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37)
서론 /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만약 누군가가 "우리나라의 대통령께서 사시는 곳이 어디입니까?" 하고 묻는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청와대입니다." 하고 대답하시겠지요. 그렇지만 막상 청와대에 가보면 그 안에는 여러 개의 구별된 장소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일반인들에게 공개도 되고 대통령이 국민들을 초대해서 만나는 장소가 있고 국무위원들을 비롯해 주요 머리급 인사들을 만나는 장소가 있으며 아주 긴밀한 대화를 위한 장소도 있지요.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휴식을 취하는 장소나 가족들과 단란한 시간을 가지는 장소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곳은 출입이 허락된 사람들 이외에는 아무나 마음대로 들어갈 수 없는 곳도 있지요. 국무위원이라고 해도 대통령이 휴식을 취하는 곳에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비밀한 대화를 나누는 장소에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이 들어가게 됩니다. 일반 국민들에게라면 더더욱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겠구요.
이처럼 한 나라의 대통령이 거하는 곳도 이러할진대 하물며 온 우주와 만물의 주관자이신 아버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은 어떻겠습니까? 모든 것이 더욱 정확하게 구분되어 있고 분명한 질서 속에 운행이 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본론 /
1. 차원이 다른 공간
아버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은 천국 중에서도 새예루살렘입니다. 예를 들어 서울이라 해도 변두리가 있고 시내 중심부가 있는 것처럼 천국도 다 같은 것이 아니라 공의에 따라 이 땅에서 행한 대로 각 사람들이 들어갈 처소가 구분되어 있는 것이지요. 그 중에서 새예루살렘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이며 이 곳에는 아버지 하나님을 가장 닮은 참자녀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계시록 21:11에는 새예루살렘 성에 대해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같이 맑더라" 말씀하고 있지요. 계시록 21:23에는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데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새예루살렘을 비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시간에 잠깐 설명을 드린 대로 새예루살렘 안이라 해도 다 똑같은 것이 아니라 그 안에는 또 다른 구분된 공간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차원에 따라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를 구분하듯이 영의 세계인 새예루살렘 안에서도 차원에 따라 여러 개의 공간이 존재하는 것이지요.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앞서 말씀드린 청와대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예를 들면, 새예루살렘 안에는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들어가실 수 있는 공간이 구분되어 있고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가 있어서 평소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거하고 계시는 공간도 있으며 또한 새예루살렘에 들어온 모든 자녀들과 함께해 주시는 공간도 있습니다. 그래서 예배나 연회 등 자녀들을 만나시는 시간에 잠깐 자녀들이 거하는 새예루살렘으로 내려오시는 것이지요. 마치 대통령이 집무실에 계시다가 회의나 만찬을 위해서 집무실에서 나오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새예루살렘에 들어간 사람이라 해도 아버지 하나님을 아무 때나 뵐 수 있는 것이 아니지요. 물론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녀들이 거하는 곳으로 내려오신다 해도 밝은 빛 때문에 하나님의 모습을 똑바로 뵐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자녀들이 있는 곳으로 나오시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평소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과 일반 새예루살렘의 백성들이 거하는 곳과는 차원이 다르므로 새예루살렘에 거하는 보통 백성들은 아버지 하나님을 뵈옵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다만 새예루살렘에 들어온 사람들 중에서도 평소에 아버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곳에 들어갈 수 있는 분들이 있는데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사도 바울 선지자, 막달라 마리아 정도이지요. 물론 앞으로는 이분들 이외에도 그만한 자격을 갖춘 사람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현재까지는 이분들 이외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가 계신 곳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장들 중에서도 극히 제한된 몇 천사장만이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이구요.
그런데 지난 시간에 이미 새예루살렘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고 이 세상을 떠난 사람들은 지금 낙원의 대기장소에서 대기하는 것이 아니라 미리 새예루살렘에 들어가 있다고 했지요. 그러나 이들이 지금은 자신들이 장차 거하게 될 집에 들어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새예루살렘 안에 다른 차원의 공간이 있다고 했습니다. 지금은 영혼만 가 있기 때문에 거할 집이 필요 없음으로 아버지께서 계시는 영의 차원에 함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 공중 재림하심으로 신령한 몸을 입게 되면 비로소 거할 집이 필요하게 되므로 백보좌 대심판 후에 자신들의 집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처럼 백보좌 대심판이 있기 전까지는 영광스럽게도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가 계신 공간에 잠시 함께 거하고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아무나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을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아버지께서 계신 곳은 철저히 빛으로 둘러있어서 가까이 다가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현재는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하여 다섯 분의 선지자 정도만이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가까이에 다가갈 수 있습니다. 더욱이 앞으로 백보좌 대심판 후에 새예루살렘의 각자의 집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때는 새예루살렘에 있는 백성이라 해도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공간에 들어가는 것조차 쉬운 일이 아니지요.
