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59)
서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끔 어떤 사람들을 보면 진리를 바로 알지 못하는 가운데 진리인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나름대로 해석하여서 잘못 인용함으로 남을 힘들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대로 여자는 남자의 갈빗대를 취하여 만들었다는 말씀을 가지고 여자를 마치 남자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여자를 남자보다 더 열등한 존재라 생각하기도 하구요.
또한 고린도전서 11:3에 "그러나 나는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니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 중에서 남자는 여자의 머리라는 내용을 가지고 여자에게 무조건적인 순종을 강요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녕 마음이 선한 사람이라면 어찌 이렇게만 생각을 하겠습니까. 여자가 남자의 갈빗대로 만들어졌다면 이는 곧 여자는 남자의 분신이 되는 것인데 분신이라면 그만큼 여자를 자신의 몸처럼 더 아끼고 사랑해 주어야 마땅하지 않겠는지요. 또한 머리라면 당연히 여자를 더 잘 보살펴 주고 바르게 이끌어 주면서 머리의 역할을 제대로 할 때라야 진정 아내로부터 존경받는 진정한 머리가 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처럼 똑같은 말씀을 가지고도 남자 편에서 어떠한 마음을 가지느냐에 따라 여자에 대한 마음씀과 행함이 전혀 달라질 수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남편에게만 아내를 사랑하고 아껴야하는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요. 아내 편에서도 남편에 대해 행해야 할 도리가 있습니다. 여자는 근본 남자에게서 취함을 입었고 여자의 머리가 남자라 하셨으니 아내 편에서도 이 말씀을 선으로 받는다면 당연히 남편에게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진리이지요. 남녀는 평등하다 하며 무조건적으로 동등한 권리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더욱 섬기는 마음으로 남편을 대할 때라야 남편으로부터도 사랑받는 아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을 통해 주 안에서 남녀관계의 바른 질서에 대해 깨닫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가정에서는 더욱 하나님 앞에 합당한 부부의 모습이 되시기 바라며 교회 안에서도 바른 질서를 좇아 모든 일들이 순리 가운데 이루어져 나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또한 오늘 말씀에는 매우 중요한 영적인 의미가 설명되는데 바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신 말씀에 담긴 의미이지요. 이 말씀 역시 그 안에 담긴 영적인 의미를 잘 깨달으셔서 모두가 주님 앞에 합당한 아름다운 신부의 모습으로 나오게 되시기를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론 /
1. 아담의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신 하나님
본문 21-22절을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아담을 위해 여자를 지으시는 장면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자를 만드시기 위해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실 때에 하나님께서는 먼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습니다. 마치 수술을 하기 위해 먼저 마취를 시키는 것과 같은 이치이지요.
이를 통해 우리는 생령인 아담도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생령인 아담의 몸은 물론 썩지 아니할 몸이기는 하지만 분명 우리처럼 육의 몸을 입고 있었지요. 신경과 세포와 조직이 다 갖추어져 있고 뼈와 살과 피도 있는 몸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몸에 어떠한 자극이 가해지면 고통을 느낄 수가 있는 것이지요. 또한 사람이 사랑할 때 느끼는 느낌이나 그 밖에 자극도 다 느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덴 동산에 사는 동안에도 여자인 하와에게 미약하나마 잉태하는 고통이 있었던 것이구요.
그러나 생령의 몸이 느끼는 고통이라는 것이 그냥 육의 몸을 입고 있는 사람이 느끼는 것과는 다릅니다. 생령의 몸은 죄성이 몸과 결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 땅처럼 어떤 질병이나 균에 의한 아픔은 전혀 없으며 단지 몸의 변화를 감지하고 느낄 수 있는 정도이지요. 예를 들어, 몸 안에 있는 갈빗대를 취하는 과정에서 살이 갈라지고 갈빗대가 떨어져 나가는 변화를 느낄 수는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작으나마 고통으로 느껴지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실 때에 이것을 느끼지 못하도록 깊이 잠들게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아담이 깊이 잠들었다는 사실을 통해 생령의 몸도 잠을 잘 수가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둘째 하늘에서도 이 땅의 사람들처럼 휴식을 취하거나 쉬는 것이 있으며 잠을 자는 것도 있다는 말이지요. 둘째 하늘의 에덴 동산에 사는 사람들은 모든 것이 풍족하다고 해서 매일 놀고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사람들처럼 일도 하고 또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하는데, 일을 한다고 하니까 의식주를 위해 하는 것이 아니지요. 그리고 또 새로운 것을 배우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때를 따라 쉬기도 하고 잠을 자기도 합니다.
