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70)
서론
하나님께서 아담을 향해 "네가 어디 있느냐" 하고 부르시니 아담은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에덴 동산은 셋째 하늘과 같이 온전한 영의 세계는 아니라 해도 영의 세계에 속한 둘째 하늘에 있는 곳으로서 이처럼 영의 음성을 들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또한 8절에는 "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말씀하셨으니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낯을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에덴동산에 분리된 하나님의 영이 내려오셨을 때에 아담과 그의 아내가 볼 수도 있고 대화할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에는 아담을 돕도록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그룹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룹들 역시 영으로만 된 존재였지만 아담은 그들을 볼 수도 있었고 대화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는 아담 자체가 생령으로서 영에 속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여러분도 영의 세계로 들어오면 당연히 영의 세계를 보고 들을 수 있게 됩니다. 허락되어진 어떤 특정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영으로 들어오는 만큼 누구에게나 영의 세계는 열리는 것입니다. 물론 영안이 열리고 영의 귀가 열리는 것이 꼭 영으로 들어와야만 되는 것은 아니지요. 어떤 경우는 아직 영적으로 온전치 못한 사람이라 해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허락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은사 차원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게 하시고자 영안을 열어 주시는 경우도 있구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잃었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영의 차원으로 들어오게 되면 생령이었던 아담처럼 반드시 영의 세계와 교통할 수가 있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어떠한 이유로 하나님께서 영안을 열어 주셨든지 그가 보고 들은 것이 하나님 앞에서 합당하게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여라도 자신을 드러내려 한다거나 다른 사람을 힘들게 해서는 안 되지요. 오직 성도들에게 은혜를 끼치고 덕을 세우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로만 쓰여져야 합니다. 그럴 때 영안도 점점 더 밝히 열리는 것이구요.
앞으로 본 제단은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많은 성도님들의 영안이 열리게 될 텐데 이러한 점을 잘 명심하여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받는 분들이 많이 나오게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본론
지난 시간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왜 분리된 영을 보내어 아담을 부르셨는지에 대해 설명드렸습니다. 모든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신 분이시지만 그래도 아담을 통해 직접 그가 왜 범죄하였는가를 들어보기 위함이라 했지요.
이것은 아담에게 책임을 추궁하기 위한 것보다 아담으로 하여금 자발적으로 아버지 하나님 앞에 나아와 자신의 죄를 고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이런 모습을 통해 우리는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인성적인 면을 느낄 수 있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신성적인 면만을 생각한다면 만물의 주관자시요 심판자이며 재판장으로서 범죄한 아담을 당장에 벌하실 수도 있으셨지만 인성적인 면으로는 마치 인자한 아버지와 같이 범죄한 아담에게 기회를 주며 긍휼을 베풀기 원하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은 과연 어떠신지요? 내게 맡겨 주신 양 떼들을 향해, 내 주변의 사람들을 향해, 혹은 나를 배신하고 힘들게 하는 영혼들을 향해 과연 어떠한 마음인가를 점검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어찌하든 기회를 주시고자 하는 마음으로 아담을 찾아오셨을 때에 자신의 죄를 자복하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이미 육에 속한 혼의 작용이 발동되어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기 시작한 아담은 점점 더 육의 모습으로만 빠져들어 가는 것을 볼 수 있지요.
1.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두려워 숨어버린 아담
하나님께 아담을 찾아 부르시니 어떠한 반응이 나왔습니까? 10절을 보면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답변하지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기 전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면 당연히 반가워서 달려갔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았을 것이고 하나님에 대해 좋은 느낌만을 가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범죄함으로 인해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어지니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좋은 느낌들 대신에 오히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이 찾아온 것입니다.
로마서 8:6에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말씀한 대로 영의 생각만을 할 때는 생명과 평안을 느꼈지만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게 되니 불안과 두려움으로 인해 결국 사망 가운데로 빠져들게 되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여러분이 아버지 하나님에 대해 느끼는 것도 영의 생각을 하느냐 육신의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은혜 안에 거하고 성령이 충만하여 말씀대로 살아갈 때는 영의 생각만 있으니 사랑의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으로 느껴지지만 어두움 가운데 거하면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사이에 막힌 죄의 담이 생기면 육신의 생각이 동원되며 두렵고 무서운 하나님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따라서 여러분 안에 평안과 행복이 아닌 불안과 초조, 그리고 두려움이 임해있다면 즉시 자신이 어떠한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하며, 사단의 역사를 받고 있는지를 살펴서 바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것입니다.
