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강해(7)
서론/ 루시퍼 천사장이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한 시
태초 이전부터 있었던 그 빛이 신비하여라. 그 근본된 빛으로 모든 것을 비추시고 그 마음에 품으시고 계획하신 뜻을 펼치셨도다. 정녕 그 아들들을 분리하시고 아름다운 천사들을 지으시사 아버지의 원하시는 뜻을 이루셨도다.
그 이름이 홀로 높으시며 그 영광이 천지에 뛰어나신 이로다. 지극히 찬양받기에 합당하시며 영화로우신 이름으로 찬양 중에 거하시는 이여 그 찬양을 받으심으로 그 은혜가 넘침이로다. 만물 위에 뛰어나사 그 위엄으로 모든 마음을 감찰하시고 홀로 근본이 되셨으나 우리를 사랑하사 그 빛이 이처럼 나누이사 그 사랑의 은택을 펼치셨도다.
찬양하리로다. 그 성호를 찬양하며 그 아름다우심을 능히 찬양하리로다. 이 가느다란 입술로서 아버지의 사랑을 입은 자의 말로써 정녕 그 이름을 찬양하리로다. 그 찬양을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내 주를 찬양하리로다.
정녕 홀로 계신 그 분, 홀로 계셔서 정녕 모든 것을 생각하시고 그 마음에 두사 이처럼 아름다운 세계를 지으셨도다. 이와같이 우리에게 밝히 펼쳐진바 되게 하사 우리로 하여금 그 성호를 찬양하게 하신 은혜가 아름다우셔라. 찬양을 받으심이 합당하심이로다.
신비로우신 빛이시로다. 그 크기와 밝음이 한이 없으시니 이 모든 천상의 세계를 진동하고도 남음이 있으심이로다. 아버지의 계획하심과 주의 계획하심이 영원토록 있으심이로다. 찬란하리로다. 찬란하리로다. 그의 모든 것들이 찬란하리로다.
위의 찬양은 바로 모든 만물의 창조주시요, 주인되시는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한 것입니다. 모든 만물의 근본이시오. 생명의 근원이 되시는 찬란한 빛이시며 모든 만물 중에 홀로 찬양 받기에 합당하신 아버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찬양의 노래이지요.
루시퍼도 하나님을 배신하고 타락하기 이전에는 항상 아버지 하나님의 곁에서 이와같은 아름다운 찬양과 연주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고 즐겁게 해 드렸으며 그의 찬양은 아버지 보좌 앞으로부터 흘러나와 영의 세계에 가득히 퍼져 나갔습니다.
하늘에서 연회가 베풀어질 때마다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주님과 성령님과 함께 수많은 천군 천사 그리고 그룹들을 거느리시고 참석하셨고 루시퍼는 그 자리에서 그처럼 아름다운 노래로 아버지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했던 것이지요. 여기서 '아버지 하나님의 성호를 찬양했다'고 하는 '성호'는 거룩하고 오묘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일컫는 말입니다.
본론/ 루시퍼 천사장의 배신과 하나님의 인간 경작
하나님께서는 루시퍼의 찬양을 너무나 기뻐하셨으며 이러한 루시퍼를 지극히 사랑해 주셨습니다. 더욱이 루시퍼의 아름다운 모습은 이루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지요. 여러분이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모습을 마음껏 상상해 본다해도 그의 아름다움에 미칠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처럼 아름다운 루시퍼의 모습을 떠올려 보다 보면 어느새 여성에 가까운 모습을 떠올리게 되리라 생각합니다. 물론 여러분 중에 영안이 열려서 타락하기 이전의 루시퍼의 모습이나 또는 타락한 이후의 모습을 보신 분들은 그가 여성이라는 느낌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루시퍼는 사람으로 말하자면 여성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만드실 때 모든 천사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성별을 구분하여 만드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루시퍼를 비롯하여 하나님께 직속한 세 천사장들을 여성으로서 만드셨는데 자칫 이 땅의 여성을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 사람들이 남성과 여성의 성별을 구분하는 생물학적 기준에 따른 여성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생김새와 느낌, 행동, 말씨 등 모든 분위기가 여성적이라는 말이지요. 반면 가브리엘이나 미가엘과 같은 천사장들은 남성적인 이미지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루시퍼 천사장을 비롯한 세 천사장
이처럼 하나님께 직속한 세 천사장들은 외모뿐만 아니라 행동이나 말씨 그리고 옷의 모양까지도 아름답고 우아하고 단아하고 청초하며 부드러운 여성의 모습을 띄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름다운 모습으로 삼위일체 하나님 곁에서 섬기고 수종들며 사랑을 주고받았습니다.
