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40)
서론 / 에덴동산과 비교할 수 없이 아름답고 행복한 천국
지난 시간에는 에덴동산과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 말씀드렸습니다. 이 땅에서도 사람들이 너무나 아름다운 곳을 보면 이곳은 지상낙원이다 또는 에덴동산 같다 말하는 것을 볼 수가 있는데 사실 에덴동산은 이 땅의 아무리 아름다운 곳이라 해도 비교할 수가 없을 만큼 아름답고 황홀한 곳이지요. 에덴의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평화로우면서도 기쁨과 즐거움으로 가득한 꿈같은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 땅에서 경작을 받으며 살고 있는 우리가 보기에 좋은 것이지 장차 우리가 천국에 가서 에덴동산을 보게 되면 그렇게 아름답고 좋은 곳으로 여겨지지는 않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지구와 에덴동산이 비교가 안 되듯이 에덴동산도 천국과는 비교가 안 되기 때문이지요. 에덴동산과 천국과는 전혀 차원이 달라서 천국에서 제일 낮은 단계인 낙원만 해도 에덴동산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훨씬 더 아름답고 행복한 곳입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천국에 대한 분명한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있을 때에 이 땅에서의 삶을 기쁨과 충만함 가운데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이 땅에서 여러분이 얼마나 아버지 하나님을 닮았고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았느냐에 따라 장차 들어가게 될 천국의 처소가 달라지는데 천국의 처소는 낮은 단계에서 더 좋은 단계로 한 단계씩 높아질 때마다 그 아름다움과 행복함의 차이가 이루 상상할 수 없지요. 따라서 이러한 천국에 대한 소망이 큰 사람일수록 이 땅에 살면서 더 열심히 신앙생활하며 하나님 앞에 충성해 나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이러한 소망을 가질 수 있도록 잠시 에덴동산에 대한 설명을 멈추고 낙원부터 시작하여 새예루살렘까지 천국에 대한 설명을 대략적으로 하겠습니다.
본론 / 천국의 처소에 따른 삶의 차이
사실 에덴동산에 대해서도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 곳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아름다운 천국에 대해 설명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따라서 천국의 아름다움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보다는 천국의 각 처소에서의 생활과 차이점 등을 구별하여 설명하고자 합니다.
올해 주의 종 교육과 여름 수련회를 통해 이미 들으신 분들도 있지만 신부단장의 완성을 목표로 금년을 마무리해야 할 시점에서 다시 한 번 천국에 대해 살펴볼 때에 천국에 대한 소망과 신부단장에 대한 사모함이 더하여 가장 아름다운 천국 새예루살렘을 침노하시기 바랍니다.
1. 낙원 : 대기 장소로서의 낙원
낙원은 장차 백보좌 대심판 이후에 구원받은 성도들이 거하는 천국의 처소 가운데서는 가장 낮은 단계의 처소입니다. 그런데 아직 대심판이 있기 전까지는 낙원의 일부가 대기 장소로 사용되고 있지요. 이 땅의 삶을 마친 구원받은 성도들이 백보좌 대심판 때까지 잠시 머무는 곳입니다. 그래서 백보좌 대심판이 있은 후에는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낙원이나 1천층, 2천층, 3천층, 그리고 새예루살렘으로 들어가서 거하게 되지만 지금은 새예루살렘에 들어간 자격을 갖춘 사람 이외에는 모두 낙원의 가장 자리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태이지요.
장차 새예루살렘에 거하게 될 사람들은 전에도 설명 드렸던 것처럼 이미 새예루살렘에 들어가 있는데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가 계신 새예루살렘 안에 또 다른 차원의 공간에 거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새예루살렘에 있는 영혼이든 낙원에 있는 영혼이든 아직은 어느 누구도 앞으로 자신이 거하게 될 처소에 미리 들어가 있는 경우는 없는 것이지요.
