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49)
서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창세기 강해 마흔아홉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공룡이 그룹들을 부러워하다가 마침내는 사단의 미혹에 빠지게 되고 결국은 불순종에 이르게 되는 상황까지 설명드렸습니다. 물론 공룡에게 처음부터 불순종할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공룡이 가지고 있던 부러움이 정도가 더해지면서 이것이 사단이 역사할 수 있는 빌미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어둠이 싹트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사단은 놓치지 않고 기회를 노리기 때문에 공룡 역시 사단의 목표가 되었던 것입니다. 공룡의 모습은 한 마디로 시기와 질투로 인해 어두워진 것입니다. 처음에는 단지 그룹을 바라보며 '그룹들은 참 좋겠다.' 생각하고 말았겠지만 공룡들은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라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말았던 것이지요.
본론 /
1. 공룡의 시기 질투로 인한 반란 사건
공룡은 이제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아담의 말에도 귀를 기울이지 않게 되었지요. 공룡이 먹기 원하는 선악과가 어떤 것이며 선악과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설명해 주었음에도 공룡은 그 말을 받지 못하고 여전히 자신의 생각만을 주장하였던 것입니다. 선악과만 먹으면 자신들도 그룹과 같이 되어 이전보다 더 나은 지위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이미 미혹받아 버리니까 그렇게 되더라 이 말입니다. 그래서 공룡은 이 때부터 선악과를 따먹기 위한 기회만을 노리게 됩니다.
이는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사랑받고 인정받으며 더 좋은 것을 누리는 것을 보면서 사람마다 거기에 대한 반응이 다른 것을 볼 수 있지요. 어떤 사람은 '저 사람은 좋겠다.' 하며 부러워하고 마는 사람이 있겠고, 어떤 사람은 '저 사람은 나보다 나은 것도 없는데 왜 저 사람만 칭찬받고 사랑받는 것이지' 하면서 남을 판단하고 시기, 질투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저 사람은 저렇게 사랑 받는데 나는 이게 무엇인가?' 하면서 스스로에 대해 비관하고 낙심하는 사람도 있구요. 그러면서 마음에 슬퍼하고 서운해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마음들은 정도는 달라도 모두가 악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지요.
물론 다른 사람을 부러워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어떠한 마음에서 부러워하는가가 중요합니다. 함께 기뻐해 주는 마음에서 부러워하는지, 아니면 시기하는 마음에서 부러워하는지가 다릅니다. 이런 상황에서 마음이 선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상대가 사랑받고 인정받는 것을 함께 기뻐해 주고 더 도와주려는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 선한 마음 속에서 '이제 나도 열심히 노력하여 더욱 사랑받고 인정받는 모습이 되어야지' 한다면 이는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지요.
그리고 또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각자가 맡은 사명의 분야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발이 손을 부러워한다고 손이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눈을 부러워한다고 해서 눈이 될 수 있는 것도 아니지요. 또한 어떠한 사명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어떤 사람은 드러나게 일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어떤 사람은 드러나지 않게 일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드러난다고 해서 그 일은 중요하고 드러나지 않는 일이라 해서 중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데는 모든 일들이 다 중요하며 어느 하나라도 없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각자가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의 분야에서 누가 보든 보지 않든 최선을 다해 충성해 나갈 때 결국은 모든 것을 지켜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설령 이 땅에서 드러나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 해도 장차 영원한 천국에서는 반드시 상급과 영광으로 갚아 주시는 것이지요.
따라서 우리가 충성하는 것은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고 해야 하는 것이며 인정과 사랑을 받는 것도 사람으로부터 받으려고 할 것이 아니라 바로 아버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에서 주어지는 상급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구요.
그러니 다른 사람이 인정받고 사랑받는 것을 보면서 시기하고 질투하며 마음에 악을 품는 것이 얼마나 합당하지 못한 것입니까?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결국 마음에 악이 있는 사람은 눈이 가려져서 멸망의 길로 가게 되는 것을 봅니다.
공룡이 바로 그러했던 것이지요. 아담을 통해 선악과를 먹는 것이 곧 무엇을 의미하는지 분명히 설명을 들었으면서도 공룡은 마침내 사건을 터뜨리고 말았습니다.
2. 아담이 그룹들과 함께 지구로 내려간 사이에 일으킨 공룡의 대반란
그러면 공룡의 반란 사건이란 과연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볼까요?