천사나 그룹과 같은 영은 잠자는 것이 없지만 생령인 아담과 에덴 동산에 사는 그의 후손들은 육의 몸을 입고 있기 때문에 잠도 잘 수 있지요. 이처럼 에덴 동산의 사람들은 우리 사람과 똑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면이 많기 때문에 그들이 이 땅에 내려온다면 우리가 그들과 손을 잡을 수도 있고 그들의 촉감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에덴 동산의 사람들은 우리 사람과는 달리 빛나며 밝고 아름다운 색깔의 피부를 입고 있지만 영안이 열리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몸을 입고 있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여자를 지어 주심에 있어서 따로 흙을 취하여 여자를 지으신 것이 아니라 아담의 갈빗대로부터 여자를 지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남자의 갈빗대를 취하여 그것으로 여자를 만드신 데에는 바로 남편과 아내가 각각 따로가 아니며 둘이 한 몸이요 하나라는 의미를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또한 남자와 여자 중에서 남자를 주체로 세우셨으며 여자는 남자의 지체로 세워 주셨다는 의미를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지요.
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남녀간의 질서와 부부간의 사랑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굳이 아담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신 것일까요?
몸 안에는 다른 많은 뼈들도 있고 수많은 세포와 조직들도 있는데 말입니다. 여기에 바로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갈빗대는 인체의 구조상 중심부에 있으면서 몸 안의 중요한 장기를 보호하는 역할을 합니다. 외부로부터 강한 충격이 올 때에도 갈비뼈가 충격을 완충시켜 주며 그래서 혹 갈비뼈는 부러지더라도 몸 안의 장기들은 보호를 받게 되지요. 이 역시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람을 설계하시면서 미리 모든 것을 다 고려하시고 만드신 작품입니다.
따라서 이처럼 신체의 중심부에 있을 뿐만 아니라 몸을 보호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셨다는 것은 여자가 남자에게 있어서 얼마나 소중하고 귀한 존재인가를 나타내 주고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여자가 남자에게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며 돕는 배필로서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인지 그 의미를 담아 주셨다는 말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본문 23절에도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고백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니 남편 되시는 분들은 아내 되시는 분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겠습니까? 내 몸같이 아껴 주고 사랑하되 내 몸 중에서도 가장 귀하고 소중한 부분으로서 아내를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5:28에도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근본 남자로부터 취함을 입어 지어졌기 때문에 남편들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결국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5:25에는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말씀했지요. 우리 모두의 신랑 되시는 주님께서는 신부된 우리들을 얻으시고자 자신의 목숨을 주셨습니다. 그처럼 우리를 사랑해 주신 것이지요. 또한 사도행전 20:28에 "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말씀한 대로 주님께서는 자신의 핏값으로 세우신 교회를 사랑하십니다. 바로 이러한 주님의 사랑을 본받아 남편들도 그와 같은 사랑으로 아내들을 사랑하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남편 되시는 분들이 아내에 대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는 마음을 가진다면 어찌 아내를 힘들게 하고 마음 아프게 하는 일들이 나올 수 있겠습니까? 무례히 행하거나 성내는 일도 없을 것이고 설령 허물이 있다 해도 당연히 덮어줄 것입니다. 내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아내의 유익을 먼저 구하고 인내와 사랑으로 모든 것을 참고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는 남편이 되지요. 이것이 바로 영적인 사랑이며 하나님께서는 첫사람 아담에게 여자를 지어 주시면서 이후로 남녀가 이러한 사랑을 나누기 원하셨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편들만 아내들에게 이처럼 행해야 한다는 말은 아닙니다. 남편 혼자의 노력만으로 이러한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부부가 서로 노력할 때에 온전히 영적인 사랑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려면 아내 되신 분들도 마땅히 아내로서 남편에게 행해야 할 바가 있지요. 더욱이 본문 23절 후반절에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셨는데 이는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먼저이며 누가 주체가 되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11:7-9을 보면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에 마땅히 쓰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또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 말씀했지요. 따라서 가정이나 교회 안에서도 여자가 남자에게 순종해 줄 때 바른 질서가 세워질 수 있는 것입니다. 가정의 아내라면 남편을 섬기고 존중하며 순종해 나가는 것이 마땅하지요.
그래서 에베소서 5:24에는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했고, 골로새서 3:18에는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내들이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것은 당연히 주 안에서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 안에서라 함은 자신의 생각에 맞추어 어떤 것은 순종하고 어떤 것은 순종하지 않고 이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마음 중심에서 남편을 사랑하고 섬기며 남편의 마음에 맞추어 주려고 한다면 남편도 아내의 마음을 느끼게 되지요.
그렇게 되면 설령 믿지 않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아내를 핍박하고 교회 나가지 못하도록 하면서 나에게 순종하라 할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내 편에서 늘 남편의 비진리를 지적하기나 하고 아직 비진리 가운데 사는 남편에게는 순종할 수 없다 하여 남편을 섬기지도 않고 위해 주지도 않기 때문에 오히려 남편들과 더욱 불화하며 핍박을 받게 되지요. 아내 되시는 분들이 정녕 막달라 마리아와 같은 선으로 남편을 대하며 섬겨 나간다면 아무리 악한 남편이라 해도 대부분 마음이 녹아질 것입니다.
