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45)
서론 / 에덴에서 발원한 강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시간에는 에덴과 에덴동산의 차이점에 대해 설명을 드렸습니다. 둘째 하늘에서 아버지 하나님께 속한 영역을 에덴이라 한다고 했으며 이 에덴 안에 생령으로 창조된 아담과 그의 후손들을 위해 특별히 창설해 주신 곳이 에덴동산이라고 했지요.
오늘 본문 10절에는 강이 에덴에서 발원했다 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 둘째 날에 지구를 덮고 있던 물이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뉘어지면서 그 중에 궁창 위의 물은 둘째 하늘로 이동하게 되었고 이 물이 에덴의 강을 이루는 근원이 되었던 것이지요. 이렇게 해서 만들어진 에덴의 강은 빛의 영역인 에덴을 두루 돌 뿐만 아니라 에덴동산을 흘러 적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에덴에서 발원한 강은 거기서 갈라져 네 근원이 되었다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의 강으로부터 줄기가 갈라지면서 네 강을 이루는 근원이 되었다는 말이지요. 이 네 강의 이름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오는 비손과 기혼과 힛데겔과 유브라데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처럼 에덴으로부터 시작된 강이 지구 위에 흘러나와 네 강들을 이루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의 창들을 여시므로 에덴에서 발원한 강물이 지구로 흘러나오면서 네 강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지구에는 이 때에 비로소 강이 생겨난 것입니다.
전에 엿새 동안에 이루어진 지구의 창조에 대해 설명드리면서 지구에는 넷째 날이 지나서야 마침내 구름과 바람의 생성으로 인한 대기의 순환이 시작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비가 내리면서 육지에도 물이 존재하게 되었다 했지요. 그전에는 바닷물만 있었는데 이제 비가 오게 되면서 지하수를 비롯하여 육지 곳곳에도 물의 흐름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은 강이라고 부를 만큼 많은 물이 흘렀던 것은 아니라 했습니다. 그러다가 오늘 본문에 말씀한 대로 에덴에서 발원한 강이 이 땅 위로 흘러내리면서 지구 위에는 네 개의 큰 강이 생겨나게 된 것이지요.
본론 / 에덴에서 발원하여 지구에 생겨난 네 개의 큰 강
1. 숫자에 담긴 영적인 의미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처음에 네 개의 강을 이루도록 역사하셨을까요? 우리가 성경을 읽다보면 여러 숫자들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나름대로 영적인 의미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지요.
먼저, 3은 합한 수로서 모든 것에 온전함을 이루게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하나님께서는 세 분이면서 동시에 한 분인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존재하고 계시지요. 또한 예수님께서는 장사한지 3일만에 부활하셔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습니다. 요나도 3일 동안 물고기의 뱃속에 있었구요. 마귀가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세 차례 시험을 했으며 이 때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물리치시자 마귀가 떠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도 세 차례의 시험이 왔었고 결국 베드로는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했던 이 사건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철저히 회개하여 나중에는 수제자로서의 온전한 모습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이 밖에도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 베드로, 야고보, 요한이라는 세 제자가 특별히 예수님의 사랑을 받았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기드온에게도 삼백 용사가 있었고 다윗의 세 용사가 나오고 있으며 예수님을 팔았던 값이 은 30이었다는 사실 등 성경에는 3이라는 숫자와 관련된 많은 사건들이 나오고 있지요.
다음으로, 7은 완전수입니다. 말 그대로 완전함을 뜻하는 수로써 7자가 나오면 거기에 관련된 내용이 완전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6일 동안 모든 창조를 마치시고 7일째 되는 날에 안식하셨고 열왕기하 5:14에는 "나아만이 이에 내려가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씀대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니 그 살이 여전하여 어린아이의 살 같아서 깨끗하게 되었더라" 말씀한 대로 나아만 장군이 문둥병을 치료받을 때에도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었을 때 나음을 입었습니다.
