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56)
서론 /
지난 시간에는 7년 혼인잔치가 어디에서 어떻게 열리게 되는지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창세 이래 구원받은 모든 영혼들이 함께 들어갈 커다란 성 안에서는 주님과 함께 7년 혼인 잔치가 계속되는데 그 동안 성 밖에서도 행복한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숲과 나무와 꽃과 새들을 벗삼으며 마음껏 자연을 즐기는 시간을 갖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들과 너무나 아름다운 꽃들로 예쁘게 단장된 길을 걷기도 하고 함께 대화하고 춤추며 찬양하기도 합니다. 그만한 자격이 되는 사람이라면 우리 주님과도 이런 시간을 가질 수가 있구요. 또한 넓은 공간 안에는 우리가 마음껏 누리며 즐길 수 있는 여러 가지 것들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사랑하는 사람과 또 어떤 사람은 주님과 함께 호수에서 배를 탈 수 있고 수영도 하며 갖가지 게임과 오락도 즐깁니다.
이처럼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의 기쁨과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아버지의 자상한 배려로 마련되어 있지요. 그리고 7년 혼인잔치가 벌어지는 동안은 불이 꺼지지를 않습니다. 물론 에덴은 당연히 빛의 영역으로서 밤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불이 꺼지지 않는다는 것은 이 땅에서처럼 잠을 자야 하거나 쉬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아무리 놀아도 지치지 않으며 힘도 빠지지 않고 즐거움과 충만함이 더해만 가지요.
그래서 시간의 흐름도 느끼지 못한 채 7년이라는 시간이 마치 7일처럼 또는 7시간처럼 순간에 지나가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설령 휴거되지 못하고 이 땅에 남아 환난으로 고통받고 있는 부모와 자녀, 형제들이 있다 해도 7년 혼인잔치 동안은 그들이 생각조차 나지 않을 만큼 기쁘고 즐겁고 행복하게 지나가는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가 혼인잔치를 즐기는 동안 우리의 모습을 에덴 동산의 사람들은 볼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에덴 동산의 사람들을 볼 수 있지만 서로 왕래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악한 영들도 우리의 모습을 볼 수 있고 우리도 그들을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악한 영들이 우리가 있는 곳에는 접근조차 할 수 없지만 서로의 모습을 볼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악한 영들은 우리가 혼인잔치를 하며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너무나 괴로워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지옥으로 이끌어가지 못하고 이렇게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내어 준 것이 그들에게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인 것입니다. 그러니 구원받은 사람들이 이처럼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을 보며 한탄하고 괴로워하는 것이지요.
반대로 우리들은 악한 영들의 모습을 보면서 이 땅에서 경작을 받는 동안 그들이 얼마나 우리를 삼키려 했는지 다시 한 번 깨닫는 시간을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시고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아버지 하나님과 주님, 그리고 성령님의 은혜에 더욱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을 생명의 길로 인도해 주신 분에게 더욱 감사의 마음이 더해지는 것이지요.
그러니 7년 혼인잔치가 단지 이 땅에서 경작받으며 수고한 것을 위로받으며 놀고 쉬기만 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감사를 더하며 인간 경작의 시간을 회고해 보는 시간도 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또 한 가지 장차 천국에서 누릴 영원한 삶은 7년 혼인잔치와 비교해 볼 때에 얼마나 더 기쁘고 행복한 시간일까 상상하며 더욱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인 것입니다. 천국에서 누릴 행복은 7년 혼인잔치와는 비교도 안 되지요.
이제까지 장차 공중에서 맞게 될 7년 혼인잔치에 대해서 말씀드렸는데 이처럼 공중에서는 주님과 행복한 혼인잔치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 이 땅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7년 환난이 진행됩니다. 전무후무한 이 환난으로 인해 지구는 거의 모든 것이 파괴되며 휴거되지 못하고 이 땅에 남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죽게 됩니다.
그 중에는 간혹 순교를 통해 이삭줍기 구원에 들어오는 사람도 있으나 극히 적습니다. 처음에는 순교를 결심했다가도 7년 환난 동안 믿는 사람들에게 가해지는 처참한 고문과 핍박을 이겨내지 못해서 결국 주님을 부인하고 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지요. 그러니 우리 안에는 이러한 7년 환난에 떨어지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야 할 것입니다.
