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73)
서론
오늘은 하나님께서 왜 아담을 에덴 동산으로부터 이 땅으로 내어 보내셔야만 했는지, 그리고 아담이 이 땅에 내려와 살게 되면서 어떠한 각오와 다짐을 했는지에 대해 증거하겠습니다. 또한 아담이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난 후, 하나님께서는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에덴 동산을 지키시기 위해 어떻게 하셨을까요?
본론
1.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22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했습니다. 지금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홀로 계신 것이 아니라 주님과 성령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함께 아담에 대해 대화하시며 의논하시는 장면입니다. 아담이 장차 어떻게 될지를 다 아신다 해서 바로 아담을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아내신 것이 아니라 세 분이 다시 한 번 대화하시며 심사숙고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창조주라고 하는 절대적인 신성(神性)과 함께 인생들의 마음을 헤아리고 이해해 주시려는 인성(人性)적인 면을 함께 가지고 계십니다. 또한 모든 일에 대해 어느 한 분이 주도하시는 것이 아니라 세 분이 항상 함께 일을 이루어 나가시지요. 하나님께서는 외형적으로만 삼위(三位)일체로 분리되어 계신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모든 면에서 동일한 권능과 신성, 인성을 가지고 동등된 지위 가운데 사역해 가시는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다시 말해, 주님과 성령님께서 근본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오셨다 하여 아버지 하나님만이 우월한 위치에 계신 것이 아니라, 주님과 성령님도 동등된 하나님의 본체로서 대우해 주고 계시다는 말이지요.
한 가지 비유를 들면 만약 여러분이 어떤 회사의 회장인데 여러분에게는 두 아들이 있습니다. 이 두 아들이 장성하며 많은 경험도 쌓았고 회사의 경영에도 동참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지요. 그래서 두 아들도 회사를 운영하는 이사회의 일원이 되었다고 합시다. 만일 회사에 중대한 결정사항이 있어서 이사회가 소집되었고 서로 의견을 나누게 되었다면 두 아들을 이사회의 일원으로서 여러분과 동등하게 대해 줄 수가 있겠는지요?
혹여 '저들은 내 아들들이라' 하는 마음에 그들의 의견을 존중해 주기보다는 여러분의 의견에 무조건 따라 주기를 바라지는 않겠느냐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조금도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으로부터 분리되어 나온 아들들이라 하여 주님이나 성령님에 대해 조금도 차등을 두신 것이 아니지요. 동등한 권능을 주셨고 동등된 본체로서 모든 것을 함께 나누셨던 것입니다.
저도 교회를 치리하면서 어떤 분에게 권한을 주어 사명을 맡겼다면 당회장이라 하여 그분의 권한을 침범하려 하지 않습니다. 한 번 맡겼으면 끝까지 맡겨 주었고 그분의 의견을 존중해 주었지요. 여러분도 각자의 분야에서 이렇게 하고 계십니까? 혹여 아랫사람이라 해서 그의 의견을 무시하고 윗사람인 여러분의 의견대로만 밀고 나가지는 않았는지요?
그렇다고 해서 질서에 순종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당연히 질서를 좇아 순종해야 하되 윗사람으로서 '나만이 옳다' 할 것이 아니라 설령 아랫사람의 의견이라도 귀 기울여주고 존중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더욱이 진리에 합당한 것이라고 하면 어떤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더욱 유익이 되고 하나님의 뜻을 아름답게 이루는 것인가 의논하며 서로 한마음을 이루어 더 좋은 편을 택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어떤 결정을 하기 전에는 다시 한 번 심사숙고하는 것도 잊어서는 안됩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어떤 일에 대해 쉽게 결정하시지 않지요. 그러니 우리는 더더욱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가운데 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가지 아셔야 할 것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어떤 것을 결정하실 때는 언제나 세 분이 일치하실 수밖에 없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언제나 선과 사랑, 공의 가운데 계신 세분의 마음은 항상 하나이시기 때문이지요. 우리도 이러한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를 이룰 때만이 언제나 하나님의 뜻을 좇을 수가 있습니다.
