주어야 하지요. 이는 발의 사명인 것입니다. 내가 어느 분이 신령과 진정으로 보고 계시는가 살피려고 하면 누가 합니까? 이는 눈이 그 역할을 하고 있지요. 이렇게 몸은 하나요 다 같이 움직여지지만 사명은 각자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입니다. 네 생물의 역할도 이와 동일한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자 생물은 불을 토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이는 다시 말해 사자 생물에게 재앙을 부리는 권세가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이처럼 재앙을 부리는 권세를 가진 사자 생물은 아무 때나 입을 열지 않습니다. 그 입을 여는 것이 곧 재앙과 연관 있기 때문에 사자 생물이 입술을 여는 경우는 재앙이 임하게 할 때나 또는 재앙을 거둘 때이지요. 그래서 네 생물에게 명할 때도 사자 생물에게는 함부로 입을 열도록 명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그 날개를 펴서 움직이라고 명할 수는 있어도 입을 열도록 명하는 것은 재앙과 직접 관련이 되지요.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이 성경상에 나오는 재앙과 관련된 기사들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알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린 불의 재앙은 사자 생물이 그 입을 연 경우이지요.
창세기 19:24에 보면 "여호와께서 하늘 곧 여호와에게로서 유황과 불을 비같이 소돔과 고모라에 내리사" 했는데 이 유황과 불의 비가 사자 생물에 의한 것입니다. 또한 성경에는 어떤 지역에 갑자기 온역의 재앙이 임하여 수많은 사람이 죽는 경우가 나오는데 이때에도 사자 생물이 역사한 경우입니다. 역대상 21:14에 "이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온역을 내리시매 이스라엘 백성의 죽은 자가 칠만이었더라" 했지요.
다음으로 노아의 홍수 경우에는 어떤 특정한 한 생물에 의한 재앙이라기보다는 네 생물 전체가 함께 역사한 경우입니다. 우선 하늘 문이 열리고 둘째 하늘에 있던 물이 첫째 하늘로 쏟아져 내려오려면 이때는 독수리 생물이 하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또한 둘째 하늘에 엄청난 물이 이 땅으로 쏟아져 내려오기 위해서는 에덴의 그룹들도 움직여야 했을 것이고, 그러려면 그룹을 움직이는 인자 생물도 관여하게 되지요.
그리고 이 땅에는 홍수와 함께 땅이 갈라지고 지형이 바뀌는 엄청난 천재지변이 함께 동반되었는데 이러한 역사는 아직 설명드리지 않은 송아지 생물에 의해 주관이 되기 때문에 송아지 생물도 관여하게 됩니다. 여기에 전체적으로 재앙을 주관하는 사자 생물도 당연히 관여하는 것이구요.
이처럼 노아와 그의 가족을 제외한 모든 인간을 비롯하여 무릇 생명에 기식있는 육체를 이 땅에서 다 멸절하는 재앙이었던 노아의 홍수에는 네 생물 전체가 함께 역사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송아지 생물은 첫째 하늘에서 일어나는 천기의 변화와 기후에 관한 것을 주관하는 권세가 있습니다. 구름이 모여들게 한다거나 비가 오게 하는 것, 반대로 비를 멈추게 하는 것을 송아지 생물이 주관하지요. 또 태풍이 일어나게 한다거나 소멸되게 하는 것도 송아지 생물이 주관합니다. 이 밖에도 천둥 번개를 치게 한다거나 순간 먹장구름을 만드는 것도 송아지 생물의 권세로 되어지는 일들이지요.
따라서 송아지 생물을 명하여 움직이게 하면 이 땅에서 천기를 움직이거나 기후를 조정하는 등의 기사들을 펼칠 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기사를 펼치는 것이 아무 때나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기사를 행할 때 자칫 실수가 나면 엄청난 자연 재해로 연결될 수도 있기 때문에 기사는 주변의 상황과 조건에도 맞아야 하며 무엇보다도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에 맞을 때에 역사되지요.
권능이 있다 해서 내 유익을 좇아 기사를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사사롭게 기사를 베풀어서도 안 됩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변의 모든 상황을 고려해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경우라면 아무리 권능으로 명한다 해도 송아지 생물이 순종하지 않지요. 네 생물은 오직 아버지의 뜻에 따라 명하는 근본된 소리에만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기사를 베풀 때는 항상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헤아립니다. 성도님들이 아무리 원한다 해도 제 마음에 아버지의 뜻이라는 주관이 오지 않으면 제 임의로 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그럼에도 성도님들이 너무 간청해 올 때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제가 민망하지 않도록 그래도 눈에 띠는 역사들로 베풀어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번 인도 성회 셋째 날 많은 비가 오던 상황에는 네 생물이 과연 어떻게 하고 있었을까요? 영감이 밝으신 분은 답이 오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날 비가 왔던 것은 이미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었던 일이지요. 제가 인도 땅에 발을 디딤과 동시에 그 땅에 축복의 비가 와야 하는 상황이었기에 비가 오는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주관 속에 이미 정해져 있었던 일입니다. 더욱이 성회 도중에 비가 온 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가운데서 성회 마지막 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고 놀라운 영광을 받으시고자 믿음의 시험으로서 허락하신 일이었지요.