그러면 지금 낙원에서 대기하고 있는 성도들은 어떠한 생활을 하고 있을까요? 대기 장소라고 하니까 그냥 사람들이 옹기종기 모여 주님의 재림의 때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 곳에도 참 평안이 있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로 부족함 없이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고 있지요. 그렇다고 해서 마냥 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선지자들과 천사들을 통해 많은 것들을 보고 배우는 시간을 갖습니다. 또한 그들 중에서도 관리하는 위치에 세움을 받은 이들이 있어서 이들을 통해 질서 가운데 생활해 가고 있지요.
이처럼 낙원에 대기하고 있는 영혼들은 이 땅의 소식에 대해 늘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이 땅의 세상적인 소식들을 궁금해한다는 말이 아니라 "내가 섬기던 목자와 교회는 어떠할까? 우리 교회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지금 어느 정도나 이루었을까? 세계는 어느 정도 이루어 가고 있을까?" 이런 것들을 궁금해하고 있지요. 그래서 궁금해하는 그들에게도 이 땅의 소식이 전해지게 되는데 바로 천사들이나 선지자들을 통해서 전해집니다. 낙원에 대기하고 있는 영혼들은 이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 허락되지 않음으로 그들이 직접 와서 볼 수가 없기에 대신 이 땅에 왕래할 수 있는 천사들이나 또는 새예루살렘에 들어가 있는 선지자들을 통해서 궁금해하는 소식들을 전해 듣는 것이지요.
개척이래 본교회에서 신앙생활 하다가 먼저 소천하여 낙원에 들어가 있는 우리 만민의 성도들도 항상 본교회와 섬기던 목자의 소식을 궁금히 여기고 있는데 이들에게도 본교회의 소식이 그때그때마다 전해지고 있습니다. 더욱이 만민의 성도였다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주신 본교회의 사명인 세계 선교와 대성전 건축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항상 본 제단과 성도들을 주시하며 좋은 소식이 들릴 때마다 함께 기뻐하고 있지요. 그래서 해외 성회를 통해 아버지 하나님께 크게 영광돌린 소식들이 전해지면 낙원에 있는 우리 만민의 성도들도 함께 축제의 분위기가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낙원에 있다 해도 지금 본교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모르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천사들이 와서 개인적으로도 이 땅의 소식을 전해주는 경우가 있지요. 그러니 낙원에 대기하고 있는 모든 영혼들이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지만 우리 성도들은 전해지는 이 땅의 소식들을 들으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모여 기도하며 더욱 행복하고 충만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모두가 함께 낙원에 대기하고 있다고 해도 그 안에는 뚜렷한 질서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장차 각각 3천층, 2천층, 1천층에 들어갈 사람, 그리고 낙원에 머물 사람이 구분이 되어 그들간의 정확하게 영적인 서열이 구별되어 있는 것이지요.
고린도전서 15:41에 "해의 영광도 다르며 달의 영광도 다르며 별의 영광도 다른데 별과 별의 영광이 다르도다" 말씀하신 대로 영광이 구별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더 높은 영광의 자리에 있는 사람이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명령하며 지시하려는 의미에서 구별을 짓는 것이 아니라 마음 중심에서 우러나오는 사랑과 존경에 의하여 구별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낙원에 머물거나 1천층에 들어갈 사람은 앞으로 3천층에 들어갈 사람과 비교할 때에 그 영광과 존귀가 크게 차이가 나지요. 그래서 비록 지금은 낙원에 함께 있다 해도 이러한 차이를 느끼고 알기 때문에 자신보다 영적으로 앞선 사람에 대해서는 중심에서 존경과 사랑이 가고 저절로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맡았던 직분에 따른 서열이 아니라 과연 얼마나 성결을 이루고 얼마나 충성했는가에 따라 정확하게 서열이 정해져 질서에 따라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낙원 : 대심판 이후의 낙원
여기서 낙원은 아버지 하나님의 너무나 크신 사랑과 긍휼 가운데 마련된 천국의 처소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자녀라 하기에는 부끄럽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알았고 예수를 믿는다 했기에 차마 지옥에 보내기에는 안타까운 영혼들을 위해 마련해 주신 장소이지요.