여러분이 우리 예수님을 섬겼던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을 한 번 연상해 보시면 하나님께 직속으로 속한 세 분의 천사장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겼고 하나님께 있어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를 어느 정도나마 이해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눈물로 발을 적셔 자기 머리카락으로 씻고 입맞추며 향유가 가득한 옥합을 깨뜨려 그 위에 부었던, 그 여인들의 지극한 사랑과 정성을 생각하시면 하나님을 향한 세 천사장들의 마음이 어떠했을까가 그래도 조금이나마 느껴질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도 이러한 세 천사장을 얼마나 지극히 사랑해 주시고 아끼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이름을 지어주실 때도 그들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영계의 모든 만물들이 알 수 있도록 '루시'라고 하는 공통된 단어를 사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각각 '퍼'와 '야'와 '엘'을 붙여 주셨지요. 그래서 그들의 이름은 각각 '루시퍼'와 '루시야'와 '루시엘'입니다. 물론 이 이름 그대로 천국에서 불리우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이름을 우리가 알 수 있는 이 땅의 언어로 표현하자면 이와 같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이름들에는 어떠한 의미가 담겨있을 까요? '루시'라는 말에는 영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물론 '루시'라는 단어는 이 땅에서 사용하는 언어로도 '빛'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그들이 빛 자체이신 삼위일체 하나님께 속한 존재임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줍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영적인 의미를 볼 때, '루시'라는 이름에는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며 아버지의 가까이에서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여인의 향을 내어드릴 뿐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되어 서로 간에 마음을 나누고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대상, 또한 아버지 하나님께 감동을 드리며 서로가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대상으로서의 의미가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많은 천사들 중에서 오직 이들에게만 아버지의 사랑과 영광을 담아서 친히 '루시'라는 이름을 붙여 주신 것이요, 다른 수많은 천사들은 '루시'라는 이름만 들어도 그 이름으로 인해 그들의 영화로움과 아버지 하나님의 가까이에서 특별히 구분되어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크신 사랑과 은혜 속에 놀라운 권세와 위치를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루시퍼를 비롯한 세 천사장들 사이에도 서열과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물론 그 서열이라는 것이 어떤 상하적인 관계나 계급적인 질서를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 중에 루시퍼를 가장 머리로 세워서 그들 사이에 질서를 세워 주셨던 것이지요. 명령하고 순종하는 질서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러한 질서가 있음으로 인해 서로가 더 섬기며 존경하고 존경받을 수 있는 사이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관계를 굳이 이 땅의 것으로 비유하자면 마치 한 집안에 세 며느리가 있어서 제일 윗동서가 첫째로서의 권한을 가지며 그 권한 속에서 아랫동서들을 섬기고 또 아랫동서들은 윗동서를 섬기고 위하는 모습과 같지요.
이처럼 서로 섬기는 관계 속에서 온유하고 온화하며 유순하며 덕이 있을 뿐 아니라 그 모습이 너무나 아름답고 우아하며 세련되고 그 말 역시 실수가 없고 아름다우며 청아한 분위기를 풍기니 그들이 얼마나 아름다웠겠으며 얼마나 하나님의 큰 기쁨과 사랑이 되었겠습니까?
