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43)
서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하나님의 역사들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그것이 과학이나 상식으로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물 위를 걸으셨다고 하면 그것을 과학의 이론으로는 설명할 수 없기에 믿지 못하는 것이지요. 또한 예수님께서 명하시자 시공을 초월하여 병자가 나았다, 죽어 가는 자가 살아났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성경에 기록되어진 하나님의 역사를 마치 지어내고 보태어 만들어 낸 이야기 정도로 생각해 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자신들 스스로는 매우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들로 생각하고 반대로 성경 말씀을 그대로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렇지 않는 사람들로 여기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반대이지요. 오히려 세상의 사람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한정된 지식과 이론의 틀 안에 갇혀서 그 이상의 세계를 감히 바라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이론과 틀을 깨뜨려 버리고 겸손하게 알려고 궁구하려고 하면 세상 지식으로는 알지 못하는 깊은 세계의 지식을 알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만약에 위를 쳐다본다면 위에 있는 하늘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면 하늘이 위에만 있고 밑에는 없을까요? 밑으로 땅속으로 자꾸 내려가면 남미의 아르헨티나가 나옵니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우리와 반대되는 하늘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처럼 우리의 위쪽 방향을 보면 거기는 땅만 보이지요. 우리 사람의 생각과 이렇게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생각의 틀을 깨뜨려야 하는 것이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권능의 역사들이 어떻게 가능한지를 얼마든지 설명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물 위를 걸으실 수가 있었고 환자에게 직접 가지 않고 명하셔도 어떻게 시공을 초월하여 치료의 역사가 나타날 수 있는지 또한 엘리야 선지자는 어떻게 마차보다 더 빨리 앞서 갈 수가 있었으며 빌립 집사는 또 어떻게 해서 순간에 사라졌다 멀리 떨어진 곳에 나타날 수가 있었는지 등 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실 수가 있으시지요.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현상들에 대한 설명을 이해하려면 우리가 사는 이 3차원의 한정된 세계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차원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차원이 달라짐에 따라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도 알아야 하고 같은 공간 안에서도 서로 다른 차원의 공간들이 겹쳐져 있다는 사실들도 알아야 하지요.
또한 아직 이 땅의 지식이나 이론으로는 설명하거나 이해조차 할 수 없는 영적인 현상들에 대해서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들은 오직 영의 세계에 대해 알고 인정해야만 이해가 가능한 것들이지요. 그러니 설령 아버지 하나님께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역사들에 대해 그 원리를 자세하게 설명해 주신다 해도 결국 사람의 지식과 한계로는 온전히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육의 한계를 가진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많은 분야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이 모든 하나님의 역사는 오직 믿음으로만이 깨달아 알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의 짧은 지식과 과학으로 이해하려고 하다보면 도저히 깨달을 수 없지만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때에는 능히 마음에 깨달아지고 이해할 수가 있지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나는 믿고 싶은데도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내가 믿어야지 하고 스스로 마음먹는다고 해서 믿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도우심 가운데 말씀이 깨달아지고 위로부터 믿어지는 믿음을 주실 때라야 마음에 믿어지게 되지요. 전에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던 하나님의 역사들이 이 때부터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마음 중심에서 인정되고 믿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성령의 역사를 통해 믿어지는 믿음을 얻으려면 먼저 여러분의 생각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던 지식과 이론이 하나님 앞에서는 얼마나 헛되다는 것을 깨달아 철저히 깨뜨려 나갈 때만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열리게 되지요.
그런 다음에는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 계시록 3:20에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말씀하신 대로 내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겸비한 마음으로 아버지 하나님 앞에 마음의 문을 열면 이 때부터는 아버지의 말씀이 내 마음에 와 닿게 되지요. 하나님 말씀과 권능의 역사들이 믿어지고 깨달아지며 아멘 아멘으로 꿀맛같이 달게 받아지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데 우리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역사들을 물론 믿음으로만이 받을 수 있지만 영적인 지식이 있다면 더 잘 이해되고 깨달아지면서 마음에 믿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행할 때에 능력이 되어지는 것이구요.
여러분에게 차원에 대한 설명을 해 드리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입니다. 우리가 사는 3차원의 세계와는 시간의 흐름과 공간이 다른 또 다른 차원의 세계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한다면 육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가 있지요.