성경에는 어떤 이들이 겨우 구원받아 이런 낙원에 가는 것인지 잘 나와 있습니다. 누가복음 23:43에 보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서 옆의 십자가에 함께 달린 한편 강도에게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오지요. 이 강도는 비록 범죄하여 사형의 형벌을 받게 되었지만 죽음의 문턱에서나마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겨우 구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믿음이 성장할 시간도 없었고 죄를 싸워 버렸다거나 하나님 앞에 어떤 상급을 쌓은 것도 없는 경우이므로 부끄러운 구원이라고 하지요.
오늘날도 수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받았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죄를 벗어버리려 하지도 않고 충성, 봉사하여 상급을 쌓아 가지도 않는다면 겨우 구원을 받는다 해도 결국 이처럼 부끄러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또한 비록 사람이 보기에는 교회에 나와서 열심히 충성하고 봉사를 한다 해도 그 마음의 죄를 벗어버리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런 사람 역시 그의 육적인 충성, 봉사에도 불구하고 구원받는다고 해도 겨우 낙원에 들어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계시록 3:1에는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라 하여 마음의 할례는 하지 않고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행위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에 대해 경계의 말씀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지식적인 믿음은 있으나 정말로 믿어지는 영적인 믿음으로부터 나오는 행함이 없으니 이런 경우는 아무리 오랜 세월 신앙생활을 했다 해도 구원받기가 힘듭니다. 그래서 임종 때 천사와 지옥사자가 둘 다 와서 서로 그 영혼을 데려가기 위해 치열한 영적 싸움을 벌이는 것을 보게 되는데 이는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 확고하지 않으니 사단이 송사하는 것입니다. 어둠의 자식이니 데려가겠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임종이 가까웠을 때에 주의 종이나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마지막까지 곁에 함께 있으면서 찬송해 주고 믿음을 심어주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간신히 구원받을 믿음을 끝까지 지켜서 천국에 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지요.
이처럼 겨우 구원받아 낙원에 들어간 영혼들은 이 땅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지옥으로 가지 않고 낙원의 안식과 축복을 누리게 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너무나 감사하며 행복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아무리 행복하고 감사하다 할지라도 낙원은 새예루살렘과 비교조차 할 수 없으며 천국의 바로 윗단계인 1천층과도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그러면 낙원은 구체적으로 어떤 곳일까요? 낙원에는 길이 잘 정비되어 있는 드넓은 잔디밭과 아름답게 꾸며진 정원들이 많이 있습니다. 각종 새들이 지저귀는 아름다운 소리가 들리고 꽃들이 만발하여 아름다운 향을 발하며 아름다운 과실들도 있어서 마음껏 먹을 수가 있지요.
그러나 낙원에 들어간 사람들은 이 땅에서 쌓은 상급이 없기 때문에 천국에서도 개인적으로 주어지는 상급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일체의 공간이나 자신만을 위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개인집도 없을 터이니 마냥 잔디밭을 거닐고 밖에만 있어야 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개인적인 집은 없지만 공동으로 거하는 공간이 있어서 여러 사람이 함께 모여 거하고 있지요. 이 땅에서의 복지관 정도라고 생각하면 되겠는데 공동생활을 한다고 해서 서로간에 불편하다거나 피해를 주는 일은 없습니다. 이 땅에서는 악이 있기 때문에 자기 유익을 구하고 상대의 입장을 고려해 주지 못하므로 여러 가지 부딪침과 마음 상하는 일이 생기지만 천국에서는 전혀 악이 없고 선만 있기 때문에 서로 서로 양보하고 상대의 유익을 먼저 구해주므로 모두 화평 가운데 행복하고 즐겁게 생활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들 사이에도 서열이 정해져 있습니다. 천사들 가운데도 질서와 서열이 정해져 있고 에덴에 거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머리급이 있는 것처럼 낙원 역시 그들 가운데 머리급이 있지요. 낙원에 들어갔다고 해도 다 똑같은 믿음이 아니라 그 안에서도 비교적 믿음이 큰 사람들이 있음으로 그들이 머리로 세워져서 관리를 맡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머리급에게는 그만큼의 우선권도 있어서 보통 사람들보다는 더 좋은 것을 우선적으로 배려 받을 수 있지요.