또한 열왕기상 18:43에도 "그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 편을 바라보라 저가 올라가 바라보고 고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가로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하여 엘리야 선지자가 비를 내리도록 기도할 때에도 일곱 번 기도하여 응답받았던 것을 볼 수가 있지요. 다음으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교회는 이 세상의 모든 교회들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공중 재림 후에 있을 환난도 7년 대환난인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18:22에는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하여 형제를 용서함에 있어서 무한대까지라도 용서하라는 완전함을 나타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열왕기상 6:38에는 "제십일년 불월 곧 팔월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전이 다 필역되었으니 솔로몬이 전을 건축한 동안이 칠 년이었더라" 하여 솔로몬 왕이 성전을 건축한 것도 칠 년 동안이었던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게 될 야곱의 가족도 애굽에 들어갈 당시 칠십 명으로 시작하여 후일 큰 민족을 이루어 나오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출애굽기 1:5에 "이미 애굽에 있는 요셉까지 야곱의 혈속이 모두 칠십 인이었더라" 했지요.
그 다음으로 12라는 숫자가 있는데 이는 빛의 수입니다. 요한복음 11:9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낮이 열두 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 말씀한 대로 정오의 빛이 가장 밝게 빛나는 것도 12시이지요. 그래서 성경에는 12라는 숫자와 관련된 것이 여러 곳에 나오는데 이스라엘의 지파도 열두 지파였고, 예수님의 제자도 열둘이었으며 새예루살렘의 성곽의 기초석도 열두 기초석, 새예루살렘의 성문도 열두 진주문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계시록 22:2을 보면 생명강의 좌우에 있는 생명나무에서도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힌다고 말씀하고 있지요.
그러면 이제 4라는 숫자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4는 고난의 수라고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생활한 것이 40년, 애굽에 포로로 있던 것도 400년이었으며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40일 금식 기도를 하셨지요.
또한 4는 사람의 수 또는 땅의 수라고도 합니다. 이는 우리 인간과 관련된 숫자로서 바로 오늘 본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강을 만드실 때에 네 강을 만드신 것도 이 땅의 수인 4와 관련이 있지요. 강을 더 많게 혹은 더 적게도 만드실 수가 있으셨지만 이처럼 땅의 수 만큼인 네 개의 강을 만드신 데는 앞으로 이 땅에서 이루어질 인간 경작과 관련된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즉 장차 이 땅에서 인간이 경작 받게 될 것과 자기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될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으며 또한 이 땅에 인간 경작을 위한 모든 조건이 갖추어졌음을 암시해 주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2. 인류의 문명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는 강
인간과 물은 결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마치 우리가 영적으로 물을 의미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문명이 싹트기 시작한 곳을 보면 공통적으로 강을 주변에 두고 있었으며 한 국가나 큰 도시가 형성될 때에도 대부분이 강을 중심으로 해서 발달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한 국가나 큰 국가가 형성될 때에도 대부분이 강을 중심으로 해서 발달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처음 이 땅에 만드신 네 개의 강도 장차 인류의 문명과 역사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네 개의 강들에 대해 설명을 드릴 텐데 그 전에 여러분이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처럼 강이 처음 만들어지던 당시의 모습과 오늘날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는 사실입니다.
수많은 세월이 지나면서 지형의 변화를 비롯하여 강이 처음 있던 위치까지도 변할 수가 있기 때문에 설령 강의 이름이 오늘날에 현존하는 강과 같다 해도 그것을 지금과 똑같은 위치와 모습으로 생각해서는 안 되지요.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현재의 모습만을 근거로 하여 오늘 본문에 나오는 네 강의 위치를 추정하다보면 자칫 오류가 생길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여러 가지 주석 등을 살펴보면 에덴동산과 네 개의 강의 위치에 대해 많은 주장과 이론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어차피 에덴동산과 네 개의 강의 근원은 영의 세계인 에덴에 속한 것이기 때문에 이를 육적인 지식이나 과학으로는 풀 수가 없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대부분 주석에는 네 개의 강의 이름이나 지명을 주로 원어인 히브리어를 근거로 해석하고 있는데 거기에 담긴 의미를 참조할 수는 있지만 그와 함께 아버지 하나님께서 각 단어에 부여해 주신 영적인 의미를 알아야 강들에 담긴 정확한 의미를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3. 첫 번째 강인 비손강
그러면 먼저 첫 번째 강인 비손강에 대해서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비손이라는 이름에는 육적으로 볼 때에 풍성하게 흐른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그러나 영적으로는 대륙과 대륙을 연결한다, 대륙과 대륙 간의 길을 터놓는다는 의미가 있지요.