혹여 성령의 음성을 바로 듣지 못하고 성령의 주관을 받지 못할 때는 하나님의 뜻과 다르게 나가는 경우가 생기지요. 이런 경우 저는 하나님 앞에 죄가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면 일꾼의 결정을 최대한 존중해 주고 따라 줍니다. 대신 그로 인해 저는 많은 부담을 떠 안게 되고 나중에 그 결과로 인해 제가 책임까지 져야 하는 경우가 생기지만 한 사람의 일꾼을 키우기 위해 이러한 수고와 인내를 감수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한 사람의 영적인 일꾼이 성장되어 나올 수가 없지요. 하지만 같은 실수를 번번이 계속하는 것을 볼 때는 애타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를 위해 더욱 아버지께 간구하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아담에 대해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이 사람'이라 하신 것은 아담을 지칭하는데 그렇다 해서 하와를 포함시키지 않으신 것은 아닙니다. 아담만을 지칭하신 것은 아담이 곧 여자까지 포함하여 대표성을 띠기 때문이지요. 첫 사람으로 지음받은 것은 아담이었고 아버지로부터 권세와 능력을 받은 것도 아담이었습니다. 또한 여자는 아담의 지체로 주신 존재이지요. 따라서 아담을 지칭하여 말씀하시는 것이 결국은 여자인 하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아담에 대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아담은 이 땅의 흙을 취하여 지음 받은 후 아버지 하나님께서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으로 만들어진 존재였습니다. 살아있는 영이라고는 하지만 불완전한 영으로서 아버지 하나님과 같은 신성과 인성을 다 겸비한 존재가 아니었지요. 모든 것을 통달하는 지식을 가진 것도 아니었고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을 그대로 받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불어넣어 주신 생기에 담긴 능력과 무한한 영의 지식 중에 일부를 받은 존재였지요.
또한 아담이 가지고 있던 인성은 지금의 사람처럼 육적인 인성이 아니라 신성에 속한 인성이었습니다. 경작받지 않은 상태에서 단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지식들을 통해 얻은 인성이었지요. 이런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으므로 인해 이제까지는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세계에 대해 눈을 뜨게 됩니다. 물론 이처럼 선악을 알게 되어 새로운 세계 즉, 비진리의 세계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해서 이 자체만으로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아담은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으므로 불순종의 죄를 낳았을 뿐만 아니라 그동안 알지 못했던 비진리의 세계에 접하면서 그 마음이 점점 비진리로 물들어 갈 수밖에 없게 된 것이지요.
그러므로 결과적으로는 아담이 선악과를 먹고 선악을 알게 되었다 해서 하나님과 같이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근본 취함을 입었던 이 땅의 흙으로 돌아가 육의 사람이 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담에 대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다" 말씀하신 것은 아담이 정말 하나님과 같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진리와 비진리의 세계를 다 아시는 것처럼 그 동안은 진리의 세계만 알던 아담이 이제는 비진리의 세계까지도 알게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 결과 생령이었던 아담이 육으로 환원되어 이제는 죽을 수밖에 없는 육체의 사람이 되고 말지요. 이처럼 육으로 환원된 아담은 이제 더 이상 영의 공간인 에덴 동산에 살 수 없게 되었고 육의 세계인 이 땅으로 내려가야 했지요.
더욱이 아담이 이번에는 만약 생명나무 실과마저 따먹게 되면 영생을 하게 되니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담을 더더욱 에덴 동산에 그냥 두실 수가 없으셨습니다. 이처럼 아담은 육의 사람으로 환원되었기 때문에 더 이상 영의 공간에 살 수 없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생명나무 과실을 따먹고 영생하면 안되기 때문에 첫째 하늘에 있는 이 땅으로 내려보내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앞서 인성(人性)에 대한 내용이 잠깐 나왔는데 아버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인성과 우리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성과는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인성은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를 온전히 아시고 분별하시는 가운데 선과 진리만을 행하시는 인성이지요. 선과 진리뿐만 아니라 악과 비진리도 아시지만 선과 진리만을 행하시는 인성이라 이 말입니다.