저는 7년 환난의 고통을 너무나 잘 알기에 결코 만민의 양 떼 중에는 한 사람도 낙오되는 사람이 없기를 아버지 하나님 앞에 눈물로 간구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지난 20년 동안 변함없이 어떻게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전하고자 달려왔지요. 하나님의 말씀에 담긴 깊은 영적인 뜻을 풀기 위해 계시가 필요했던 것이고, 이 말씀이 참임을 증거해 줄 권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오직 성경이 참임을 증거하고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증거하며 예수만이 구세주 되심을 증거해 왔던 것이지요.
오늘 본문 말씀 역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하여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왜 선악과를 두셨는가 하는 것이지요.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선악과만 만들지 않으셨어도 인류가 죄 가운데 빠지지 않았을 텐데 말하기도 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괜히 선악과를 만들어 두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죄 가운데 빠져 고통받게 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다고 하는데 장차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게 될 것을 모르셨는가?"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다고 하면 왜 막아 주지 않으셨는가?" 말하기도 하지요.
그러다 보니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도 오해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을 줄 아시면서도 일부러 선악과를 두시고 시험하셔서 결국 아담이 죄를 짓도록 만드셨다고 말입니다. 만약 이러한 생각들이 맞는다면 어떻게 사랑의 하나님이라 할 수 있겠고 또 우리에게 좋은 것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가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정녕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자녀된 우리들에게 좋은 것만 주기를 원하십니다. 선악과를 두신 것도 하나님의 사랑이시며 결국은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한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였지요. 그러면 오늘 말씀을 통해 왜 선악과를 두신 것이 하나님의 사랑이라고 하는지를 깨달아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마음 깊이 느끼시기 바랍니다.
본론 /
1. 생령인 아담과 에덴 동산
오늘 본문에는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는 매우 중요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것은 바로 에덴 동산이 과연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오늘날도 에덴 동산을 찾아 숲과 사막을 헤매고 사는 있는 사람들이 있으며 어떤 사람들은 그 흔적을 찾아보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에덴 동산이 사라져서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에덴 동산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며 더 중요한 것은 에덴 동산이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15절 전반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이 아닌 곳에서 아담을 만드시고 에덴 동산으로 이끌어들이셨습니다. 더욱이 창세기 2:7-8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을 먼저 만드시고 그 후에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따로 만드셔서 그곳으로 아담을 이끌어들이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에덴 동산이 이 땅에 있는 곳이라면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시기 전에 지구를 만드시면서 얼마든지 에덴 동산도 함께 만드실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에덴 동산 안에서 아담을 만드실 수도 있으셨지요. 굳이 나중에 에덴 동산을 따로 창설하시고 아담을 이끌어들이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지구 위에서 가장 마지막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가 살 수 있는 곳에 에덴 동산을 창설하여 이끌어들이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지구가 아닌 곳에 에덴동산을 따로 만드셔야 했던 것일까요? 처음에는 사람이 생령 즉 살아있는 영으로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영은 죽거나 썩어지는 것이 없으므로 비록 몸을 입고 있지만 생령으로 지어진 아담에게는 죽음이 없었습니다. 이러한 아담을 위해서는 죽음이 존재하는 육의 세계가 아닌 새로운 영적인 공간이 필요했던 것이지요.
본문 17절에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지 말라 명하시면서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말씀하셨는데 이는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기 전까지는 죽음을 보지 않았다는 뜻이 됩니다. 즉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불순종의 죄를 짓고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영계의 법칙에 따라 영이 죽어 육의 사람이 되기 전까지는 생령으로서 죽음을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생령으로 사는 동안은 지구가 아닌 다른 세계가 필요했는데 아담이 에덴 동산에 사는 동안 혼자만 살았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에게 아내 하와를 주셨고 그들에게 복을 주사 생육하고 번성하라 하셨지요. 아담과 하와가 에덴 동산에 살면서 자녀를 낳았다는 것은 창세기 3:16 전반절에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요" 말씀하신 것으로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하와를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기 전에도 고통이 크지는 않았지만 잉태하는 고통이 있었다는 것이니 아담은 에덴 동산에서도 자녀를 낳았던 것이요, 자녀들 역시 죽음을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담이 자녀를 낳으며 에덴 동산에 살았던 기간은 결코 짧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믿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있는데 여러분이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존재입니다. 그런 아담이 단 며칠 아니면 몇 달 또는 몇 년 만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불순종의 죄를 지었겠습니까? 만약 그러한 아담이었다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까지 주셨을 리가 없지요.
