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41)
서론 / 에덴동산과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다운 천국을 침노하려면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시간부터는 잠시 에덴에 대한 설명을 멈추고 천국에 대해서 설명을 드리고 있습니다. 이 땅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다운 에덴동산도 천국에 비하면 너무나 큰 차이가 난다고 했지요. 그러니 이러한 천국이 진정 믿어지고 소망된다면 당연히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땅에 인간을 경작하시는 목적에 맞는 참된 자녀로 나와져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태초에 홀로 계시던 때부터 지금까지 오직 참자녀를 얻으시려는 한 가지 마음으로 모든 것을 참고 인내해 오셨으니 그토록 고대하며 원하셨던 참자녀들과 영원히 함께 살게 될 천국 또한 얼마나 아름답게 준비해 놓으셨겠습니까? 그래서 여러분이 신속히 신부단장을 마치고 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새예루살렘을 침노해 들어갈 수 있도록 이처럼 천국에 대한 말씀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3:19에 "아무나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지 못할 때는 악한 자가 와서 그 마음에 뿌리운 것을 빼앗나니 이는 곧 길가에 뿌리운 자요"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천국 말씀을 듣는다 해도 그 말씀을 깨달아 마음에 믿지 못할 때는 아무 소용이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지요. 마치 길가에 뿌리워진 씨를 새가 날아와서 먹어 버리듯이 들었던 천국 말씀을 원수 마귀 사단이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반대로 마태복음 13:23에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혹 백 배, 혹 육십 배, 혹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셨으니 천국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천국에 대한 믿음과 소망 가운데 열심히 신앙생활해 나감으로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결실을 맺게 됩니다. 바로 낙원에서 1천층, 2천층, 3천층, 그리고 마침내는 새예루살렘을 침노해 들어가는 것이지요. 이처럼 여러분도 오늘 들으시는 천국 말씀을 통해 큰 결실을 맺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가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자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산 것처럼 여러분도 천국이라고 하는 값진 진주를 사려면 여러분의 소유를 다 팔아야 합니다. 자신의 자아와 틀과 육신의 생각과 이론 그리고 악의 모양까지도 다 팔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리하여 천국 새예루살렘이라고 하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장 귀한 진주를 소유하는 지혜롭고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믿음의 3단계에 속한 영혼들이 거하는 2천층에 대해서부터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본론 / 천국의 처소에 따른 삶의 차이
1. 2천층
2천층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믿음을 가졌으되 아직 온전한 성결은 이루지 못한 영혼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히브리서 12:4에는 우리가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함을 말씀하고 있는데 이 곳 2천층에 들어간 사람들은 죄와의 싸움을 완전히 마치지 못한 상태에서 주님을 맞이하게 된 것이지요. 따라서 아직은 신부단장을 마친 상태라 할 수가 없습니다. 못 해도 3천층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어야 신부단장을 했다고 말할 수가 있지요.
흠도 티도 점도 없는 정결하신 주님을 신랑으로 맞을 신부라면 당연히 온 영과 혼과 몸이 흠 없게 보전되어 신랑되신 주님을 맞이해야 합니다.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서 처음 계획하신 인간 경작의 참 목적도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참자녀이지요.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녀들과 함께 새예루살렘에서 함께 영원토록 사랑을 나누며 살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랑 자체이시므로 참자녀의 자격에 이르지 못한 자녀들을 위해서도 낙원부터 3천층까지를 예비해 주셨지요. 그리고 3천층은 그래도 참자녀의 자격에 가장 가까이 이른 자녀들이 들어가는 곳으로서 이 곳 3천층만 해도 2천층까지와는 매우 큰 차이가 납니다. 그러니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신부단장을 마쳐서 최소한 3천층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었느냐 그렇지 못했느냐가 장차 천국에서 얼마나 큰 차이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어찌해서든 최소한 3천층에 들어갈 수 있는 자격은 갖추어야 하는 것이지요.
