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72)
서론
우리는 이 땅에서 육의 몸을 입고 사는 동안 수고한 만큼의 소산을 얻게 됩니다. 육의 일들뿐만 아니라 영적인 일들도 마찬가지이지요. 땀흘려 수고하며 기도할 때에 기도의 열매로 응답을 얻게 되고 열심히 수고하며 전도하고 심방할 때에 그 열매로 귀한 영혼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열매를 맺으려면 이에 합당한 수고와 노력이 있어야 하며 인내도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인간을 경작하시는 동안 참자녀라는 열매를 얻으시기 위해 많은 수고와 인내를 하고 계시지요. 인간들로 인해 많은 고통과 슬픔을 당하셨고 사랑하는 아들들까지 내어 주시는 희생을 하셨습니다.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수고와 희생의 열매가 바로 저와 여러분을 비롯하여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지요.
여러분도 크게는 새예루살렘이라는 목표를 향해, 작게는 금년 한해 동안 이루리라 다짐한 목표를 향해 열심히 수고하며 달려 오셨습니다. 갈라디아서 6:9에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말씀하셨으니 신속히 목표한 바를 이루시기 바라며 마침내는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본론
1.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지난 시간에 살펴본 대로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아담은 물론, 이 땅과 이 땅에 사는 생물들에게도 함께 저주가 임하였습니다. 결국 이 땅에서 살게 된 아담은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고 땅도 저주를 받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18절 전반절에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말씀하고 있지요. 가시덤불이나 엉겅퀴로 인해 밭의 식물이 제대로 자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땅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기 전에는 물론 농사를 지을 필요도 없었지만 만약 농사를 지었다고 하면 씨를 뿌리는 대로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거두었겠지요. 하지만 땅이 저주를 받아 필요 없는 나무와 풀들이 생겨나게 되면서 이것들을 제거하고 땅을 갈아 옥토로 만드는 개간의 작업이 필요하게 된 것입니다.
이는 이 땅에서 경작받게 된 사람도 마찬가지이지요. 사람이 죄를 짓기 전에는 그 마음에 오직 영의 지식만 있어서 흠과 티가 없는 깨끗한 마음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담의 불순종 이후 인간에게는 죄가 들어오기 시작했고 이것들은 마치 가시덤불과 엉겅퀴처럼 마음 안에서 자라나기 시작했지요. 그러면서 영의 기운을 막게 되었고 사람은 점점 더 육으로 물들어 가게 되었습니다. 마음에 영의 것을 심는다 해도 이처럼 마음 안에 자라나고 있는 가시덤불과 엉겅퀴와 같은 악의 모양들로 인해 원하는 열매를 맺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따라서 사람도 마음 안에 자라는 악의 모양을 제거하고 뽑아내는 개간이 필요하게 되었고 이것이 곧 이 땅에서 인간 경작을 받는 과정입니다. 마치 밭도 가시덤불과 잡풀로 뒤덮이면 전혀 못 쓰는 밭이 되어지는 것처럼 마음을 개간하지 않고 할례하지 않는 사람도 결국은 버려지게 되지요. 아버지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는 아무 쓸모 없는 존재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담의 범죄로 인해 시작된 하나님의 저주는 이 땅의 밭을 개간해야 하는 육적인 수고와 함께 인간의 근본 마음 밭을 개간해야 하는 영적인 수고를 가져오게 된 것입니다.
18절 후반절에는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꼭 밭의 채소만을 먹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밭의 채소라는 것은 이 땅에서 수고하여 얻는 모든 소산을 대표하는 말이며 영적인 수고에 따른 소산도 여기에 포함됩니다.
영적으로도 열심히 마음 밭을 개간함으로 영혼이 잘되어질 때에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여지는 축복의 열매를 얻을 수 있습니다. 아담이 저주받아 이 땅에 내려와 살기 전에는 어떤 질병이나 재앙으로 인해 고통받을 필요가 없었지만 죄가 들어오면서 각종 질병과 재앙으로 고통받게 되었지요. 따라서 죄의 문제를 해결하면 질병과 재앙도 떠나는 것입니다. 결국 영혼이 잘되어질 때에 범사가 잘되는 축복과 함께 강건함의 축복 또한 주어지는 것이지요.
