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34)
서론 /
하나님께서는 천지 만물을 창조하실 때 하나하나에 의미를 담아 만드셨습니다. 무엇 하나 의미 없이 만들어진 것은 없지요. 예를 들어 자동차를 구성하는 수많은 부품들 중에 어느 하나라도 없으면 자동차가 온전할 수 없는 것처럼, 천지만물도 서로가 조화를 이루며 온전함을 이룰 수 있도록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모든 만물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손길이 닿은 증거들이 남아 있지요. 로마서 1:20에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말씀한 대로입니다.
또한 만물에는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담겨 있습니다. 꽃잎 한 장에도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담겨 있고, 작은 새 소리에도, 작은 바위 하나에도 아버지의 마음과 뜻이 담겨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우리는 꽃들을 보면서 조금이나마 아름다운 천국을 떠올려 볼 수가 있는 것이고, 새 소리를 들으면서 천국에서 울리는 아름다운 소리들을 상상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천국을 모형 삼아 이 땅에 모든 만물을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들을 영으로 바라볼 때에 우리의 본향인 천국을 느낄 수 있고,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과 섬세하신 사랑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바로 이러한 마음과 사랑을 담아 만드신 만물을 보시면서 스스로 기뻐하셨고, 감동을 받으셨지요. 또한 이를 보면서 천군과 천사들도 찬양하며 아버지 하나님의 성호를 송축하고 영광을 노래했습니다. 아름다운 노래와 연주가 울려 퍼지고 아버지 하나님의 기뻐 웃으시는 웃음소리가 온 하늘과 온 땅을 진동시켰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의 사역을 마치시고 나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실 때의 모습입니다.
본론 /
1. 일곱째 날에 안식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창조의 사역을 마치신 후 곧바로 영의 세계로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일곱째 날을 이 땅에서 안식하셨는데 이처럼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영광돌리는 소리가 온 땅 가득히 울려 퍼지는 가운데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안식하셨던 것입니다.
계시록 4:11에도 장차 천국에서 이십사 장로들이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며 만물을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께 경배하는 장면이 나오지요. 이처럼 천국에서는 모든 만물을 지으시고 통치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소리가 태초에 모든 만물이 만들어지던 그 때부터 지금까지, 또한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됩니다.
이렇게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모두가 기쁘고 즐겁고 행복한 날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러니 아버지 하나님께서도 이날을 기뻐하시며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날을 기억하여 지키는 사람들에게도 복을 주시고 그들로 인해 즐거워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사람들도 어떤 일을 마쳤을 때 그 과정은 물론이고 결과까지 좋게 얻어지면 그로 인해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거기에 대한 위로와 보상이 주어지기도 하구요. 이처럼 신성과 함께 인성을 가지신 아버지께서도 참자녀를 얻으시려는 인간 경작을 위한 모든 준비가 아름답게 마쳐지는 것을 보시면서 기뻐하고 즐거워하셨습니다. 안식하시며 마음껏 찬양과 영광을 받으셨지요.
이는 우리가 장차 천국에 이르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때는 모든 목적하신 바를 다 이룬 후이므로 아버지 하나님의 감격과 기쁨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와는 또 다르시지요. 천지의 만물을 다 이루심으로 인간경작을 위한 준비가 마쳐졌을 때도 그처럼 기뻐하시고 즐거워하셨는데 하물며 참자녀를 얻어 그들을 마주 대하실 때에야 얼마나 더 기쁘고 즐거우시겠습니까? 또한 그 때는 우리들에게도 비로소 참된 안식이 주어집니다. 이 땅에서도 행한 대로 보상과 위로가 주어지게 되지요.
이처럼 장차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과 누리게 될 감격과 기쁨과 감사와 참된 안식의 의미가 아버지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며 안식하신 안식일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안식일이 단지 아버지 하나님께서 모든 창조의 사역을 마치시고 하루 쉬셨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아버지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키라 하신 안식일을 어떠한 마음으로 지켜야 하겠습니까? 주 안에서 참된 평안과 안식을 누리는 날로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기쁨과 감사를 나누는 날로서 거룩히 지켜야 하지요. 그런데 거룩히 지켜야 한다고 해서 겉모습만 경건한 척 지키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께서 흠향해 받으실 만한 마음 중심의 향을 올려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우리 영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의 영적인 주권을 인정해 드리는 믿음의 행함으로써 하나님의 자녀라면 당연히 지켜야 하는 것이지요.