더욱이 여러분은 지금까지 많은 체험들을 통해 우리가 사는 차원과는 다른 차원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에게 오늘 말씀과 같은 내용들까지도 설명해 주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은 영의 차원과 육의 차원 사이의 시간의 흐름의 차이와 서로 다른 차원의 공간이 겹쳐져 있는 것에 대해 권능의 역사들과 연관하여 구체적인 설명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본론 / 차원에 대하여
1. 에덴
먼저 "에덴 동산"이라는 표현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합시다. 많은 분들이 에덴을 하나의 동산으로 잘못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셨다 하셨지 에덴이 하나의 동산이라 하시지는 않으셨습니다.
영계의 제 2하늘에는 우리 인간의 지식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넓은 공간이 있습니다. 그 공간에는 원수 마귀가 공중권세 잡고 있는 공간도 있고 에덴이라는 공간이 있습니다. 그 에덴에 하나님이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동산 중앙에는 선악과일과 생명과일을 두셨다 하는 것입니다. 에덴 전체를 동산이라고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강이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에덴 전체와 동산을 합쳐서 편의상 "에덴 동산"이라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이해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에덴의 강을 이루는 근원이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는 전에 창세기 강해를 통해 이미 설명을 드렸습니다.
천지창조 둘째 날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지구를 덮고 있던 물을 궁창 위의 물과 궁창 아래의 물로 나누셨는데 그 중에 궁창 위의 물이 장차 에덴의 강들을 이루는 근원이 되었다 했지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처럼 역사하신 것은 에덴 동산에도 물이 있어야 함을 아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담도 영에 속한 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와 같이 피가 돌고 순환하는 몸을 입고 있기 때문에 우리 인간처럼 물이 필요하지요. 또한 에덴 동산의 환경 역시 지구와 몹시 흡사해서 모든 만물들은 물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에덴에도 강을 두르시고 이 강물이 에덴 동산 전체를 두루 돌 수 있도록 만들어 놓으셨던 것입니다.
이 물로 인하여 에덴 동산에 있는 만물도 충만함을 입고 생명을 유지해 갈 수 있는 것이지요. 더욱이 장차 아담과 하와가 지구에 내려가 살게 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을 조성하실 때도 그들이 장차 살게 될 지구와 비슷하게 꾸며주셨던 것입니다.
2. 여러 차원의 공간들
이러한 에덴 동산을 만드시면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외부로 통하는 문도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 문은 에덴 동산의 사방으로 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동편으로만 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이 쫓겨난 에덴 동산을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으로 지키게 하실 때에도 에덴의 동편만을 지키게 하셨던 것이지요.
이 동편이 바로 공중권세 잡고 있는 악의 영들의 세력과 맞닿아 있는 곳이면서 동시에 에덴 동산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는 곳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여러분이 맞닿아 있다고 하여 에덴 동산 동편 문을 나서면 바로 공중권세 잡은 악의 영들이 진치고 있나 보다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경계는 하고 있지만 또 그만큼 많은 공간의 차원이 또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에덴 동산으로부터 나와 첫째 하늘로 올 때는 이곳 동편을 통해서만 나올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막상 에덴 동편을 나와서 우리가 사는 첫째 하늘로 나올 때에는 문이 여러 개가 있지요. 예를 들어 UFO가 그룹의 허락을 받아 에덴으로부터 나올 때는 동편으로 나오지만 막상 이 지구에 나타날 때에는 지구 곳곳에서 나타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는 에덴으로부터 나오는 문은 하나이지만 일단 에덴을 나와 시간이 정체된 공간을 타면서는 첫째 하늘의 곳곳과 연결이 되어지기 때문이지요.
이처럼 우리가 사는 차원의 공간과 다른 차원의 공간이 곳곳에서 서로 맞닿아 겹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영안이 열려 해를 중심으로 에덴 동산과 에덴에 사는 사람들을 볼 수 있는 현상을 통해서도 알 수 있습니다.
해는 분명 우리가 사는 첫째 하늘의 공간에 속한 것인데 이것을 배경으로 둘째 하늘에 있는 에덴과 에덴에 사는 사람들이 보이는 것입니다. 바로 육의 공간과 영의 공간이 겹쳐져 있는 곳에 하나님께서 하늘의 문을 열어 주시자 육의 공간 사이로 영의 공간이 보이는 것이지요.
그러면 여러분이 좀더 이해하기 쉽도록 성경상의 예를 통해 공간이 서로 겹쳐져 있는 것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3. 서로 겹쳐져 있는 다른 차원의 공간을 통한 역사들
사도행전 8:39-40에 나오는 빌립 집사에 대한 기록이 좋은 예가 됩니다.