공룡이 선악과를 따먹어야겠다는 마음을 품기 시작하고 나서 어느 날 아담은 전에 그랬던 것처럼 그룹과도 함께 지구를 돌아보기 위해 내려갑니다. 이 때 에덴 동산에 있는 모든 그룹이 아담과 함께 가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그룹들을 데리고 아담이 내려갔습니다. 일부는 에덴 동산에 남아서 그 곳을 지키며 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아담이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 공룡은 드디어 마음에 있던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자 선악과 나무가 있는 곳으로 향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담에게도 금하신 선악과가 있는 장소를 그냥 허술하게 두지는 않으셨지요. 물론 아담과 하와는 그 곳에 갈 수가 있었겠지만 에덴 동산의 다른 사람들과 동물들에게는 접근이 엄격히 통제된 장소였습니다. 그 주변에는 항상 그룹들이 지키고 있어서 아무나 이곳에 접근하는 것이 허락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만큼은 아담이 지구로 내려가면서 모든 그룹을 다 데리고 내려간 것입니다. 그러니 안 그래도 어찌하든 선악과를 따먹을 기회만을 노리고 있던 공룡은 이 틈을 타서 선악과가 있는 출입금지 지역에 들어가고 만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서 금하신 지역에 들어간 공룡들은 미처 선악과가 있는 곳에 이르기도 전에 그만 발각되고 말았습니다. 아직 선악과를 따지도 않은 것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금하신 지역에 들어간 이것만으로도 이미 공룡은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고 만 것이었지요.
그 결과 공룡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 일을 주동하고 금지 지역에 들어간 몇몇 공룡뿐만 아니라 공룡의 모든 종류가 함께 저주를 받게 되었지요. 물론 하나님께서 정하신 선을 직접 넘은 것은 그 일을 주도한 일부의 공룡이었지만 모든 공룡이 그렇게 되기를 함께 바라고 동조하며 같은 마음으로 품었기 때문에 결국 하나님의 진노가 모든 공룡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로마서 6:16에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말씀한 대로 사단의 꼬임에 넘어가 그들에게 순종하여 사단의 종이 되고 만 공룡들은 더 이상 빛의 영역인 에덴에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그물과 같은 것으로 공룡들을 싸서 이 땅으로 그들을 옮기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나 지구로 내려와 살게 된 공룡은 그 후로 멸망하기까지 이 땅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3. 공룡의 반란과 하나님의 저주에 대한 아담의 마음
아담은 이 사건을 과연 어떻게 받아들였을까요? 사랑하던 공룡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서 이 땅으로 쫓겨났으니 매우 슬퍼했을까요? 별로 그렇지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엄청난 불순종의 사건이었지만 아담에게는 심각하게 마음에 깊이 와닿지를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이 사건을 통해 아담은 불순종이라는 죄의 결과가 어떤 것인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보게 되었고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전까지 불순종에 대해 생각해 본 적도 없고 행할 마음조차 품어 본 적이 없던 아담에게는 이 사건이 자신과는 별로 상관없는 것으로 여겨졌던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 한 가지 예를 들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태어나서 한 번도 아파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자기 주변에 절친했던 친구가 아픈 것을 볼 때 물론 자신의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함께 마음 아파할 수는 있어도 진정 마음에서 그의 아픔을 느낄 수는 없지요. 그 고통이 얼마큼 되겠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또 친구의 고통받는 모습을 보아서 알지만 막상 자신은 체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아담 역시 사랑하던 공룡의 불순종과 그 결과를 보았다 해도 그것이 마음에 온전히 와 닿지는 않았던 것이지요. 그러니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을 마음에 명심하고 또 명심하여 새기지는 못했던 것이고 결국은 먼 훗날 자신 역시 불순종의 길을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또한 아담은 '공룡이 비록 지구로 쫓겨갔지만 지구 역시 내 권세 안에 있는 영역이니 앞으로 하나님의 진노가 풀어지게 되면 다시 공룡들을 볼 수 있겠지' 생각했지요. 그러다 보니 이 사건으로 인해 마음에 크게 근심한다거나 슬픔에 잠긴 것은 아니었습니다.