반면에 인간의 인성이란 선과 악, 진리와 비진리를 온전히 분별할 수도 없지만 마음에 오는 감정이나 정에 이끌리기 쉬운 인성입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하나님의 인성은 신성에 속한 영적인 인성이고, 인간의 인성은 육적인 인성이라 말할 수 있지요. 그래서 인성에 속한 똑같은 사랑을 한다 해도 하나님의 사랑은 영적인 사랑이지만 사람의 사랑은 육적인 사랑으로 치우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후서 1장 4절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말씀한 대로 육을 벗고 영으로 변화되어 신의 성품에 참예하게 되면 사람의 인성적인 면까지도 변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인성에 가까워질 수 있는 것이지요. 하지만 사람으로서 가지는 인성이 하나님의 인성과 같아질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만이 온전한 신성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다 가지고 계시지만 이 둘이 따로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지요. 온전한 신성 속에서 온전한 인성도 나오는 것이고 온전한 인성에서 온전한 신성도 나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온전한 신성을 가질 수 없는 사람은 인성 역시 하나님의 인성과 같아질 수는 없지요. 그렇지만 영으로 변화되는 만큼 아버지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신성적인 면도 주어지게 됩니다. 이러한 신성적인 면이 주어지는 만큼 인성도 예전과는 달라지게 되지요. 그래서 성결을 이룬 사람의 인성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인성과는 차이가 납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람으로서 느끼는 인성적인 감정이나 희로애락 등의 감정이 서로 다르다는 의미가 아니라 영으로 이룰수록 인성적인 분야에 있어서도 모든 것이 오직 선과 진리로만 나온다는 말입니다.
뿐만 아니라 똑같은 기쁨을 느낀다 해도 영의 사람은 이 땅의 썩어지고 헛된 것이 아닌 영의 것을 통해서 얻는 참된 기쁨을 느끼지요. 그리고 이러한 영적인 참된 기쁨은 육적인 기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더 진하며 감동적입니다. 또한 육의 기쁨처럼 금방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영원토록 지속될 수가 있지요. 그래서 장차 천국에서도 이 땅에서처럼 인성적인 기쁨, 행복, 감사 등을 느낄 수 있는데 그 느낌이 영원토록 변함 없는 것입니다.
2. 여호와 하나님이 에덴동산에서 그 사람을 내어 보내어
이어지는 23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마침내 아담을 에덴 동산으로부터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 된 토지를 갈게 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범죄 이전의 아담은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아야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마음에 악 자체가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범죄한 후로는 육에 속한 인성을 가진 육의 사람으로 환원됩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신다는 것은 마음을 개간하므로 마음을 할례하여 육을 벗고 다시 영으로 회복해 나가는 것을 의미하지요. 그렇지 않을 때는 여전히 죽은 영으로서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의미가 포함됩니다.
결국 사람이 이 땅에서 경작받는 목적은 근본 육의 흙으로 돌아간 사람이 그 마음 밭을 개간하여 타락하기 이전의 깨끗한 마음으로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개간을 통해 영의 마음을 이룬 사람은 경작 없이 처음부터 영의 마음을 가졌던 아담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똑같이 착하다 해도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착한 것과 세상의 모든 것을 체험하고 알면서도 착한 것과는 전혀 다른 것처럼 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땅에서 경작받는 동안 어찌하든 선악과를 먹은 후로 마음 안에 들어오게 된 악의 모양들을 힘쓰고 애쓰는 수고를 통해 버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개간하지 않은 채 남아 있는 밭은 결국 버림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히브리서 6장 7-8절에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의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와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불순종의 죄를 범한 아담을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아내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내어 보내신다" 표현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아담이 아무리 범죄하였다 해도 아버지 하나님 편에서 사랑하시던 그를 단번에 외면하시고 쫓아내 버리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이 땅으로 보내질 수밖에 없는 아담이었지만 이러한 아담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은 안타까우셨지요.
따라서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내보내실 때는 예전에 공룡을 쫓아내실 때와는 상황이 전혀 달랐던 것입니다. 공룡들은 쫓겨나는 신세로서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으로 마치 그물과 같은 것에 싸서 단번에 이 땅으로 추방당했지만 아담과 하와는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평소에 아담이 타고 다니던 UFO에 태워서 아담을 호위하던 많은 그룹들과 함께 이 땅으로 내려 보내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최후까지 사랑의 배려를 해 주신 상황이었기에 하나님 편에서는 아담과 하와를 "내어 보내셨다"고 표현하신 것이지요.