"둘이 물에서 올라갈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간지라
내시는 흔연(欣然)히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 감으로 광야에 있던 빌립이 아소도라는 곳에 나타났다 했습니다. 마치 순간 이동을 한 것과 같이 빌립이 광야에서 멀리 떨어진 아소도로 이동한 것이지요. 이것은 바로 빌립 집사가 육의 공간과 겹쳐진 영의 공간을 통해 이동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람의 눈에는 순간 사라졌다가 얼마 후에는 공간이 겹쳐진 또 다른 곳에 다시 나타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영의 공간을 타는 것은 온전히 영으로 들어가서 육의 몸을 완전히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차원에 있을 때만이 가능한 일들입니다. 그래야만이 육의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영의 공간의 흐름을 탈 수가 있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이러한 차원에 이르렀다 해서 아무 때나 영의 공간을 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피조물의 한계를 가지고 있는 이상은 하나님의 권능으로 둘러 주셔야만이 가능하지요.
그러나 우리가 부활체의 신령한 몸을 입을 수만 있다면 이 때는 몸도 온전히 영에 속하게 됨으로 얼마든지 활용해 다닐 수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24:30-31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매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부활하신 주님께서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가 순간 그들 앞에서 사라져버리신 것이지요. 또 요한복음 20:19에는 "이날 곧 안식 후 첫날 저녁 때에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했습니다. 제자들이 문을 닫고 있었음에도 예수님께서는 순간 그들 가운데 나타나셨지요.
이처럼 예수님께서 순간 나타나시기도 하고 또 순간 사라지시기도 하며 문이 닫힌 곳에도 들어오실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영의 차원의 공간을 이용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무리 육의 공간에 장애물이 있다 해도 영의 공간을 이용하시는 예수님께서는 아무 상관이 없으신 것이지요.
4. 차원이 다른 공간의 시간 흐름이 다르기 때문에 나타나는 역사들
이처럼 영과 육의 겹쳐진 공간을 이용하면 제가 전에 말씀드렸던 내용들 즉 물 위를 걷고 순간에 이동을 하며 바람을 탈 수도 있다는 말들이 이해가 가실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이러한 영의 공간에 대한 것뿐만이 아니라 영의 차원의 시간의 흐름에 대해서도 아시면 더욱 놀라운 하나님의 역사들을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가 서로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는 것은 전에도 몇 차례 말씀을 드렸습니다. 베드로후서 3:8에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는 말씀을 통해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간에 존재하는 시간의 흐름의 차이에 대해 설명을 했지요. 이 말씀에 대한 좀더 구체적인 설명은 다음 기회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 시간의 흐름의 차이에 대해 권능의 역사와 연관지어 설명을 하겠습니다.
영의 세계는 우리와는 다른 시간의 흐름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의 세계의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고 하여 그곳에 사는 존재들이 느끼기에 시간의 흐름이 다르다 느끼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에덴에 사는 사람들은 우리가 이 땅에서 느끼는 것과 같이 시간의 흐름을 느끼고 있지요. 우리가 하루가 지나간 것을 느끼는 것처럼 그들도 하루가 지나갈 때는 우리가 느끼는 하루라는 길이의 시간으로 느끼는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곳의 시간의 흐름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에 그 곳의 시간의 흐름을 육의 세계의 시간의 흐름으로 적용해 보면 많은 시간의 차이가 발생함을 알 수가 있는 것이죠.
여러분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가지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여기 두 대의 기차가 있습니다. 하나는 시속 100Km로 달리는 기차이고 다른 하나는 시속 50Km로 달리는 기차입니다. 그리고 각각의 기차에 사람들이 타고 있는데 창을 다 가려서 밖을 보지 못하게 했지요. 그러면서 평소처럼 행동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 이 각각의 기차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빨리 달리고 있는지를 모릅니다. 시속 100Km에 탄 사람이 시속 50Km로 달리는 기차에 탄 사람보다 자신이 빨리 달리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지요. 기차는 아무리 빠르다 해도 그 안에서 생활하는 자신은 기차의 속도와는 상관없이 평소와 똑같이 행동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시간의 흐름이 빠른 곳에 산다해도 그 안에 사는 사람은 스스로 느끼기에 빠르다고 생각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서로 다른 속도로 달리는 기차에 탄 사람이 상대편의 기차를 볼 수 있다면 어떨까요? 이 때는 자신이 느리게 가고 있는지 빠르게 가고 있는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기차의 속도 차이가 현저하게 나타나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서로 다른 시간의 흐름을 가진 두 차원이 서로 맞닿게 되면 이 때에는 그로 인한 여러 가지 현상이 나타나게 됩니다. 열왕기상 18:45-46을 찾아보지요.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하여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저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여기서 엘리야 선지자가 아합이 타고 가는 마차보다 더 빨리 달려간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처럼 하나님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니 그 순간만큼은 엘리야의 몸이 하나님의 권능으로 감싸져서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탈 수가 있었던 것이지요.