영안이 열려서 천사들을 보시는 분들은 그 아름다움이 어떠한지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런데 루시퍼를 비롯한 세 천사장의 아름다움은 다른 천사나 천사장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요.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천사들 중에서 바로 삼위일체 하나님의 곁에 두실 이들을 지으실 때 얼마나 마음을 쏟으셨겠습니까? 그러니 그들의 아름다움과 모든 자태들은 너무나 빼어났던 것입니다.
주변의 천사장들과 수하의 모든 천사들이 그들의 모습만 보고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 만큼의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정녕 어떤 보석과도 비교할 수 없는 눈동자와 깎아 만든 것 같으면서도 너무나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얼굴과 외모 그리고 하얗고 뽀얀 연한 순백색의 우유빛의 피부, 그 피부에서는 부드럽고 매끄러우며 포근함이 느껴지며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름다운 장식들로 치장되어 있어서 그들에게는 온통 아버지의 영광으로 둘러주신 은혜가 충만했던 것입니다. 이 땅의 언어나 표현으로는 할 수 없을 만큼 그 모습의 아름다움과 풍겨지는 분위기 그리고 옷매무새에서부터 표정 하나까지도 모든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최고의 솜씨로 만들어 놓으셨던 것이지요.
그러나 루시퍼를 비롯한 세 천사장들의 성품에는 조금씩 다른 면들이 있었습니다.
첫째 격인 루시퍼는 첫째라는 위치 때문에 다른 두 천사장들에 비해 다소 그 마음속에 강한 면이 있었지요. 이 땅에서도 대개 첫째가 책임감이 더 있다보니 다소 강한 면을 볼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반면 다른 두 천사장들은 서로가 비슷하며 닮은 면이 많았는데 그 성품이 온유하고 온화하며 청초함을 겸비하고 있었죠. 또한 이 둘은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고 서로에게 위안이 되어주었으며 서로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이 둘은 더욱 서로를 섬기고 사랑하는 아름다운 관계를 이루어 갈 수 있었지요.
이처럼 하나님께서 인성을 주시고 곁에 두셨던 세 천사장들은 물론 모두가 너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여인의 향기를 풍기며 삼위일체 하나님을 수종들었지만 루시퍼와 다른 두 천사장들 사이에는 이러한 약간의 차이, 성품상 빛깔의 차이가 있었던 것입니다.
2.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특별한 사랑을 받았던 루시퍼 천사장
루시퍼는 세 천사장들 중에서 특별히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는 천사장이었습니다. 그것은 루시퍼가 삼위일체 하나님 중에서도 아버지 하나님을 위해 지어진 존재였기 때문이지요. 더욱이 루시퍼는 처음에 들으셨던 것처럼 아름다운 연주와 노래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향상 아버지 하나님 곁에서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을 드리는 존재였기에 그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사랑받고 존귀히 여김받던 그가 하나님을 배신하고 타락함으로 악의 우두머리가 되고만 것이지요.
계17:1-5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내가 보니 여자가 붉은 빛 짐승을 탔는데 그 짐승의 몸에 참람된 이름들이 가득하고 일곱 머리와 열 뿔이 있으며 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계18:7 그가 어떻게 자기를 사치하였든지 그만큼 고난과 애통으로 갚아주라 그가 마음에 말하기를 나는 여황으로 앉은 자요 과부가 아니라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계19:2 그의 심판은 참되고 의로운지라 음행으로 땅을 더럽게 한 큰 음녀(淫女)를 심판하사 자기 종들의 피를 그의 손에 갚으셨도다 하고
여기서 큰 음녀(淫女)란 바로 루시퍼를 가리킵니다.
악한 영의 세계의 우두머리가 되어 인간 경작의 세월동안 이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을 미혹하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 세상의 죄악 가운데 빠지도록 만든 큰 음녀(淫女)인 루시퍼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는 말씀이지요. 여기서도 이처럼 루시퍼를 여성으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사14:12 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루시퍼를 표현해 놓은 또 다른 표현을 보면 '아침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왜 여기서는 루시퍼를 마치 남성처럼 표현했을까요? 루시퍼를 아들이라 표현한 것은 그가 남성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설령 남성의 성을 가졌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천사를 가리켜 아들이라 부르시지는 않으시지요.