2.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뀐 이유
하나님께서 안식하신 날은 오늘날로 보면 토요일이었습니다. 달력을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일요일이 첫째 날이고 토요일이 한 주의 마지막인 일곱째 날이지요.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고 지금도 예수님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는 유대교에서는 여전히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약에 와서는 왜 안식일이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뀌게 되었을까요? 마태복음 12:8에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즉,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그런데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님께서는 금요일에 십자가상에서 운명하시고 장사되어 음부에 계시다가 일요일 새벽 미명에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하셨지요. 이 부활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는 영원한 생명과 참된 안식이 주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에게 생명과 안식을 주게 된 일요일이 안식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우리의 죄가 대속되고 믿음으로 구원받은 역사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놀라운 역사가 바로 일요일에 일어났으므로 이날이 곧 안식일이 된 것이고, 우리는 이날을 안식일의 주인이신 주님의 날 즉, 주일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지키는 안식일에는 천지 만물을 지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며 기쁨과 행복과 안식을 누린다는 의미와 함께 우리를 구원하여 참생명과 안식을 주게 된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감사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이러한 의미를 깨닫는다면 안식일인 주일을 주 안에서 얼마나 기쁘고 행복하며 거룩하게 지켜야 하겠는지요?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토요일이었던 안식일이 일요일 즉 주일로 바뀌게 될 것을 이미 말씀해 놓고 계십니다. 레위기 23:10-12에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라 너희는 내가 너희에게 주는 땅에 들어가서 너희의 곡물을 거둘 때에 위선 너희의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제사장은 너희를 위하여 그 단을 여호와 앞에 열납되도록 흔들되 안식일 이튿날에 흔들 것이며 너희가 그 단을 흔드는 날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번제로 여호와께 드리고" 했지요.
여기서 안식일 이튿날에는 바로 그들이 안식일로 지키던 토요일의 다음 날인 일요일을 말합니다. 또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이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지요. 이처럼 일 년 되고 흠 없는 수양을 안식일 이튿날에 여호와께 드리라 했으니 이 예언대로 주님께서는 일요일에 부활하셨고, 이 날이 진정한 기쁨과 감사로써 아버지 하나님 앞에 드려지는 안식일이 되었던 것입니다. 여러분이 바로 이 안식일을 온전히 지킬 때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케 하셨다 말씀한 대로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는 것이지요.
3. 천지의 창조된 대략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일을 마치시고 안식하신 일곱째 날에 대해서 설명드렸는데, 본문 4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때에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 하여 다시 한번 천지 창조에 대한 부연 설명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미 1장을 통하여 구체적인 창조의 사역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기 때문에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기 전에 지구가 어떤 모습이었는지 잠깐 설명해 주신 후 사람을 창조하신 내용이 설명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에덴동산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설명과 아담과 하와가 그곳에서 어떻게 살았으며 인류에게 죄는 어떻게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계속 설명하고 있지요.
천지 만물이 결국은 인간 경작을 위해 창조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2장과 3장을 통해 가장 중요한 인간의 창조와 인간 경작이 시작되는 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고 계신 것입니다.
1) 지구의 초기 상태
하나님께서는 5-6절 말씀을 통해 지구의 초기 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설명하십니다.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라 이미 말씀해 주셨으므로 사람이 창조되기 전의 지구의 모습을 압축하여 아주 간단히 설명해 주고 계시지요.
하나님께서 땅에 비를 내리지 아니하셨다 했고, 들에는 초목이 없었으며 밭에는 채소가 나지 아니 하였다 했습니다. 이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직 지구에 식물과 동물들을 만드시기 전이고, 해와 달과 별들이 만들어짐으로 시작되는 징조 역시 아직 지구에 나타나기 이전의 상태이지요.
그리고 땅에서 안개가 올라와 온 지면을 적셨다는 것은 땅과 대기가 서로 상호 작용을 하며 살아 숨쉬고 있는 상태를 나타내 주는 것입니다. 지구에 하나님께서 덮어 주신 생명수로 인해 땅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깃들여 있었고, 따라서 땅이 죽은 상태가 아니라, 살아 있는 땅이 되었던 것이지요.
많은 사람들이 땅이 살아 있다고 말합니다. 분명히 작은 씨앗을 하나 심었을 뿐인데, 땅은 씨앗으로부터 커다란 나무를 내기도 하고, 또 처음 심은 씨앗의 수백, 수천 배 그 이상의 열매를 거두게 해 주지요. 이는 땅이 살아 있어 생명 작용을 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흙이 정말 살아 있어 호흡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거기에 생명이 있는 것도 아닌데 분명 흙은 만물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생명이 나고 자라게 하는 작용을 하지요. 바로 하나님께서 처음 지구를 지으시면서 땅에 이러한 능력을 불어 넣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땅 위에서 식물과 동물 그리고 우리 사람이 살아가며 상호 작용을 하도록 만드셨지요.