그런데 24절을 보면 지금까지의 말씀과 상반되는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을 쫓아내시고"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자세히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3. 하나님의 배려 속에 이 땅에 내려온 아담의 고백
하나님의 배려 속에 이 땅에 내려온 아담과 하와는 눈물과 고민 속에서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많은 세월을 보냅니다. 자신이 전에 살던 에덴 동산을 동경하며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동을 했는지'를 생각하고 이전에 배신의 사건을 일으켰던 공룡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회상하게 되지요. 그러면서 자신의 모습을 다시 한번 회개하며 다음과 같이 고백하게 됩니다.
"너무나 멀리 있고 멀리 있구나. 예전에 내가 제2하늘에 살았을 때는 제1하늘이 너무나 가까운 곳이었고 이곳에서 제2하늘도 너무나 가까운 곳이었는데 지금은 이와 같은 입장이 되어 이곳에서 제2하늘이 있는 곳을 바라보니 그곳은 너무나 멀고 먼 곳이라. 만질 수도 없고 갈 수도 없으며 볼 수조차 없음이나니 내 어리석음이 이와 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에 그늘이 되게 하였으니 내가 얼마나 어리석고 어리석은 자이었던고.
이제 이곳에는 아무것도 없고 오직 내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루어야 하는 이곳에 왔으므로 내가 제2하늘에서 얻었던 아버지의 사랑과 영광 그리고 권능이 다 무(無)로 돌아감이라. 이와 같이 낮고 초라한 모습으로 이 땅에 섰으니 얼마나 어리석고 어리석은 일인고 앞으로 이곳에서 몇날 며칠을 살며 얼마나 많은 날들을 세며 살아나가야 할꼬 내 스스로 자신을 보니 심히도 초라하고 심히도 초라하구나.
내가 제2하늘에 있으면서 제1하늘에 내려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처지가 되었으니 이제 이곳에서 내 눈으로 바라보는 것이 내가 예전에 바라보았던 그 땅이 아니요 내가 바라보았던 짐승들이 아니며 내가 바라보았던 환경들이 아니구나. 이로 인해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이곳에 있으나 이미 내가 죄를 지어 이같이 정해진 바 이것에 최선을 다하여 살 수밖에 없는 입장이 되었구나.
내 마음 속에서 이와 같이 정리하고 하늘을 동경하며 아버지께서 주신 이 삶을 얼마나 세며 살아야 할꼬. 그러나 내가 다시 한 번 이 곳의 삶으로 생명을 다시 얻었음이나니 내가 생명의 수를 다하는 날까지 정녕 그 날을 세고 세고 세어 내가 했던 모든 일들에 대해 경계하고 경계하며 이 땅에 나로 인하여 되어진 일들을 인하여서 내가 정녕 속죄하는 마음으로 최대한 죄송한 마음으로 이와 같이 하루 하루를 보내며 살아야 할 것이로되 지금의 보여지는 모든 것들이 이와 같이 적막하고 한없이 적막하구나. 하늘은 멀고 닿을 듯하나 닿지 아니하며 너무나 멀리 있고 멀리 있음이나니 내 마음이 이와 같이 한탄스럽고 한탄스럽구나.
그러나 내가 이와 같이 기회를 얻어 아버지께서 주신 삶을 다시 한 번 얻었음이나니 내가 이 땅에서 아버지의 주신 은혜 가운데 번성하며 내 생명이 다하기까지 새로운 삶을 삶에 있어서 두렵고 떨리는 것이로다. 내게 주어진 삶으로 인하여서 이와 같이 살아야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구나. 그러나 다시 한 번 삶을 얻었으니 생명을 얻었으니 내 있는 범위 내에서 내가 한 일들과 내가 저지른 일들을 생각하며 마음에 뼈저리게 경계하며 날들을 보내어 이제 내 생명의 수가 다하여 질 때는 아버지를 만날 수가 있음이며 그분을 또한 뵐 수가 있을 것이니 정녕 이와 같이 내가 이 날들을 다하기까지 경계하며 경계하며 살리라"
아담이 둘째 하늘에 살던 당시 그가 누렸던 영화와 위엄은 대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런 아담이 하루 아침에 아무것도 없는 이 땅에 내려와 모든 것을 자신의 힘과 노력으로 해 나가야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지요. 예를 들어, 문명사회에서 갑자기 떨어져 나와 무인도 같은 곳에서 산다고 해도 쉬운 것이 아닌 것처럼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처음부터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해야 하는 막막한 삶이 어떻겠습니까? 그 충격에서 벗어나는 것도 하루 아침에 되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이 했던 일을 후회하고 후회했지요.