이와 같이 새예루살렘에서도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신 곳과 일반 백성들이 사는 곳과는 차원이 구분되어지며 허락된 몇몇 분들 외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곳에 들어가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들어가실 수 있는 특별한 차원의 공간도 있는 것이구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새예루살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만큼 영화롭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그 곳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성결되고 온 집에 충성하여 그만큼 아버지 하나님을 닮아야 하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사람이 아무리 아버지 하나님을 닮는다 해도 결코 아버지 하나님과 똑같아질 수는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창조주이신 신이시며 사람은 결코 피조물로서 근본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므로 신이신 아버지 하나님과 피조물로서 경작을 통해 나와진 자녀들이 비록 새예루살렘에서 함께 한다고는 해도 그 안에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아버지 하나님 편에서는 아무리 가까이 하고 싶으셔도 자녀들 편에서는 더 이상 가까이 가지 못하는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지요. 아버지 하나님의 빛과는 너무나 차이가 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새예루살렘 안이라 해도 이처럼 차원이 다른 공간을 구분해 놓으실 수밖에 없으신 것입니다. 빛 자체이신 삼위일체 하나님만이 서로 만나시고 대화하실 수 있는 온전한 빛의 공간이 있고 그래도 새예루살렘에 들어온 자녀들 중에서 아버지 하나님을 더 많이 닮아서 아버지 하나님 가까이 갈 수 있는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으며 일반 새예루살렘의 백성들이 거하는 공간도 있는 것이지요.
이제 여러분은 이러한 사실을 아셨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또 한가지 목표가 생긴 것입니다. 전에는 그냥 새예루살렘만 들어가면 되겠지 했는데 이제는 새예루살렘 안에서도 또 침노해 들어가야 할 더 좋은 처소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지요. 또한 어떤 분들이 그 곳에 들어갈 자격을 갖추었는지 말씀드렸으니 여러분들도 그분들 못지않는 모습만 된다면 능히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가 계신 곳에 들어갈 수가 있지 않겠습니까?
물론 그만한 자격을 갖추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저는 엘리야, 에녹, 아브라함, 모세, 사도 바울 그리고 막달라 마리아에 대해 수없이 증거해 드렸습니다. 그분들이 어떤 분들이고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들의 어떤 모습을 기뻐하셨는지 말씀드렸지요. 돌아오는 주일부터는 막달라 마리아의 선에 대해 그리고 엘리야를 비롯한 다른 선지자들에 대해서도 설명이 나가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시면서 여러분도 정녕 그런 분들과 같이 변화되어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에 나아갈 수 있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시간의 흐름에 대하여
차원에 대해 이해하기는 쉽지 않은데 예를 들어 우리가 사는 지구와 에덴동산이 있는 둘째 하늘과는 비슷한 점이 많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분명 서로 다른 차원의 공간에 존재하고 있지요. 그리고 두 공간 사이의 가장 큰 차이점 중의 하나가 바로 시간의 흐름의 차이입니다.
그렇다면 시간의 흐름의 차이란 어떤 것일까요? 전에도 잠깐 예로 든 적이 있는데 개미 한 마리가 전 속력으로 달려가고 있다면 개미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지금 매우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보시기에 빠르다는 생각이 들겠습니까? 개미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사람이 볼 때는 결코 빠른 것이 아니지요. 영의 세계의 속도와 육의 세계의 속도를 간단히 비교해 볼 때 이와 비슷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육의 세계에서 볼 때는 매우 빠른 것 같은데 영의 세계에서 볼 때는 하나도 빠른 것이 아니지요.
또 다른 예를 한 가지 들어보면, 두 개의 수영장이 있는데 한 곳에는 물을 허리 정도 채워 놓았고 다른 한 곳에는 끈적끈적한 진흙을 허리 정도 채워 놓았다고 합시다. 그리고 두 사람에게 각각의 수영장에 들어가서 최대한 빨리 걸어가도록 했다면 누가 빨리 걸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이 만약 진흙 속을 걷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한 걸음 뛰기조차도 여간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반면에 물 속을 걷는 것은 그래도 진흙 속을 걷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수월하겠지요. 그러니 두 사람 중에 당연히 물 속을 걷는 사람이 진흙 속을 걷는 사람보다는 훨씬 빠를 것입니다.
바로 이런 원리가 육의 세계와 영의 세계 사이에 적용된다는 사실입니다. 육의 세계에 사는 사람은 마치 태어나서 지금까지 진흙 속에서만 생활해 본 것과 같습니다. 항상 진흙 안에서만 생활했을 뿐만 아니라 진흙 말고는 물 속을 걸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진흙 안에서 움직이는 것이 지극히 정상적인 속도라고 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물 속을 걷고 있는 사람이 진흙 속을 걷고 있는 사람을 볼 때에는 어떻겠습니까? 진흙 속을 아무리 빠른 속도로 걷는다 해도 매우 느리게 보일 것입니다. 또한 반대로 지금까지 진흙 속만 걸었던 사람이 물 속을 걷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면 저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빠른가 하겠지요.