이처럼 수고에 대한 열매로서 영육 간에 소산이 주어지게 되며 이를 가리켜 너의 먹을 것은 밭의 채소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2.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19절 전반절에 "네가 얼굴에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고" 말씀했으니 땀이 흐르는 육적인 수고가 있어야 비로소 식물을 먹을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도 땀이 흐르는 수고의 본을 보이셨는데 육적인 수고로움의 본을 보이신 것이 아니라 영적인 수고에 대한 본을 보이셨습니다. 바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이지요. 예수님께서는 항상 쉬지 않고 중심의 기도를 하셨지만 이날은 누가복음 22장 44절에 기록된 대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이 땅에 육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이러한 피땀어린 기도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능히 십자가를 지시고 인류의 구세주가 되셨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들 역시 주어진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불같은 기도가 반드시 따라야 합니다. 그럴 때만이 마음의 할례를 이루어 하나님 앞에 영적인 충성을 할 수가 있지요. 온 힘을 다하는 충성도 있어야 하지만 불같이 기도하며 마음에 할례하지 않으면 이는 단지 육적인 충성에 그치고 맙니다. 육적인 충성은 믿음으로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늘의 상급이 되지 않지요. 이처럼 하나님 앞에서는 육적인 수고도 중요하지만 마음을 개간하고 할례해 가는 영적인 수고가 먼저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19절 후반절에는 "필경은 흙으로 돌아가리니 그 속에서 네가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했는데 이는 흙으로 지음받아 생령이 되었던 아담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아담은 원래 이 땅의 흙으로 지음을 받은 후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심으로 생령이 되었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아담을 위해 특별히 에덴 동산을 창설하시고 이끌어 들이셨습니다. 그러나 불순종의 죄를 범함으로 영이 죽게 되자 원래 아담이 취함을 입었던 이 땅으로 내려와 살게 된 것입니다. 이때부터 아담은 육의 질서를 좇아 살게 되었고 결국 육의 속성에 따라 세월이 지나면 늙고 죽어서 썩어질 수밖에 없게 되었지요.
그래서 불순종의 죄를 범한 아담이 육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되었음을 말씀하고 있는데 사람은 죽으면 결국 한 줌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 104편 29절에도 "주께서 낯을 숨기신즉 저희가 떨고 주께서 저희 호흡을 취하신즉 저희가 죽어 본 흙으로 돌아가나이다" 했고 전도서 3장 20절에는 "다 흙으로 말미암았으므로 다 흙으로 돌아가나니 다 한 곳으로 가거니와" 했지요.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은 이처럼 썩어질 몸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이러한 것만을 생각하며 살아가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며 썩어질 것을 위하여 심지 말고 영원한 것을 위해 심으시기 바랍니다.
3.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라.
20절을 보면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했는데 아담이 아내에게 하와라는 이름을 지어준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는 하와가 앞으로 이 땅에서 경작받게 될 수많은 사람들의 어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담과 하와를 통해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었으니 아담과 하와는 모든 인류의 조상이 되지요. 따라서 앞으로 나오게 될 수많은 후손들의 가장 어미되는 사람이 바로 하와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자에게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의미의 하와라는 이름을 지어준 것이지요.
그런데 이 이름에는 또 한 가지의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지금 이 땅에는 60억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지만 영적으로는 단지 살아 숨쉬고 있다고 해서 그를 산 자라 할 수 없습니다. 영이 죽어 있으면 아무리 육으로는 살아 있다 해도 하나님 편에서 보실 때는 죽은 자와 같지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사람만이 진정 살아 있는 사람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자에게 '모든 산 자의 어미'라는 의미의 이름을 지어준 것도 그 안에는 앞으로 영이 살아나 구원받고 영생에 이르게 된 사람의 어미가 된다는 영적인 의미를 담아 놓았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여기에는 결국 아담과 하와가 마침내는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전에 지옥 설교를 통해 설명 드렸듯이 아담과 하와는 이 땅에 내려와 경작받으면서 자신들의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삶을 살므로 결국은 구원에 이를 수가 있었지요. 이처럼 하와는 육적으로는 인류의 조상이요 영적으로는 구원받은 자녀들의 어미로서 세워졌습니다.
이렇게 산 자의 어미가 있다면 반대로 죽은 자의 어미도 있을 텐데 그렇다면 과연 죽은 자의 어미는 누구일까요? 물론 루시퍼가 타락한 천사이기는 하지만 그는 악한 영의 세계의 가장 우두머리일 뿐만 아니라 모든 죽은 자가 가게 되는 지옥에서 가장 머리가 되지요. 또한 사람들이 죄를 짓고 사망인 지옥으로 가는 것도 결국은 악의 가장 시초이며 근본인 루시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든 죽은 사람 즉 영이 죽어 마침내는 지옥으로 가게 되는 모든 사람의 근본 시작은 루시퍼로부터 비롯된 것이요, 결국 루시퍼는 죽은 자의 어미가 됩니다.
계시록 19장 2절을 보면 루시퍼에 관한 내용이 나오는데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했습니다. 이처럼 성경은 루시퍼를 큰 음녀라 하여 여성으로서 표현하고 있지요.
마태복음 23장 15절에는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하나를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 하여 지옥 자식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처럼 구원받지 못한 사람은 결국 죽은 자의 어미 루시퍼가 낳은 지옥 자식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지금도 원수 마귀 사단은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 자식을 만들기 위해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4.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21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했는데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이 땅에서 땀흘려 수고해야 그 소산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니 얼마나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셨겠습니까. 그래서 이러한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사랑의 배려로서 이들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것입니다.
이 땅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에덴 동산과는 전혀 다른 환경이지요. 아담과 하와가 갑자기 이러한 환경에 놓여 겪게 될 고통을 생각하신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으로 이들의 몸을 보호할 수 있도록 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자상하신 인성을 느낄 수 있는 모습이지요.