2. 긍휼의 마음으로 아담에게 물으시는 하나님
이어지는 11절을 보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물으셨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행한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아담이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고 말했을 때에 곧바로 아담에게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하고 물으실 수도 있으셨지요.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물으신 것이 아니라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여기에는 아담을 끝까지 믿어 주시려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지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자신들의 벗었음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아시면서도 마치 그것을 모르시는 것처럼 누군가가 너희에게 벗었음을 말해 주어 알게 되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여러분도 이런 경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너무나 사랑하고 믿어주던 자녀가 부모의 말에 불순종하는 일을 행했다면 '무슨 다른 이유가 있을 거야' 하며 끝까지 자녀를 믿어주기 원하는 마음이지요. 설령 자녀가 잘못한 것을 안다 해도 뭔가 합당한 이유가 있으리라는 마음으로 자녀의 입에서 그러한 답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마음이지요.
저도 수많은 양 떼들과 일꾼들 그리고 주의 종들을 대하면서 이런 경우들을 많이 겪게 됩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항상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나 제가 알아야 할 일들에 대해서 알려 주시기 때문에 때로는 어떤 사람이 무슨 잘못을 했고, 어떤 죄를 짓고 있는지까지 알게 되곤 하지요.
이런 경우 아버지 하나님께서 알려 주신 것이니 당연히 정확한 것이지만 제 마음에는 그래도 아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끝까지 믿어주려고 합니다. 또 주변에서 보고를 통해 어떤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도 저는 항상 선한 쪽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상대의 입장이 되어 변호해 주려는 마음이고 상대의 말을 들어보기 전에 판단하지 않지요.
여러분도 어떠한 상황을 만나든지 한쪽 편의 말만 듣고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양편의 입장을 다 들어보고 당시의 상황과 환경 등을 정확히 분별해야 어느 한 편이 일방적으로 불이익 당하는 일이 없게 되지요. 또한 설령 어떠한 사람의 잘못이 드러난다 해도 그에게 돌이킬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더욱이 머리된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긍휼의 마음으로 영혼들을 품어나가야 하지요.
어떤 조직이 바로 서고 유지되기 위해서는 법과 질서가 필요합니다. 조직에 속한 사람들이 법을 지키며 질서를 따르면 조직이 아름답고 원활하게 돌아가지만 어떤 조직이든 법과 질서를 벗어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이때 머리된 사람으로서 이러한 사람까지도 조직 안으로 품기 위해서는 덕과 사랑의 온유함이 필요하지요.
예를 들어, 법을 적용함에 있어서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적용되어야 하겠지만 그 법을 어떤 마음으로 적용하느냐에 따라 머리된 사람의 품안에 깃들 수도 있고 오히려 반대로 더 퉁겨져 나갈 수도 있습니다.
만약 어떤 규율을 세운다고 할 때에 그 규율을 세우는 목적이 규율에서 어긋나는 사람에게 불이익이나 처벌을 주려는 것이라면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수단이 됩니다. 그러나 규율을 세워놓은 목적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규율을 따랐을 때 모두가 편안하고 질서 있게 흘러가게 하기 위한 것이라면 사람들이 이 규율을 통해 오히려 더 잘 하려는 마음을 가지게 되지요. 이처럼 같은 규율을 세운다 해도 그 목적에 따라 결과는 전혀 달라지는 것입니다. 결국 그 규율을 운영하는 머리된 사람이 어떠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에 달려 있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이 어기는 사람에게 벌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 우리 가운데 살아남아 있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함이며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또 원수 마귀 사단의 종노릇하지 않게 하시기 위함이구요.
신명기 10:13에 "내가 오늘날 네 행복을 위하여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 하여 명령과 규례를 주신 목적이 우리의 행복을 위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지요. 말씀 안에 사는 사람을 보호하시기 위함이며 말씀대로 사는 사람에게 축복 주시기 위함입니다. 영혼들이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을 막고 어떻게든 생명으로 인도하시려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를 힘들게 하려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지요.