또한 가정의 질서가 세워지기 위해서도 아내는 남편의 의견을 존중해 주고 적극적인 후원자의 역할을 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남편이 더욱 힘을 얻어 가장으로서의 역할도 잘 감당할 수가 있지요. 그렇지 않고 사사건건 남편의 의견에 의의를 달거나 남편의 힘을 빼는 말과 행동을 한다면 남편이 가장으로서 가정을 이끌어 가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영적인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물론 남편과 아내 둘 다 노력해야 하겠지만 우리 아내되시는 분들은 가정에서 누가 주체가 되고 누가 지체가 되어야 가정에 질서가 바로 세워질 수 있는지를 잘 깨달아 질서 속에 순종해 가는 아름다운 모습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교회 안에서도 남자와 여자 사이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육적인 질서와 함께 영적인 질서를 좇아 모든 일이 이루어져야 하는데 육적인 질서와 영적인 질서가 잘 조화를 이룰 때 주의 일들이 아름답게 이루어질 수가 있지요. 서로가 상대를 먼저 섬겨 주고 순종해 주며, 질서를 좇아 순종해 나갈 때 하나님의 나라가 바르게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남녀 사이에 질서를 세움에 있어서는 주로 남자를 주체로 세우시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우리가 성경을 보아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크게 들어 쓰셨던 선지자들은 대부분 남자였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물론 드보라처럼 여자라 해도 아버지 앞에 쓰임받는 경우가 있었고, 막달라 마리아처럼 사랑이 많고 선이 승하여 주님의 사랑을 받은 여인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이 권능을 나타내거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드러내어 쓰임받은 것은 아니지요. 하나님께서도 맨 처음 사람을 지으시면서 먼저 남자를 지으셨고 그에게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와 능력을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따라서 이러한 섭리를 좇아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룸에 있어서도 남자를 주체로 세우시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중심을 보시기 때문에 무조건 남자라 해서 우선하여 쓰시는 것이 아니라 중심이 아버지 하나님 앞에 합당해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설령 여자라 해도 그 중심이 곧고 바르며 아버지 하나님의 쓰시기에 합당한 남자와 같은 중심이라면 능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크게 쓰일 수가 있지요.
하지만 남자와 여자가 동일하게 성결되어 영으로 들어왔다고 할 때는 남자가 우선시 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일 중에는 여자로부터 이루어져야 할 일과 남자로부터 이루어져야 할 일이 구분되어 있지요. 따라서 주 안에서는 물론 남녀가 평등하되 창조의 섭리 속에 이처럼 남녀 간에 세워 주신 질서를 좇을 때 더 아름답게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3.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하여 한몸을 이루는 영적인 의미
이어지는 24절에서는 매우 중요한 영적인 의미가 설명됩니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말씀했는데 이는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고 이해하기도 쉬운 말씀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에베소서 5:31-32을 보면 이 말씀을 인용하여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하면서 '이 비밀이 크도다' 말씀하고 있지요.
이 말씀이 단지 남녀가 장가가고 시집가서 한 가정을 이룬다는 뜻이라면 세상 사람들도 다 아는 것이고 이처럼 이 비밀이 크다고 말씀하실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단순히 남녀가 결혼하는 것에 대한 말씀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에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전에는 마귀의 자녀요 죄의 종 되었던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구원의 섭리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이 말씀이 당연한 말씀처럼 보이지만 주 안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구원의 도를 깨우쳐 주는 크나큰 비밀인 것이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처음 아담을 지으실 때부터 이미 앞으로 아담이 어떻게 될 것과 그의 후손들이 어떻게 될 것을 다 아셨기 때문에 구원의 도인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대한 비밀을 이처럼 남녀가 결혼하여 한 몸을 이룬다는 비유로서 암시해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7에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말씀한 대로 이미 만세 전부터 감취었던 비밀인 것이지요. 이 비밀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 시간에 계속하여 증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린도후서 11:2에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말씀하고 잇는데 이는 신랑되신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의 고난을 마다하지 않으시고 생명까지 내어 주는 사랑을 먼저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의 신부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우리를 자신의 생명보다 더 사랑해 주시는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 또한 주님을 향해 이러한 사랑을 드려야 할 것입니다. 여자가 남자로부터 취함을 입어 나온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신랑되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짐 받아 새롭게 태어났으니 우리 역시 주님으로부터 나온 것이지요.
따라서 주님은 포도나무요 우리는 주님께 잘 접붙임 바 된 가지로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면 풍성한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육적으로도 신랑과 신부가 연합하여 하나를 이루듯이 우리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신랑되신 주님과 연합하여 하나를 이루어야 합니다. 로마서 6:4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죽어 장사되어질 때에 우리도 생명의 부활로 나와 새 생명 가운데 나옴으로 아버지의 영광 중에 이르는 참자녀가 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4:22-24에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 권면하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새사람이 되어 신랑되신 주님과의 사이에 온전한 관계를 이루어 가실 뿐만 아니라 부부 사이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아름다운 영적인 관계를 맺어 나가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5:49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