그리고 비손 강은 금이 있는 하윌라 온 땅에 둘렀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하윌라는 인도 땅을 의미합니다. 일부에서는 하윌라를 지금의 아라비아 근방으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기도 하지요. 사우디아라비아나 예멘 등의 나라가 있는 곳이 아라비아 반도입니다. 하지만 이어지는 본문 12절을 통해 하윌라가 어떤 지역의 땅인지를 충분히 짐작해 볼 수가 있습니다.
12절에 "그 땅의 금은 정금이요 그곳에는 베델리엄과 호마노도 있으며" 하여 이곳 하윌라라는 땅에는 정금이 있고 베델리엄과 호마노라는 보석도 있었음을 알 수가 있지요.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왜 이곳 하윌라에 이처럼 정금을 비롯하여 베델리엄이나 호마노라는 보석 등이 있었음을 성경에 기록해 놓으신 것일까요?
이는 바로 이러한 금이나 보석들을 통해 장차 이방 신의 우상들이 만들어 세워지고 이를 섬기는 여러 이방 종교들이 이 땅에서 생겨나게 될 것을 미리 암시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러한 금이나 보석이 재료가 되어 신상이 만들어지고 그 앞에 향을 피우며 제사하는 등 많은 우상 숭배와 이방 신을 섬기는 종교들이 이곳에서 행하여질 것을 나타내 주고 계신 것이지요.
이를 근거로 해 볼 때에 우리는 하윌라 지역이 어떤 곳인가를 추정해 볼 수가 있습니다. 역사를 통해 살펴보면 인도 땅을 중심으로 한 주변 지역에서 수많은 우상과 이방 신을 섬기는 제사가 그 동안 행해져 왔던 것을 알 수가 있지요. 물론 불교도 그 주위에서 생겨났습니다. 특히 인도는 많은 우상과 잡신을 섬기는 중심지로서 지금도 많은 금과 보석들을 재료로 한 우상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고 이를 섬기는 우상 숭배가 심한 곳입니다. 마치 이방 신을 섬기는데 있어서 우두머리와 같은 역할을 해 나가고 있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인도 땅 지역인 하윌라가 장차 이러한 모습이 될 것도 아셨고 그래서 성경에 이미 하윌라 땅에 대해 이처럼 설명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물론 당시의 지형이 오늘날과 같지 않았다는 것을 고려할 때에 하윌라 지역을 지금의 인도 땅이라고만 꼭 한정지을 수는 없지만 지금도 인도를 중심으로 한 주변의 광범위한 지역에서 많은 우상 숭배와 이방 신을 섬기는 제사가 행하여지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 수가 있습니다.
본문 11절에도 하일라 온 땅에 둘렀다 말씀한 것처럼 비손 강이 당시에 상당히 넓은 지역을 흐르는 매우 큰 강이었음을 알 수가 있지요. 그러니 자연히 한정된 좁은 지역만이 아닌 넓은 지역에서 이방 신을 섬기는 문화가 발달하게 되었음을 능히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장차 하윌라 지역이 우상 숭배의 중심지가 될 것을 아시면서도 왜 이곳에 큰 강을 두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문명을 발달시키며 살아가도록 허락하신 것일까요? 이러한 곳에 아예 강을 두지 않으셨다면 차라리 우상 숭배가 지금처럼 크게 성행하지는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데에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창세기 강해 초반에 설명드린 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인간을 경작하심에 있어서 홀로 큰 권세를 가지셨다 하여 마음대로 다 정하시고 이루어 가시는 분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공의 가운데 이루시는 분이지요.
따라서 인간으로 하여금 강제적이고 무조건적으로 하나님 당신만을 섬기게 하신 것이 아니라 자유 의지 가운데 참신 하나님을 알아서 믿음과 사랑으로 섬기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무리 많은 이방 신이 있고 우상이 있다 해도 참신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며 그분이 우리의 창조주요 주관자가 되신다는 것을 우리 인간들이 마음 중심에서 깨달아 앎으로 하나님만을 찬양하고 경배하기를 원하셨지요.