그러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영혼에 대해서도 무조건 정죄하고 벌을 내리시는 것이 아니라 그가 다시금 회개하고 돌이켜서 말씀 안에 살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고 또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머리로서 바로 이러한 마음이 되었을 때에 그 안에 많은 영혼들이 깃들게 되는 것이지요.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끝까지 믿어 주시며 그에게 기회를 주시고자 하는 마음으로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물으신 후에 비로소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 실과를 네가 먹었느냐" 물으십니다. 그렇다면 아담은 어떻게 답변해야 했을까요? 여러분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과연 어떻게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당연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진실된 답을 해야 하지만 아담은 그렇게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3.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변명하는 아담
긍휼의 마음으로 물으시는 하나님께 아담은 어떠한 답변을 했습니까? 12절을 보면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 그가 그 나무 실과를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답변하지요. 이미 진실된 영의 대답이 아닌 육의 대답이 나오고 있는데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기보다는 잘못의 책임을 여자에게 전가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자가 선악과를 먼저 먹고 남자에게 주었으니 어찌 보면 아담의 대답이 맞을 수도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자에게 먼저 물으신 것이 아니라 아담에게 먼저 물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곧 아담이 모든 것의 책임자로서 설령 여자가 먼저 선악과를 먹었다 해도 여자는 결국 아담의 권세 아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아담에게 묻고 계신 것이지요. 여자는 아담의 지체로 주신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아담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기보다는 어떻게든 책임을 모면하고자 여자에게 책임을 전가했던 것입니다.
더욱이 아담은 여자에 대해 "하나님이 주셔서 나와 함께하게 하신 여자"라고 표현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여자를 자기에게 주셔서 함께하게 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심을 밝히고 있는 것이지요. 다시 말하면 자신의 잘못을 조금이라도 제하고자 책임의 소재를 아버지 하나님에게까지 전가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여자를 주시지 않았다면 이러한 일이 발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지요. 육에 속한 혼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육신의 생각을 동원해가니 아담은 순간에 이러한 모습에까지 이르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도 책임을 져야 할 입장에 있는 사람이 자신의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려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됩니다. 머리는 당연히 어떤 일에 대해 책임을 질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고 오히려 아랫사람의 잘못까지 자신의 잘못으로 품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도 남에게 책임을 돌리고 자신의 피할 길만을 찾기에 급급하지요.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 주신 영혼을 잃었다면 이는 당연히 머리된 책임자가 자신의 잘못이라 인정하고 어떻게든 잃은 영혼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탓, 저런 탓, 핑계를 대며 아랫사람이나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린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무엇이라 하시겠습니까?
저는 한 영혼이라도 잃는다고 하면 제 몸의 일부가 떨어져 나가는 듯한 고통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매달리게 됩니다. 제가 직접 그런 분들을 일일이 심방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렇지를 못하는 상황이니 더욱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입니다.
양 떼를 맡아 관리하는 주의 종들이나 일꾼들이 이러한 마음을 알고 목자의 마음이 되어 영혼들을 관리해 준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모든 주의 종들과 일꾼들이 이런 마음이 되어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삽나이다." 고백할 수 있게 되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그런데 때로는 책임을 남에게 떠넘기는 경우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공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 경우도 봅니다. 마태복음 6:3-4에 보면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했지요. 이 땅에서 자신의 행위를 드러내어 이로 인해 상을 받고 칭찬을 들었다면 이미 상을 받았으므로 장차 천국에 가서 받을 상이 없습니다. 하물며 다른 사람의 공을 마치 자신의 공인 것처럼 드러내었다면 이는 하나님 앞에서 당연히 합당하지 못한 일이지요.
따라서 사람의 눈치를 보고 사람 앞에 칭찬 받으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을 바라보아야 하며 설령 남들이 전혀 몰라 준다 해도 아버지 하나님만 알아 주시면 되는 것이지요. 이것이 곧 믿음이요, 믿음으로 행하는 사람의 수고와 행함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갚아 주시며 장차 천국에서도 큰 영광과 상급으로 갚아주십니다.
4. 여자가 가로되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은 일에 대해 먼저 아담에게 물으시고 다음에는 여자에게 물으셨습니다. 13절에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물으시니 여자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답변하였지요.