영의 세계와 육의 세계의 시간의 흐름의 차이가 바로 이와 마찬가지라는 사실입니다. 영의 세계에서의 시간의 흐름이 마치 물이 흐르는 것과 같다면 육의 세계에서의 시간의 흐름은 마치 진흙이 흐르는 것과 같습니다. 물론 실제로는 더 큰 차이가 나겠지만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들면 그렇다는 말이지요. 그러니 영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볼 때에는 육의 세계의 시간의 흐름 속에 사는 사람들이 아무리 빨리 움직인다 해도 느리게 보이는 것이며 반대로 육의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 볼 때에는 영의 세계의 시간의 흐름 속에 사는 사람들이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것으로 보이게 되지요.
그래서 전에 UFO에 대해 설명하면서 UFO의 속도가 에덴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결코 빠른 것이 아니라 정상적인 속도인데도 육의 사람이 볼 때에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빠르게 움직이는 것이라 말씀드렸던 것입니다.
이처럼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사이에는 엄청난 시간의 흐름의 차이가 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 두 하늘이 직접 맞닿지 않도록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사이에 완충지대를 두셨는데 이 곳이 바로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 공간이라 했지요.
우리 눈에 보이는 이 하늘에는 영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 여러 곳에 있는데 그 중에는 둘째 하늘로 통하는 문도 있어서 이 문을 통해 시간의 흐름이 정지된 공간을 지나야 둘째 하늘로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에덴에 사는 사람들이 UFO를 타고 이 땅에 내려올 때도 영계의 문을 통해 이 공간을 지나서 오게 되는 것이구요. 그러나 이 공간을 통과할 때에는 말 그대로 시간의 흐름이 정지되어 있기 때문에 순간에 이동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영의 세계로 통하는 문들은 보통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성경을 보면 이러한 영의 세계로 통하는 문이 있음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 7:56에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하였고, 계시록 4:1 전반절에도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열린 문이 있는데" 하여 하늘에 문이 있음을 말씀하고 있지요. 여러분들은 비록 영안이 열리지 않았다 해도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믿을 수가 있을 텐데 바로 순간에 구름의 나타나고 사라지는 것을 보면서 저곳에 둘째 하늘로 통하는 영계의 문이 있구나 하는 것을 아시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 사이에 이처럼 보통 사람의 눈으로는 보이지 않는 영계의 문만을 두신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통로도 만들어 두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블랙홀이지요. 오늘날 많은 과학자들이 이 블랙홀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는데 이 블랙홀이 사실은 첫째 하늘과 영의 세계인 둘째 하늘 사이를 연결하는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블랙홀을 관찰해 보면 그 주변에 가까이 다가가는 것은 무엇이든지 삼켜버리는 것을 볼 수가 있지요. 태양의 몇 배나 되는 아무리 큰 별도 블랙홀의 영향권에 들어가게 되면 빛의 속도보다 더 빠르게 블랙홀 안으로 빨려 들어가고 맙니다. 그런데 세상의 과학자들은 이렇게 삼켜진 별들이 완전히 분해되어 버린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분해되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블랙홀이라는 통로를 통해 영의 세계인 둘째 하늘로 옮겨지는 것뿐이지요. 더욱이 블랙홀을 통과한다고 해서 그 형태나 모양이 변형되는 것이 아니라 첫째 하늘에 있던 그 모습 그대로 둘째 하늘에 존재하게 되지요.