그래서 원수 마귀 사단에게 어둠의 권세를 주어 인간을 미혹하도록 허락하신 것이요, 그것은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였으며 이러한 공의 가운데서 하나님을 아는 참자녀가 나오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하나님 이외에는 어떠한 신이나 우상도 허락지 않으셨다면 인간 경작이 동등된 조건에서 이루어졌다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이처럼 이방 신이나 우상이 생겨나 사람들을 미혹하도록 허락하셨다 해서 사람들이 그것을 섬기는 것이 결코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공의 가운데 어둠의 권세를 허락하셨지만 이와 동시에 하나님만이 참신이시며 모든 만물의 창조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많은 증거들로 나타내 주셨습니다.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며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내는 창조의 권능도 오직 하나님께만 속한 것입니다. 원수 마귀 사단이 그들에게 주어진 권세 가운데 아무리 애를 쓴다 해도 결국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에는 전혀 미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비록 많은 이방 신과 우상이 난립한다 해도 정녕 마음이 선한 사람, 진실된 사람은 참신 하나님을 알아보고 섬길 수가 있는 것입니다. 또 하나님께서도 바로 이러한 사람들을 참자녀로 받으시는 것이구요.
그러니 비록 하윌라 땅이 장차 우상 숭배의 우두머리와 같은 역할을 한다 해서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 문명이 싹트는 것을 아예 금하신 것이 아니라 공의 가운데 그 곳에도 문명이 싹틀 수 있도록 큰 강을 허락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곧 공의 가운데 인간을 경작해 가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공의로우시며 공평하신 마음과 인간 경작에 담긴 아버지 하나님의 섭리인 것입니다.
4. 두 번째 강인 기혼강
다음으로 두 번째 강인 기혼강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기혼이란 육적으로는 차고 넘치도록 흐른다는 의미가 담겨있고, 영적으로는 뽐내다 견줄만 하다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또한 이 강이 구스 온 땅을 둘렀다 했는데 이것은 앞서 비손 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온 땅을 둘렸다는 말씀에는 이 기혼강이 그만큼 크고 넓어서 구스 주변에 넓은 땅을 흘렀다는 의미가 담겨있지요.
성경에는 구스라는 지명은 오늘날의 에티오피아를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는데 오늘날 에티오피아 지역을 살펴보면 강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따라서 구스라는 지명이 에티오피아를 지명하기는 하되 당시에는 지금의 에티오피아보다 훨씬 넓고 큰 지역을 포함하고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가 있지요.
그리고 기혼강으로부터 오늘날 에티오피아와 인접한 이집트 지역을 흐르고 있는 나일강이 갈라져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나일강을 중심으로 하여 찬란한 문명의 발달을 이룰 수 있었던 것도 구스 온 땅을 둘렀던 이 기혼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지요.
더욱이 지금 이 지역에는 다른 어느 지역보다도 더 놀랍고 불가사의한 문명의 많은 자취들이 남아 있는데 예를 들어 피라미드나 스핑크스와 같은 것들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뛰어난 문명의 자취들은 뽐낼만하다 견줄만하다는 의미를 가진 기혼이라는 이름과도 관련이 되어 있지요. 이 지역에서 싹텄던 문명들이 오늘날 그만큼 많은 사람들 앞에서 자랑거리가 되고 있고 또 능히 그 어떠한 문명과 견주어도 부족됨이 없다는 사실을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각각의 강들을 통해 앞으로 이루어질 일들을 다 아시기 때문에 그 이름 하나 하나에도 다 의미를 담아 두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앞으로 나머지 두 개의 강에 대해서도 설명을 드리겠지만 세 번째 강인 힛데겔이나 네 번째 강인 유브라데도 그 위치가 지금의 중동 지역과 연관이 있습니다.
따라서 네 개의 강들의 위치를 살펴보면 지구 전체를 놓고 생각할 때 거의 한 곳에 중점적으로 뭉쳐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가 있고, 그 주변에서 세계 문명의 발상지들이 나왔으며 네 개의 강이 흐르고 있는 중앙 쪽에 바로 이스라엘이 지구의 중심인 중앙을 차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장차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선민 이스라엘이 활동하게 될 지역을 중심으로 하여 네 개의 강들이 편중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지역 이외에도 많은 땅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곳을 택하시고 주변에 강들을 두셔서 문명의 발상지가 되게 하셨고 그 중심에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두셔서 그들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셨던 것입니다.