히1:5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
즉, 하나님께서는 어떤 천사에 대해서도 그를 낳았다고 하지 않으시고 아들이라고도 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도 왜 이사야서에서는 루시퍼에 대해서 '아침의 아들'이라 표현하고 있는 것일까요? 여기에는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 세상에서도 자신이 직접 낳은 자녀는 아니지만 너무나 자신을 극진히 섬기며 사랑하며 충성되게 행하는 사람이 있을 때에 그에게 "너는 내 아들과 같다." 또는 "내 딸과 같다." 말하는 것을 봅니다. 실제 자신이 낳진 않았다 해도 너무나 그 사람이 사랑스럽기에 마치 친자녀처럼 대해 주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이제 루시퍼가 아버지 하나님께 어떠한 존재였는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는 항상 아버지 하나님과 동행했고 사랑을 주고받는 관계였으며 연주와 노래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함으로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을 감동시킬 만큼 참으로 충성되고 사랑스러운 존재였지요. 따라서 이러한 루시퍼에게는 아버지 하나님의 극진한 사랑이 주어졌고 그에 따르는 권세와 위엄도 주어졌던 것입니다.
'아침의 아들'이란 바로 이러한 루시퍼에게 주어진 하나의 칭호였던 것이지요. 여기서 '아침'이란 모든 것을 소생시키고 모든 것을 비추어 밝히며 모든 것의 소망이 되어졌다는 의미가 있는 것이고, 다음으로 '아들'이란 그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거나 또는 남성이라는 의미에서 아들이라 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주어진 권세와 위엄이 워낙 대단했기에 마치 하나님의 아들과도 비길 정도로 대단한 위치였다는 의미에서 아들이라 한 것입니다.
이는 참으로 영화롭고 영광스러운 계급과 같은 것이며 누구나 이 칭호를 듣게 되면 그가 어떤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만큼 루시퍼는 아버지 하나님께 있어서 귀하고 소중한 존재였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루시퍼에게 아침의 아들이라는 호칭과 함께 계명성이라는 호칭까지 더해 주셨죠. 계명성은 금성을 지칭하며 새벽별 또는 샛별이라고도 합니다. 사람들도 사랑스러운 사람을 부를 때는 이름과 함께 애칭을 부르기도 하는 것을 보는데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사랑스러운 루시퍼에게 새벽하늘에서 가장 빛나게 빛나는 별의 이름을 불러 주셨던 것입니다.
계22:16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성경은 우리 주님을 가리켜 광명한 새벽별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새벽별은 계명성과 함께 금성을 가리키는 다른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우리 주님과 루시퍼에게 이처럼 같은 별의 이름이 주어진 것일까요?
여기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이에게 그 사랑의 표현으로서 별의 이름을 붙여 주셨던 것 그 이상의 영적인 의미가 있습니다. 바로 특별한 의미를 담아서 우리 주님이나 루시퍼의 이름을 별에 새겨 넣으셨던 것이지요.
원래 새벽별이란 이름은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에게 붙여 주신 것입니다. 장차 우리 주님께서 인간경작을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모든 인류의 구세주가 되셔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가지고 계시다는 의미를 담아서 이 새벽별에 주님의 이름을 새겨 넣어 주셨던 것이지요.
비유를 들어 설명해 보면, 어떤 사람을 가리켜 '혜성'처럼 등장했다고 하거나 또는 '새롭게 떠오르는 별'이라고 부르는 것을 봅니다. 혜성이나 떠오르는 별이라는 단어에는 그 단어가 가지는 원래 뜻과는 다른 특별한 의미가 담겨있지요. 지금까지는 드러나지 않았던 어떤 사람이 어느 순간 나타나 주변의 사람들로부터 인정을 받고 갑자기 유명해 지면서 두각을 나타낸다는 의미가 담겨져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의미를 담아서 사람에게도 혜성이나 떠오르는 별이라는 호칭을 붙여 주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우리 주님에게 새벽별이라는 칭호를 붙여 주신 것은 장차 인간 경작을 위해 감당하셔야 할 커다란 사명이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었던 것이지요. 새벽별이라는 것이 하나님의 아들에게 주어졌던 최고의 영광스러운 호칭임과 동시에 장차 주님의 사명에 대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는 말입니다.