예를 들어, 우리 사람도 흙이 전혀 없는 곳에서 계속하여 살게 되면 몸에 이상이 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으로 육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사람은 상관이 없겠지만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만약 흙과 전혀 접촉하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보내게 되면 몸의 순환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가 있지요.
살아 있는 땅을 밟고 호흡할 때 땅에 깃들여 있는 생명력이 우리 사람에게도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바로 생명을 움틀 수 있게 하는 그런 기운이 땅에 있다는 걸 알 수가 있는 것이지요. 예를 들어 상처받아 움직이지 못하는 개구리를 흙 속에 묻어 두면 흙의 기운을 받아 살아나 뛰어 달아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로 짐승들은 흙의 기운을 이용하여 상처를 치료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땅이 비록 무차원이지만 거기에 깃들인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마치 살아 있는 것과 같이 만드셨던 것이고, 이는 대기 역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대기도 죽은 것처럼 정체되어 있지 않고 살아 있는 것처럼 항상 순환하고 있지요. 이 순환이 멈춰지게 되면 지구 위에 있는 생물들이 살아갈 수가 없는 것이구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지구를 처음 만드실 때 가장 기초라 할 수 있는 땅과 대기가 살아 있어 서로 긴밀하게 상호 작용을 이루도록 만드셨습니다. 예를 들어, 집을 지을 때도 기초 공사가 중요하듯이 만물의 터전이 될 지구에 있어서 기초 공사는 바로 땅과 대기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땅과 대기 안에 온갖 종류의 식물과 동물들이 창조되고 마지막으로 인간이 창조되지요.
2) 흙으로 창조된 사람
7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신 데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흙에는 장차 인간이 이 땅에서 받게 될 경작의 의미가 담겨 있으며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다스려 나갈 모든 권세에 대한 의미도 담겨 있지요.
창세기 3:23을 보면 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담을 에덴으로부터 "내어 보내어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니라" 말씀했는데, 바로 그의 근본된 토지를 간다는 것은 영적으로 근본 흙으로 지음받은 인간이 이 땅에서 경작받게 될 것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은 근본 흙으로 지음받았기 때문에 사람의 속성이 흙의 속성을 닮은 것을 봅니다. 원래 흙에다가 어떤 것을 첨가하느냐에 따라 흙의 성질이 전혀 달라지듯이 사람도 어떤 것을 입력해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근본된 마음이 전혀 달라지는 것을 봅니다.
또한 흙도 죽어 썩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렇게 되면 전혀 생명 활동을 못하게 되지요. 아무리 씨를 심어도 싹을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이 죽은 사람 즉, 영은 곧 생명이므로 영이 죽어 생활 활동을 전혀 못하는 사람은 벧전 1:23에 썩지 아니할 씨에 비유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아무리 심어도 싹을 낼 수가 없지요. 영이 죽어 있으면 생명인 하나님의 말씀이 그 안에서 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은 것 같았던 땅도 거기에 새로운 흙을 부어서 섞어 주고 열심히 거름을 주게 되면 다시 살아나 생명 활동을 하게 됩니다. 땅도 변함이 없이 항상 옥토의 땅을 만들려고 하면 6년 경작하고 7년째는 쉬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지 않고 오래 경작하게 되면 그 땅은 옥토가 아닌 땅으로 변하게 되므로 새 땅, 새로운 흙을 가져와 섞어서 쓰는 것을 보게 되지요. 그래서 사람의 죽었던 영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받고 살아나면 이제는 날마다 성령으로 영을 낳으며 생명으로 충만해져 가는 것이지요.
이밖에도 아무리 넓은 땅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갈고 씨를 심어 일구지 않으면 소용 없듯이, 사람도 얼마나 마음을 영으로 일구었느냐 즉, 마음밭을 얼마나 옥토로 만드느냐에 따라 열매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또 똑같이 심었다 해도 옥토로 변화시킨 만큼 더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있는 것이구요.
이와 같이 흙의 속성과 이 땅에서 경작받는 우리 사람의 속성을 비교해 보면 많은 닮은 점을 발견할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바로 하나님께서 사람을 흙으로 만드셨기 때문이며 하나님 편에서도 경작의 섭리 속에 사람을 흙으로 만드실 수밖에 없으셨던 것이지요. 또한 흙에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정복하고 다스릴 권세에 대한 의미도 담겨 있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첫 사람 아담에게 땅을 정복하라 말씀하셨는데 여기서 땅이란 땅뿐만 아니라, 땅으로부터 비롯된 모든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영적으로 땅은 원수 마귀 사단의 세력을 의미하지요.