둘째로, 하나님께서 지어주신 가죽옷에는 구원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가죽옷은 단지 옷으로서의 의미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들 사이의 구원의 끈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그들을 버리지 않으시고 끝까지 은혜의 끈, 구원의 끈을 놓지 않으신다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이지요.
아담과 하와는 이미 영이 죽은 상태이므로 영이신 하나님과의 교통이 끊어진 상태이지만 단 번에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영의 기운이 아직은 남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과의 교통이 어느 정도 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의 아들 가인도 하나님과 대화하는 장면이 성경에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살 때처럼 밝히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며 이후로 사람 안에 죄가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하나님과의 교통은 희미해져만 갔습니다. 나중에는 하나님 앞에 합당하여 도구로 쓰일 수 있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교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장차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님과의 교통이 점점 희미해져 갈 것을 아시기에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하나님과의 끈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그들에게 심어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다는 사실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이러한 확신의 징표가 있었기에 이 땅에 사는 동안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며 구원에 이를 수가 있었지요. 만약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의 징표가 없었다면 하나님 앞에서 지어서는 안 될 너무나 큰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는 죄의 짐으로 인해 눌리고 낙담하여 스스로 포기해 버렸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한 영혼도 지옥에 가기를 원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는 설령 중한 죄 가운데 있는 영혼이라 해도 그에게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는 이런 중한 죄를 지었으니 너에게는 더 이상 기회를 줄 수 없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각종 예배나 기도회를 통해 기회를 주십니다. 이러한 은혜의 기회를 붙잡고 철저히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킨다면 하나님께서는 용서하시고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아버지이시며 용서와 긍휼과 자비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회를 주셔도 스스로가 그 기회를 붙잡아 돌이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 혹여 하나님과의 사이에 죄의 담이 있다면 철저히 헐어야 하겠습니다. 고린도후서 6장 2절에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말씀하셨으니 오늘이 바로 은혜의 날이요 구원의 날이 되시기 바랍니다.
5.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22-23절을 보면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의논하시며 대화하시는 장면이 나오는데 결국 아담과 하와를 에덴 동산으로부터 내어보내시기로 결정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때도 홀로 결정하신 것이 아니라 주님과 성령님과 함께 의논하시며 이와 같은 결정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또한 지금까지는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났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했는데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내어보낸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쫓아냈다는 말과 내어보냈다는 말과는 커다란 의미의 차이가 있지요. 다음 시간에는 이에 대한 설명과 함께 하나님께서 아담을 에덴 동산으로부터 내어보내실 때에 어떠한 배려를 해 주셨는지에 대해 설명하겠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녀들이 잘못을 했을 때에 부모 앞에 나오는 자녀들의 모습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어떻게든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피하려는 경우와 솔직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경우지요. 그런데 두 가지 모습 중에서 어떠한 모습으로 나오느냐 하는 것은 물론 자녀의 마음에 얼마나 악이 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이와 함께 자녀가 부모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부모님의 사랑을 크게 느끼고 있는 자녀는 자신의 잘못을 솔직히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 올 것입니다. 이는 '부모님께서 이번에도 용서해 주시겠지' 하는 요행의 마음에서가 아니라 부모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 줄 느끼기 때문에 이러한 부모의 마음을 더 이상 아프게 하지 않으려는 마음에서입니다. 잘못에 대한 대가는 엄하게 받더라도 자신을 사랑해 주시는 부모님 앞에 떳떳하고 바른 모습이 되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부모의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긍휼이나 자비, 용서에 대해 느끼지 못하는 자녀라면 오히려 어떻게든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어떠한 모습이신지요?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시는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어떠한 모습이십니까?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아들을 화목 제물로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 인생들을 사랑해 주셨지요. 이러한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들이 죄 가운데 살아가는 것도 마음 아파하시지만 죄를 짓고도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나오지도 않는 모습을 더욱 마음 아파하십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하고 점점 하나님과 멀어지는 것을 더욱 마음 아파하시지요.
그러므로 아담이 하나님 앞에 죄를 지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손을 내밀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아담은 그 손을 잡기보다 자신의 죄를 숨기려했고 책임을 회피하려 했지요. 아담이 정녕 마음 중심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느꼈다면 그때라도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돌이키려 했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아담이 결국 이 땅에 내려와 인간 경작을 받게 되면서 정녕 하나님의 참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무엇 하나 부족됨이 없이 살던 에덴 동산에서 느껴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느끼게 되지요. 그러니 이후로 아담이 어떠한 삶을 살았겠습니까? 하나님을 마음 중심에서 사랑하며 그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혹여 아버지 하나님의 진한 사랑을 마음에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있다면 오늘 이 밤에 그 사랑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이 시간에도 여러분에게 손을 내밀고 계십니다. 죄의 담이 있으면 먼저 하나님 앞에 내려놓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의 손을 잡으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여러분에게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기쁨과 평안과 행복이 마음 안에 채워질 것입니다. 이러한 축복의 시간이 되시기를 사랑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8-01-15 오후 9:49:54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