이처럼 영의 세계에 대해 알고 인정하게 되면 블랙홀의 정체도 간단히 밝혀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블랙홀이 물체를 빨아들이는 엄청난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앞서 말씀드린 대로 첫째 하늘과 둘째 하늘사이에는 시간의 흐름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이 차이가 바로 블랙홀의 엄청난 힘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지요. 이 현상을 여러분이 이해하기 쉽도록 한 가지 비유를 들어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차 안에 연기가 가득 차 있을 때 창문을 약간만 열고 차가 달리기 시작하면 차 안에 있던 연기가 자연스럽게 창을 통해 창 밖으로 빨려 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부러 연기를 불어넣은 것도 아니고 환풍기를 돌린 것도 아니지만 차 안의 공기의 흐름과 차 밖의 공기의 흐름의 차이에 의해서 열린 창에 의해서 연기가 빨려 나가는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첫째 하늘에서의 시간의 흐름과 둘째 하늘에서의 시간의 흐름의 사이에 차이가 있으므로 두 공간을 연결해 주는 블랙홀에는 자연스럽게 빨아들이는 힘이 생긴다는 말입니다. 더욱이 블랙홀의 모양이 입구 쪽은 넓고, 들어갈수록 통로가 좁아지는 나팔관 모양이어서 빨아들이는 힘을 더하게 되지요. 예를 들어, 바다에 소용돌이가 생겼을 때에 그 모양을 옆에서 보면 마치 나팔이나 깔때기와 같아서 점점 소용돌이의 중심부로 갈수록 폭이 좁아지는 대신 물살의 속도는 더 빨라지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블랙홀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눈에 보이는 첫째 하늘만 해도 아직까지 밝히지 못한 수많은 비밀들이 있습니다. 하물며 둘째 하늘은 어떻겠고, 세 번째 하늘은 어떻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눈에 보이는 첫 번째 하늘만 보아도 복잡하면서 매우 정교한 질서와 조화 속에 모든 것이 운행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지요. 본래의 궤도를 이탈한다거나 자기 멋대로 움직이는 별은 없습니다. 일정한 궤도와 주기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에 예를 들어 수백 년마다 지구 근처로 다가오는 혜성들에 대해서도 계산에 의해 정확한 시기를 예측할 수가 있는 것이지요.
바로 육의 우주는 처음 하나로 존재하던 우주로부터 분리되어 나오는 순간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이러한 질서와 법칙을 부여받았고 그로 인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는 것입니다.
3. 기(氣)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시면서 바로 이러한 우주와 사람 사이에 연관성을 두셨습니다. 우주가 서로간에 긴밀한 관계 속에 영향을 주며 순환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 사람의 인체도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지요. 또한 지구를 중심으로 하여 태양과 달과 수많은 별들을 두심으로 지구에 생명체가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알맞은 환경을 조성해 주신 것처럼 사람의 인체에도 중심이 되는 부분이 있어서 이곳을 중심으로 몸의 각 부분이 상호작용을 하며 생명 활동을 유지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주 안에는 아버지의 하나님의 근본된 기운이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원래 태초에 하나로 존재하던 우주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기운이 가득 차 있었는데 바로 여기서 분리되어 나온 육의 우주 안에도 당연히 근본 아버지 하나님의 기운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또한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으로 둘러 주신 이 지구에도 아버지 하나님의 기운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기운을 사람이 이용할 수만 있다면 몸에 큰 유익을 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한계 이상의 능력이 나타날 수 있지요. 그 길과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문제인데 바로 세상에서 흔히들 기(氣)라고 말하는 것이 결국은 지구와 우주에 깃들어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근본된 기운을 이용해 보려는 시도입니다. 물론 그것을 하는 사람들은 기(氣)가 어디로부터 비롯되었는지도 몰라도 그 힘이 너무나 무한하다는 것은 알기 때문에 그처럼 기(氣)를 운용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연구하고 또 연구하는 것이지요.
하나님께서 생기(生氣)를 불어넣어 만드신 사람 안에도 하나님의 근본된 기운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우주에 흐르고 있는 기(氣)와 지구에 흐르고 있는 기(氣), 그리고 사람의 몸 안에 흐르고 있는 기(氣)가 만나서 하나로 조화를 이루는 점만 찾을 수만 있다면 그 힘은 상상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근본된 기운을 이용해 보려는 세상 사람들도 있는 것입니다. 다음 시간에 이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
계시록 22:13에 "나는 알파요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말씀한 대로 하나님은 모든 것의 시작이며 근본이 되십니다. 모든 지식과 지혜의 근본도 하나님이시지요. 그래서 잠언 1:7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 했고, 잠언 9:10에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의 지식이나 지혜로 풀 수 없는 것도 지식과 지혜의 근본되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풀어 주시면 쉽게 풀릴 수가 있는 것이지요.
그러기 때문에 차원에 대한 설명이나 시간의 흐름의 차이에 대한 설명, 그리고 우주와 지구와 사람의 인체에 흐르는 아버지 하나님의 근본된 기운에 대한 설명도 여러분에게 드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 편에서 아무리 쉽게 설명해 주셔도 육의 한계를 가진 사람 편에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요. 하지만 깨닫는 만큼 여러분들에게 능력이 되고 힘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더 많은 영적인 체험도 할 수가 있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일들도 할 수가 있지요. 또 영의 세계에 대해서도 더 밝히 이해할 수가 있구요.
지구 위의 만물을 포함하여 둘째 하늘의 모든 것까지도 지배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세를 가졌던 첫사람 아담은 당연히 모든 것을 알고 능력 삼지 않았겠습니까? 그러므로 첫사람 아담이 잃었던 아버지 하나님의 형상을 되찾아 가는 여러분 역시 이러한 영의 무한한 비밀들을 깨달아 능력 삼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신속히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마음껏 누려나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07-12-27 오후 1:26:21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