따라서 그 순간에는 네 생물 중에 송아지 생물에게 명한다 해서 송아지 생물이 비를 멈추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서 설명 드린 대로 네 생물은 아버지 하나님의 근본의 소리만을 듣고 순종하는데, 당시 하나님의 뜻은 비를 멈추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네 생물에게 명한다 해서 네 생물이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제 편에서는 이러한 아버지의 뜻을 알면서도 기도는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 속에서도 꿈쩍하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말씀 듣기를 사모하는 인도의 영혼들을 볼 때에 어찌 안타깝고 민망한 마음이 들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비가 멈추도록 기도는 했지만 제 마음 깊은 곳에서는 아버지의 뜻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을 느끼기에 근본의 소리로서 명하는 기도는 아니었습니다. 인성과 신성으로 나누자면 인성의 기도였지요.
이런 상황은 우리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신 내용을 보아도 잘 알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6:39에 보면 십자가 사건을 눈앞에 둔 시점에서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시기를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셨습니다. 이 기도는 예수님의 지극히 인성적인 면을 느낄 수 있도록 해 주는 내용이지요.
누구보다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잘 아시는 예수님은 기도 또한 당연히 하나님의 근본된 소리에서 나오는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예를 들어 죽은 지 나흘이나 된 나사로를 살리신 것도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좇아 근본된 소리로 명하신 것이었기에 즉시로 역사가 나타났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이 순간만큼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하시며 인성에서 나오는 기도를 올리셨습니다. 이 기도가 근본된 소리를 들어 올리신 것이었다면 이 기도대로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겠지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그것이 아니었지요. 예수님께서도 이러한 기도가 아버지의 뜻을 좇아 올리는 근본된 소리로부터 나오는 기도가 아님을 아시기에 이내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셨던 것입니다.
저 역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상황에서 그곳에 모인 영혼들을 생각하고 또 그 상황을 영적으로 바라보지 못한 채 마음 졸이며 애타할 성도님들을 생각하여 비가 멈출 것을 기도했지만 제 마음 속 중심에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옵나이다." 기도했지요. 네 생물에 관한 설명을 드리다 보니 근본된 소리에 대한 내용까지 설명이 되어졌는데 근본된 소리에 대해서는 앞으로 자세하게 설명드릴 때가 올 것입니다.
다음 시간부터는 이 땅에 인간 경작이 시작되면서 얼마나 죄로 신속히 물들어 가게 되는지 아담의 후손들의 모습을 통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결론
우리가 영의 세계에 대해 알면 알수록 육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밝히 분별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곳에 재앙이 임했다고 할 때 사람들은 그 원인을 육적인 데서 찾습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뒤에는 반드시 영적인 원인이 우선이므로 영적인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육적인 문제들도 해결되는 것이지요.
제가 성회를 인도했던 인도의 타밀라드 주는 최근 수년간 극심한 가뭄으로 고통받았습니다. 물론 여러 가지 영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타밀라드 주는 그곳의 주 수상이 철저한 힌두교도로서 유례 없이 개종 금지 법안이라는 것까지 만들어 공포할 정도로 그곳은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는 곳이었지요. 이러한 영적인 이유들로 인해 그곳은 하나님의 외면하심을 당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곳에 제가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수많은 영혼들을 하나님의 품으로 인도하는 연합 대성회를 인도하게 되니 영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진 것입니다. 그러니 그곳 국민들은 수년간 고통받게 했던 육적인 가뭄의 고통도 자연히 해결되어진 것이지요.
그러나 제가 가져다 준 축복만으로 그 땅의 근본적인 문제들을 다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공의의 하나님께서는 이제 그곳 영혼들의 믿음을 보실 것입니다. 저를 통해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놀라운 권능의 역사들을 나타내 주셨으니 이를 보고 그들이 영적으로 변화될 때라야 정녕 그 땅에 임한 저주가 근본적으로 물러가게 되지요.
이는 우리 성도님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에게 나와 기도받는 많은 분들이 있지만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근본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온전한 축복이 임할 수 없습니다. 물론 그 순간에야 합당한 만큼 축복이 임하기도 하고 또 더욱 축복받을 그릇으로 변화되어 가지만 원하는 대로 100% 축복을 받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질병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 앞에 막힌 담을 헐고 축복 받을 만한 그릇을 만든 후에 기도받아야 정녕 끊임없이 솟아나는 진정한 축복이 임하는 것이지요. 육적인 축복이 먼저가 아니라 영적인 축복이 임해야 육적인 축복도 자연히 따라온다는 사실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은 영의 세계에 대해 많이 아시는 만큼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영적으로 잘 분별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영적인 원인을 해결하심으로 범사에 항상 형통함을 입는 능력 있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4:47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