또한 아담이 에덴 동산에서 잠깐 살다가 쫓겨날 것이었다면 굳이 아담을 위해 에덴 동산을 만들어 주실 필요도 없었지요. 그러니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나기 전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 동안 살았다는 사실입니다. 더욱이 수많은 자손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는 에덴 동산의 크기 역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크다는 것입니다.
에덴 동산이 이 땅이 아닌 다른 곳에 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는 또 하나의 결정적인 증거는 하나님께서 아담을 쫓아내신 후에도 에덴 동산을 없애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에서 아담을 쫓아내신 후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 나무로 가는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에덴 동산은 지금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이며 더욱이 지구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큰 곳이라면 당연히 지구가 아닌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우주 어딘가에 있다는 말이 아니라 육의 세계와는 차원이 다른 공간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성경에 기록된 말씀들을 통해 얼마든지 에덴 동산에 대해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본문에는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하여금 에덴 동산을 다스리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지키게 하셨다는 기록이 나오는데 이는 누군가로부터 에덴 동산을 지킬 필요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 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누구로부터 에덴 동산을 지켜야 했던 것일까요? 당시는 아직 아담 외에는 다른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죄나 악이 들어오기도 전이므로 사람으로부터 에덴 동산을 지킬 필요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누군가로부터 에덴 동산을 지켜야 한다면 그들은 영적인 존재일 것입니다. 바로 에덴 동산이 있는 둘째 하늘의 다른 편의 공중권세를 잡고 있는 악의 영들과 그의 사자들이지요. 악한 영들의 우두머리인 루시퍼와 하나님을 배신하고 그를 따랐던 무리들인 것입니다. 아담은 바로 이들로부터 에덴 동산과 그 안에 있는 생명 나무를 지켜야 했습니다.
이러한 악한 영들로부터 에덴 동산을 지키기 위해서는 아담에게도 그만한 권세와 능력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감히 악한 영들이 생명 나무를 넘보지 못하도록 아담에게 권능을 주셔서 그곳을 지키게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아담에게는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그룹들이 있어서 이들 역시 에덴 동산을 지키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2.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두신 이유
하나님으로부터 큰 권세와 능력을 받아 만물을 다스리며 에덴 동산을 지키던 아담에게도 하나님께서 한 가지 금하신 것이 있었습니다. 본문 16-17절에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하셨던 것이지요. 여기서 명하셨다고 하셨다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담에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다스리는 어마어마한 권세를 주셨고 또한 자유의지를 주셔서 행하게 하셨지요. 억지로 시키거나 명령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런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선악과만은 따먹지 말도록 명령을 하셨던 것이며 이는 하나님께서 선악과에 대해 얼마나 엄히 경계하셨다는 것을 나타내 주는 것이지요.
에덴 동산의 과일들은 그 크기나 빛깔 등에서 종류가 매우 다양하며 맛 역시 이 땅의 과일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좋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의 모든 과일도 아담의 권세 아래 두셨기 때문에 아담은 그것들을 마음대로 먹을 수가 있었고, 충만함을 입을 수가 있었지요. 그러나 선악과에 대해서만은 예외였다는 사실입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담이 장차 선악과를 먹게 될 것을 아신다고 해서 아담이 그것을 따먹도록 가만히 놔두신 것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만들어 놓으시고 아담이 그것을 따먹을 줄 아시면서도 시험하신 것이라면 어차피 따먹을 것이니 굳이 먹지 말라고 강하게 명령하실 필요가 없으셨지요.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담이 선악과를 따먹도록 일부러 놔 두셨다거나 또는 시험하기 위해 두셨던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1:13에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시험하시는 분이 아니시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선악과를 두신 것일까요? 바로 인간 경작을 통해 참자녀를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근본 사람을 지으신 것도 참자녀를 얻기 위해서였지요. 그런데 참자녀를 얻기 위해서는 인간이 상대성을 겪는 과정이 꼭 필요합니다. 그 과정이 바로 인간 경작인 것이구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 기쁘다, 즐겁다, 행복하다 이러한 느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이와는 반대되는 슬프고 고통스럽고 불행했던 경험을 해 보았기 때문입니다. 또 선과 진리와 빛이 좋다는 것을 아는 것도 그와 반대되는 악과 비진리와 어둠을 겪어 보았기 때문이지요.