게다가 막상 세월이 지나가게 되자 아담의 마음에서는 공룡에 대한 그리움도 조금씩 사라지게 됩니다. 아담에게 있어서 공룡이 큰 기쁨과 즐거움이 되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이제 공룡이 곁에 없다고 해서 아담의 생활이 크게 변한 것은 아니지요. 여전히 아담은 자신의 권세 안에서 모든 것을 누리며 전과 다름없는 삶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아담이 어떻게 해서 그렇게 사랑하던 공룡을 잊을 수가 있었는가?' 여기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한 번 아담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아담에게 있어서 공룡은 마치 애완동물과 같은 존재라 했지요. 아담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없어서는 안 될 그러한 존재가 아니라 아담을 위한 특별한 선물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에게 있어서 공룡은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존재는 아니었지요. 또한 처음부터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것을 누리며 살았던 아담은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것을 소중히 여기고 귀하게 여기기보다는 마땅히 누리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냥 처음부터 자신의 권세 안에 있던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내 것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따라서 어떤 것에 대한 온 마음과 정성을 쏟기보다는 때론 무신경할 수도 있었지요.
예를 들어 태어나면서부터 부잣집에서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게 자란 사람은 물론 다는 아니라 해도 그만큼 돈에 대한 개념이 스스로 노력하여 얻은 사람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담 역시 먹는 것 하나만 해도 자신이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그냥 주어지는 것이었기에 아무리 감사함으로 먹는다 해도 그 감사의 마음이 자신이 직접 수고하고 경작하여 그 소산을 먹는 사람의 마음과는 당연히 다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땅에서 경작을 받은 저와 여러분은 비록 생령이었다 해도 경작받지 않은 아담과는 아버지 하나님에 대한 마음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경작받은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이 하나하나 다 소중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지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게 되고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니 주셔도 감사하고 설령 거두셔도 감사하며 오직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하고 찬송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바로 이러한 자녀들을 얻으시고자 이 땅에 인간을 경작하시는 것이구요.
4. 공룡의 불순종을 막지 않으신 이유
하나님께서는 공룡이 장차 이렇게 될 것을 다 아셨습니다. 그럼에도 공룡을 아담에게 주시고 또 그들의 행동을 처음부터 막지 않고 놔 두신 것은 이것이 아담에게 큰 깨우침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이지요. 아담이 그토록 아끼고 사랑하던 공룡을 통해 간접적으로나마 불순종에 대한 큰 깨우침이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아무리 작은 어둠이라 해도 그것을 허용했을 때 그것이 나중에는 사망에 이르게 하는 큰 불순종이 될 수도 있다는 깨우침 말입니다. 또한 사단이 얼마나 간교하게 미혹해 들어오는지도 깨닫기를 원하셨지요. 그래서 먼 훗날 아담 자신에게 큰 미혹의 순간이 다가왔을 때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이 깨우침을 명심하여 승리해 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어느 날 갑자기 이 땅에 인간을 만드시고 인간 경작을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과정 하나하나를 거치면서 인간 경작을 계획하고 이루어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이 땅으로 쫓겨가서 경작받도록 처음부터 계획해 놓으시고 기다리신 것이 아니라 아담이 어떻게든 사단의 미혹에 빠지지 않도록 가르쳐 주시고, 깨우쳐 주시며, 지켜 주셨지요.