그러므로 땅을 정복하라는 말씀은 땅에 속한 육의 모든 것과 원수 마귀 사단까지도 정복하라는 말씀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는 땅으로부터 흙을 취하여 아담을 만드심으로 근본 땅의 흙으로부터 비롯된 아담이 주체가 되어 땅의 모든 것과 영계의 어두움의 세력들까지도 능히 지배하고 다스려나갈 권세를 가지게 됨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데에도 깊은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과연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빚으시던 광경은 어떠했을까요?
여러분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셨다는 의미를 잘 이해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흙으로 사람의 모양을 만든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겉모습이야 어떻게 만든다 해도 몸 안에 있는 부분들은 만들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가느다란 실핏줄들을 비롯한 혈관과 힘줄, 신경 등 세세한 부분들과 눈썹 머리카락과 같은 것들은 흙으로 만든다는 것이 불가능하지요.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세세한 부분들을 어떻게 흙으로 빚어 만드셨을까요?
물론 하나님의 능력으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까라고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흙으로 빚으셨다고 해서 그것이 흙의 색깔과 모양을 가진 사람의 모습으로 지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흙으로 각 부분을 만드시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해, 그 즉시로 지금 우리가 입고 있는 이러한 몸으로 변화되었지요.
그래서 흙으로 빚어 놓은 아담에게 하나님께서 아직 생기를 불어넣기 전에도 아담은 이미 온전한 모습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흙 색깔을 띠는 흙으로 된 사람의 형상이 아니라, 아름다운 색깔의 피부를 가진 완벽한 사람의 형상을 가지고 있었지요. 그러나 아직 피가 돈다거나 세포의 작용과 심장의 박동과 생명 활동은 시작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는 껍데기라 할 수 있는 몸은 만들어졌지만 정작 중요한 내용물이라 할 수 있는 영이 아직 그 안에 들어오지 않았기 때문이지요.
마치 어떤 전기장치가 있다고 할 때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다고 해도 전기가 공급되지 않으면 전혀 움직일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을 때에 비로소 모든 부분이 살아 움직이게 된 것이지요. 전기 장치에 전기가 공급된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렇게 해서 첫사람 아담이 지어졌는데 그에게는 죽음이라는 것이 없었고 늙거나 쇠퇴하는 것도 없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낳은 자손들도 마찬가지였지요. 태어나서 어느 시점까지만 성장하고 나면 그 후로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고 노화나 퇴화도 없었던 것입니다. 이들의 모습에 대한 좀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 시간에 이어서 설명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결론 /
흙으로 지음받은 우리 사람은 땅으로부터 인간 경작에 관한 많은 깨달음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땅도 보면 비옥한 땅과 척박한 땅이 있지요. 그런데 아무리 비옥한 땅이라도 개간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결국 못쓴 땅이 됩니다. 반면에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도 열심히 개간하여 경작을 해 나가다 보면 많은 결실들을 거둘 수 있지요.
여러분이 이 땅에서 경작받다 보면 정말 이것은 쉽게 변화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분야가 있을 것입니다. 또는 '나는 근본이 안 좋아서 아무리 해도 안돼' 하며 포기해 버리고 싶은 경우도 있지요.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누구는 좋은 흙으로 만드셔서 신속히 변화받아 새예루살렘에 이끄시고 누구는 안 좋은 흙으로 만드셔서 겨우 구원에나 이를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 아니지요.
디모데후서 2:20-21에 보면 "큰 집에는 금과 은의 그릇이 있을 뿐 아니요 나무와 질그릇도 있어 귀히 쓰는 것도 있고 천히 쓰는 것도 있나니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예비함이 되리라" 했습니다. 내가 어떤 재질로 만들어진 그릇인가, 나는 어떤 흙으로 지어졌는가를 탓할 것이 아니라, 주어진 안에서 최선을 다해 자신을 변화시켜 깨끗한 그릇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음식을 담는다고 할 때 더러운 금그릇과 깨끗한 사기 그릇 중에 어떤 것을 택하시겠습니까? 당연히 깨끗한 그릇이지요. 아무리 금으로 만들어진 그릇이라 해도 씻지 않아 더러운 상태로는 쓰임받을 수가 없으며 설령, 나무나 사기로 만든 그릇이라도 깨끗하게 준비된 상태라면 주인으로부터 합당하게 쓰임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온갖 육의 더러운 불순물들을 마음의 밭으로부터 신속히 제거하며 자신을 진리로 영으로 일구어 나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버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귀히 쓰임받을 수 있는 거룩한 여러분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8-05-07 오전 11:58:07 Upda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