만약 이러한 상대성을 겪어 보지 않았다면 우리가 비록 들어서 머리로는 안다 해도 정녕 선이 얼마나 좋고 사랑과 행복이 얼마나 좋은지를 마음에서 느낄 수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태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아파 보지 않았고 주변에서 누구도 아픈 것을 보지 못했다면 그 사람이 과연 아프다고 하는 것을 알겠습니까? 그러니 이런 사람은 건강하다는 것이 얼마나 좋다고 하는 것도 알 수가 없지요. 또 태어나서 지금까지 부족함이라고는 한 번도 체험하지 못했고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도 체험해 보지 못했다면 그 사람이 과연 가난에 대해 알겠는지요?
그러니 이런 사람은 아무리 부유해도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픔의 고통에 대해서도 가난의 고통에 대해서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지금 자신이 누리고 있는 건강과 부유함에 대한 감사가 마음 중심에서 나올 수 없는 것이지요. 자신이 누리고 있는 좋은 환경에 대한 가치를 전혀 느끼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결국 행복의 가치를 모른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질병의 고통도 당해 보고 가난의 고통도 겪어 본 사람이라면 이런 사람은 건강과 부유함에서 오는 행복을 마음 중심에서 느끼고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선악과를 두실 수밖에 없으셨던 이유입니다. 그래야 인간 경작이 시작될 수 있고 인간 경작을 통해서만이 행복과 사랑과 감사의 참가치를 아는 참자녀를 얻으실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 일부러 아담으로 하여금 그 길을 가게 만드신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아담 스스로가 자유 의지 가운데 선택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독재가 아닌 공의 가운데 인간 경작이 이루어지도록 역사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이지요.
그러므로 아담과 그의 후손들은 이 땅에서 인간 경작을 받으며 악이 무엇이고 선이 무엇인지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진정한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이며 진정한 사랑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또 진정한 기쁨과 온전한 건강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를 마음 중심에서부터 깨달아 느낄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땅에서 경작 받는 동안에는 눈물, 슬픔, 고통, 질병, 사망 등 갖가지 고난의 과정을 겪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과정이 있었기에 결국은 참행복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으니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사랑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얻어진 참자녀이기에 영원한 천국에서도 영원토록 변함없는 참행복과 기쁨과 감사를 느끼며 아버지 하나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도 자녀를 낳아 기르면서 훌륭한 사람이 될 수만 있다면 그것을 위해 겪어야 하는 훈련과 인내의 시간을 결코 헛되다거나 불필요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자녀 스스로도 미래에 주어질 결과를 믿는다면 당장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온다해도 능히 인내하며 승리해 낼 수가 있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영원한 천국에서 누리게 될 참행복을 생각하면 이 땅에서 받는 경작의 과정이 결코 힘들거나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참사랑을 나눌 영적인 참자녀를 얻기 원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느낀다면 속히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되기 위해 더욱 인간 경작을 잘 받아 나가야 하겠지요. 그러니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가 이루어지기 위해 선악과는 필요했던 것이고,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아담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하여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결론 /
아담은 비록 생령이었지만 경작을 받지 않은 상태이니 참마음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마음에 무슨 비진리나 배신하는 악한 마음이 있었다는 것이 아니라 다만 상대성을 체험해 보지 못했으므로 진실에 대한 가치를 마음 중심에서 깨닫지는 못했다는 말이지요.
그러나 우리는 인간 경작을 통해 진실의 가치를 알게 되고 영으로 일군 만큼 경작을 통해 깨달은 진실이 마음에 채워지게 됩니다. 이 진실은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이 진실이 바탕이 되어야만 믿음도 사랑도 소망도 참이 되는 것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영으로 일군 만큼 그의 믿음도 사랑도 소망도 참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온 영을 이룰 때만이 믿음도 사랑도 소망도 온전히 참이 될 수 있지요.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자녀를 원하십니다. 진실된 마음 중심으로부터 나오는 참믿음과 참사랑과 참감사를 원하시지요. 그래서 시편 51:6 전반절에 중심의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신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아버지 하나님의 간절한 마음을 깊이 깨달아 신속히 영으로, 온 영으로 일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5:49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