그러나 앞서 말씀드린 대로 아담은 이러한 깨우침이 마음에 절실히 와 닿지가 않았고, 따라서 훗날 하나님의 말씀을 명심하지 못해서라기보다는 정말 마음에 깨달아지지가 않았기 때문에 결국은 자신도 공룡과 똑같이 불순종을 행하고 만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공룡의 경우, 처음부터 배신하도록 정해졌던 것은 결코 아닙니다. 공룡은 그토록 아담의 사랑을 받으며 많은 것을 누렸음에도 어디까지나 스스로가 사단에게 생각을 내어 줌으로 그 미혹에 넘어가고 말았던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공의 가운데 원수 마귀 사단에게도 어둠의 권세를 주셨고 그들은 그 순간부터 자신들의 권세를 사용하여 하나님을 대적해 나갔습니다. 그리고 최종 목표는 어떻게든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인간과 에덴을 파괴하려 했던 것이므로 아담도 미혹하려 했던 것이고 그러기 위해 먼저는 아담의 가장 가까이에 있던 공룡에게 접근하여 미혹했던 것입니다. 공룡은 결국 사단의 미혹을 받아들였고 마침내는 사단의 밥이 되고 말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모든 공룡을 에덴 동산에서 쫓아내신 이유
혹여 어떤 분들은 공룡이 선악과를 따먹은 것도 아니고 단지 그 지역에 들어간 것뿐인데 그렇다고 해서 공룡 모두를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아내는 것은 좀 지나친 것이 아닌가 생각할지 모릅니다. 앞으로 그러한 일이 없도록 단단히 경계하고 용서해 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요. 그러나 이는 용서해서 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에덴 동산은 악이 전혀 없는 곳일 뿐만 아니라 악이 얼마나 나쁜 것임을 깨달으며 원수 마귀 사단을 대적하여 승리하는 곳이 아니지요. 오로지 하나님의 은혜 안에 지킴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곳에 조그만 악이라도 허용을 하게 되면 이는 걷잡을 수 없을 만큼 퍼질 수가 있지요. 그만큼 순수하고 때묻지 않은 곳이므로 자칫 작은 불씨 하나가 전체로 퍼져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처럼 지킴받는 에덴 동산에서 사단의 역사를 받을 정도가 되었다는 것은 단순히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그만큼 오랜 세월 마음에 두고 계획해 왔으며 이미 악의 모양으로 자리 잡았음을 나타내는 것이지요. 그러니 더더욱 공룡들을 그 곳에 두실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더욱이 공룡은 인간처럼 경작을 받기 위해 만들어진 것도 아니고 용서해 준다고 해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아 철저히 뉘우치고 돌이킬 수 있는 존재도 아니지요. 영이 주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에덴 동산은 우리가 사는 지구에서처럼 굳이 악을 허락하여 상대성을 체험해야 하는 것이 아니기도 하구요. 바로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으로부터 아예 악의 가능성 자체를 제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로도 아담이 불순종했을 때뿐만 아니라 에덴 동산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이 땅의 여자들을 취하여 아내로 삼았을 때도 그들을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아내심으로 지금까지 에덴 동산은 악에 물들지 않고 지킴받으며 보존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면 에덴 동산이 이처럼 하나님께로부터 지킴을 받는 곳이라면 어떻게 그 곳에 사단이 역사할 수가 있었을까요? 여기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도 설명을 드렸듯이 아무리 하나님께서 지켜 주신다고 해도 결국은 자신 스스로의 선택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본제단이 아무리 성령의 역사가 강하고 하나님께서 빛으로 둘러 지키신다 해도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사단이나 귀신의 역사를 받게 되는 것을 봅니다. 이는 지켜 주시지 않아서가 아니라 본인이 아버지 하나님 앞에 해결하지 못한 문제가 있어서 이것을 가지고 사단이 송사하기 때문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공룡이나 이후의 아담이나 하와 역시 사단의 송사를 받을 만한 빌미가 있기에 사단이 생각을 통해 조종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6. 에덴 동산에서 이 땅으로 쫓겨난 공룡의 삶
그렇다면 에덴 동산으로부터 쫓겨난 공룡들은 이 땅에서 어떠한 삶을 살게 되었을까요? 먼저 아담에게는 공룡을 만나는 것이 허락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아담이 공룡을 보고 싶어도 그들이 이 땅에 사는 동안 볼 수가 없었고 그들을 위로해 줄 수도 없었지요. 대화의 통로도 끊겨 버린 것이지요.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공룡을 이 땅으로 내려보내실 때 어느 한 곳에 집중시켜 두신 것이 아니고 여러 곳으로 흩으셨습니다. 하지만 공룡들이 느끼기에 이 지구는 너무나 좁았지요. 그 넓은 에덴 동산에 살던 공룡이었으나 이 땅에 쫓겨난 수도 굉장히 많았을 뿐만 아니라 그 큰 덩치에 비해 이 땅의 것들은 심히도 작게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땅에 살게 된 공룡들은 점점 이 땅의 동물들을 무시하게 되고 그들에게 해를 가하게 되는 존재가 되어 갔습니다. 사실 공룡들이 이 땅에 내려왔을 때 처음부터 이 땅의 짐승들을 잡아먹는 육식을 한 것은 아니었지요. 처음에는 에덴 동산에서처럼 풀과 열매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 땅의 동물들을 일부러 죽이거나 하는 일도 없었지요. 그러나 공룡들은 이 땅의 짐승들을 무시하는 가운데 그것들을 존중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풀도 많고 열매도 많았지만 그것을 따먹는다고 하여 그들의 배를 채울 수가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배를 채우려면 그 주위가 순식간에 다 황폐해져 버립니다. 코끼리 떼가 나무들을 갉아먹고 짓밟아 부서뜨리면서 한 번 지나가도 그 숲이 완전히 망가진다 하는데 하물며 먹을 것을 찾아 멀리 이동하는 공룡들 앞에 이러한 것이 남아날 리 없지요.