여자는 자신이 먼저 뱀의 꾀임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었으며 아담에게도 주어 먹게 하였습니다. 여자가 비록 아담에게 속한 지체요, 아담이 주체로서 모든 책임을 아담이 진다 해도 여자 역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지요. 그런데 여자는 자신의 잘못은 전혀 인정하지 않은 채 뱀에게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습니다.
'뱀이 꾀어서'라는 답변은 이미 자신이 꾀임에 넘어갔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뱀에게 모든 잘못을 덮어씌우고자 했지만 스스로 꾀임에 넘어갔음을 인정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잘못을 하면 "저 사람이 나를 꾀어서 내가 이렇게 되었습니다." 하는데 잘못하기는 했지만 원인을 제공한 사람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이미 자신의 잘못이 드러났기 때문에 피할 수는 없지만 이런 식으로 자신의 잘못을 경감시켜보려는 마음인 것이지요.
이때 물론 원인을 제공한 사람의 잘못도 크겠지만 이렇게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이는 사람 또한 자신이 얼마나 악한지를 스스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경우 아버지 하나님 편에서는 두 사람 모두에게 책임을 물으시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또한 같은 죄를 지은 경우라 해도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과 중심이 어떠하냐에 따라 외면하시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외면하지 않으시기도 합니다.
악으로 인해 이미 중심이 굳어져 버린 경우라면 웬만한 회개로는 아버지의 외면하신 낯을 돌릴 수 없지요. 결국 끝까지 아버지의 외면하심을 당하여 사망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끝까지 외면하지 않으시고 기회를 주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전에 지옥 설교를 통해 설명드렸듯이 아담과 하와는 모든 인류를 죄 가운데로 빠져들게 만든 장본인들이었음에도 이 땅에서 경작 받는 동안 철저히 회개하고 돌이켜 구원에 이르렀던 것을 볼 수가 있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그들에게는 끝까지 외면하지 않으시고 기회를 주셨던 것입니다. 또한 인간 경작을 위해서 필히 이러한 순서를 밟아야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공의에 의해 아담과 하와의 구원의 길을 열어 주신 것입니다.
이는 아담과 하와의 마음과 중심이 오늘날과 비교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아직은 악에 물들지 않은 상태였다는 사실입니다. 결국 아담과 하와는 자신들의 책임을 서로 전가하며 점점 더 육신의 생각을 동원해 가고 말았습니다. 죄로 관영된 세상도 아니고 죄에 물든 상황이 아닌데도 이렇게 이런 죄들이 나오고 있으니 오늘날은 인간들이 얼마나 더 악해져 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이미 만세 전부터 계획하셔서 구세주로서 사역을 감당하실 예수 그리스도와 보혜사 성령님을 예비해 두셨던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는 이런 구원의 도에 대한 비밀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어떻게 예비해 두셨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의 잘못을 떳떳하게 인정할 수 있는 사람, 이런 사람이 용기 있는 사람이며 앞으로 크게 발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잘못을 인정하기보다 숨기려하고 이런저런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러 발전할 수가 없지요.
그런데 영적으로 볼 때에 진실된 사람만이 이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시정해 나갈 수가 있습니다. 이렇게 진실된 사람은 바로 육신의 생각을 동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마음 안에 자신의 유익을 구하려는 마음이 있고, 물러서려는 비겁한 마음이나 남의 탓을 하는 마음 등 진실되지 못한 마음이 있는 사람은 때가 되면 결국 육신의 생각 가운데 비진리의 모습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겉으로 그럴 듯하게 포장해 놓았다 해도 극한 상황이 되면 속에 있는 것이 나오지요.
그러나 진실된 사람, 즉 마음에 악이 없고 선한 사람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영의 생각만이 나옵니다. 온전히 영으로 들어오기 전에는 누구도 100% 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생령이었던 아담조차도 육이 틈타기 시작하니 순간에 육의 모습으로 변하였던 것입니다.
따라서 온전히 영으로 이루기까지 결코 스스로 자만하거나 나태해져서는 안 됩니다. 자기 스스로도 모르는 육의 모습이 내 안에 잠재되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늘 깨어 자신을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지요. 모든 육의 모습을 버리면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인정해 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아 신속히 아버지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영적 장수로 나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8-01-15 오후 9:49:55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