그래서 같은 낙원 안에 거한다 해도 그 중에 이 땅에서 더 잘 신앙생활 했던 사람에게는 공의 가운데 더 좋은 것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천국은 시기나 질투가 없기 때문에 이처럼 다른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이 주어진다 해서 그를 미워하고 마음 상하는 일은 없지요. 오히려 자신보다 앞선 사람이 더 좋은 것을 받는 것을 보면서 함께 기뻐하고 행복해합니다.
그런데 낙원에 거하는 사람들에게도 새예루살렘을 방문할 수 있는 꿈같은 기회가 주어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바로 아버지께서 어떤 큰 연회나 행사를 베푸실 때는 일정한 순서와 정해진 기간 동안 새예루살렘을 방문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때에도 순서가 있기 때문에 가장 먼저는 3천층에 있는 영혼들이 새예루살렘을 들어가고 그 다음은 2천층, 그 다음은 1천층, 마지막으로 낙원에 있는 영혼들이 순서대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이 때에 먼저 들어온 순서대로 자리를 잡기 때문에 낙원에서 온 영혼들은 자연히 가장 자리에 앉게 되지요. 이것은 영적인 서열상으로도 당연하거니와 거리상으로도 낙원이 가장 멀기 때문에 가장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거리가 멀어도 미리 출발하면 되지 않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출발하는 것도 각 처소마다 기간이 정해져 있어서 이 기간 내에만 이동하게 되어 있지요. 그러니 낙원에 거하는 사람이 아무리 빨리 가서 앞자리를 차지하여 주님을 뵙고 싶어도 순서에 따라 결국은 맨 가장 자리에 앉게 됩니다. 그래도 이들은 아름다운 새예루살렘을 구경하고 즐길 수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행복해하며 새예루살렘의 충만한 향으로 인하여서 기쁨과 감사가 넘쳐나지요. 행사를 마친 후에 다시 낙원에 돌아왔을 때에도 새예루살렘에서 보고 듣고 충만했던 것을 추억하며 행복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 것이구요.
성도 여러분, 낙원에 대한 설명을 잠깐 들으셨는데 혹여 낙원이 천국 중에서는 가장 못한 곳이라고 하니 그 아름다움과 행복함에 대해 과소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설령 낙원이 부끄러운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고 천국 중에서는 가장 못한 곳이기는 하지만 이 땅의 어떤 곳과도 비교할 수 없는 곳이며 에덴동산과 비교해도 훨씬 좋고 아름다운 곳이지요.
여러분의 이해를 돕기 위해 한 가지 비유를 들어 보면 옛날 우리나라에 전기가 없을 때에는 호롱불이라는 것을 켜고 살았습니다. 그나마 불빛이 전혀 없는 곳에 비하면 호롱불도 너무나 귀한 것이었지요. 그 불빛 아래서 어머니는 바느질도 하셨고 아이들은 책도 읽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전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호롱불이 사라지고 전깃불이 등장했지요. 호롱불만 보고 살던 사람들에게는 전깃불이 너무나 신비로웠을 것입니다.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밝기에 놀랐지요.
우리가 이 땅에 사는 것이 전혀 불이 없는 캄캄한 곳에 사는 것이라면 에덴동산은 그래도 호롱불 정도는 켜고 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불이 전혀 없던 사람들에게는 호롱불이 너무나 좋게 여겨지겠지만 호롱불도 전깃불에 비하면 밝은 것이 아니지요. 그러니 천국은 불이 전혀 없는 곳에 사는 것과 같았던 이 땅의 삶과는 비교를 할 수 없는 것이며 호롱불에 비유할 수 있는 에덴동산과도 비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또한 낙원에서부터 1천층, 2천층, 3천층 그리고 새예루살렘으로 갈수록 마치 조명이 더 화려하고 휘황찬란해지며 밝아지듯이 그 밝기와 아름다움도 훨씬 더해 가는 것이구요.