바로 출애굽기 19:5-6에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또한 에스겔 38:12에는 선민 이스라엘을 "세상 중앙에 거하는 백성"이라고 말씀하셨으니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 가운데 이루어져 왔다는 사실을 더욱 깨우칠 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나머지 강들에 대한 설명과 네 개의 강들을 통해 어떻게 문명이 발생하고 많은 역사들이 이루어져 왔는지를 설명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 인간경작을 준비하신 하나님
오늘 본문에 있는 네 개의 강들이 이루어지고 나서도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나서야 비로소 첫사람 아담과 하와를 통한 이 땅의 인간 경작이 시작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 사는 동안 이 땅에서는 수많은 세월이 흘렀고, 그 후에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이 땅으로 쫓겨나면서부터 인간 경작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0년 전부터 이 땅에서의 인간 경작이 시작되었지만 이를 위한 하나님의 준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세월을 두고 진행되어 왔다는 사실을 그 동안 창세기 강해를 통해 배웠습니다.
태초에 육과 영의 세계를 나누심도,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분리되심도, 악한 영들을 허락하시고 둘째 하늘을 만드셔서 그 안에 두신 것도, 그리고 마침내 지구를 만드시며 에덴동산을 지으시고 그 곳에 아담을 두신 모든 것이 인간 경작을 위한 하나 하나의 과정이었습니다.
이제 본문에 나오는 네 개의 강들을 이루심으로 인간 경작을 위한 모든 준비는 마쳐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가지 변화의 과정을 거치게 되고 인간 경작이 시작된 이후로 문명의 발상을 이루는 근원지가 되어집니다.
이처럼 모든 것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지금까지 이루어오고 계신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의 마무리를 위해서도 마지막 때에 한치의 오차도 없이 계획과 섭리대로 이루어가고 계십니다. 그 한 가운데 저와 여러분과 본제단이 들어 있는 것이지요.
성도 여러분, 퍼즐을 맞추다 보면 처음 시작할 때는 전체적인 그림이 어떻다는 것을 잘 모르지만 이제 점차 퍼즐을 완성해 가는 단계가 되면 설령 아직 완성을 이루지는 않았다 해도 대강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본제단 역시 인간 경작의 마무리를 완성하는 사명을 감당함에 있어서 예전에는 어떻게 세계를 이루고 대성전을 이룰까? 한편으로는 그 그림이 잘 이어지지 않을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능히 앞으로 우리가 이룰 일들이 점점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왜 우리가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준비되었고 어떻게 쓰임 받게 되는지를 이제는 분명히 알 수 있지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 말씀한 대로 우리는 아직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때부터 오직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며 달려왔고 그 실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는 인간 경작이라는 퍼즐 안에서 여러분은 과연 어떤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까? 여러분 개개인 모두가 퍼즐의 아름다운 그림을 맞추어 가는데 있어서 결코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한 조각 한 조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여러분 자신이 퍼즐에 꼭 맞는 모양으로 나와져야 하는 것이지요. 아무리 퍼즐 조각이 많아도 그림에 꼭 맞는 것이 아니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욥기 23:10에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말씀하신 것처럼 이제는 연단을 통해 정금과 같이 나와지심으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인간 경작의 그림에 딱 맞는 조각들로 나와져야 하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양으로 준비되어야만 아버지 하나님 편에서도 인간 경작의 퍼즐을 완성해 가심에 있어서 여러분을 쓰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있도록 특별히 금년에는 신부단장을 마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야 준비된 여러분들이 내년부터는 귀한 도구로서 마음껏 아버지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혹여 나는 아직도 이런 모습인데 어떻게 금년 안에 신부단장을 마칠 수 있는가 하며 낙망하고 계신 분이 있다면 이런 분들도 지금부터라도 최선을 다해 신부단장에 전력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빌립보서 4:13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께서 능력을 주시면 여러분은 능히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나갈 때에 아직은 부족해도 더욱 신속히 변화될 수 있도록 인도해 나가시는 것이니 나는 안 될 것이다 하고 지래 포기하고 있다면 설령 앞으로 많은 시간이 주어진다 해도 신부단장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항상 긍정적인 고백과 믿음을 가지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해 나갈 때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방법대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을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면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믿음을 가지고 오늘도 새예루살렘을 향해 달려가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을 통해 아버지 하나님의 계획하신 인간 경작이 아름다운 그림으로 완성되어지기를 존귀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6:21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