지금부터 설명드릴 2천층만 해도 지난 시간까지 설명한 낙원이나 1천층과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먼저 집부터가 다르지요. 낙원은 아예 개인 소유의 집이 없고 1천층은 그나마 개인 소유의 집이 있기는 해도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와 같은 형태라 했습니다. 이에 비해 2천층의 집들은 완전히 독립된 개인 주택입니다. 하지만 복층 건물의 집은 없고 모두가 단층집으로 되어 있습니다. 3천층 이상의 천국에서는 복층 건물들이 있구요. 그러나 2천층의 집들도 매우 크고 웅장하며 집의 곳곳에는 향기로운 꽃과 나무들로 조경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2천층에 들어가는 사람들은 이러한 아름다운 저택 이 외에도 자신들이 가장 좋아하는 것 중의 한 가지를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 있게 되지요. 예를 들어 수영을 좋아해서 수영장을 갖고 싶다면 정금과 보석들로 조각된 아름다운 수영장을 개인적으로 소유할 수가 있습니다. 아름다운 연못을 갖기를 원한다면 연못을, 또는 무도회장을 원한다면 무도회장을 가질 수가 있지요. 산책을 좋아한다면 아름다운 기화요초들로 장식되고 사랑스러운 동물들이 노니는 산책길을 소유할 수 있구요. 그러나 한 가지만을 소유할 수가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갖고 싶다 할지라도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이 주어집니다. 이렇게 각자의 소유로 가진 것들이 다르므로 2천층에서는 자기 집에 없는 것은 다른 집에 가서 서로 서로 구경하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하면서 함께 즐거움을 나누게 됩니다.
혹여 어떤 분들은 천국은 무엇 하나 부족됨이 없는 곳으로 알았는데 어떤 곳은 개인 집이 없는 곳도 있고 어떤 곳은 개인 소유가 겨우 하나뿐이니 불편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은 결코 무엇이 부족한 곳이 아니며 어떤 불편함도 느껴지는 곳이 아닙니다. 모두가 주어진 행복에 감사 또 감사하며 영원토록 사는 것이지요. 함께 생활한다고 해서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며 자신의 소유를 다른 이웃과 나눈다고 해서 불편한 것이 아닙니다. 이웃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나누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지요.
그러므로 2천층에 들어간 분들이 비록 자신이 원하는 것을 하나만 가졌다 해서 이로 인해 안타까워하고 다른 사람의 것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이 땅에서 행한 것에 비해 아버지께서 너무나 큰 상급으로 갚아 주신 것에 대해 항상 감격하고 감사하며 변함없는 기쁨과 즐거움 속에 만족하게 사는 것이지요.
다만 이들에게 한 가지 안타까움이 남아 있다면 이 땅에 있을 때 더 열심히 노력해서 온전히 성결되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러 가심으로 하나님 앞에 서게 될 때에 자신들이 악을 다 버리지 못한 것에 대해 얼굴을 들지 못할 만큼 부끄럽고 아버지 하나님 앞에 죄송하며 민망하기 때문이지요. 또한 3천층이나 새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들을 볼 때에도 그들의 처소의 웅장함과 영화로운 상급에 대한 부러움보다는 자신이 온전히 마음에 할례하지 못한 데 대해 아버지 앞에 죄송한 마음인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셔서 분명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십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마음에 할례하고 열심히 충성한 대로 천국의 처소와 상급을 주시지요. 그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살았던 만큼 천국에서는 상대적으로 자신이 원하는 만큼 주어집니다. 100% 온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다면 천국에서도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100% 그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지요.
그러나 2천층에까지 들어간 영혼들은 이 땅에서 그렇게 살지 못했기 때문에 각자가 이 땅에서 행한 만큼만 천국에서 원하는 대로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지만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 땅에서 심고 행한 것에 비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갚아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비록 10%만 행했다 해도 10% 이상을 주기 원하시는 마음이지요. 그러니 막상 천국에 가게 되면 어느 처소에 들어가든 자신이 이 땅에서 행한 것 이상이 주어지므로 행복과 감격 속에 영원토록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2천층의 집에서 특이한 것은 각 집마다 문패가 있어서 누구의 집이라는 것이 표시되어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이 땅에서 우리 만민의 성도였던 분은 그 집 문패 위에 만민이라는 글씨가 함께 새겨져 있어서 누가 보아도 만민의 성도였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지요.
그러면 2천층의 집들에는 이처럼 문패가 있는데 3천층과 새예루살렘의 집들은 어떠할까요? 3천층과 새예루살렘의 집들에는 문패가 없습니다. 2천층의 집에 문패가 있는 것은 그 곳이 누구의 집인지 구분시켜 주기 위함인데 3천층과 새예루살렘의 집들은 문패가 없어도 그 집이 누구의 집인지 능히 알 수가 있지요. 3천층 이상의 집에서는 그 집 자체에서 발해지는 주인의 마음의 향으로 인해 다 구별이 되기 때문입니다.