'내가 왜 선악과를 따 먹었던고',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그때 그 말에 넘어가지만 않았으면…' 하면서 말입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 이런 자신의 처지를 바라보며 아담은 스스로를 위로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한없이 그러고 있을 수는 없지요. 아담은 자신에게 또 한번의 기회를 주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에 새로운 삶을 주신 것에 감사하며 다짐의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던 자신의 행동에 대해 경계하고 경계하며 새로운 삶을 다짐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아담이 에덴 동산으로부터 내어 보내진 후,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을 어떻게 지키게 하셨을까요? 그동안 아담이 에덴 동산을 지켜야 했던 이유는 이미 창세기 강해를 통해 설명드린 대로 둘째 하늘에 있는 에덴 동산과 맞닿은 다른 편에는 어둠의 세력인 악한 영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에덴 동산을 지키던 아담이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나게 되자 그 빈자리를 채워 줄 존재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의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도는 화염검을 두어 지키게 하십니다. 이렇게 에덴 동산을 지키게 하신 이유는 바로 악한 영들이 에덴 동산 중앙에 있는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지요. 물론 에덴 동산의 생령들 아담의 후손인 생령들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는 것도 이유이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생명나무를 먹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두루도는 화염검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그 모습은 다음 시간에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또한 그룹의 가장 머리인 네 생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도 다음 시간부터 되어질 것입니다.
결론
아담이 비록 단 한 번의 불순종으로 인해 이처럼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지만, 그가 행한 불순종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인류의 죄의 시작이었을 뿐만 아니라 너무나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입은 자로서 아담의 불순종은 그만큼 죄의 중함이 큰 것이었지요. 이런 죄의 짐을 벗기 위해 아담은 이 땅에 주어진 생명의 시간 동안 회개하고 또 회개하며 근신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사람들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요? 크고 작은 수많은 죄들을 지어가면서도 그것이 죄인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죄인 줄 알면서도 그냥 넘어가 버리기도 하구요. 잠언 14장 9절에는 미련한 자가 죄를 심상히(尋常)여긴다 즉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작은 죄라도 결코 대수롭지 않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저는 지금까지 29년간 신앙생활해오면서 초신자 때 단 한 번 입술로 하나님 앞에 탄식하는 듯한 소리를 내었던 것을 아직도 뼈저리게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버지 하나님 앞에 죄송한 마음이 들어서 저도 모르게 울컥 울컥 가슴이 미어지는 듯하지요. 이러한 마음이었기에 저는 신앙생활하면서 항상 저를 돌아보며 혹여라도 아버지 하나님 앞에 합당치 못한 것이 있는가를 점검했습니다. 혹여 깨닫지 못하는 것이 있다면 깨닫게 해 주시라고 기도했지요. 이렇게 달려가니 신속히 모든 악의 모양을 버릴 수 있었고 아버지 하나님의 보장받는 권능의 종이 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모습이십니까?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을 때 아담처럼 이전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는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하는 모습이신지요? 작은 악의 모양이라도 발견되어지는 것은 어떻게든 버리기 위해 노력하십니까? 이런 행함의 모습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도 위로부터 은혜와 능력을 주시고 성령의 도우심 속에 신속히 육을 벗고 영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작은 악의 모양 하나라도, 불순종 하나라도 결코 소홀히 여기며 넘겨 버리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깨닫고 돌이켜 본성 속에 있는 죄성까지도 벗어버리고 능력을 받아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6-03-23 오전 9:37:34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