이러한 천국에 대해 여러분에게 더욱 피부에 와 닿도록 설명드리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며 여러분이 신속히 영으로 들어와서 천국에 대해 밝히 깨닫고 느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3. 1천층
1천층은 믿음의 2단계에 있는 사람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나 온전히 행하지 못한 사람들이 가는 곳이지요. 낙원에는 개인 소유라는 것이 없지만 1천층부터는 개인적인 소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 집이 있는데 단독 주택의 형태는 아니고 이 땅의 다세대 주택이나 아파트와 같은 형태의 집입니다.
집안에는 생활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을 정도로 모든 것이 잘 갖추어져 있어서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악기가 있어서 연주할 수가 있고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책도 읽을 수 있으며 편히 쉴 수 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는 것입니다. 그 곳에서 누리는 기쁨과 위안은 비록 1천층이라 해도 이 땅에서 누려보지 못한 너무나 만족스러운 곳이지요.
그러나 이 집과 그 안에 속한 것 외에는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아파트의 한 동에 정원이 있으면 정원은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아파트에 거주하는 주민의 공동 소유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1천층에서는 정원은 물론 골프장, 수영장 등의 시설이 많지만 모두가 공동시설이고 이러한 시설물들에는 관리가 필요합니다. 물론 그 곳을 이용하는 사람들이 지저분하게 사용하거나 시설물이 낡고 파손되는 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항상 가장 최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관리해 주는 손길이 필요한 것이지요. 바로 이 역할을 천사들이 해 주며 천사들은 갖가지 시설물들에 대해 안내도 해 주고 설명도 해 주어서 이런 시설들을 이용할 때 아무런 어려움이 없도록 도와줍니다.
낙원에는 이처럼 도와주는 천사들이 없지만 1천층만 해도 천사들의 수종을 받을 수 있으니 이것만으로도 낙원과는 또 다른 차원의 즐거움과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여러분 중에 그래 나는 1천층 정도면 됐어 하실 분은 없으시겠지요? 1천층 이상의 천국을 모른다면 몰라도 여러분이 더 좋은 천국이 있음을 알고 믿는다면 당연히 1천층에 만족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1천층과는 또 비교가 안 될 만큼 좋은 아름다운 2천층은 어떤 곳인지 다음 시간에 이어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소원하는 것 중의 하나가 바로 자기 소유의 집을 가지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목표를 위해 밤낮없이 일하며 한 푼, 두 푼 돈을 모아가면서 월세에서 전세로, 전세에서 다시 자기 소유의 집으로 이렇게 한 단계씩 발전해 갑니다. 그리고 나서는 더 크고 좋은 집이라고 하는 다음 단계의 목표를 향해 또 달려가지요. 이는 우리가 이 땅에서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과도 같아서 마태복음 11:12에는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세상에서도 노력한 만큼 더 좋은 결과가 주어지듯이 주 안에서도 더 열심히 신앙생활한 만큼 더 좋은 결과가 여러분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여러분의 집을 천국 어느 처소에 짓고 계십니까? 물론 모두가 새예루살렘을 목표삼아 달려가고 계신 줄로 압니다. 그러나 정말 새예루살렘에 여러분의 집을 가지기 위해서는 말로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값진 진주를 찾았다고 해도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서 그것을 샀을 때만이 자신의 소유가 되는 것처럼 여러분이 새예루살렘을 알았다 해도 그 곳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어야만이 새예루살렘이 정녕 여러분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려야 하고 죽도록 충성하며 더 나아가 온 집에 충성하는 사람, 이런 사람에게만이 새예루살렘의 영광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시간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자녀의 모습이 내 안에 얼마나 이루어졌나 스스로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새롭게 다짐하고 또 다짐하는 여러분들이 되어 새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에 있어서 하나의 큰 산을 뛰어넘는 복된 도약의 시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6:21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