그러다 보니 실수로 이 땅의 동물들을 밟거나 죽이는 일도 생기게 되었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것이 잘못이라는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은 둘째 하늘에서 온 존재로서 이 땅에 하찮은 존재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했기에 다른 동물들의 목숨은 중하게 여기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것은 점점 교만으로 자라 갔지요.
에덴 동산에서 이미 악으로 인해 쫓겨났던 공룡들은 이제 이 땅에 살게 되면서 더욱 사단의 역사를 받기가 쉬워졌습니다. 빛으로 둘러 아담의 권세 아래 지킴 받던 에덴 동산보다는 이 땅이 사단이 역사하기에는 더 쉬운 곳이지요. 그러니 사단은 더욱 강하게 역사해 갔고 공룡들은 교만이 자라면서 더욱 이 땅에 작은 동물들을 무시하고 조롱하며 해치는 일까지 생기기에 이른 것입니다. 공룡들은 배를 채우려하니 자연히 난폭해져 갔고 더욱이 에덴 동산에서 반란의 주동이 되었던 공룡들은 그 중에서도 더 난폭해졌지요.
그리고 공룡들로 인해 이 땅에 생긴 또 한 가지 큰 변화는 바로 오염이었습니다. 공룡들이 에덴 동산에 사는 동안에는 이 땅에서처럼 배설이라는 것이 필요 없었지요. 음식을 먹으면 바로 분해되어 에너지가 되고 만약 필요 없는 성분이 있다면 그것은 호흡을 통해 공기 중으로 내뿜으면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이제 완전히 육의 몸이 되었으므로 음식을 먹을 때 필요 없는 것은 배설을 통해 배출해 내어야만 하게 된 것이지요. 그러니 그 엄청난 덩치를 가진 공룡들이 그것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수가 이 지구상에 배설을 한다고 생각을 해 보십시오.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제들로 인해 과연 이 땅에는 어떠한 문제들이 발생되고 또 공룡들은 점점 어떻게 변해 갔는지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
여러분은 오늘 공룡이 어떻게 배신을 했고 그로 인한 결과가 무엇인지를 들으셨습니다. 또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도 들으셨지요. 바로 이 말씀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해 보아야 합니다. 작은 악으로 인해 어떠한 결과가 발생했을 때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알면서도 오히려 더 악해져 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단이 처음에는 작은 것으로 미혹하지만 여기에 넘어가게 되면 그것을 올무 삼아 다음에는 조금 더 큰 것으로 미혹을 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또 넘어가면 다음에는 더 큰 것으로 미혹하게 되구요. 점차 더 교묘한 방법을 통해 조금씩 악으로 물들어 가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을 때 그 순간 어떤 선택을 하는가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잘못했다고 해서 단번에 버리시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시지요. 회개하고 돌이키면 이전 것은 기억지도 않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물론 성령 훼방이나 모독, 거역 등과 같이 용서받지 못할 죄들도 있지만 이런 경우라 해도 정녕 중심에서 돌이키고 회개하려고 하나님 앞에 전심을 다해 매어 달린다면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푸실 수도 있지요.
비록 작은 잘못이라 해도 그것을 회개하고 돌이켜 선으로 쌓아 가는 것과 점점 악으로 쌓아 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결과를 내게 되지요. 마태복음 12:35에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하는 말씀처럼 선으로 행하느냐 악으로 행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쌓여서 나중에는 엄청난 결과의 차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따라서 정녕 새예루살렘를 소망하여 나가는 분이라면 작은 것 하나에서부터 이것이 선인지 악인지를 말씀으로 잘 분별하여 행해 나가야 합니다. 또한 발견되는 악의 모양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즉시로 버려 나가야 하는 것이구요. 그럴 때만이 새예루살렘의 영광이 여러분에게 주어질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명심하여 말과 행함과 생각과 마음에 품는 것까지도 오직 선으로만 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직 선만 있는 아름다운 새예루살렘에서 마음껏 영광을 누리시기를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6:21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