물론 주님에게 새벽별이라는 호칭이 주어졌을 때에는 아직 이 지구는 물론이고 새벽별 즉 금성도 창조되기 이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의 모든 것을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장차 지구와 태양계 등이 만들어진 후 이 지구에서 바라볼 때 새벽 아침 하늘에 가장 밝은 빛을 내며 떠 있는 별이 바로 금성임을 아셨지요. 그래서 그 많은 별들 중에 이 새벽별을 택하여 그 별에 주님의 이름을 새겨 넣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중요한 의미가 담긴 새벽별에 루시퍼의 이름도 새겨 넣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그것은 루시퍼를 지극히 사랑하셨던 하나님께서 이 호칭을 통해 그에게도 마치 우리 주님과 같은 엄청난 권세와 영광을 나타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루시퍼의 이름을 계명성에 새겨 넣어주신 데에는 더 큰 영적인 의미가 있었습니다. 앞서도 우리 주님의 이름을 새벽별에 새겨 넣으신 데에는 장차 주님께서 인간 경작을 위해 감당하셔야 할 큰 사명에 대한 의미가 담겨있다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루시퍼 역시 장차 인간 경작을 위해 감당해야할 큰 사명이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아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금성 즉 계명성에 새겨 넣으셨다는 것입니다. 그 역할은 바로 장차 악한 영의 세계의 우두머리가 되어 인간 경작을 위해 사용되어지는 것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선과 반대되는 악한 영의 세계가 또한 있어야 공의 가운데 정확하게 인간 경작이 이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장차 인간 경작을 위해 필요하게 될 루시퍼의 역할을 미리 아셨기 때문에 그 역시 인간 경작을 위해 중요한 사명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를 담아서 계명성에 그의 이름을 새겨 넣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여러 차례 말씀드린 대로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루시퍼가 배신하도록 미리 정해 놓으시고 그 이게 이러한 의미로 담긴 이름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너무나 그를 사랑하셔서 주신 것이었지요. 감히 피조물인 천사로서 하나님의 근본 본체이요, 아들이신 우리 주님에게 주어졌던 별의 이름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영광이며 그가 하나님으로부터 얼마나 사랑을 받던 존재였는가를 능히 짐작케 해 주는 것입니다.
3. 루시퍼의 배신과 참자녀를 얻기 위해 인내로 기다리시는 하나님
루시퍼는 자신에게 이처럼 영광스러운 별의 이름이 주어지면서부터 그 본색을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지금까지도 교만한 마음이 점차 싸여 왔던 그가 감히 주님과 비길만한 엄청난 호칭을 얻게 되자 그 순간부터는 하나님을 배신하려고 했던 계획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기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계명성이라는 이름에는 루시퍼에 대한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함께 루시퍼의 배신 그리고 그로 인해 장차 루시퍼가 인간 경작의 시간 동안 감당하게 될 역할까지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 왜 성경에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라 했는지 그 영적인 의미들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새벽하늘에 유난히 빛나는 금성이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기도 전부터 인간 경작과 관련하여 이렇게 중요한 의미를 담고있는 별이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늘에 보이는 무수한 별들을 하나님께서는 의미 없이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금성처럼 특별한 의미를 가진 별들도 있는데 그러한 별들은 어떤 별들이고 또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해와 달과 별들이 창조되어진 넷째 날에 대하여 설명할 때 자세하게 증거하겠습니다.