2. 3천층
3천층부터는 이 땅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고 성결되어 신부단장을 마친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앞서 말씀드린 대로 지금까지 설명 드린 2천층까지와는 격이 달라 3천층부터는 집의 크기도 훨씬 크고 각양 아름다운 보석들로 장식되어 있으며 마음에 소원하는 것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집도 황금보석들로 지어진 너무 아름다운 집이며 개인적으로 수종드는 천사까지 주어집니다. 개인 동물이나 새나 이런 것도 주어지고 아주 화려하지만 개인 소유의 구름 자가용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공동 소유의 구름 자가용이 주어지는데 낙원이나 1천층, 2천층에는 구름 자가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3천층과 새예루살렘을 비교한다면 역시 큰 차이가 나지요. 예를 들어 3천층에 있는 집은 새예루살렘에 있는 집과 비교해 볼 때 그 비율이 60:100 정도입니다. 즉 새예루살렘에 있는 집의 크기가 10만 평이라면 3천층에 있는 집의 크기는 6만 평 정도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천국에서의 집의 크기는 이 땅에서 얼마나 영혼구원에 힘썼고 하나님의 성전을 이루기 위해 힘썼느냐에 따라 결정이 되기 때문에 딱 몇 평 정도라고 정해진 것은 아닙니다. 또한 마태복음 5:5에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말씀한 대로 온유한 마음으로 많은 영혼을 품어 천국으로 인도한 사람은 천국에서 그만큼 큰 땅이 주어지게 되지요. 그러니 수만 평, 수십만 평 그 이상 되는 집들도 있는 것이고 60:100 정도라고 말씀드린 것은 다만 3천층과 새예루살렘에 있는 집의 크기의 대략적인 비율입니다.
그러나 3천층에 있는 집이 아무리 크다 해도 새예루살렘에 있는 집과 비교하면 그 차이가 많이 느껴지지요. 이는 집의 모양이나 아름다움에서뿐만 아니라 바로 집을 장식하고 있는 보석에서부터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3천층에도 많은 보석들이 있지만 새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종류의 보석이 다 있는 것은 아니고 그 특성도 좀 다르지요.
새예루살렘에는 성곽의 기초석을 이루는 열두 보석뿐만 아니라 갖가지 아름다운 보석들이 무수히 많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빛을 내는 황홀한 색상의 보석들이 있으며 그 크기를 측량할 수 없을 만큼 큰 것도 있지요. 그 이름을 다 명명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종류의 보석들이 있으되 어떤 것은 이중으로 겹쳐 빛을 내기도 하고 어떤 것은 삼중의 빛을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3천층에는 이처럼 이중 삼중의 빛을 내는 보석은 없습니다. 또한 새예루살렘에 있는 보석의 종류 가운데 단순한 기본적인 종류의 보석만 있고 같은 종류의 보석이라도 새예루살렘의 보석과는 빛깔부터가 다르지요. 그러기 때문에 3천층에 있는 집과 새예루살렘에 있는 집과는 겉으로 보기에는 큰 차이가 나는 것입니다.
또한 3천층에서는 집 자체의 향이 있어서 그 향으로 누구의 집인지 알 수 있다 했는데 그 향이란 바로 집 주인의 마음의 향이지요. 그런데 각 집은 이렇게 향이 다를 뿐만 아니라 발하고 있는 빛깔도 다릅니다. 바로 이 빛은 향과 함께 그 집 주인의 마음을 대변하기 때문에 주인에 따라 빛과 향은 강도나 농도가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3천층과 새예루살렘의 집이 다르고 같은 3천층이라 할지라도 집 주인에 따라 빛깔이 다르고 빛의 밝기가 다르며 향이 다르고 향의 농도가 달라지게 되지요.
그러면 여러분이 3천층의 집과 생활을 좀더 구체적으로 느낄 수 있도록 장차 3천층에 들어가게 될 한 영혼에 대해 잠깐만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분의 집은 매우 아름답고 광대합니다. 많은 것들로 꾸며져 있는데 정원도 있고 꽃밭을 거닐 수 있는 길도 있으며 지저귀며 노래하는 새도 있지요. 또한 천사들이 와서 악기로 연주도 해 주며 함께 아버지께 찬양도 드리게 됩니다. 또한 호수가 있고 연못도 있는데 연못 안에는 많은 물고기도 있어서 그들과 대화도 할 수 있습니다.
이 분의 집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은 물론 새예루살렘의 것과 비교하면 좀 못하지만 이 세상의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고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황홀하고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지요. 특히 이분의 집은 대문이 아치형의 진주로 장식되어 있는데 이는 이 땅에 살 때에 많은 애통함과 심히도 많은 인내 속에 눈물의 간구를 올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그리고 목자를 위해 많은 눈물의 기도와 인내 속에 열심히 충성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분은 결코 이 땅에서의 신앙생활을 힘들다 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행복하고 기쁘게 신앙생활을 하고 충성한 모습을 볼 수가 있습니다.