이처럼 육의 세계와 다른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타니 육의 사람이 보기에는 도저히 불가능한 놀라운 권능의 역사가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 외에도 성경에는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타는 많은 예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예수님께서는 시공을 초월하여 치료의 역사를 베푸셨는데 이 때도 영의 시간의 흐름과 관련이 있지요.
예수님께서는 병자가 있는 것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씀으로만 명하셨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타게 됨으로 육으로는 순간에 병자가 있는 곳까지 역사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타시므로 육으로는 오랜 시간이 걸려야 갈 수 있는 거리도 순간에 도달하여 역사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백부장의 하인도 말씀으로만 하셨는데 그 즉시 치료된 것이고 죽어가던 아들을 위해 아비가 기도를 요청했을 때에도 주님께서 "나았다. 평안히 가라" 말씀하신 그 시간에 살아났던 것입니다. 저를 통해 나타나는 시공을 초월하는 역사도 같은 이치이지요.
제가 이곳에서 기도할 때에 수 천, 수 만 Km 떨어진 곳에 있는 사람이 그 순간에 치료받는 것은 제 입에서 나오는 말이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타고 역사되기 때문입니다. 제가 이 곳에서 질병아 물러가라 말하면 그 순간 제 말은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타고 환자가 있는 곳에 도달하게 되지요. 그러면 그 즉시로 제 말에 담긴 권세와 능력이 질병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이처럼 몸은 비록 육의 공간에 속해 있지만 하나님의 권능은 영에 속한 것이므로 영의 시간의 흐름에 적용을 받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이것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한 가지 예를 들어 보도록 하지요.
여러분이 전화로 누구와 대화를 합니다. 그러면서 상대방에게 "지금 텔레비전을 한 번 켜보세요." 하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분명 상대방과는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말을 했지만, 상대는 그 말에 순종하여 텔레비전을 켭니다. 즉 여러분의 몸은 직접 그 곳에 가지 않고 이곳에서 말로만 하는 것이지만 여러분의 말이 전화선을 타고 순간에 전해져서 그 효력을 발휘된 것이지요.
여러분이 직접 상대가 있는 곳에 가서 말을 하려면 많은 시간이 걸려야 하겠지만 전화를 사용하게 되면 이 때는 여러분이 말하는 것이 전자신호로 변화되어 이동함으로 빛의 속도라고 하는 빠른 흐름을 타게 되지요. 그래서 순간에 상대가 있는 곳까지 여러분의 말이 전달되는 것입니다.
제가 환자를 위해 기도하는 것도 만약 직접 가서 기도해 주려면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제 기도는 입에서 떨어지는 순간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타기 때문에 직접 가지 않아도 동시에 환자가 있는 곳에 도달하여 권능의 역사를 일으킨다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누구에게나 이런 역사가 따르는 것이 아니지요. 그 입술의 말이 육의 시간의 흐름을 극복하고 영의 시간의 흐름을 탈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은 그 자체가 곧 창조의 권능이신 것처럼 아버지 하나님과 말씀으로 하나되어 그 입술의 말에 창조의 권능이 담겨야 하지요. 그래야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듯 입술에 낸 말이 온전히 영으로 보장되는 것입니다.
결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내용은 이해하시기가 좀 어려울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권능의 역사를 사모하시는 분들이라면 너무나 시원하고 재미있는 말씀이지요. 비록 여러분이 오늘 말씀을 아직은 영으로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하나님의 권능으로는 무엇이나 가능하니까 하고 막연하게 알고 믿는 것보다는 이처럼 영의 지식을 배워나갈 때에 더욱 여러분에게 믿음과 능력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 한정된 지식과 이론의 틀에 막혀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들도 있는데 여러분은 세상의 지식이나 이론을 훨씬 뛰어 넘는 영의 지식을 배워 나가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니 정말 지혜로운 사람은 세상의 지식을 많이 쌓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를 보고 믿을 수 있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오늘도 들으신 말씀이 능력이 되어서 육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영의 세계를 더욱 확실히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여러분 마음에 온전히 믿으심으로 신부단장을 신속히 마치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6:21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