우리가 한 나라의 왕으로부터 사랑과 총애를 받는다고 해도 이는 대단한 영광이며 축복일 것입니다. 그런데 루시퍼는 하나님의 아들도 아니요. 피조물인 천사에 불과했으면서도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루시퍼가 하나님을 배신했을 때에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이 어떠셨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가 배신하리라는 것을 아셨음에도 결코 그것을 염두에 두어 거리를 두고 그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영적인 사랑이기에 무조건 주시는 사랑이요. 이해하고 품고 끝까지 사랑해주시는 사랑이지요. 우리 인생들의 죄를 위해 독생자 예수님까지 이 땅에 보내어 우리의 죄를 지고 대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도록 내어주실 만큼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한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도 루시퍼는 하나님을 배신하고 돌아올 수 없는 길을 가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때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느껴야 했던 배신의 아픔과 고통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고통을 참으실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장차 얻게될 참 자녀에 대한 소망이 있으셨기 때문입니다.
인간 경작을 통해 이제는 배신하지 않고 영원히 아버지 하나님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자녀들, 그러한 참 자녀들을 얻기 위해서는 루시퍼의 배신과 타락이 있어야 했던 것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고통을 참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녀된 우리들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마음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그 큰 고통을 인내하시며 결국 얻은 자녀들이니 얼마나 사랑스러우시겠습니까?
더욱이 하나님께서 지금에 이르기까지 느끼셔야 했던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지요. 루시퍼의 배신의 고통은 물론이고 인간 경작 6000년의 과정 속에서도 또 얼마나 많은 배신과 아픔을 느끼셔야 했겠습니까? 이는 이 땅에 친히 내려 오셔서 인간 경작의 과정을 겪으신 우리 주님도 마찬가지이지요.
우리 주님 역시 짧은 삶을 사셨지만 그 안에서 많은 배신의 고통과 악한 인간들로 인해 마음 아파하셔야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직 선만 행하시고 사랑만 주시며 도움이 필요한 수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셨건만 악한 사람들은 이러한 예수님을 어찌하던 죽이려 했고 심지어 제자들 중에서는 스승인 예수님을 파는 사람까지 나오고 말았죠.
성경을 보면, 가룟 유다만이 아니라 우리 예수님께서 영적인 말씀을 하시자 이내 시험들어 예수님을 떠나는 제자들도 많이 있었던 것을 봅니다. 그 수많은 기사와 표적 희한한 능과 기이한 일들을 친히 눈으로 보고 듣고 체험했으며 또 그 많은 생명의 말씀들을 들었으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틀에 맞지 않으니 제자들 중에도 떠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지요.
요6:66 이러므로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주님이 자신에 대해 증거하니까 많은 제자들이 떠나 버립니다. 자기 생각과 안 맞으니까 함께했던 제자들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처럼 떠나버리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 성령님은 어떠실까요? 하나님의 자녀된 사람들에게 오셔서 내주하시는 성령께서도 지금까지 수많은 배신의 고통과 아픔을 당하셨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자녀안에 내주하시던 성령께서 소멸되어 가는 경우들이지요.
살전 5:19 성령을 소멸치 말며
믿는다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처럼 성령이 소멸되어 가는 경우들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즉, 예수님을 영접하여 죄사함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가도 다시금 세상으로 향하여 결국 하나님과는 상관이 없어지는 사람들이지요. 내주하시는 성령께서 안타깝게 탄식하셔도 그 음성을 듣지 못하고 계속하여 세상과 짝하다가 결국 성령이 소멸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늘의 생명책에서 그 이름이 흐려지는 것이지요.
4. 하나님께서 수많은 세월을 참으시며 인간 경작을 하시는 이유
하나님께서 인성을 주어 창조한 세 천사장은 늘 하나님과 주님, 성령님 곁에서 자기들의 눈으로 보고 함께 하면서 많은 것을 알았습니다. 인간의 경작도 알았고 희로애락을 알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들과 인간 경작을 받은 저나 여러분 중에서 누구를 더 사랑하실까요?