이분이 주님을 만나기 전에는 참 복도 없고 작은 금붙이 하나도 소유하지 못할 만큼 비천한 사람이라 여김받는 처지였지요. 그러나 본 제단으로 인도 받아 생명의 말씀을 들으면서 참진리를 깨달아감으로 말씀을 듣는 대로 순종하며 짧은 시간 안에도 성결을 향해 달려갈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이 분은 목자의 곁에 있어 목자의 향을 맡고 목자의 가르침을 받으며 맡겨진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기에 3천층 안에서도 빛나고 빛나는 자리, 영광스러운 자리에 이를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 분은 새예루살렘에 들어오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항상 남아 있지요. 새예루살렘에 들어갔더라면 사랑하는 주님과 목자와 영원히 사랑하는 성도들과 영원히 함께할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에 대한 민망함과 안타까움인 것입니다. 이 분은 이 땅에서 조금만 더 충성했더라면 능히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 있는 분인데 그런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단 한 번의 불순종으로 그만 그 기회를 놓치고 만 것이지요. 물론 악한 마음에서 나온 불순종이 아니었다 해도 단 한 번 목자의 말에 불순종한 것이 이처럼 3천층과 새예루살렘이라고 하는 엄청난 차이를 나게 했으니 이를 생각할 때마다 안타깝고 민망한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분은 지금 주어진 영광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며 감격해하고 있습니다. "나는 한 것이 아무것도 없고 나는 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고 나는 힘되어 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고 나는 목자의 기쁨되어 드린 것이 아무것도 없사온데 내가 여기에 와서 누리게 될 이 모든 영광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니 심히도 민망하며 감사를 드릴 뿐입니다." 고백하는 것이지요. 자신의 힘으로는 결코 가질 수도 없었고 취할 수도 없었던 귀한 것들을 상으로 받았으니 그저 감사만 나오는 것입니다.
3. 새예루살렘에서의 연회
여러분이 지금까지 들으신 대로 낙원부터 2천층까지 들어간 것과 3천층에 들어간 것과는 큰 차이가 있는데 이런 차이는 모두가 초대받아 새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될 때에도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가 장차 천국에 가면 때때로 아버지 하나님께서 배설하시는 큰 연회 같은 것이 열리게 됩니다. 또 우리 주님이 배설하시는 연회도 열리게 되는데 이 때는 낙원부터 3천층까지 들어간 영혼들도 초대를 받아서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이 때는 나름대로 가장 좋은 옷과 장식으로 단장을 하고 면류관도 머리에 쓰게 되지요. 그래서 각각의 옷과 장식 머리 모양 그리고 면류관을 보면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낙원에서는 면류관이 주어지지 않기 때문에 낙원에서 온 영혼은 단번에 알아볼 수가 있겠지요. 옷이나 장식, 머리 모양, 면류관에 대한 설명을 다음 시간에 자세히 하도록 하고 지금 말씀드리려는 것은 이처럼 어느 처소에서 왔는지를 금방 구분하기 위해서 새예루살렘에 들어올 때는 모두가 또 한 가지 표식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3천층에서 새예루살렘을 방문하게 되면 아버지께서 동그란 표 하나를 주시는데 이 표를 면류관의 오른쪽 귀퉁이에 붙이게 됩니다. 반면에 2천층이나 1천층, 낙원에 있는 영혼들이 새예루살렘을 방문할 때는 이 표를 왼쪽 가슴에 붙이게 하시지요. 이 때도 3천층은 2천층, 1천층 낙원과는 확연히 구분시켜 놓으신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 표 하나도 확연하게 구분시켜 놓으신 것을 보면 아버지께서 새예루살렘의 영광만은 못해도 3천층의 자녀들에게는 각별한 배려를 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까지 설명 드린 3천층까지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새예루살렘은 과연 어떠한 곳일까요? 다음 시간에는 새예루살렘에 있는 집들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을 드리면서 다른 처소들과 좀더 자세히 비교해 드리겠습니다.
결론 /
시편 90:10에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말씀하고 있는데 이는 사람이 강건해야 칠팔십이요 그것도 마치 날아가는 것과 같이 빠르게 지나간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세상의 사람들은 짧은 인생을 아쉬워하며 조금이라도 더 잘 살기 위해 애쓰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오랜 세월을 이 땅에 산다 한들 결국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 말씀한 대로 더 많은 수고와 슬픔이 있을 뿐이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있어서 이 땅의 삶은 장차 누리게 될 천국의 삶을 준비하는 시간들입니다. 나그네와 같은 이 땅의 삶을 마치고 나면 본향인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살게 되므로 요한일서 2:17에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말씀하신 것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천국에 소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이 땅의 삶에 대한 미련이나 아쉬움 그리고 세상의 것을 취하고자 하는 욕심을 갖지 않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들은 말씀이 여러분으로 하여금 이러한 천국에 대한 확실한 소망 가운데 신속히 육을 버리고 영으로 달려갈 수 있는 힘과 능력이 되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6:21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