우리가 경작을 받은 후에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게 된다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세 천사장들보다 더욱 많은 사랑을 받게 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왜 하나님께서 굳이 수많은 세월을 참으시고 투자하셔서 인간 경작을 하시며 그토록 경작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찾으시는 것일까요? 이는 인간 경작을 받은 것과 받지 않은 것은 엄청나고 분명한 차이가 있기 때문인데 이제 비유를 들어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바늘을 가져다가 손톱 밑을 찌른다고 생각해 보세요. 한 1cm쯤 찌른다면 얼마나 아프겠습니까. 그렇지만 이러한 경험이 전혀 없는 사람은 그 느낌이 대단치가 않습니다. 아픈 것은 알지만 체험해 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아픔을 느낄 수가 없지요.
그러나 손톱 밑을 찔려 심한 고통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내가 바늘로 1cm정도 찌를거야" 라는 말만 들어도 깜짝 놀라며 두려워하게 됩니다. 실제로 체험해 보았기 때문에 그 느낌이 연상되어 고통을 느끼게 되지요.
또한 태어나서부터 부요하게 살았던 사람은 가난하면 힘들고 어렵다는 것을 알지만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크게 이해하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아주 가난하게 살았던 사람이 부요해졌다면 가난한 사람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지요.
만일 심히 아팠던 사람이 치료받아서 건강해졌다고 합시다. 그는 아픈 사람의 마음과 고통을 이해하므로 누가 아픈 것을 보기만 해도 애가 타고 어찌하면 도울 수 있을까 하는 마음이 중심에서 나오지만 전혀 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아프면 좋지 않다, 고통스럽다라는 것은 알지만 그 느낌이 없기 때문에 "참 안됐다" 정도로 끝나고 말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직속한 세 천사장들은 인간 경작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안다고 해도 직접 인간 경작을 받아 모든 것을 느껴본 우리들과는 너무나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을 사랑해도 너무 다른 것이요, 하나님께서는 인간 경작을 위해 수많은 세월을 투자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천국에 가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사랑하시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원수까지라도 정녕 마음 중심에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랑, 일흔 번에 일곱 번 뿐 아니라 무한대로 용서하는 사랑, 바로 빛 자체요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신 사랑으로 만물이 창조하시고 인간을 경작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아득한 오래 전부터 루시퍼의 배신을 참으셨고 오늘날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참으셨고 지금도 하나님의 나라를 훼방하는 이들을 참으시며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아 천국에서 영원히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참 자녀가 될 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을 널리 전하여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하는 참자녀가 되어야
어떤 아버지가 사랑하는 어린 아들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천신만고 끝에 아들을 살릴 수 있는 약을 구해 왔습니다. 그것을 얻기까지 쉬지도 못하고 잠도 잘 자지를 못했으며 말할 수 없는 고통도 당해야 했지요.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고서야 겨우 약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아들을 살려내기는 했는데 막상 아들은 이러한 아버지의 사랑과 헌신을 전혀 모르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직 어리니까 그렇겠지 하고 말았는데 이 아들은 장성하여 아버지가 자신을 위해 어떻게 했는지를 안 후에도 감사하지를 않는 것이지요.
여러분은 창세기 강해를 통해 창조 이전, 태초의 시간에 어떠한 일이 있었고 그러한 일들이 왜 있어야 했으며 또한 그 사건에는 결국 우리를 향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이 담겨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죄인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처럼 사랑하시는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 위에 보내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만 알아도 그 사랑에 대한 감사를 표현 할 길이 없을 텐데 이제는 그보다 훨씬 이전부터 시작된 아버지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강해를 듣는 동안 우리 마음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차야 하고, 사랑이 가득찼다면 그 사랑에 보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자신부터가 아버지 하나님의 인간 경작에 맞는 참 자녀로 나와져야 할 것이고 아직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을 알지 못하는 주변의 수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그 큰 사랑을 받고도 감사치 못하는 자녀가 아니라 넘치게 감사할 수 있는 사랑스런 참 자녀로 모두 나오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005-01-19 오전 1:01:01 Posted
2016-03-23 오전 9:36:12 Updated